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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왕 유세현-456화 (442/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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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자들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다.

방심은 곧 죽음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대리자들 본인의 생각일 뿐, 대리자도 결국은 생명체였기에 스스로 아무리 감정을 조절한다 한들 완벽이란 있을 수 없었다.

특히나 그토록 원했던 순간이 눈앞에 찾아왔을 때, 목표를 이뤘다고 생각할 때는 더더욱.

‘다 왔어!’

그래서 레피아의 이런 안도는 그 누구도 힐난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위협이 되던 엘라뉘스와 벨제뷔트는 물론이거니와 드래곤이나 마족들 또한 체력이 고갈되어 붙기는커녕 점점 멀어지고 있었으니까.

주위에 드래곤들이 소수 존재했지만, 그들 또한 마찬가지의 상황인지라 신법을 운용하고 있는 레피아를 잡는 것은 불가능했다.

타다닷!

이제 게이트까지의 남은 거리는 고작 400m.

그건 그 어떤 대리자가 봐도 손쉽게 통과할 수 있는 거리였다.

‘해냈다.’

이변은 그녀가 그렇게 생각한 순간 벌어졌다.

쌔애액!

바람이 스쳐지나갔다.

줄곧 드래곤과 마족의 동향을 주시하고 있던 레피아는 그 순간에 그렇게 느꼈다.

푸쉭!

“?!”

허나, 그것이 바람이 아니었다는 걸 그녀는 1초도 지나지 않아 알 수 있었다.

반지를 장착한 우측 검지손가락과 좌측 허벅지가 동시에 떨어져나갔다.

“크악!”

레피아는 고통스럽기 그지없는 그 와중에서도 반지가 날아간 방향을 향해 필사적으로 손을 뻗었다.

‘안돼!’

누가 쐈는지 생각할 여유 따윈 없었다.

어떻게 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그녀의 머릿속에서는 지금까지 한 수고를, 동료들의 고생을 이렇게 헛되게 날려버릴 수 없다는 생각만이 맴돌고 있었다.

스슥-

반지가 아슬아슬하게 손끝을 스친다.

반지는 60m 앞 모래 위로 떨어졌다.

푸슈슈슈!

뜯겨지듯 떨어져나간 절단면에서 피가 폭포처럼 뿜어져 나온다.

“으으으...!!”

그러나 그녀는 그러든 말든 붙어있는 오른발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그녀는 떨어져 나간 자신의 사지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난 어차피 여기까지다.’

전장에서 사지를 잃는 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아무리 재생력이 높다한들 사지는 그렇게 빠르게 붙지 않으니까.

게다가 공격해온 적이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리가 없다.

‘그러니 어떻게라도 반지만큼은!’

그녀가 채 두 걸음도 못 갔을 때였다.

푸슛!

“크아악!”

또 다시 날아온 두 개의 화살이 이번에는 각각 오른쪽 허벅지와 복부를 관통했다.

쿵!

몸이 그대로 힘없이 쓰러진다.

‘내... 움직임을 읽었어?’

레피아는 아연실색했다.

시야에 마땅히 잡히지 않는 것으로 보건데 상대는 상당한 거리에서 사격한 것이 분명했다.

그런 거리에서 0.1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동안 어디로 튈지 모르는 자신을 예측해 정확히 맞춘 것이었으니, 이건 상대가 거의 미래 예지 수준의 경로 파악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뜻이 되었다.

‘그, 그놈인가...!!’

그렇기에 지금 그녀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인물은 단 한 명 밖에 없었다.

‘카시우스... 델 아르베이트...’

“후...”

그 말마따나 5km의 너머, 100m 상공 위, 이제는 없어진 거대수 대신 마력으로 만든 발판을 딛고 서 있던 카시우스가 긴 날숨을 내쉬었다.

그가 허공을 향해 읊조렸다.

[무력화 시켰다. 회수해라.]

그건 미리 침투 시켜놓은 소수정예에게 내리는 명령이었다.

카시우스는 시선을 다른 곳으로 옮기며 웃음을 흘렸다.

‘진흙탕 싸움을 해준 덕에 생각보다 쉬웠다.’

그가 바라보고 있던 장소에는 빠르게 질주하고 있는 유세현이 있었다.

유세현의 고개가 카시우스를 향해 스르륵 꺾이며 시선이 교차한다.

카시우스는 그런 그를 보며 더더욱 짙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상당히 열이 받은 모양이다만 너희도 그러지 않았던가. 그러니 너무 그런 눈으로 쳐다보지 않아줬으면 좋겠다만?”

