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457화 (443/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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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수 없는 기운이 더욱 강력해졌습니다. 신의 저주가 몸을 감쌉니다.]

[체력 및 마력 재생 능력이 한 단계 하락 합니다.]

[모든 속성 저항력이 한 단계 하락 합니다.]

6층에 당도한 대리자들 앞에 연속적으로 알림창이 나타났다.

“후우... 후우... 이런, 하필이면 체력 재생 능력이...”

그건 격렬한 전투를 치르고 올라온 대리자들에게 있어서는 상당히 거슬리는 디버프였다.

“젠장, 대체 뭔데 이 탑...”

“그러게나 말이다. 제기랄...”

게이트를 통과하면서 적들이 자취를 감춘 터라 대리자들은 그 자리에서 정비를 하기 시작했다.

“크...”

벨제뷔트 또한 지면에 털썩 주저 않았다.

평소 그가 보여온 권위를 생각한다면 맨땅에 앉는다는 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지금의 그는 그런 것을 가릴 때가 아니었다.

‘회복할 수 있을 때 해둬야 된다.’

크게 다친 것은 아니었으나 자잘할 데미지가 무척이나 많이 쌓여 어디 성한 데가 한 곳도 없었다.

이 탑은 괴랄하여 언제 적이 등장할지 모르기에 가능할 때 컨디션을 되찾아 둘 필요성이 있었다.

‘젠장...’

이곳저곳 몸을 살피던 벨제뷔트가 쓴 침음을 삼켰다.

‘보기 좋게 당했다.’

아이템을 얻지도 못했고, 인간을 잡지도 못했다.

‘데프하우어...’

거기에 더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최강의 전력이자 그 어떤 상황에서도 신뢰할 수 있는 심복을 잃었다.

“후우...”

죽은 것은 아니었다.

데프하우어는 벨제뷔트의 권속, 관계가 완전히 끊어지지 않았음을 희미하게나마 느낄 수 있었으니까.

‘그러니 지금은 포획 당했다고 보는 게 옳겠지.’

그리고 벨제뷔트는 데프하우어가 누구에게 포획당했을지도 대충 예상이 갔다.

이 세계는 포로란 개념이 존재할 수 없는 세계.

적의 목은 바로바로 베어 코인으로 환원하는 게 이득인 이 세계에서 이런 귀찮은 짓을 할 만한 이는 그리 많지, 아니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카실리아...’

범인의 이름을 읊조린 벨제뷔트가 답답한 마음에 그대로 뒤로 털썩 드러눕기 무섭게 지면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 * *

[하아... 하아...]

쿵!

모래바람과 함께 엘라뉘스가 힘겹게 지면에 착지했다.

[엘라뉘스님!]

[후우... 후우...]

잘려나간 그녀의 손가락에서는 여전히 피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가능했다면 진즉 조취를 취했을 터지만, 지금 그녀는 가장 낮은 수준의 회복마법을 사용할 정도의 마력조차도 없었다.

[엘라뉘스님! 신체를 회수해왔습니다! 받으십시오!]

이에 다른 드래곤들이 다급히 달려와 대신 조취를 취했다.

사실 검지를 잃을 정도로는 그 누구도 죽지 않기에 호들갑을 떨 필요는 없었지만, 엘라뉘스는 그린드래곤을 이끄는 로드, 드래곤들이 우러러보는 상징적인 존재였다.

[너희들도 힘들 텐데 천천히 하거라.]

[이 정도는 별 것도 아닙니다.]

스스스-

회복의 빛과 함께 검지는 빠른 속도로 붙어갔다.

그새 한결 나아졌는지 엘라뉘스가 상공을 두리번거리며 살폈다.

“흠...”

그녀는 근처에 대기하고 있을 누군가를 찾고 있는 중이었다.

먼저 6층으로 올라간 드래곤 부대가 남겨 놨을 전령.

‘알아냈었던 정보에 따르면 종족이 같은 이상 분명 같은 장소에 떨어질 터인데... 설마 게이트의 위치가 달라서 다른 장소에 떨어진 것인가?’

그녀가 그리 생각한 순간이었다.

“천하의 엘라뉘스가 꼴이 말이 아니로군.”

쉬이익-

엘라뉘스의 바로 앞, 배경이 일그러지며 한 존재가 허공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바다를 연상케 하는 푸른 눈동자와 근육질의 커다란 몸이 인상적인 사내.

[아르펜 드라고논.]

엘라뉘스가 차분히 그의 이름을 읊조리자 아프렌이 피식 실소를 흘리며 말을 이었다.

“내가 있는 걸 전혀 눈치 채지 못 하다니... 마력을 전부 소진한 거 같은데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지금 말하기엔 이야기가 길다.]

“아, 그래 그래. 뭐, 그러시겠지.”

