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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라뉘스님! 이 틈에 이탈을!]
[그러도록 하자꾸나.]
이 인간들 중 누군가가 지니고 있을 파편조각이 아쉽기는 했지만, 어차피 이길 수 없는 싸움이란 것을 알고 있던 엘라뉘스는 미련 없이 날갯짓을 했다.
유세현은 그런 그들을 막아섰다.
유세현은 지금 여기서 반지를 빼앗지 못하면 이 지역에선 더 이상 빼앗을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승부를 보려면 여기서 봐야한다.’
현재 유세현은 탑의 힘에 의해 마족화 스킬이 봉인된 상태였기에 단번에 승부를 보기 위해서는 그 힘을 사용해야 될 필요성이 있었다.
지금의 그를 있게 만들어 준 스킬, 암흑투기.
이전 도주할 때를 포함하여 드래곤과의 전투에서 단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었기에, 엘라뉘스를 포함하여 드래곤들은 사람들 중에서 어둠의 마력 사용자가 있다는 건 파악했을지언정 암흑투기의 존재에 대해선 모르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지금 사용한다면 모든 것을 관통하여 핵심을 찌르는 것이 가능할 확률이 무척이나 높은 것이다.
‘......’
허나 유세현은 스킬을 발현하는데 있어 순간적으로 망설였다.
걸리는 게 있는 탓이다.
‘진리의 반지...’
엘라뉘스가 지니고 있는 스킬의 효과를 무력화시키는 아이템.
마력을 읽음으로써 이곳까지 순조로이 추격이 가능했던 유세현이었지만, 아무리 그라고 한들 반지의 사용 유무까지는 파악하는 게 불가능했다.
만약 엘라뉘스가 사용하지 않은 상태라면...’
암흑투기가 허무하게 사라지게 되는 수가 있다.
‘하지만...’
거기까지 생각한 유세현은 여태껏 숨기고 있던 마력을 전면 개방했다.
‘아까 유성이 떨어지는 위기의 상황에서도 엘라뉘스는 반지의 힘을 사용하지 않았다. 만약 있었다면 사용했었겠지.’
데프하우어가 날린 메테오 스트라이크를 없애지 않은 것도 그렇고, 유세현은 엘라뉘스가 벨제뷔트, 크라베스에게 쫓길 때 반지를 사용한 것이라 결론을 내렸다.
‘일순간에 끝낸다.’
마력은 순식간에 압박이 되어 오직 엘라뉘스만을 덮쳤다.
[...!?]
행동이 강제적으로 멈춰진 엘라뉘스의 표정이 그 어느 때보다도 딱딱하게 굳는다.
[이, 이건...!!]
파앗!
그 순간, 유세현의 신형이 잔상을 남기며 엘라뉘스를 향해 파고들었다.
엘라뉘스가 저항하며 어떻게든 몸을 움직여보려 했지만, 마력이 전부 고갈된 턱에 삐걱거리기만 할 뿐 무리였다.
‘크윽! 엄청난 압박이다!’
위기를 느낀 엘라뉘스의 눈이 다급하게 착용하고 있는 반지를 향했다.
아이템명: 진리의 반지
등급: 에픽 [SSS Rank]
상세정보: 만물의 근원, 진리의 편린이 담겨있는 반지입니다. 진리의 편린이 담겨있기에 진리의 일부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사용능력: 적의 스킬을 1회 완전 무력화 시킬 수 있습니다. (재사용 대기시간 30일)
특수정보: 봉인이 해제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온전히 힘을 발휘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안정화가 되기까지 총 1200초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1198초가 지났습니다. 남은 시간 2초)
천운일까? 아니면 악운일까?
남은 시간은 고작 2초였다.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야 한다.’
엘라뉘스는 결국 얼마 남지 않은 체력을 쏟아 부어 브레스를 토해냈다.
상당한 범위였건만, 유세현은 그것을 살짝 좌측으로 이동하는 것으로 살갗이 닿을락 말락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브레스를 이런 식으로 회피한다고?’
안 그래도 흔들리고 있던 엘라뉘스의 눈동자가 동요로 요동쳤다.
이래서는 버티지 못한다.
뛰어난 그녀의 머리는 이미 계산을 끝낸 상태였다.
누군가가 도와주지 않는 한...
“어디서 감히!! 감히 이 몸의 뒤통수를 또 치려고!! 놔둘성 싶으냐!”
그때 화염으로 발생된 연기 속에서 벨제뷔트가 모습을 드러내며 유세현의 하반신을 노려왔다.
유세현은 벨제뷔트의 방해에 살짝 인상을 구겼지만 이내 그를 밀쳐내고 바로 코앞에 있는 엘라뉘스의 팔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잡았다.’
