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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이익-
바람 스치는 소리가 천둥처럼 느껴질 정도로 고요하기 짝이 없는 공간.
삐질 삐질 땀을 흘리고 있던 양무원은 감고 있었던 눈을 힘겹게 떴다.
‘이런...’
그를 중심으로 포진하고 있던 15명의 술법사 중 10명이 기력이 완전히 다해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었다.
‘제길... 역시 순수한 영혼이 아니고서는 안 된다는 건가...’
득의양양하게 시작한 것 치고는 무척이나 참담한 상태.
그는 실패를 직감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슬아슬하게 이어지고 있는 이 끈을 도저히 놓을 수 없었다.
그에게 있어선 이것만이 오직 유일한 희망이었으니까.
‘집중하자... 집중...!!’
하지만 아무리 그가 버티려 해도 한계는 한계, 그는 당장이라도 의식이 끊길 것 같아지자 최후의 수단을 사용했다.
“크아아압!”
쿠구구구구!
어마어마한 양의 망자들이 술식의 중심지로 빨려 들어간다.
지식이 부족하여 기술로 안 된다면 힘으로! 양으로! 악으로!
“크아아아아아아!!”
그 순간만큼은 양무원 스스로도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인지하지 못했다. 그저 될 대로 되라는 마인드였다.
쿠구구구구구!
여파로 대기에 분포해 있는 마력이 미친 듯이 요동치기 시작한다.
이에 키르쉬나는 비웃음이 가득담긴 조소를 흘렸다.
‘흥! 할 수 있긴 개뿔...’
카실리아를 예의 주시해야 했기에 비록 직접 보고 있는 것은 아니었으나, 마력이 이렇게 폭주하는 패턴인 경우 지금까지 백이면 백 실패해왔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보통의 상황이라면 이번에도 실패해야 정상인 것.
허나.
쿠구구구구구!
세상에는 우연이라는 게 존재했다.
현대인들이 흔히 아는 코카콜라나 비아그라가 정말 우연히 발명된 것처럼.
때문에 양무원도 어떤 법칙이 적용 되어 이 같은 현상이 벌어진 것인지는 그 원리를 알 순 없었지만 그는 그런 사사로운 것 따윈 신경 쓰지 않았다
‘하... 하...!!’
지금 중요한 건.
‘해, 해냈다! 해냈어! 만들어냈어! 내가 만들어냈다고!’
무공 창시.
양무원의 시야에는 그에게만 보이는 알림창이 떠 있었다.
[스킬을 창시해내는데 성공하였습니다.]
[생성자의 의지에 따라 아공간 수합물에 스킬북이 생성됩니다.]
[스킬북의 명칭을 정할 수 있습니다.]
[스킬북의 내용을 수정할 수 있습니다.]
양무원은 그대로 그 자리에 털썩 쓰러졌다. 힘이 미약하게나마 남아있었지만 감시하고 있는 여타 드래곤들을 의식한 행동이었다.
드래곤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후... 혹시나 했는데 역시 헛짓거리에 불과했군.”
“인간이 뭐 그럼 그렇지.”
드래곤들은 그리 말하면서도 사람들을 챙겼다. 그들에게 이것은 어디까지나 실험일 뿐, 본방은 따로 있었으니까.
양무원을 쉽터에 눕힌 드래곤은 곧바로 키르쉬나에게 보고를 올렸다.
“그럼 그렇지.”
말을 들은 키르쉬나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그들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기절한 줄만 알았던 양무원이 쓰러진 무리에 섞여 만들어 낸 무공서를 살피고 있다는 것을.
아이템명: 심법(정해지지 않음)
등급: 에픽 [SSS- Rank]
상세정보: 마교 교주 양무원이 우연히 창시해낸 심법입니다. 여타 심법에 비해 월등히 뛰어난 심법으로 사용 시 보다 정밀한 마나 제어가 가능해지며 스킬 발현에 있어 뛰어난 효율을 얻을 수 있습니다. 망령의 원념이 그대로 서려 있어 근본이 되는 힘을 지니지 못한 자가 익힐 시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됩니다.
아이템명: 절기(정해지지 않음)
등급: 에픽 [SSS- Rank]
상세정보: 마교 교주 양무원이 우연히 창시해낸 절기입니다. 검기를 형상화 시켜 유지 밑 발산 할 수 있습니다. 망령의 원념이 그대로 서려 있어 근본이 되는 힘을 지니지 못한 자가 사용 시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됩니다.
‘흐흐흐...’
양무원의 입꼬리가 찢어질듯 올라갔다.
자신이 사용할 수 없는 불완전한 무공.
이것은 분명 실패작이긴 했으나 우습게도 그가 그토록 바랐던 것이었다.
그는 아이템명은 놔두고 상세정보만을 재빨리 수정했다.
아이템명: 심법(정해지지 않음)
등급: 에픽 [SSS- Rank]
상세정보: 마교 교주 양무원이 혼신의 힘을 다해 창시해낸 궁극의 심법입니다. 그 어떤 심법보다도 뛰어난 심법으로 사용 시 보다 정밀한 마나 제어가 가능해지며 스킬 발현에 있어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효율을 얻을 수 있습니다.
