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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웅!
파앗!
그러거나 말거나 이강호는 순식간에 스토크와의 거리를 좁혔다.
먼저 공격을 감행해온 주제에 이제 와 싸움을 원치 않는다고 멈추라니 어불성설이다.
이강호는 이참에 미래의 걸림돌이 될 수 있는 스토크를 치워 버릴 작정이었다.
스토크가 언더월드 이후 얼마나 많은 성장을 했던 간에 자신보다 더 많은 성장을 했을 리는 없었을 테니까.
이것은 기회!
“이런!”
말을 무시한 이강호의 창이 예상보다도 훨씬 빠르게 다가오자 고유특성을 발현한 스토크가 다급히 몸을 뒤로 날리며 고개를 젖혔다.
창끝은 정말 아슬아슬하게 그의 목젖을 빗겨지나갔다.
“크으!”
허나 이강호의 공격이 고작 그걸로 끝일 리가 없었다.
이강호가 눈을 번뜩 빛내자 창끝에서 발산된 불길이 순식간에 스토크의 안면을 향해 치솟았다.
스토크가 처음부터 회피할 생각을 가지고 뒤로 물러나 다행이지, 만약 흘기고 반격하려 했다면 그대로 화염을 몽땅 뒤집어썼을 일이었다.
스토크가 여파로 인해 새까맣게 변한 육체를 뒤로한 채 재차 외쳤다.
“크으... 이강호! 내 말을 들어라! 지금 우리와 싸워봤자 아무런 이득도 챙길 수 없다! 되려 이 상태가 지속되면 우리 둘 다 멸망을 면치 못하게 될 거다!”
굉장히 다급하면서도 긴박한 목소리였다.
“...뭐? 그게 무슨 소리지?”
이강호도 이번에는 반응을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었다. 뇌리속을 관통하는 스토크의 이상한 말 때문이었다.
이 상태가 지속되면 둘 다 멸망하게 될 거라니?
그건 마치...
“크... 이 앞에... 놈들이 있다.”
“놈들?”
“그래... 너도 분명 한 번쯤은 놈들의 악명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었을 거다.”
“뜸들이지 말고 말...”
“드래곤...”
스토크가 지그시 읊조렸다.
이강호의 눈빛이 그 단어를 듣기 무섭게 착 가라앉았다.
“그놈들이 지금 이곳에 있다는 건가?”
“그렇다. 이 층의 마지막 섬에서 6층으로 올라가는 게이트를 점거하고 있다.”
“그 수는? 혹시 파악하고 있나?”
“정확히는 모른다. 허나 꽤나 많은 건 분명하다.”
“......”
“그보다도 이제 납득이 됐나? 우리들이 왜 싸우면 안 되는지?”
스토크의 물음에 이강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저 앞에 드래곤이 죽치고 있다면 지금 두 세력이 맞붙는 것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공멸하겠다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스토크의 말이 진실일 때 일이긴 하지만...
‘놈은 굳이 대화를 하기 위해 내 앞에 나타났다.’
그렇다는 건 진실일 확률이 턱없이 높았다.
놈들이 마지막 섬의 존재를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구태여 왜 이곳에 죽치고 있는 것인지도 납득되고 말이다.
‘흠... 난감하군. 설마 이 탑에 드래곤이 들어와 있었을 줄이야.’
이강호는 우선 이곳에 당도해 당장에라도 공격을 감행하려 하고 있는 지원군들을 다급히 말렸다.
“뭐, 뭐야? 어떻게 된 거야?”
“왜...”
그러자 레피아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은 갑자기 갈피를 잡지 못하고 어영부영했다.
갑자기 전투가 중단되는 경우는 매우 드문 일인 탓이었다.
“이강호!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특별한 일이 생겼다. 전투는 중지야. 추가로 오는 다른 사람들은 네가 좀 진정시켜줘 레피아. 자세한 건 다 끝나고 말해주겠다.”
“흠... 그래? 알았어.”
이강호의 말에 레피아가 사람들을 제어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스토크가 조심히 말을 이었다.
“그래서 말인데 이강호, 이 자리를 비롯해 한 가지 제안하고 싶은 게 있다.”
“뭐지?”
“동맹을 맺지 않겠나?”
“동맹?”
이강호가 일순간 의문을 표하자 스토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동맹. 너 정도라면 이미 알고 있겠지만 현재 이 층에는 이 탑을 빠져나갈 수 있는 탈출로가 없다. 즉 우리들이 향할 수 있는 장소는 오직 한 곳뿐이라는 뜻이지.”
“......”
“그런데 우리가 이 섬에 도착하고 놈들을 발견한지가 벌써 1개월이 넘었지만 놈들은 도무지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습격 해오는 것을 제외하곤 말이지.”
“1개월씩이나 말인가?”
“그렇다. 습격도 습격이지만 만약 이게 계속 지속된다면 우리는 영원히 이곳에 갇혀 있어야만 한다. 그리고 그건 너희도 별반 다르지 않지. 그러니 어쩌겠나. 내 제안, 수락하겠나?”
“함께 돌파구를 찾아보자 이건가...”
이강호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단정하긴 이르지만 만약 정말 드래곤들이 죽치고 있는 것이라면 스토크의 말처럼 최악의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이미 언급된 것처럼 이 5층에는 탑을 벗어날 수 있는 탈출로가 없는 탓이었다.