답은 당연히 들려오지 않았다.

* * *

‘이런 레피아가...’

카시우스를 향해 있던 유세현의 시선이 다시 정면을 향했다. 마력상황을 읽어본바 레피아는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아마... 빈사상태일 확률이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세현은 희망의 끈을 놓진 않았다.

왜냐하면 레피아의 근처에는 엘프로 추정되는 놈들을 포함해, 유세현이 가장 신뢰하고 있는 동료가 다다라 있었으니까.

쿠와와와!

홍염과 청염이 뒤섞인 화염이 황무지를 가른다.

전 마력을 태양신법에 우겨넣은 이강호는 현재 타인에게 흡사 불 그 자체처럼 비치고 있었다.

“젠장!”

이강호를 발견한 카그네프가 필사적으로 따라붙으려 안간힘을 썼지만 무리였다.

이강호는 어느새 벨제뷔트와 크라베스의 뒤에 바짝 다가서 있었다.

“이강호?!”

“너희들에게 볼일 없으니 비켜라.”

쉬이이익!

이강호의 몸이 한순간 더더욱 밝게 타올랐다.

잡졸 취급하는 그 행동에 두 존재가 열이 올라 마력을 긁어모아 발산했지만...

“괜찮겠나? 마지막 남은 않은 힘을 이렇게 사용해도?”

“...!!”

슈슈슉!

한순간의 망설임은 이강호가 그들을 쉽게 제칠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둘은 분노를 머금었지만 멀어져가는 이강호의 등을 향해 스킬을 사용하는 행동은 하지 않았다.

게이트가 가까워진 지금, 그들은 정말 우습게도 이강호의 조언처럼 뒷일을 고려해야만 했다.

조금 더 달려가자 이강호의 시야에 마침내 레피아가 잡혔다.

“......”

그녀는 한눈에 보기에도 다 죽어가고 있었다.

불꽃을 본 것인지 레피아가 덜덜 떨리는 팔을 힘겹게 치켜들어 어떤 한 방향을 가리켰다.

“이강호... 저기... 저기에...”

비록 목소리는 닿지 않았으나 이강호는 그것만으로도 그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바로 파악할 수 있었다.

‘저쪽에 반지가...’

모래위에 떨어져 있는 작은 반지.

보통사람이었다면 발견하기까지 한나절이 걸렸겠지만, 이강호는 거리가 꽤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번에 반지를 발견해냈다.

쉬이익!

그때 레피아에게 그랬던 것처럼 이강호의 귓가에도 바람이 스쳤다.

“안 맞는다. 카시우스.”

그러나 이미 예측하고 있던 그는 그 화살을 최소한의 동선으로 회피해 냈다.

이강호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곧장 황무지를 향해 불꽃을 쏘았다.

화염이 스치자 인비지빌리티, 투명화 마법이 해제되며 몸을 숨기고 있던 엘프 세 명의 모습이 드러난다.

“이 정신없는 상황에서 이걸 눈치채다니...”

“쏴!”

슈슈슉!

수많은 얼음 화살이 빗발쳤다. 이강호가 엘프측보다도 거리상 우위에 있었기에 조금이라도 전진을 더디게 만들기 위함이었다.

타다다닥!

솨아아아-

그리고 그런 견제는 충분히 효과가 있었다.

이강호 또한 필사적이었던 만큼 대응할 마력을 남겨두지 않은 상태였다.

“칫.”

슈슈슉-

곡예를 타듯 아슬아슬하게 피해내며 계속 나아간다. 계산을 끝낸 엘프들이 혀를 찼다.

“이대로라면 우리가 조금 더 느리다!”

“이렇게 된 거 그냥 대규모 광역스킬을!”

“안돼! 이곳엔 드래곤이랑 마족 다 있다고! 지금 대량의 마법을 사용하면 카시우스님과 합류하기 힘들어지게 된다!”

“그럼 이대로 뺏기자는 거야? 어떻게든 빼앗고 차라리 게이트로 뛰어 들어보는 편이...”

엘프들의 의견이 갈렸다.

이강호는 이를 기회라고 여겼다.

‘반지를 챙긴 뒤 그 다음 레피아를 챙겨 벗어난다.’

계산해본 결과 아슬아슬하게 시간이 맞았다.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엘프들에게 카시우스의 전언이 왔다.

[살려둔 인간 여자를 노려라.]

그 말을 듣기 무섭게 세 명의 눈이 번뜩 빛났다.

“그래서 숨을 끊지 않고 일부러 살려놓으셨던 건가!!”

