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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왕 유세현-446화 (432/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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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벨린의 산하로 편입된 사람들의 주 업무는 각 길드의 리더들에게 상황과 정보를 전파하는 것이었다.

그들이 지금껏 속해 있던 길드는 동료들을 잃은 사람이 창설한 임시 길드.

새로운 동료들과 바로 능숙하게 합을 맞출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이벨린의 배려에 의해 적응기간 동안 전령 역할을 맞게 된 것이다.

‘크크크!’

이에 제르오펜은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간신히 참아냈다.

이벨린의 배려는 정보를 캐내야 될 임무를 지니고 있는 그에게 있어선 실로 너무도 고맙고 멍청한 짓거리였다.

‘신원이 제대로 확인 되지 않은 자들을 배제하긴 커녕 되려 중심으로 끌어들이다니 말이야...’

하지만 솔직히 그로서도 이해가 아예 안 되는 건 아니었다.

쫓기듯 이 탑에 들어온 이후, 인간은 생사를 오가는 전투를 몇십번이고 치러야 했으니까.

잘 모르는 사람이라 할지언정 유대감이 안 생길래야 안 생길 수가 없는 구조였다.

‘솔직히 무림인과 그놈들이 없었다면 인간은 버티지 못하고 전멸했을 거다.’

아르카드 제국에도 이벨린이나 아린 하이워커, 그리고 7서클 마법을 보유한 왕궁 마법사 등등 많은 인재들이 있다곤 하나 탑에 진입할 당시 그들의 스탯은 제르오펜의 입장에서 보기에는 낮아도 너무 낮았다.

‘그런 의미에서 여러모로 무시무시한 놈들이다. 최소의 희생으로 단기간에 이렇게 인간들의 스탯을 끌어올리다니.’

만약 인간들이 이 탑을 끝까지 오르게 된다면... 아니, 몇 층만 더 오르게 되더라도 상위종족을 위협할 정도의 힘을 갖게 되리라.

‘뭐, 못 오르겠지만.’

제르오펜이 보기에 인간은 지금 너무 많은 종족에게 노려지고 있었다.

지주대가 되어 주고 있는 기둥이 제거된다면 탑의 난이도와 이종족의 압박을 견뎌내지 못하고 우르르 무너지게 될 것이다.

‘후우...’

집합장소에 도착한 제르오펜이 사람들을 마주하기 전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는 상황이 이전보다 나아졌다 한들 방심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걸리면 100% 죽게 될 테니까...’

그런 의미에서 이젠 약점으로 밖에 작용하지 않을 베르네브는 그만 치워버리고 싶은 인물이었다.

‘놈을 지키고 있는 기사만 없었어도 진즉 제거했을 텐데... 제길, 이것만큼은 아무리 이해하려해도 이해가 가지 않는 군! 왜 그딴 버러지를 지키는 거지?’

제르오펜은 그리 생각하며 사람들의 틈에 섞였다.

그러자 모인 전령들의 앞에선 이벨린이 진중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제가 말씀드릴 말은 일급 기밀입니다. 반드시 각 리더들에게만 전달해주시기 바랍니다.”

“...기밀이요? 그런 중요한 말은 직접 불러서 하는 게...”

“그러고 싶지만 아쉽게도 진군중이라 그럴 수 없습니다. 지체하다간 적들에게 자칫 따라잡히게 될 수 있어요. 저는 여러분들이 평소처럼 잘 전달 해줄 거라 믿고 있습니다.”

“......”

믿는다. 그 말에 모든 사람들의 눈빛에 결연함이 맺혔다.

표정을 본 이벨린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이었다.

“지금부터 이강호씨와 그의 동료들이 적진으로 침투할 겁니다. 목표는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만 최소 10일간은 못 돌아 올 것입니다.”

“...이 상황에서 침투요?”

“예, 꼭 가야되는 일이랍니다. 저번 침투 때 중요한 정보를 얻은 게 분명합니다.”

“만약 그 사이에 적이 쳐들어온다면...”

“스토르 벤과 합세하여 막아내면 됩니다. 이번에도 그때처럼 루시아씨와 루벨라씨께서 남아있을 예정이니 가능할 겁니다.”

루벨라는 루시펠이 인간진형에서 쓰고 있는 가명이었다.

“이 부분을 특히 신경 써서 리더들에게 전해주셨으면 합니다. 괜히 불안하지 않게요.”

“아~ 잘 알겠습니다. 그리고요?”