그의 눈에 이채가 띤 순간이었다.
파앗-
때마침 발동 된 진리의 반지에서 각양각색의 특수한 문자가 터져 나오며 족쇄가 풀린 엘라뉘스의 육신이 순간적으로 가속하여 상공으로 튀어 올랐다.
슈웅!
덕분에 유세현의 검은 그대로 허공을 갈랐다.
콰과과과!
곧바로 에르비아크가 발산해둔 브레스가 유세현의 머리 위를 뒤덮었다.
유세현은 뒤쫓고 자시고 우선 회피하는데 온 신경을 다해야만 했다.
후웅! 후웅!
날갯짓을 거듭함에 따라 엘라뉘스는 유세현과의 거리가 점점 멀어져갔다.
엘라뉘스는 더 이상 쫓아올 기미를 보이지 않는 유세현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동료들이 아래에 있기 때문인가? 다행이군.’
그녀는 생전 처음으로 벨제뷔트에게 고마운 감정을 느꼈다. 벨제뷔트가 없었더라면 아슬아슬하게나마 팔이 잘리며 반지를 빼앗겼을 터였다.
‘하지만 결국엔 지켜냈다. 이 싸움의 승자는 바로 나다.’
마음속으로 웃음을 흘린 그녀는 전장을 등지려했다.
“훗.”
그런데 그 순간 고개를 치켜든 유세현과 그를 보고 있던 엘라뉘스의 눈이 순간적으로 마주쳤다. 유세현은 희미하게나마 분명 웃고 있었다.
엘라뉘스는 순간적으로 의문이 들었다.
목표를 이루지 못했음에도 웃고 있다니?
꾸물- 꾸물-
그때 엘라뉘스의 손가락 비늘이 갑작스레 꿈틀거렸다.
아니 정확히는 비늘이 꿈틀거린 것이 아니었다.
스스스-
서걱-
그림자에서 뻗어 나온 검이 싸늘한 음색과 함께 진리의 반지가 끼워져있는 검지를 잘라낸다.
[?!]
통증과 함께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엘라뉘스는 순식간에 파악할 수 있었지만 그림자의 주인은 이미 엘라뉘스에게서 떨어져 지상으로 낙하하고 있었다.
[에르비아크! 제루웬 베루!]
[회수해 오겠습니다!]
[아니! 같이 녹여버려라! 회수는 무리다!]
[큭!]
에르비아크와 제루웬 베루가 동시에 숨결을 토해냈다.
그러자 낙하하고 있던 여성, 임무를 완수한 레피아의 입꼬리가 씨익 올라갔다.
“너희들의 브레스는 확실히 위협적이지만... 주희야!”
“이미 사용했어요!”
파아아아아!
김주희가 만들어낸 얼음의 물줄기가 아이스 브레스와 부딪쳤다.
아이스 브레스와 물줄기는 위력이 막상막하인지 서로 밀지도 밀리지도 않았다.
[아니?]
제루웬 베루의 표정이 마치 꿀 먹은 벙어리마냥 변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내 브레스를? 고작 인간 따위가?]
이에 이번에는 레피아의 몸에서 독기가 뿜어져 나왔다.
독기는 마치 방어막처럼 레피아의 몸을 감쌌는데 애쉬드 브레스에 휘말린 그녀는 곧 아무런 타격을 입지 않은 모습으로 유세현의 앞에 나타났다.
공중제비를 한 레피아가 무릎을 굽히자, 유세현이 기다렸다는 듯 양팔을 굽혀 그녀의 발을 받쳤다.
사전에 이미 모의해두었던 작전대로의 행동이었다.
“가세요! 레피아!”
“그놈 잘 회수해와!”
유세현이 온 힘을 다해 밀기 무섭게, 타이밍을 맞춰 도약한 레피아가 상상할 수 없는 속도로 앞으로 튀어나갔다.
노골적인 행동에 벨제뷔트를 포함하여 다수의 이들이 외쳤다.
“도망친다! 잡아라!”
동시에 나머지 일행들도 벗어나기 위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제일먼저 움직인 것은 이강호.
“잘 있어라 카그네프.”
“어딜!”
후웅!
불길과 함께 이전과 같이 이강호가 자취를 감췄다. 카그네프는 당황하지 않고 곧장 게이트를 향해 질주했다.
두 번씩이나 제대로 당했던 경험이 있던 그는, 이강호의 화염동화 능력에 대해 확실히 파악하고 있는 상태였다.