“반쯤 도박이라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내가 뛸 테니 너희 둘이 쏴라.”

“그러지.”

트드득-

엘프 두 명이 활시위를 겨눴다. 방향을 본 이강호는 놈들이 하려는 짓을 단번에 눈치 챘다.

‘이놈들...’

“자, 정해라... 반지냐! 아니면 동료냐!”

피융!

화살이 쓰러져 있는 레피아를 향해 날아갔다.

일부러 애매한 위력으로 발사한 터라 지금의 이강호라면 피해 없이 막아 낼 수 있는 그런 화살이었다.

화살을 막아낸다면 반지를, 반지를 선택하면 레피아를 포기해야 되는 상황.

‘......’

0.001초 그 찰나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동안 오만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본래라면 망설임 없이 반지를 선택하는 게 맞는 판단이었다.

아무리 레피아가 실력이 출중하고 활용성이 좋은 능력을 지니고 있다지만, 진리의 반지는 그 이상의 훨씬 높은 값어치를 지니고 있었으니까.

‘제길...’

사사로운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다.

그것은 약속이었고, 과거 그의 전부였다.

그러나 지금은 어느 때도 더없이 굳세기만 하던 그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레피아 레벤, 정찰을 나갔다가 돌아오지 못하는 비운을 맞이했던 동료.

[이강호. 만약 일이 성공하면 꼭... 유%*&$라는 자를... 반%$&^#... 데려... 그럼 갔다 올게.]

노이즈와 함께 레피아가 마지막 정찰을 떠나기 전 했던 말이 뇌리에 메아리쳤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또 한편으로 레피아의 진짜 목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반지를 챙겨! 이강호!!”

화르륵-

화염이 화살과 레피아 사이를 갈랐다.

이강호는 화살을 쳐냄과 동시에 검지손가락을 포함해 떨어져있던 그녀의 사지를 순식간에 회수했다.

이강호가 레피아를 품에 안자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이강호... 왜...”

“네가 없었더라면 어차피 얻지 못했을 반지다.”

짧게 답한 이강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반지를 주운 엘프들을 뒤로했다.

* * *

난장판이던 싸움이 종결되었다.

이강호가 게이트 저편으로 사라지자 안전하다고 판단한 크라베스와 카그네프가 게이트 향해 뛰어들었고, 게이트를 연 드래곤들 또한 포탈 저편으로 모습을 감췄다.

“후후...”

이에 이 전장의 승리자, 수하가 건넨 반지를 받아든 카시우스의 입가에 은은한 미소가 걸렸다.

반지의 효과는 그가 기대하고 있었던 것 훨씬 이상이었다.

“축하드려요. 카시우스님.”

한 엘프가 그를 향해 축하를 건넸다.

로리엔이었다.

“너도 축하한다 로리엔.”

“예? 뭘요?”

“여기서 상당한 양의 코인을 흡수했잖니.”

“아...”

“복수까지 단번에 몇 걸음이나 나아간 셈이로군.”

“으음...”

로리엔이 멋쩍게 머리를 긁적거렸다. 확실히 이번 전투는 살아남은 이들에게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스텟 증가를 안겨주었다.

“뭐... 그러네요. 그보다도 저들처럼 이쪽 게이트를 사용하실 건가요?”

“왜? 쫓고 싶은 게냐?”

“아뇨. 이 상황에서 그럴 리가요. 동쪽 게이트로 가시죠.”

로리엔이 편한 어조로 말했다.

한때 제멋대로 행동하여 많이 부딪쳤던 탓인지 지금 그녀와 카시우스 사이에는 처음 존재했던 권위의 벽이 많이 허물어져 있었다.

이동하는 도중 카시우스가 대뜸 말했다.

“그놈들... 분명 반지의 효과를 알고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목숨을 걸어가면서까지 이렇게 할 이유가 없었으니까.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하지만 어떻게 매번... 이런 식으로 행동하는 게 가능한 걸까요?”

“흠...”

카시우스로서도 그게 가장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었다.

“그들 중에 정보를 자동으로 수집하는 고유특성을 지닌 자라도 있는 걸까요?”

“글쎄, 난 개인적으로 그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만.”

카시우스는 절대라고까진 말하지 못했다.

실제로 이 작전은 엘라뉘스가 지닌 아이템의 값어치를 아는 인간들이 아이템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거라는 가정하에 세워진 것이었으니까.

“인간...”

어쩌면 최악의 적은 드래곤이나 마왕이 아니라 그들이 될 수도 있다.

카시우스는 그리 생각하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6층(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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