안 좋은 것은 보이지 않게 아예 제외해 버리고, 좋은 것은 훨씬 더 특출나 보이도록.
양무원은 세레나가 이 무공을 익히는 순간을 생각하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세레나... 네가 이것을 익히는 순간이...’
관계가 역전되는 순간.
그는 빨리 그 순간만이 오기를 바라며 지친 눈꺼풀을 감았다.
* * *
“세현아 이거...”
“그래... 분명 마력의 떨림이야.”
마력의 확산은 상당히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세현 뿐만 아니라 일행 모두가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정말 무시무시한 수준이었다.
이에 일행의 표정이 굳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
태백무를 슬쩍 훑은 김주희가 불안감이 담긴 어조로 물었다.
“선배님 이거 혹시 늦은 거 아닌가요?”
“흠...”
유세현은 잠시 곰곰이 생각하다 답했다.
“아니, 내가 생각하기에 늦은 건 아닌 거 같아.”
“이유가 있나?”
“예. 물론이죠. 아직 망령들의 기운이 느껴져요.”
유세현은 태백무에게 들어 그들이 티끌 하나 없는 깨끗한 영혼을 이용하려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망령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재해가 아직 잡히지 않았다는 뜻이었기에, 본래의 목표를 이루지는 못했을 거라는 것!
“흠... 그럼 그냥 한번 시험해 본 걸까요?”
“난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해.”
“후... 그렇다면 그나마 다행이네요.”
일단 그렇게 말하기는 했지만, 김주희를 포함한 모두는 느끼고 있었다.
‘시간이 그렇게 많이 남아 있진 않다.’
시도라는 것도 어느 정도 준비가 진행 된 상태에서나 할 수 있는 것이니까.
“이동하는 속도를 좀 더 올리도록 하지.”
“지금이 발각 당하지 않는 내에서 최대 속도 아닌가요? 만약 높이면 발각당할 확률이 월등히 올라갈 텐데...”
“그건 그렇지. 하지만 허를 찌르는 것도 좋다만 너무 늦으면 말짱 도루묵이잖냐.”
“하긴... 알겠어요. 선배님들 말대로 하죠.”
“좋아. 그럼...”
김주희가 고개를 끄덕이기 무섭게 이강호가 발걸음을 보다 빨리했다.
* * *
루시아가 이동된 장소의 외벽, 그곳에는 실종된 사람들을 포함하여 다수의 이종족들이 기괴한 자세로 벽에 녹아 들러붙어있었다.
마치 박제된 듯한 형태.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괴로워...]
루시아는 이것을 듣기 무섭게 동굴 깊은 곳에서 줄곧 들려오던 목소리가 이들의 것이라는 것을 단번에 깨우쳤다.
“흠...”
루시아는 일단 주위를 경계하다 별다른 특이성이 없다 판단이 되자 질퍽한 점액을 검으로 갈라 벽속에 묻혀있던 사람들을 하나 둘 꺼내기 시작했다.
“우욱...”
“우웨에엑.”
풀려난 사람들은 정신이 돌아왔는지 연신 헛구역질을 해댔다.
이윽고 많은 사람들 중, 정황상 루시아가 구해주었다는 것을 깨달은 마르크의 팀원이 그녀를 향해 꾸벅 고개를 숙였다.
“루시아씨... 저희를 구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도 감사해요.”
그것을 시작으로 많은 이들의 감사가 폭포처럼 쏟아졌다.
루시아는 살짝 머쓱해져 그저 볼을 긁적였다.
이미 수없이 많은 감사의 인사를 받아 본 전례가 있던 루시아였지만 그녀는 과거에 있었던 일 때문인지 아무리 들어도 이것이 당최 익숙해지지가 않았다.
아무쪼록, 그녀는 사람들을 어우르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들어온 길은 막혀버렸기에 어차피 현재 할 수 있는 것은 이것밖엔 없었다.
그런데 그녀가 채 3보를 나아가지 않았을 때였다.
“루시아씨. 이놈들 안 잡으실 거면 우리가 잡고 코인 나눠가져도 괜찮을까요?”
생존자가 벽에 붙잡혀 있는 이종족들을 가리키며 물었다.
“예, 알아서들 하세요.”
루시아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살짝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녀 역시 적에 대한 동정은 불필요하다 여기고 있었다.
“허락 떨어졌어요! 처리합시다!”
“매너 있게 나누어 가집시다!”
이로써 그녀가 길을 밝히면 생존자들은 이종족들을 처리해가며 뒤를 따랐다.
그리고 그렇게 얼마를 나아갔을까?
“......”
루시아의 발걸음이 뚝 멈췄다. 길을 잃은 것은 아니었다.
아직까진 외길이 계속 되고 있었으니까.
‘...이자들은...’
그녀가 멈춘 이유는 다른 데에 있었다.
그녀의 시선은 벽 속에 있는 이종족들에게 향해 있었다.
돌덩이로 된 특이한 몸.