이후 이벨린은 적이 쳐들어왔을 때의 대응 방책 등등 여러 가지를 설명했다.

“그럼... 그렇게 전해주시기 바랍니다.”

“예, 꼭 리더들에게 잘 전달하겠습니다.”

파앗-

임무를 분담한 전령들이 순식간에 리더들을 향해 퍼져나갔다.

풀숲을 내달리고 있는 제르오펜의 얼굴에는 그 누구도 알아 볼 수 없는 옅은 미소가 맺혀있었다.

‘이건. 엄청난 정보다.’

그는 곧바로 틈을 봐 아가레스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은 꿈에도 알지 못한 채...

* * *

“흠...”

아가레스에 의해 소식을 접한 벨제뷔트는 생각에 잠겨있었다.

인간 놈들이 왜 그런 리스크가 높은 선택을 한 것일까. 드래곤들은 올라가지 않고 왜 그곳에 머무르고 있는 것일까.

도출되는 결과는 단 하나였다.

‘둘 다 탐을 낼 정도의 대단한 무언가가 그곳에 잠들어있는 게 틀림없다.’

그것밖에는 달리 생각할 거리가 없었다.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벨제뷔트는 고심했다.

이대로 보고만 있어야 할지, 아니면 따라 움직여야 할지.

‘본래라면 생각할 것조차 없지만...’

드래곤들은 하나같이 만만치 않은 존재였기에 본디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잠입이 거의 불가능하다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놈들은 이미 한 번 해낸 전례가 있다.’

한 번이 가능했는데 두 번이 불가능할까?

아리송한 일이었다.

이것만큼은 벨제뷔트도 좀처럼 갈피를 잡지 못했다.

방치하자니 마음에 걸리고...

그렇다고 해서 쫓자니 내키지 않고...

뒤쫓는 건 좋든 싫든 이목을 끄는 일이기에 자칫 남 좋은 일만 하게 되는 것일 수가 있었다.

이윽고 결론을 내린 벨제뷔트가 말했다.

“진형을 두 개로 나누겠다. 아크샤, 파라간.”

“예.”

“너희들은 병력을 이끌고 이대로 계속 추격해 인간 진형과 드래곤 진형 사이를 단절시켜라.”

“하옵시면...”

“나는 데프하우어와 함께 놈들이 향했을 중심지로 향하겠다.”

한쪽은 쫓고 한쪽은 퇴로를 차단한다.

그게 벨제뷔트가 떠올린 방책이었다.

아크샤가 말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드래곤과의 전면전을 피할 수 없게 됩니다만...”

“피해가 나는 건 어쩔 수 없다. 중요한 건...”

놈들을 잡는 것이었으니까.

“다행히 인간 놈들이 알아낸 정보에 따르면 이 섬에 머무르고 있는 드래곤의 수는 생각보다 그렇게 많지 않다. 아마 이토록 많은 강적이 한 번에 올라올 것이라고는 예상 못하고 최소한으로 간추려 이곳에 남은 것이겠지.”

“...바로 출발하실 것이 옵니까?”

“아니, 결행 날짜는 지금부터 6일 뒤다. 놈들이 충분히 들어갔을 때 퇴로를 잘라야 의미가 있으니.”

“알겠습니다. 그럼 우선 재편성만 해놓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도록 해라.”

아크샤와 파라간이 물러나자 벨제뷔트가 고개를 돌려 숲 저편을 응시했다.

그곳에는 본체의 모습으로 상공을 떠다니며 더욱 삼엄한 경계를 취하고 있는 드래곤들이 있었다.

‘그래, 어디 한 번 뚫고 들어가 봐라. 그곳이 너희의 무덤이 될 테니.’

벨제뷔트의 입꼬리가 싸늘하게 말려 올라갔다.

* *

“움직이기 시작했군.”

이강호의 말에 유세현도 차분한 눈동자로 마족의 움직임을 관찰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옆에는 이벨린과 남궁시영이 서 있었다.

“마족이 저런 행동을 보임에 따라 엘프와 델바람들도 뭔가 이상함을 느꼈는지 병력이 일부 경로를 바꿨어요.”

“그렇겠지. 그들도 줄곧 탐을 내고 있었으니.”

리더들에게는 이강호와 동료들이 진즉 떠난 것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사실 그들은 모습을 숨긴 채 아직 인간진형 내부에 있었다.

거짓정보에 속아 움직인 마족이 혼란을 야기하면, 드래곤의 경계가 자연스레 느슨해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때를 놓치지 않고 침투한다!

