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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이란 과연 무엇인가?
만약 사람들에게 이에 대해 묻는다면 대개 사람들은 이렇게 답할 것이다.
[무서운 꿈.]
“아아아... 아...”
괴로움 섞인 신음소리가 동굴 외벽을 타고 잔잔히 울려 퍼졌다.
루시아가 이성을 잃은 마르크의 팀원의 뒤를 쫓기 시작한지도 어느덧 30분 째.
루시아는 불과 2m 뒤에서 대놓고 사람들을 추격하고 있었으나, 마르크에겐 득달 같이 달려들었던 것과 달리 그들은 그녀를 안중에도 두지 않고 있었다.
마치 존재하지 않는 사람 마냥.
‘...설마.’
이에 이상하게 여긴 루시아가 좀 더 속력을 내 추월하여 그들의 눈앞에 손을 휘휘 저었다.
“아... 아아아...”
그대로 일뿐 반응은 없었다.
그녀의 생각이 맞았다는 뜻이었다.
‘역시 이들은 나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어.’
과연 어째서일까?
의문이 떠오르는 건 사람이라면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
그녀는 이윽고 결론을 내놓았다.
‘역시... 이 동굴은 내 특수특성과 관련이 있는 게 분명해.’
처음에는, 아니 조금 전까지만 해도 감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그녀는 처음 이곳을 찾았을 때 기대 정도만 했지 무조건 100% 강해질 수 있을 것이라 단언하며 김칫국을 마시지 않았다.
악몽과 비스무리한, 마의 특성을 지니고 있던 유세현이 과거 악몽의 신전에서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았던 것처럼.
그녀 또한 그런 이유에서 동굴의 효과가 먹히지 않는 것일 수도 있었으니까.
그리고 뭐니 뭐니 해도 그녀가 좋아하는 남자, 유세현은 단순 감으로 무엇인가를 단정하는 걸 굉장히 싫어하는 성격이었다.
이제는 단짝이 된 김주희가 과거 이것으로 욕을 그렇게 많이 먹었다며 밝힌 적이 있었기에, 그 말을 들은 이후 그녀는 매사 조심하여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아아아...”
그렇기에 현재 그녀에게는 자신할 수 있는 명확한 증거가 있었다.
슈우우우-
그들을 따라 내부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마력이 더더욱 강하게 꿈틀댄다.
이것은 결코 어설픈 감 따위가 아니라 이에 대한 특수특성을 지닌 이만이 이해할 수 있는 원초적 본능이었다.
악몽이란 과연 무엇인가.
그녀는 지금까지 특수특성을 이해하기 위해 수많은 생각을 해왔었지만, 카그네프와의 전투로 절망을 깨쳐 강해진 것을 제외하고는 아직까지 큰 수확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모호하지 않은가.
악몽, 무서운 꿈.
이게 전부인데 어떻게 더 나아가 이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단 말인가.
환희공을 익혀 더더욱 강력한 환각과 악몽 마법을 구사할 수 있게 된 환각계의 스폐셜리스트 아퀼라에게 자문을 구해보기도 했지만, 그녀 또한 루시아가 인지하고 있는 정도뿐이라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
이에 염화(炎火)의 특성을 지니고 있는 이강호는 이렇게 충고해 주기도 했었다.
[그런 건 타인에게 물어봐서 이해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특수특성을 지닌 다는 것은, 자기 자신이 곧 그 개념 자체가 되는 것이니까.]
“아아...”
뚜둑-
그때 흐느적 흐느적 나아가던 사람들의 발걸음이 난데없이 뚝 멈췄다.
그들이 멈춘 장소는 바위로 가로막힌 막다른 길이었다.
“아아아...”
사람들이 벽을 향해 손을 뻗자, 닿은 손끝을 시작으로 바위가 흐물흐물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그들의 몸은 곧 상상할 수 없는 빠르기로 바위 속으로 흡수되기 시작했다.
‘이런...’
루시아는 결단을 내려야 되는 순간이 온 것을 깨달았다.
