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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색 경과 24시간째.
동굴 벽면을 어루만지고 있던 마르크의 뇌리에 에밀리의 얼굴이 스쳐지나갔다.
“큭...”
침음이 절로 흐른다.
그토록 열심히 수색했건만 여전히 단서는 제로.
“후...”
심신에 피로가 쏠려왔다.
현재 그들이 소비하는 심력은 이전 사람들과 함께할 때에 비해 최소 2배 이상은 컸다.
여기서 조난당하면 정말 끝일 수도 있었으니까.
긴장감과 압박감. 그리고 불안감.
그들은 그것을 전부 감수하며 이겨내고 있었다.
“리더, 슬슬 24시간째야.”
“어떡할 거야?”
길드원들이 마르크를 향해 물어왔다.
일부러 티를 안내려 하고 있었지만 루시아는 그들이 불과 8시간 전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굉장히 지쳐있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날숨을 길게 내쉰 마르크가 입을 천천히 열어 말했다.
“조금... 조금만 더 찾아보자. 지금까지 우리가 무사했다는 건 우리는 그래도 이 동굴의 마수에 저항할 수 있다는 거니.”
“알았어 리더.”
“그럼 10분만 쉬고 다시 움직이자.”
마르크의 말에 경계조를 제외한 모두가 한곳에 빙 둘러 모여 지면에 털썩 주저앉았다.
휴식은 지친 그들에게는 가뭄의 단비 같은 것이었다.
“후...”
시간이 조금 흐르자 일부 사람들의 고개가 위아래로 꿈뻑 꿈뻑 흔들리기 시작했다.
누가 봐도 졸고 있는 모습.
마르크는 이것을 확인했지만 그냥 놔뒀다.
언제 적의 습격이 있을지 모르는 이 세계에선, 당최 발을 뻗고 잠을 청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아니, 하루에 아무리 많이 자도 1~2시간을 못 잔다.
그렇기에 대리자들은 간간히 이런 식의 램 수면을 취하는 것으로 컨디션 회복을 했다.
다행히도 대리자들에게 있어서는 이제 더 이상 1초가 찰나의 순간이 아니었기에 2~3분 정도의 굉장히 짧은 수면조차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이것은 장기간의 여행을 위해선 꼭 필요한 필수 불가결 적인 행동이었다.
“...아...”
마르크는 이것이 패착의 원인이라는 것을 그때가지만 해도 모르고 있었다.
“크리스...”
“데헨나... 아비르...”
갑작스레 사람들이 영문 모를 말을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대개는 이름이었지만 아닌 것도 분명 있었다.
“안돼... 안돼...”
“피해...”
사람들이 하고 있는 것은 잠꼬대였다.
마르크는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그들을 다급히 깨우려했다.
“케넥스! 일어나라! 제일라! 정신 차려!”
스스스스-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그러나 지금까지 그들의 몸을 쭉 감싸고 있던 검은 기운이 형상화되어 드러나며 요동치기 시작한다.
“애들 깨워!”
외침에 잠들지 않았던 일부 길드원들이 다급히 이상 증세를 보이는 이들의 몸을 흔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으아악!”
잡은 팔을 촉매로 기운이 되레 타고 올라와 순식간에 사람들을 잠식해나갔다.
“아아... 아아아...”
잠식당한 사람들의 눈가에 초점이 사라진다.
마르크는 마력을 최대한 끌어올리며 리더답게 어떻게든 저항하려 했지만 안타깝게도 무리였다.
마르크의 시야 또한 뿌옇게 변하며 흐려지기 시작한다.
그는 정신을 잃기 전 이것의 정체를 깨달을 수 있었다.
잠식당한 사람들의 입에서 삐져나오고 있는 말은 전부 그들의 트라우마였으니까.
이것은... 악몽이었다.
지독하기 짝이 없는... 굉장히 끔찍한...
‘전부... 이렇게 당했구나... 젠장...’
그때였다.
턱.
무엇인가가 마르크의 안면을 덥석 붙잡았다.
슈슈슈슈-
끔찍한 기운이 사라지며 마르크는 머리가 맑아지는 것을 느꼈다.
“헉... 헉... 헉...”
마르크의 육체가 힘없이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가 다급히 고개를 치켜세워 은인을 바라봤다.
“루... 루시아씨?”
“괜찮아요?”
“예... 전 괜찮습니다. 그보다도 다른 이들을...”
“죄송하지만 이미 늦은 것 같아요.”
다른 이들은 기운에 완전히 삼켜져 이성을 잃고 흡사 폐인처럼 침을 질질 흘리고 있었다.
