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462화 (448/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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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보통은 저 거대 몬스터를 잡고 결정을 손에 넣어야 하는 거네?”

풀숲을 조심스레 헤치며 나아가고 있던 유세현의 시선이 멀찍이 떨어진 장소에서 난동을 피우고 있는 재해를 향했다.

“응, 보통의 상황에서는 그렇지.”

“그럼 지금 우리가 하려는 건?”

“우리는... 결정의 정수를 바로 손에 넣는다.”

이 세계에는 무릇 왜곡 지점을 제외하고도 몬스터가 발생하는 출몰지, 일정구역의 기상조종을 가능케 해주는 동굴 등등 숨겨져 있는 특수한 장소가 많았다.

그중에서도 현재 그들이 향하고 있는 장소는 특수한 공간에서도 감춰져 있는 비밀 중의 비밀 공간.

소멸되거나 난동을 피우고 잠들어버린 재앙의 힘이 지맥을 타고 한곳으로 흘러들어오는 장소.

과거 사람들은 이곳을 힘의 중심지라고 불렀다.

“오호... 그런 곳이 존재해?”

“알아내는데 많이 애먹었었지.”

한 명 한 명이 중요한 시기, 최상위 대리자 수십 명의 희생이 따랐다.

“그런데 그곳에 들렀다 가면 많이 늦는 거 아니냐?”

“아니, 그렇진 않을 거야. 우리가 가려는 그곳은...”

파바밧!

나타난 몬스터 하나를 순식간이 찔러 죽인 이강호가 툭 말했다.

“놈들이 향하고 있는 근처에 위치해 있거든.”

“그 근처?”

“응, 그리고 그것을 제외하고도 놈들은 준비하는데 약간의 시간이 더 걸릴 거야.”

“이유가 있나?”

“이유를 정말 좋아하는군 제넥.”

제넥이 은근슬쩍 끼어들어 묻자, 이강호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러자 제넥은 대놓고 기분 나쁘다는 티를 팍팍 냈다.

“아니, 어차피 설명하려던 거 아니었나?”

“그냥 해본 말이다. 기분이 나빴다면 사과하지.”

“......그냥? 큼큼...”

머쓱해진 제넥이 헛기침을 하자, 이강호가 다시 입을 뗐다.

“아무튼 말을 계속하지. 그 이유는...”

* * *

“이놈들을 전부 처리하기까지 얼마나 걸릴 거 같나?”

도복을 착용하고 있는 남성이 핏빛 같이 붉은 적발을 지닌 여성에게 묻자, 여성의 눈썹이 순간적으로 꿈틀거렸다.

여성에게 있어선 본래 이 남성은 당장 밟아 죽여도 시원찮았을 벌레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좀 걸린다.”

그것을 대변하듯 여성은 퉁명스럽게 답했다.

“좀? 너희답지 않게 아리송한 말이로군. 정확히 말해라. 며칠을 기다려야 하는 거지?”

그러나 마주하는 남성은 이에 한마디도 지지 않았다.

아니 되려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처럼 당당하면서도 확고했다.

“제대로 말해주지 않으면 준비기간이 더 길어지게 된다만? 상관없나?”

“...양무원...”

여성의 눈가가 예리하게 날이 섰다.

피부가 울긋불긋 솟아오르며 숨겨져 있는 비늘이 비치기 시작한 것이 당장이라도 달려들어 먹어치울 기세였다.

그러나.

“너의 그런 모습, 세레나에게도 보일 수 있나?”

양무원은 그런 그녀의 시선을 회피하지 않았다.

그는 현재에 있어서만큼은 실제로 을이 아닌 갑이었기 때문이었다.

드래곤이 원하는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유일한 인물!

“네놈...”

“난, 직위를 약속받은 몸이다. 그러니 언제까지고 날 인간 취급하며 얕잡아보지 마라.”

뿌드득.

입를 악문 키르쉬나의 이가 으드득 갈렸다.

양무원이 계속 말을 이었다.

“내가 만약 드래곤이 되어 네 밑이 된다면 너를 우러러보고 따를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동등한 관계. 처음에야 나를 벌레 취급한 것을 이해하겠다만 이젠 좀 태도가 바뀌어야 되지 않겠나?”

“......”

키르쉬나가 일순간 침묵했다.

양무원의 말은 그녀가 듣기에도 전부 맞는 말에다 논리정연했기에 반박할 여지가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다른 쪽에 트집을 잡았다.

“자기 수하도 하나 관리 못하는 게 무슨 동등한...”

“미안하지만 난 이제 마교의 교주가 아니다. 교주가 아니니 관리를 못하는 게 당연한 것이지. 그리고 그렇게 만든 건 다른 누구도 아닌 너희들이 아닌가.”