이들과 함께 흡수되어야 할지. 아니면 여기서 원조를 기다려야 할지.
‘후... 만약 이 바위가 저들에게만 반응하는 거라면 추적은 여기서 끝이 난다.’
본래라면 그녀는 망설임 없이 후자를 택했을 터였다.
이 뒤에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전혀 알 수 없었으니까.
아니, 재수 없으면 흡수되는 것으로 그대로 끝일 수도 있다.
꿀럭 꿀럭-
그러나 그녀는 자신에게 전혀 위협이 되지 않을 거란 느낌이 들었다.
마치 물 만난 고기처럼 마력이 몸 안에서 펄떡펄떡 뛰고 있었다.
‘그래... 이건 감이 아니야. 이건...’
꿀럭 꿀럭-
고작 1초 지났을 뿐인데 그 많던 사람들이 전부 먹히고 불과 셋밖에 남지 않았다.
“후웁.”
루시아는 크게 숨을 들이켰다.
1%의 의구심도 들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그건 거짓말이리라.
‘하지만 난 내 판단을 믿어! 세현씨나 강호씨, 주희가 자신의 판단을 믿고 지금까지 해왔듯이!’
이내 루시아가 망설임 없이 몸을 던지자, 그녀의 눈앞으로 다른 세계가 펼쳐졌다.
* * *
부산하게 움직이던 사람들의 움직임이 한 인물이 나타나기 무섭게 뚝 멈췄다.
현 마교의 마존, 양무원.
그가 그들의 앞에 다가서자 술법사들의 대표 진소후가 고개를 조아리며 정중히 예를 취했다.
“마존을 뵙습니다.”
“그래, 준비는?”
그러거나 말거나, 양무원이 물었다.
미묘하게나마 조급함이 묻어나오는 그런 목소리였다.
‘빨리 진행해야 된다.’
그리고 실제로 그의 마음은 조급했다.
‘세레나가 당도하기 전에 일을 끝마쳐야 해.’
그래야만 약간의 의심도 사지 않을 수 있을 터이기에.
‘개자식들 감히 이 몸을 세뇌시켜?’
문득 이전의 일을 떠올린 양무원의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정신조작, 양무원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정신조작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조작 당했다고 인지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조금만 의심해보면 분명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는 일이건만, 그 조금의 의심도 하지 않았다.
‘빌어먹을...’
허나 이러한 결과는 현재 양무원에겐 중요한 게 아니었다.
여기서 중요한 건 그가 놈들에 대한 경계를 단 한 번도 늦추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마법에 걸려버렸었다는 것.
‘이번에는 정말 운이 좋았다.’
때문에 정말 운이 좋지 않았더라면, 아니 좀처럼 제어가 안 되던 그 골칫덩이들이 없었다면 그 또한 아직까지 꼭두각시 신세를 면치 못했을 터였다.
‘천마대...’
바람의 재해가 등장하고 천마대가 도주하여 난리가 일어났을 때, 양무원은 재수 없게 재해의 영향을 입었다.
그리고 그 당시 정신이 다른 쪽에 쏠린 탓에 드래곤들은 이 장면을 목격하지 못했다.
이것이 현재 그가 온전한 정신을 가지고 있을 수 있는 이유.
언제, 어디서, 어떻게, 그는 정상적인 사고가 가능해진 이후 대체 어떻게 하여 마법에 걸린 것인지 알아내기 위해 기억을 수 없이 많이 더듬어봤으나 알아내기란 불가능했다.
이에 그는 증거는 딱히 없었지만 필히 세레나가 직접 뭔가를 한 것이라 직감했다.
양무원이 아무리 약자라고 한들 수십 년 동안 내공을 다뤄왔던 초고수, 과거 마교의 3인자다.
마력이 완전히 바닥나고, 몸 상태가 최악으로 치닫지 않은 바에야 아무리 드래곤이라지만 술수를 걸려 했다는 것 자체를 인지하지 못할 리는 없는 것이다.
“준비는 전부 끝났습니다.”