루시아가 기운을 뜯어내보려 했지만, 이성이 조금이라도 남아있었던 마르크와 달리 통하지 않았다.
‘이성을 완전히 잃으면 통하지 않는 건가.’
“으아아... 미안... 잘못했어...”
그들의 입에서 연신 사죄의 말이 반복됐다.
이윽고 그들은 비틀거리는 몸을 움직여 동굴 내부를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이것이 지금까지 사람들이 사라진 경위.
마르크가 곧장 그들을 뒤쫓으려 할 때 루시아가 어깨를 붙잡으며 말렸다.
“잠시만요. 마르크씨.”
“예?”
“뒤는 제가 쫓을 테니 마르크씨는 일어난 일을 이벨린씨에게 보고하러 가주세요.”
“예? 그게 무슨...”
마르크가 뭔 뚱딴지 같은 소릴하냐는 얼굴이 되었지만 곧 이어지는 말에 그는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버틸 수 있으시겠어요?”
게다가 누군가는 이를 알리는 것이 전체적으로 봤을 때 확실히 좀 더 옳은 판단이기도 했다.
“......”
굳게 다문 마르크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그는 같이 쫓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아있지만 그것은 오만이란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그럼... 죄송하지만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벨린씨께는 제가 목숨을 걸고서라도 어떻게든 보고를 할 테니... 꼭 좀...”
“뒤쫓아 오실 수 있도록 흔적을 만들어 놓을게요.”
“예... 그럼...”
루시아와 마르크가 몸을 교차해 각기 다른 방향을 향했다.
* * *
수정 동굴, 그 동굴의 끝.
이강호가 특정 벽을 조작하자 땅이 갈라지며 나선형의 계단이 드러났다.
“아니? 이런데 길이?”
아무것도 모르는 태백무가 경악 하는 반면, 제넥은 입맛을 쩝 다셨다.
‘이런 사기 캐릭 같으니라고...’
미래를 알고 있다는 것은 모르는 입장에선 진짜 어마무시한 사기가 아닐 수 없었다.
상대를 처음 만났는데, 그 상대가 자신의 주 스킬이나 행동 습성을 전부 파악하고 있다면?
소름이 끼치다 못해 오한이 들지 않겠는가?
계단을 내려가자 절벽과 절벽을 이어주고 있는 구름다리가 나타났다.
그 밑에는 물이 아닌 용암이 흐르고 있었다.
이강호가 건너기 전 충고했다.
“조심해라. 지금부터는 가디언이 등장할 수도 있으니.”
“가디언?”
“이곳을 지키고 있는 파수꾼이지. 상당히 강할 거야. 수가 꽤 될 수도 있고.”
“정확한 수까지는 모르나?”
“그런 걸 어떻게 다 알겠나?”
이강호가 그리 말하며 제넥에게 눈치를 보냈다.
지금은 그들끼리만 있는 게 아닌, 태백무가 포함된 상태.
말조심하라는 뜻이었다.
제넥이 손을 휘휘저어 알았다는 뜻을 보내자 이강호가 앞장서서 건너기 시작했다.
한 걸음 한 걸음, 최대한 조심스럽게.
나타나는 즉시 반응할 수 있도록.
그러나 구름다리를 다 건너고, 절벽을 통과할 때까지도 파수꾼은커녕 개미 새끼 하나 나타나는 일은 없었다.
이에 이강호가 의구심에 물드는 건 당연하다면 너무도 당연한 일.
‘뭔가 이상하다.’
과거, 그가 이곳을 찾았을 때 가디언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 장소가 이미 이종족들의 손을 많이 탄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과거대로라면 아직까진 알아낸 사람이 없을 터.’
이강호의 미간이 더욱 좁혀졌다.
그는 조금을 더 나아가고 나서야 비소로 확신했다.
“이미 다른 누군가가 이곳을 찾았다.”
그리고 그 자가 가디언을 부쉈다.
‘누구지? 대체?’
의식의 흐름이 이곳을 찾았을 누군가로 자연스레 전환되었다.
제일 먼저 그의 뇌리에 떠오르는 건 드래곤이었다.
놈들은 최상위 3대 종족 중 이 탑을 제일먼저 오른 종족이었으니까.
‘하지만 놈들은 재해를 사냥하고 있었다. 그건 이곳을 모르고 있다는 뜻.’
이곳을 알았다면 하위 드래곤은 그렇다 쳐도 이름 있는 상위의 드래곤들이 사냥 따위를 하며 시간낭비를 하고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럼 드래곤을 제외한 다른 종족이? 하지만 대체 누가...’
생각을 거듭하면 할수록 의문은 되레 깊어져만 갈뿐 해답은 나오지 않았다.