“하...”

뚫린 입이라고 말은 잘한다, 키르쉬나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흠... 그나저나...”

절벽 위, 위태하게 걸쳐있는 바위에 아슬아슬한 자세를 유지하며 서 있던 양무원이 시선을 절벽 아래로 옮겼다.

그 아래에서는 수많은 몬스터와 40마리의 드래곤이 육탄전을 치르고 있었다.

“왜 마법을 쓰지 않는 거지? 쓰면 훨씬 빨리 정리 할 수 있을 텐데?”

“......”

키르쉬나는 그 물음에도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하면 당연히 걸릴 가능성이 있으니까지.’

여타 드래곤, 블루드래곤로드 아르펜과 그의 심복들에게.

그런 정보를 양무원에게 말해줄 수는 없는 법이었으니까.

‘후... 머리 아프군.’

키르쉬나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녀는 세레나의 명을 받아 60마리의 드래곤과 함께 이곳에 내려온 것이었다.

당연히 목적은 그토록 고대해왔던 무공의 완성.

술법사를 포함해 주술의 주축이 되는 교인 30명을 데리고 왔건만, 갑작스레 재해가 발생한 틈을 타 중간에 탈주가 일어났다.

‘분명 천마대라고 했었지.”

그들을 재차 떠올린 키르쉬나가 손톱 끝을 질겅질겅 씹어댔다.

‘감이 좋은 놈들이야.’

무언가 눈치를 챘으니 달아났다. 그녀는 그렇게 여기고 있었다.

‘양무원에게 한 것처럼 전부 정신조작을 걸었어놨어야 했는데...’

양무원, 본인은 모르고 있었지만 그는 현재 정신조작에 걸려있었다.

드래곤화에 대한 의구심만 느끼지 못할 정도로 미약하게.

교인은 마나를 다루는 것이 능통하기에 어쩔 수 없는 처방이었다. 더 심각하게 걸었다가는 괴리를 느끼고 딴 생각을 품게 될 가능성이 높았다.

아무쪼록 그 결과 양무원은 스스로 열심히 일하는 개가 되었지만, 문제는 도망친 천마대였다.

‘제발 죽었어야 할 텐데...’

드래곤 연합의 기본은 정보의 공유, 그런데 레드드래곤 진형은 무공에 대한 정보를 숨기고 있었다.

그렇기에 혹시나 라도 놈들이 다른 드래곤에게 붙잡혀 주절주절 불게 되는 날에는 낭패가 아닐 수 없었다.

어마어마하게 일이 꼬이게 되는 것이다.

전투가 발생하면 대개 상대가 죽어야 끝나기에 사실 붙잡힐 가능성은 그리 많지 않았지만, 문제는 이 탑에서 인간이 굉장히 희귀한 종족이라는 것이었다.

어떻게 여기까지 올라왔는지 의구심을 품고 포획할 가능성을 완전 배제할 수는 없는 것!

레드드래곤 진형이 이 층에 내려온 것 자체가 알려지면 안 되는 일이었기에 잡으러 나설 수도 없었다.

이를 윗선에 알리기만 한다면 대책이 마련될 터지만, 알리기 위해서는 위층으로 누군가가 올라가야만 했기에 지금은 그것도 불가능했다.

현재 키르쉬나가 할 수 있는 건 지금처럼 그들이 죽었길 간절히 바라는 정도뿐이었다.

“그럼 난 대기하고 있도록 하겠다. 처리가 거의 다 끝날 때쯤 불러라.”

“그러지.”

양무원이 감시자 한 명과 함께 눈앞에서 사라지자, 키르쉬나는 답답한 마음에 한숨을 한 차례 더 내쉬었다.

‘저 속편한 놈... 무공완성만 되면 보자.’

잔뜩 벼르는 키르쉬나.

그런 그녀는 몰랐다.

자리를 뜨기 전 양무원의 눈빛이 일순간 바뀌었었다는 것을.

* * *

“후우... 후우...”

간신히 재해에게서 벗어난 벨제뷔트는 땅에 드러누워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암흑지대에서도, 유적의 내부에서도, 그는 이 정도의 고난을 겪은 적이 없었다.

끝도 없이 몰아치는 재해의 파도.

저 너머 상공을 장악하고 있는 색색의 드래곤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언제 부딪칠지 모르는 엘프와 델바람 그리고 블러드소울.

그에게 있어서 이 모든 것은 엄청난 부담이었다.

이에 여러 가지를 생각하던 벨제뷔트는 결국 마음을 정했다.

‘이 탑을 빠져나간다.’

나뉘었던 병력을 되찾는 그 즉시 이 탑을 빠져나가겠다고.

빠져나가 다음을 기약하며 재정비를 갖추겠다고.