“그러냐? 그럼 바로 시작...”
거침없이 명령을 내리던 양무원의 말이 대뜸 뚝 끊겼다.
그가 의식을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는 인물이 술법사의 등 뒤 통로에서 나타나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세레나...”
그가 그녀의 이름을 읊조리자, 카실리아와 함께 다가온 세레나가 무미건조하게 물었다.
“양무원. 지금 뭐하고 있는 중인거지? 아직 토벌은 끝이 나지 않아 의식을 치를 수 없을 텐데?”
“시간이 남아도 너무 남아 망자로 주술 실험을...”
양무원이 답하려던 찰나였다.
“세레나님... 저자는?”
세레나와 함께 다가 온 카실리아가 대뜸 물으며 말을 잘랐다.
이에 양무원의 얼굴에 의구심이 서리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나를 몰라?’
레드드래곤의 진형 내, 세레나의 충복 중 양무원을 모르는 이는 존재하지 않았다.
일개 교인이야 그렇다 쳐도 양무원은 일단 한 단체의 수장인데다가 이 주술의 핵심 멤버였기 때문이었다.
양무원은 재빨리 카실리아의 전신을 훑었다.
‘검은 머리카락과 눈동자... 이 반응... 이 년 레드가 아니군.’
드래곤들은 대개 자기색상으로 폴리모프하기에 양무원은 그녀가 블랙드래곤이란 것을 단번에 알아챘다.
양무원이 어찌된 일이냐는 듯 세레나를 향해 슬쩍 눈치를 주자 세레나가 입을 열었다.
“카실리아. 이 자는 무림인이란다. 네가 알고 있는 인간 종족이지.”
“인간!!”
인간, 그 소리를 듣기 무섭게 카실리아가 적의를 발산했다.
기절한 데프하우어를 챙긴 이후, 그녀는 엘라뉘스의 손가락이 레피아에 의해 잘려나가는 모습을 멀리서 목격했다.
인간이 이 사단을 일으킨 흑막이라 추측되는 만큼 이 정도의 적의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반면, 아무것도 모르는 양무원은 대체 왜 그러는 건가 싶었다.
‘정신이 나간 건가?’
드래곤에게 해를 입었으면 입었지, 해를 입힌 적은 전혀 없었으므로.
아니 있었다 해도 그의 입장에선 머나먼 과거, 레드드래곤 셀론이 죽은 정도뿐이었다.
대체 몇 년이 지난 사건인데...
‘흠... 딱히 정신이 나간 것 같아 보이진 않는데...’
“흠... 내가 무슨 잘못이라도 했나?”
그렇기에 양무원은 질문했다.
과거라면 몰라도 지금의 양무원은 이런 걸 그냥 넘기고 지나갈 인물이 아니었다.
이에 카실리아의 표정이 살짝 더 일그러졌다.
“인간... 감히 그따위 망발을... 네놈들 때문에 지금 우리가 얼마나 많은...”
거기까지 말했을 때, 세레나가 말을 잘랐다.
“카실리아?”
“아...”
고작 이름 한마디 불렀을 뿐인데, 카실리아의 표정이 분노한 괴수에서 마치 실수를 저지른 소녀마냥 단번에 돌변했다.
지금 그들에겐 시간이 없었다.
“자 빨리 가자꾸나. 이 자에 대한 건 나중에 얘기 해줄 테니.”
“아, 예...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순간적으로 욱해버려서...”
“죄송할 게 뭐 있니.”
세레나가 카실리아를 데리고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그건 누가 봐도 자리를 이탈하려는 모습이었다.
양무원은 의문에 잠겼다.
‘어째서지? 뭔가 내가 저 도마뱀에게 들어선 안 될 말이라도 있는 건가?’
양무원의 머리가 그 어느 때보다 미친 듯이 돌아갔다. 세레나가 이런 모습을 보인 적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는 카실리아가 내뱉었던 말을 천천히 돌이켰다.
[인간... 감히 그따위 망발을... 네놈들 때문에 지금 우리가 얼마나 많은...]