제넥이 보다 못했는지 툭 말했다.
“출몰하는데 조건이 걸려있는 게 아닌가? 예를 들면 함정을 건드려야 한다든지.”
“......”
그 말에 이강호의 눈빛이 예리하게 날이 섰다. 이강호는 그런 조건을 착각할 인물이 아니었다.
가디언은 침입자를 감지할시 100% 자동 출몰이었다.
“후... 아니면 말고.”
“...계속 가보도록 하지.”
그들은 그렇게 약 20분을 더 걸어 끝에 다다를 수 있었다.
어마어마한 양의 결정이 그들의 눈앞에 있었다.
제넥이 휘파람을 불었다.
“휘유~ 엄청 쌓여있는데?”
“주군, 이것은?”
“보면 안다.”
유세현이 다수의 결정을 손에 쥐자, 결정이 합쳐지며 새로운 결정을 이뤘다.
아이템명: 신비의 결정.
등급: 에픽 [S Rank]
상세정보: 다양한 힘의 정수가 깃들어있는 결정입니다. 근원에서 밖에 얻을 수 없는 물품으로 일정 수준 이상을 지니고 있으면 탑의 힘에 저항이 가능해집니다.
유세현이 태백무에게 정보를 보여주자, 태백무의 눈가가 잔잔히 떨렸다.
“이... 이건!”
“믿으라고 했지?”
“충!”
“선배! 이거 다 쓸어 담으면 되는 거죠?”
“어, 다 쓸어 담아.”
말이 끝나기 무섭게 김주희가 손을 바삐 움직여 결정을 포켓에 우겨넣기 시작했다.
그렇게 챙길 수 있을 대로 전부 챙긴 일행.
이강호는 장소를 벗어나기 전 고개를 돌려 한 번 더 주위를 살폈다.
파수꾼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찝찝하군.’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는 이내 생각을 접기로 마음먹었다.
목표를 달성한 데다 단서가 없는 이상 더 이상의 추측은 무의미하기 때문이었다.
지금 중요한 것에 집중한다.
등을 돌린 이강호가 말했다.
“그럼 가볼까. 망자의 땅으로.”
* * *
망자의 땅.
양무원과 키르쉬나가 상주하고 있는 그곳이 그렇게 불리는 데는 전부 이유가 있었다.
물, 바람, 불 등등 보통의 재해는 각기 장소에 랜덤으로 등장하는 반면, 이곳은 망자를 다스리는 망자의 재해만이 등장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앞으로 전부 처리하기까지 몇 퍼센트 남았지? 꽤 시일이 지났다만.”
“약 35% 정도 남았다.”
“재해까지 잡아야 하니 아직도 멀었군.”
양무원이 무공 제작의 원료로 삼으려는 것은 바로 이 망자였다. 아니 정확히는 망자화 되기 전의 깨끗한 영혼.
살아있는 생명체는 여러 가지 법칙에 귀속되어 있는 반면 껍데기를 잃은 순수한 영혼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아냈기 때문이었다.
법칙 때문에 무공제작이 되지 않는 것이라면, 법칙에 속하지 않는 것을 이용해 만들면 된다.
그것이 그가 내놓은 결론.
“흠... 이렇게 된 거 기다리는 동안 망자를 이용해 제작 시도를 해보고 있겠다.”
그러나 본래 순수한 영혼은 특이한 장치라도 있지 않는 한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게 불가능했다.
육체를 소멸은, 곧 존재의 소멸.
존재 의의를 잃고 바스라져 사라지기 때문이었다.
마치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던 세계, 제 6유적이 정상화 되었을 때처럼.
때문에 이 일은 이 장소가 재해로 인해 특이지점이 되어 시도가 가능한 것이지, 다른 곳에서는 감히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다.
망자들이 순수한 영혼으로 돌아가는 것은 재해를 처리한 한 순간이기에 타이밍도 찰나 뿐.
양무원의 말에 키르쉬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망자로? 망자들은 오염된 존재라 제작이 불가능하다고 하지 않았나?”
“아니, 그런 말을 한 적은 없다. 단지 불순물이 탑재된 만큼 불완전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지. 뭐 실패할 확률도 제법 되지만...”
“흐음...”
“그래도 그저 시간을 죽치고 있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만?”
그 말에 잠시 고민하던 키르쉬나가 허락하겠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몇 번을 생각해도 딱히 손해는 없는 탓이었다.
“고맙군. 그럼 바로 시도해보겠다.”
수락을 맡은 양무원의 입꼬리가 히죽 올라갔다.
악몽을 꾸는 땅(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