남궁시영이 걱정스런 어조로 물었다.

“정말로 갈 생각이신가요? 그냥 이대로 게이트를 통과하는 편이 나은 판단이지 않을까요?”

“흠, 확실히... 그 편이 더 나은 판단이긴 하지만...”

진리의 반지 정도면 충분히 리스크를 감당할 가치가 있는 물품이었다. 지금 상황이라면 그들의 힘으로는 근처까지 충분히 잠입이 가능했다.

“무리는 절대 안 할 거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그래도 걱정 되는데...”

남궁시영이 쑥스럽게 말했다.

이강호는 낯이 간지러워져 콧등을 긁적였다.

“그보다도 시영씨, 제가 이전에 드렸던 부탁은 어떻게...”

“아, 그거요? 죄송해요. 최대한 수소문은 해봤지만...”

비급서에 대한 이야기였다.

루시펠이나 루시아가 익힐 만한 상승무공을 찾아 달라 부탁했던 것인데, 무림인들에게 무공은 곧 전부, 당연히 있어도 쉽게 내어줄 리가 없었다.

‘뭐, 애초부터 별 기대는 안했으니...’

“오늘은 쉬고, 내일 출발하도록 하겠습니다.”

이강호가 해산을 선언했다. 나무위에 자리 잡은 그가 후드를 눌러쓰고 휴식을 취하려던 때였다.

“아직 이곳에 남아 있었군.”

바로 앞 나무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강호가 조심히 그의 이름을 읊조렸다.

“제넥 브라큰.”

“호오, 천하의 이강호가 내 이름을 기억해주고 있다니. 영광인데?”

비꼬듯이 말한 제넥이 웃으며 모습을 드러냈다.

이강호가 곧장 본론을 물었다.

“무슨 연유로 찾아 왔지?”

“나도 껴달라고 하려고.”

“안...”

“어이 어이, 그렇게 바로 거절하지 말라고. 나의 존재를 눈치 채고도 일부러 모른 척 하고 있던 거 다 알고 있으니까.”

“...함께 가고 싶은 이유가 뭐지?”

“궁금해서. 너희가 뭘 하려는 건지.”

제넥이 성큼성큼 다가왔다.

“너희는 너무 비밀이 많아. 어떻게 해서 이 탑의 공략법을 알고 있는 건지. 적들에 대해 어쩜 그리 잘 파악하고 있는 건지. 뭣하나 제대로 된 설명을 해주지 않았지.”

“......”

“뭐, 솔직히 그게 딱히 불만인 건 아니야. 덕분에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질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너희를 100% 신용할 수 있냐? 그건 또 아니지.”

“그래서? 그게 이번 잠입에 함께하려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지?”

“상관있다.”

이유를 밝히지 않았지만 과거 그와 동료였던 이강호는 사실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그는 사람의 본질이 생각이 아닌 행동에 근거한다고 믿고 있는 사람이었다.

험난한 상황 속에서 자신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보려는 것이리라.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다.”

“알고 있다. 내가 그 정도도 감수하지 않고 말했을 것 같나?”

“흠...”

제넥은 이강호 일행을 제외하고는 무력 순위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인물이었다.

익힌 나선극회공(螺線戟廻功)의 성취도도 무척 뛰어난지라 마력이 감지당해 발각 당할 일도 없으니 일단 기본 조건은 만족하고 있는 셈이었다.

문제는 그것을 고려하더라도 적들이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무척 강하다는 것.

“역시 안돼. 너무 위험하다.”

“지금 나를 데려가지 않으면 두고두고 후회하게 될 거다.”

예리하게 날이 선 제넥의 눈이 불타올랐다. 그가 사람을 시험할 때의 눈빛이었다.

‘이런...’

지금 거절하면 어마어마한 벽이 생긴다.

신뢰와 리스크, 이강호는 양자택일 해야만 했다.

“후... 그래 알았다. 같이 가자.”

“좋은 판단이다. 내일 출발한다고 했었지?”

“그래.”

“좋아, 그럼 그때 보자고.”

제넥이 나타났던 나무 뒤로 모습을 감췄다.

그가 사라진 곳을 흘끗 흘긴 이강호가 씁쓰름한 표정으로 혀를 찼다.

“저 성격, 예나 지금이나 어디 안가는 군.”

허나, 딱 거기까지일 뿐 이강호가 그를 그 이상 비난하는 일은 없었다.

그는 과거에 너무도 많은 것을 해주었었으니까.

목숨을 바쳐서.

진리의 반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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