걸리는 건 마지막 ‘많은’ 이라는 단어와 ‘지금’ 이라는 단어였다.
고작 한 마리의 드래곤이 죽은 것으로 ‘많다’라는 말이 쓰일 리가 없었으니까.
‘게다가 지금이라고 했다... 이건 지금 당장 영향을 주고 있다는 의미...’
결과가 도출된다.
그러나 그것은 양무원으로서는 도무지 믿을 수 없는 결과였다.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고? 그것도 인간에게?’
순간적으로 눈가에 초점을 잃은 양무원의 턱이 쩍 벌어졌다.
인간이 드래곤을 따라잡았다는 것인가? 자신이 잡혀 노예생활을 하고 있던 동안?
“......”
짝-
양무원은 스스로의 뺨을 세게 후려쳤다.
인간진형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든 현재 그에게는 의미가 전혀 없었다.
어차피 인생이란, 자신이 죽으면 거기서 끝인 것이니까.
할 일을 하는 게 우선이다.
“진소후.”
“충!”
“술법을 시행하도록 하라.”
* * *
세레나와 카실리아가 멈춰선 장소는 주위 투박한 환경과는 전혀 맞지 않는 고풍스런 건축물의 앞이었다.
“세레나님 여긴...”
“이 층에 마련해놓은 임시거처야. 여러 가지 마법처리를 해놨지.”
“아... 어쩐지...”
“데프하우어를 내려줄 수 있겠니?”
“예, 물론이죠.”
세레나의 말마따나 카실리아가 업고 있던 데프하우어를 내리자, 세레나는 그를 곧장 안아들었다.
“지금부터 난 이 안에 들어가 바로 술식을 시행하도록 하마.”
“아, 예! 저도 돕겠...”
“아니, 이전에도 말했듯이 이건 내가 새로 개발한 비술이다. 그러니 시행은 나 혼자 하도록 하마.”
“아...”
카실리아가 순순히 납득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본래 드래곤이란 종족은 개발한 마법을 타인에게 감추고 싶어 하는 경향이 예로부터 있었다.
사실 카실리아에겐 세레나가 비술을 시행해주는 것 자체만으로도 감지덕지인 것.
“아, 그리고 내 호위들이 오면 걔들하고 같이 이 주위를 좀 지켜주겠니? 이 술식은 굉장히 민감해서 끝날 때까지 조금의 방해도 받으면 안 되거든.”
“목숨을 걸어서라도 지킬게요.”
“후훗, 든든하구나. 그럼...”
세레나가 몸을 돌리려는 순간이었다.
때마침 깨어난 데프하우어가 카실리아에게 힘겹게 손을 뻗었다.
“카실...리아...”
“아버님! 조금만 더 참으세요! 세레나님이 곧 아버님을 주박으로부터 편하게 해주실 거예요!”
“카실리아... 포기해라... 놈의 동화에는 절대 도망칠 수 없...”
“그런 말 마세요! 아버님은 충분히 돌아오실 수 있어요!”
카실리아가 데프하우어의 덜덜 떨리는 손을 덥석 쥐어 잡았다.
데프하우어는 잠시 동안 슬픈 눈으로 그녀를 응시했다.
이윽고 그가 시선을 돌려 세레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세레나... 사실인가?”
“그래, 가능해. 데프하우어.”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믿... 겠... 다...”
데프하우어가 식은땀을 질질 흘리면서도 한 글자 한 글자 똑바로 말을 내뱉었다.
세레나는 꼭 붙잡고 있는 카실리아의 손을 조심스레 떼어냈다.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구나. 이만 들어보도록 하마.”
“세레나님 제발... 제발 아버님을...”
“걱정 말거라. 데프하우어는 꼭 되돌려 놓을 테니.”
세레나가 터벅터벅 문안으로 자취를 감췄다.
카실리아의 몸이 제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데프하우어의 목소리가 아직까지도 귓가에 울려 퍼지고 있는 느낌이었다.
악몽을 꾸는 땅(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