아르펜이 비꼬듯 어깨를 으쓱거렸다.

이에 몇몇 그린드래곤의 눈빛이 매섭게 변했지만 그 누구도 나서진 못했다.

[그보다도 아르펜, 네가 왜 여기 있는 거지? 네가 전령을 자처했을 리는 없을 테고.]

“뭐, 그렇지. 왜일까? 맞춰봐.”

[......]

둘은 동급의 존재, 아르펜 드라고논은 블루드래곤 로드였다.

서로를 어떻게 칭할지는 양측이 합의하에 정하는 것이었기에, 엘라뉘스가 괜찮다고 여기고 있는 이상 감히 다른 존재가 껴들어 왈가왈부할 권리는 없었다.

엘라뉘스가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짚으며 말했다.

[아프펜... 난 지금 심각하다. 장난은 그만하고...]

“하하, 알았어 알았어. 그만할 테니 인상 피라고 엘라뉘스.”

아르펜이 손사래를 쳤다.

아르펜은 품위를 중요시하는 다른 드래곤들과는 그 성향이 많이 다른 존재였다.

“그게 말이지 내가 왜 여기에 있는 거냐면...”

아르펜의 표정이 언제 그랬냐는 듯 한없이 진지하게 돌변했다.

“이곳이 전장이니까.”

[?!]

쿠구구궁!

지면이 요동쳤다.

800m가 족히 넘어 보이는 산등성이 뒤로, 거대한 무언가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아르펜이 곧장 몸을 돌리며 말했다.

“넌 운이 좋았어 엘라뉘스. 내가 있는 쪽에 떨어졌으니. 따라와. 이곳은 곧 쑥대밭이 될 거야.”

[뭐? 하지만 아직 전부 게이트를 넘어오지 못...]

“어쩔 수 없어. 그건 걔들이 알아서 대처해야 될 일이야. 참고로 말하자면 난 너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구해주지 않을 거야.”

[아르펜님, 그 말은 좀 섭섭합니다만.]

난데없이 블루드래곤, 제루웬 베루가 껴들었다. 아르펜은 그를 보더니 순간적으로 머쓱해졌는지 머리를 긁적였다.

“하하하... 너희들은 물론 예외지 임마! 에이~! 당연한거라 말 안 한거야! 너무 당연한거라! 이해하지?”

[...뭐, 그렇다고 쳐 드리겠습니다.]

“어허... 그렇게 말하면 이번엔 내가 섭하지. 내가 너를 얼마나 아끼는...”

쿠오오오!

그때 무언가로부터 시작된 거대한 굉음이 세상을 찢어발길 듯 메아리쳤다.

장난기가 싹 가신 아르펜이 엘라뉘스를 향해 손을 뻗었다.

“룬 프리즌(rune prison). 얼티메이트 베리어(ultimate barrier)”

생성된 룬 감옥이 순식간에 엘라뉘스를 가둔다.

[너... 아르펜!]

“시끄러워. 시간 없다고 했잖아. 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정말로 따라오지 않을 지도 모르니.”

엘라뉘스는 그 행동에 당혹감을 보였지만 아르펜은 단호했다.

순식간에 본체화한 아르펜이 곧바로 룬 감옥을 낚아채 날아오르며 외쳤다.

“전원! 내 뒤를 따라와라! 이곳을 벗어난다!”

피잉!

콰아아앙!

아르펜이 자리를 뜬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하늘에서 쏟아진 마그마가 그들이 있던 장소를 불살랐다.

* * *

“으... 으...”

레피아가 연신 괴로움을 토해냈다.

그녀는 너무나도 많은 피를 흘린 상태였던지라 당장이라도 치료를 시작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만약 시작점이라면 바로 시작할 수 있다.’

이벨린이나 다른 이들에게 도움을 받을 수도 있을 터.

이에 이강호는 게이트를 통과하기 무섭게 주위를 살폈다.

‘이런, 젠장... 시작점이 아니다.’

이강호가 입술을 질끈 곱씹었다.

절멸의 탑 제 6층, 이 장소에선 시작점과 아닌 곳의 그 차이가 너무나도 컸다.

그도 그럴 것이.

쿠오오오오-

‘젠장, 타이밍도 좋지 않군.’

통칭, 재해지역.

이곳은 산이나 바다, 사막 등등 흔히 자연환경이라 불리던 것이 몬스터로써 활보하는 곳이었다.

이들은 일정 시간마다 잠에서 깨어나 대리자들에게 공격을 감행해오는데, 시작점에 있는 대리자를 제외하고는 구분 없이 닥치는 대로 공격하다가 다시 잠에 빠지곤 했다.

워낙 강력한데다가 자연재해인 만큼 완전 소멸도 되지 않기에, 현 상황에서 이강호가 할 수 있는 대처는 오직 하나뿐이었다.