‘분명 게이트에서 가장 가까운 불꽃으로 이동했겠지. 나와 전투로 그리 넓게 뿌리진 못했으니 그리 멀리 가진 못했을 거다.’
이어서 김주희와 아퀼라도 차례대로 빠졌다.
빠지지 못한 건 스텟이 낮은 제넥뿐이었다.
“후우... 후우...”
격렬하게 움직이며 다수를 상대했기에 제넥의 이마에서는 현재 땀이 폭포처럼 흘러내리고 있었다.
주위를 쓱 훑어본 그가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뚫고 나아가기가 힘들다.’
긴장감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상대를 비웃기는 했으나 사실 그는 그 누구보다도 적들이 강자라는 걸 잘 인지하고 있었다.
특히나 그중에서도 이브와 렘벨크의 합공은 합이 너무 잘 맞아 강력하기 짝이 없었다.
‘체력이 상당히 떨어진 상태가 아니었다면 분명 당했을 거다.’
하지만 지금 문제는 그것이 아니었다.
‘답이 안 보인다.’
따라오기 전 발을 붙잡지 않겠다고 한 이강호와의 약조 때문에 그는 아무에게도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 있었다.
‘다른 이들은 대충 벗어난 것 같군.’
그래서 제넥은 버려질 것을 각오했다.
‘너무 오기를 부렸어.’
제넥은 일행을 원망하지 않고 스스로를 탓했다.
무릇 이런 전장에서 싸우기 위해서는 스텟이 지금보다도 훨씬 더 높아야만 했다.
‘그래도... 이 정도면 강자들을 상대로 꽤 버텨준 셈이니 도움은 됐겠지.’
그의 가슴 한편에 자리 잡고 있는 건 다른 감정이 아닌 아쉬움.
‘결국 답은 못 듣겠군... 그놈들이 앞으로 어떻게 할지 제대로 뒤따라가 보고 싶었는데...’
제넥의 몸에서 마력이 휘몰아쳤다.
죽을 땐 죽더라도 그는 렘벨크나 이브 중 한 명은 데려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가 막 창을 휘두르려던 때였다.
“렘벨크! 위를 봐라!”
“?!”
쿵!무엇인가가 제넥을 향해 뚝 떨어졌다. 정체를 확인한 제넥의 동공이 일순간 흔들렸다.
“당신...”
“가죠, 제넥.”
제넥이 더 뭐라 할 새도 없이 잽싸게 제넥을 낚아채 둘러맨 유세현이 곧장 하늘을 향해 도약했다.
* * *
“어째서... 나를 구하러 온 거지?”
“이곳까지 함께 온 동료지 않습니까. 동료를 구하는 건 당연한 거죠.”
물음에 유세현이 별 감정 없는 사무적인 어조로 답했지만, 제넥은 꽤나 감동을 먹었는지 평소 굳건하기 그지없던 표정이 살짝 흔들렸다.
박박 우겨 따라온 자신을 설마 구해주러 오리라고는 차마 생각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건 제넥의 생각일 뿐이고 유세현의 입장에서 그는 전력을 살린 것에 불과했다.
한 명 한 명이 아까운 상황인데 고작 그런 것 때문에 버리고 간다는 건 미친 짓이 아닌가?
게다가 그는 이곳에 와 보통은 불가능할 정도의 급성장을 했다.
‘과거엔 분명 신창이라 불렸다고 했었지.’
유세현은 그리 생각하며 더욱 빠르게 가속했다.
천마군림보는 다른 보법에 비해 기본적으로 마력을 많이 잡아먹는 대신 그만큼의 값어치를 하는 무공이었다.
쿠구궁!
유세현은 점점 거리가 벌려지고 있는 렘벨크와 이브의 스킬을 이리저리 회피해가며 현 상황을 살폈다.
엘라뉘스와 벨제뷔트는 레피아를 쫓고 있었고, 크라베스와 카그네프는 이강호를 쫓고 있었다.
그 외 다수의 사도와 델바람, 마족들이 자신과 김주희, 아퀼라를 추격하고 있었지만, 유세현이 느끼기엔 이대로라면 충분히 도주가 가능해 보였다.
당연히 체력 차 때문이었다.
‘그런 면에서 이번엔 운이 좋았군.’
추격을 들키지 않은 게 컸다. 만약 들켰다면 내빼기도 바빴을 것이다.
평소 일행은 뭔가를 할 때 일이 꼬일 때가 많았는데 이번에는 원하는 대로 딱딱 일이 진행됐다.
게이트를 통과하게 되면 진형이 나뉜다는 것을 이강호가 알고 있었기에 유세현도 이번만큼은 작전이 확실히 성공했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래... 그것이 감지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진리의 반지(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