신물 파편도 중요하지만 역시 제일 중요한 것은 목숨이 아니겠는가?

게다가 그는 계략을 세우고 그 안에서 상대를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는 스타일이지, 마구잡이식 난장판 전쟁을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신물 파편에 잠시 눈이 멀어 이곳까지 오게 되었지만, 탑의 힘에 의해 일부 힘을 봉쇄당한 지금 그는 이 탑을 어디까지 파악했을지 모르는 드래곤을 이곳에서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

이곳은 드래곤들에게 아주 유리한 전장이었다.

‘쯧...’

벨제뷔트가 지그시 혀를 찼다.

데프하우어가 떠오를 때마다 그는 데프하우어를 잃은 게 너무나도 속 쓰렸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아무리 좋은 장기 말이라 할지라도 장기 말은 장기 말, 말 하나 되찾겠다고 드래곤들을 상대한다는 건 엄청난 바보짓이니까.

‘어차피 카실리아가 무슨 짓을 한다 한들 잠식당한 데프하우어가 원래대로 되돌아가는 일은 죽어도 없다.’

동화율 100%, 미치거나 인형이 될 뿐이다.

‘젠장...’

몇 번이고 마음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던 벨제뷔트는 근처에 재해가 발생될 조짐이 느껴지자 다시 군과 함께 황급히 자리를 떴다.

* * *

“으윽... 으으윽...”

“아버님!”

“크아아아악!!”

아버님, 그 말에 반응한 데프하우어의 몸이 더욱 심한 발작을 일으켰다.

몸은 드래곤이지만 마력은 마족의 마력.

반마반용의 존재.

모든 것이 반반인 덕에 카실리아는 데프하우어와 같은 장소로 이동될 수 있었지만, 그게 전부였다.

그녀가 데프하우어에게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10서클 정신계 마법을 사용해 동화를 풀어보려 노력했지만 그에게는 듣지 않았다.

아니, 되려 반발감이 생기는지 데프하우어는 그때마다 더욱 괴성을 내질렀다.

떨어진 바로 그 지점에 왜곡 공간이 있었기에 망정이었지 만약 없었더라면 카실리아는 그렇다 쳐도 데프하우어는 재해의 공격에서 살아남지 못했을 터였다.

‘대체 어떡해야 하지? 어떻게 해야 아버님을...’

다른 드래곤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은 현재로선 불가능했다.

데프하우어의 영향을 받은 것인지 진형과 갈라져 다른 장소에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데프하우어를 케어하며 이 공간에 머문 지 며칠이 지났을까.

카실리아는 서서히 공간이 붕괴되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한곳에 오래 머물지 못하게 하려는 탑의 의도가 틀림없었으므로 그녀는 곧장 움직일 채비를 했다.

데프하우어를 등에 짊어지고, 주위를 유심히 살핀다.

적을 만나게 되면 도와줄 수 있는 이가 없었기에 카실리아는 엘라뉘스가 있을 장소를 찾아 신중하고 또 신중히 움직였다.

그렇게 만 이틀을 걸었을 때였다.

“...아!”

“응?”

“세레나님!”

비로소 동족을 발견한 카실리아가 잔뜩 반겨하며 붉은 머리칼을 지닌 여성, 세레나를 향해 뛰어갔다.

반면 세레나라고 불린 드래곤은 표정의 변화 없이 카실리아를 맞이했다.

“카실리아?”

“예, 세레나님! 카실리아예요. 정말 오랜만에 뵙네요.”

카실리아가 활짝 웃으며 인사를 건네자, 세레나의 표정에도 비로소 변화가 일었다.

입가에 옅은 미소를 지은 세레나가 입을 열었다.

“그래, 오래간만이구로나.”

“예, 그런데 다른 분들은?”

카실리아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아무리 드래곤이 개인행동을 좋아하는 생물이라지만 이런 곳에서까지 개인행동을 할 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 다른 애들 말이니? 지금 이곳엔 없단다. 내가 내린 일을 하고 있는 중이라.”

“아, 일이요?”

“그래. 그보다도 여기까진 어쩐 일이니? 엘라뉘스님과 함께하고 있던 게 아니니?”

“아...”

이전 일을 떠올린 카실리아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게 일이 생겨서 부득이하게 떨어지게 됐어요. 그래서 지금 찾고 있던 중이었는데...”

“우연히 나를 발견한 거로구나?”

“아 예, 맞아요.”

“그럼 지금은 혼자니?”

세레나의 미소가 짙어졌다.

분명 온화한 미소가 맞았지만 카실리아는 순간 영문 모를 섬뜩함을 느꼈다.

“......”

그녀가 답하지 않자, 세레나가 서서히 다가왔다.

악몽을 꾸는 땅(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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