“이강호...”

“미안하지만 조금만 더 참아라.”

이강호는 우선 움직이기에 앞서 레피아를 조심스레 땅위에 내려두었다.

이곳저곳을 살피는 이강호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빠르게 움직인다.

‘분명 있을 거다. 근처에.’

그가 찾고 있는 건 왜곡 지점이었다.

균열로 인해 발생된, 시작점을 제외한 자연재해를 피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

파앗-

“선배님!”

“김주희! 레피아를 부탁해!”

“디네야! 회복마법!”

[나만 믿어!]

김주희는 곧장 부탁받은 일을 했다. 이강호가 저렇게 움직일 때는 다 이유가 있기 마련이었으니까.

응급처치에 불과했지만 그나마 한결 나은지 레피아의 표정이 살짝 누그러졌다.

눈을 간신히 뜬 레피아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김주희... 미... 아...?!”

뭐라 하려 했던 것일까? 난데없이 말이 뚝 끊기며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누가 봐도 명백히 부자연스러운 일이었기에 이상함을 느낀 김주희가 고개를 치켜들어 상공을 올려다왔다.

“?!”

표정이 구겨질 수밖에 없었다.

상공에는 20마리 가량 되는 드래곤 부대가 그녀가 있는 곳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누, 눈이 마주쳤어!’

“선배님!”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예?”

후웅! 후웅!

그 말마따나 드래곤들이 아무 짓도 하지 않고 저편으로 사라졌다.

‘좋은 찬스였을 텐데...’

그걸 무시하다니.

‘앞으로 여기서 뭔 일이 벌어지길래...’

김주희가 마음속을 경악하고 있을 때, 때마침 넘어온 아퀼라가 그녀를 향해 투덜거렸다.

“야! 김주희! 감히 나를 미끼로 써? 너 죽고 싶...”

“아, 됐고! 빨리 가서 강호 선배나 도와! 뭔가 일 터지기 직전인 거 같으니까!”

“뭐?”

“빨리!!”

“으으!! 너 나중에 보자!”

아퀼라가 근처에 다가서자 이강호가 보지도 않고 대뜸 말했다.

“공간이 일그러진 곳을 찾아!”

“공간이 일그러진 곳?”

“설명해줄 시간은 없어!”

퓨슈슈슈!

차가운 물기둥이 지면 곳곳을 깨부수며 솟아올랐다. 이강호는 자연재해의 정체를 알아챔과 동시에 시간이 더 이상 없음을 깨달았다.

‘포세이돈인가!’

해일의 재앙.

포세이돈이 출몰하는 곳은, 설사 사막이라 할지라도 바다가 되어버린다.

일반적인 액체였다면 대리자인 그들이 위협을 느낄 필요가 전혀 없었겠지만, 포세이돈의 육체를 구성하는 물은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스킬이라 볼 수 있을 정도로 강대한 마력을 머금고 있었다.

물이 빠르게 차오르며 지면이 해수에 잠기기 시작한다.

쿠우우웅!

처음 물기둥이었던 것은 어느새 한데 뭉쳐 대략적으로나마 포세이돈의 형태를 갖춘 상태였다.

‘눈이 될 소용돌이가 만들어지면 놈이 깨어난다. 그러니 그전에 찾아야 된다.’

이강호의 움직임이 더더욱 빨라졌다.

그는 한때 이 6층에서 살아남기 위해 수천 개가 넘는 왜곡 지점을 외운 이력이 있는 인물이었다.

그때 이후로 시간이 흐르고, 새로운 일을 겪은 터라 상당히 많은 위치를 망각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지점을 찾는 노하우만큼은 까먹지 않고 있었다.

‘찾았다!’

“모여!”

이강호가 손짓하기 무섭게 모두가 집결했다.

이제 남은 건 아직 이곳에 당도하지 못한 유세현과 제넥뿐이었다.

‘시간이 없는데.’

쿠어어어어-

퍼엉!

일행이 있는 장소만을 빗겨 물보라가 일대에 휘몰아쳤다. 물보라가 한차례 휩쓸고 간 자리에는 그 무엇도 남아있지 않았다.

모두가 초조한 눈빛으로 유세현이 나타날 장소를 응시했다.

김주희가 물었다.

“선배님, 만약 늦으면 어떻게 돼요?”

“......”

침묵의 뭘 의미하는지는 명확했기에, 김주희는 마음속으로 빌고 또 빌었다.

‘제발... 제발...’

파앗!

그때 빛과 함께 유세현이 등장했다.

“선배님! 이쪽이에요! 이쪽!”

쿠오오오오오!

동시에 소용돌이의 형태가 완벽해지며, 포세이돈이 눈을 번쩍 떴다.

예기치 못한 만남(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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