지금까지 벽 속에 박혀있던 이종족들이 초면이라면 이들은 구면이었다.
‘스토르 벤...’
한때 함께 힘을 합쳐 게이트로 향한 길을 뚫었던 종족.
그리고 그 중에서도 종족을 이끌던 수장, 스토르 벤의 영웅...
‘스토크.’
그가 벽에 눌러 붙어 있었다.
어찌 멈추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있겠는가!
“이놈들은...”
사람들 또한 거침없이 휘두르던 칼질을 멈췄다.
임시 동맹에 불과했지만 마족, 엘프, 델바람 등등 어마무시하기 짝이 없는 적들이 습격해오는 그 전장 속에서만큼은 피를 나눈 형제나 다름이 없었다.
그리고 그래서일까?
한 대리자가 루시아에게 물었다.
“어, 어떻게 할까요?”
여타 종족이었다면 절대 듣지 못했을 질문.
루시아는 곧바로 정하지 못하고 망설였다.
게이트를 통과해 진형이 나뉘어서 그렇지, 동맹을 파기한 적은 없었기에 아직까지 두 종족은 동맹 상태였다.
물론, 앞으로 어떻게 될지 전혀 알 수 없는 만큼 이는 굉장히 표면적인 이야기에 불과하다.
대개는 손바닥 뒤집듯 뒤집어 버리니까.
아니나 다를까, 비슷한 생각을 다른 대리자가 외쳤다.
“어떡하기 뭘 어떻게 합니까? 당연히 죽이고 코인 먹어야지.”
“흠... 그래도 아직까진 동맹이 깨지지 않은 상태입니다만...”
“그런 건 전혀 의미 없지 않습니까. 다시 만날 수 있을지조차도 기약할 수 없는데. 그리고 만난다 해도 의견이 안 맞으면 끝 아닙니까? 절체절명의 위급한 상황이 아니면 되레 뒤통수를 맞을 수도 있는 노릇이고.”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죽이고 먹죠.”
여론은 순식간에 죽이자는 쪽으로 기울었다.
당연한 것이었고, 실리적인 것이었다.
이용가치가 없어지면 버린다.
결국 이종족간에 진정한 동맹이란 있을 수 없으니까.
“흠... 그럼 그렇게 하는...”
루시아도 이쪽으로 마음이 섰다. 유세현과 이강호도 결국엔 이렇게 했을 터였다.
“스토크의 코인은 제가 먹도록 하겠어요.”
“예, 그렇게 하세요. 당연히 루시아씨가 드셔야죠.”
“저희는 루시아씨가 드시고 나면 그때부터 처리하며 나눠 먹도록 하겠습니다.”
치잉-
루시아는 검을 치켜세웠다.
일격.
그녀는 단번에 깨끗이 끝내줄 생각이었다.
목을 겨눈 그녀가 휘두른 찰나였다.“아, 안돼... 살려줘...”
목소리가 울렸다.
후웅!
목소리에 반응한 루시아의 검이 목 바로 앞, 1cm를 남기고 아슬아슬하게 정지한다.
루시아가 고개를 돌려 말을 내뱉은 이를 쳐다봤다.
스토르 벤 종족이었으나, 스토크 본인은 아니었다.
루시아가 쳐다보자 스토르 벤이 다시 한번 힘겹게 입을 열었다.
“사, 살려줘... 제발... 부탁이다... 우리는 어떻...”
“루시아씨 그냥 쳐버리세요! 어차피 이들을 죽여도 스토르 벤과의 동맹은 깨지지 않습니다! 되레 우리에게 의존하게 될 수도 있어요!”
“제, 제발... 부탁이다... 루...시아... 그는 우리 종족의 희망... 그가 없으면... 우린... 무너진다...”
“......”
“나를... 아니... 우리들은 어떻게 되도 좋다... 죽이고 코인을 흡수한 뒤 시체를 불태운다면... 스토크도... 모를 거다... 그는... 명예를 아는 자다... 구해준다면... 필히... 은혜를 갚...”
엄청난 정신력이 아닐 수 없다.
루시아는 그렇게 생각했다.
여태까지 벽에 흡수된 생명체 중 의사표현을 확실히 할 수 있던 인물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루시아씨!”
몇몇이 재촉했다.
루시아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죽이는 것이 정말 과연 최선인가.
처음에는 분명 최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 세계에는 스토크 말고도 괴물은 넘쳤다.
드래곤, 마족, 엘프... 그리고 여타 종족들까지.
스토크 한 명 죽인다고 이들 모두를 대적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순 없었다. 코인을 흡수해도 약간의 스텟 증가만 있을 뿐 그렇게 어마어마하게 큰 이득은 볼 수 없으니까.
하지만 스토크가 나중에 정말로 은혜를 갚는다면?
어쩌면 한 종족까지 커버가 가능할지도 모르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루시아는 스토르 벤과 교류를 했기에 스토크의 성격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가능성은 있었다.
확실하지만 작은 득과 불명확하지만 커다란 득.
결정을 내린 루시아의 검신이 스토크를 향해 떨어졌다.
악몽을 꾸는 땅(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