“만약 동맹을 맺는다면 섬 자리 일부를 양보해줄 수 있겠나?”
“물론이다. 기꺼운 마음으로 양보해주지.”
“...그럼 내일 정확히 지금과 똑같은 시간에 다시 이곳을 찾겠다. 그때 명확한 답을 주지.”
“알겠다. 그러도록 해라. 하루 정도야 상관 업지.”
“좋아. 그럼 내일 보도록 하자고. 아! 그리고 네 동족을 죽인 건 정당방위이니 추후 행여라도 걸고넘어질 생각은 하지 마라. 네 선에서 알아서 처리해.”
“알겠다. 그러도록 하지.”
이윽고 두 세력이 갈라졌다.
* * *
진지로 돌아온 이강호가 리더들을 불러놓고 있었던 일을 설명하자 사람들의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다.
드래곤.
그 단어는 그들에게 있어선 마족이나 천족과 똑같이 재앙 그 자체인 단어였다.
마법의 종주이자, 과거 아르카드 대륙의 조율자였던 그들은 개체 수가 여타 종족에 비해 적었지만 그만큼 하나하나가 강력하기 짝이 없었다.
일반적인 마족이나 천족보다도 훨씬 말이다.
“흠... 난감하기 짝이 없구먼. 아마 스토르 벤과 동맹을 맺는다 하더라도 정면 돌파는 무리일걸세.”
궁정마법사들을 이끌고 있는 마법사장이자 현존 인간 측 최고의 마법사인 아린 하이워커가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그렇겠죠.”
이강호를 포함해 많은 이들이 이에 동의를 표했다.
“하지만 동맹을 맺지 않는 것 보단 그래도 맺는 편이 훨씬 나을 겁니다.”
“함정일 확률은요? 우리를 속여서 전멸시키려는 계략일 수도 있잖습니까.”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확률은 무척 낮습니다. 0.1%정도?”
“흠... 그 정도로 확신하는 건가요?”
“예.”
이강호가 확답하자 많은 사람들이 입을 닫았다.
사실 겉치레 때문에 의견 조율을 하고 있는 것이었지 이강호는 이미 처음부터 결정을 내린 상태였다.
“흠... 강호씨가 뭐 그리 말한다면야...”
“구역도 나눌 텐데, 까짓 거 뭐 동맹 맺도록 하죠.”
결국 대다수가 찬성함으로써 동맹은 결정 사안이 되었다.
이강호가 회의가 끝나기 무섭게 유세현에게 다가가 물었다.
“그래서? 어때?”
유세현도 회의장에 있었기에 내용을 전부 알고 있었다.
당연히 회의 도중 마력의 흐름을 조사했으리라 생각한 것.
유세현이라면 수까지 파악하는 게 가능할 터기에 이강호는 이것에 기대를 걸고 있었다.
그러나.
“미안한데 모르겠다야.”
“응? 정말? 네가?”
“응, 네가 말한 장소 주위에만 마력이 대량으로 확산되어 있어. 그 정도만이라면 판별이 가능 했겠지만 놈들이 필사적으로 마력까지 숨기고 있는 턱에 수가 도저히 측정되지가 않아.”
“흠, 방비를 철저히 했다 그건가...”
“보통 이 정도까진 하지 않는데 말이지.”
마력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자는 그리 많지 않은데다가 읽을 수 있다 한들 그 범위가 무척 좁았다.
마법처럼 감지되면 바로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직접 살펴야 했기에 웬만한 탐지 마법에 비해 효율도 떨어졌다.
거기에 더해 소비되는 정신력까지.
이렇게까지 사용이 가능한 자는 유세현 정도뿐이었다.
“흠, 그렇다고 해서 나에 대한 대비를 한 건 당연히 아닐 테고... 뭔가 들키기 싫은 게 있는 건가?”
“음... 확실히...”
이강호가 생각하기에도 그것을 제외하고는 딱히 생각나는 게 없었다.
“뭐 짐작 가는 거라도 있어?”
“아니 전혀.”
과거 이강호 또한 드래곤들이 점거하고 있던 섬을 샅샅이 뒤져본 바가 있었지만 게이트를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었다.
먼 이후의 일이니 놈들이 찾아내 가져가서 그런 것일 수도 있었고, 단순히 헛짚은 것일 수도 있었다.
‘결국 가봐야 알겠군.’
이강호의 시선이 눈앞에 보이는 섬의 저편을 향했다.
* * *
약속대로 스토르 벤은 마지막 섬으로 향할 수 있는 포탈을 경계로 하여 섬 일부 지역을 인간 측에 양보했다.
이강호는 스토크와 함께 섬 끝자락에 서서 최후의 섬을 살폈다.
우거진 숲이라 내부가 전혀 보이지 않았지만, 그의 눈에 나무 말고 아무것도 비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저 멀리 서쪽, 높은 상공에서 날갯짓을 하고 있는 괴수 무리.
그건 분명 드래곤이었다.
‘그린드래곤인가.’
드래곤은 현 그들의 위치로 볼 때 서쪽 섬을 습격하고 있었다.
브레스가 상공에서 내뿜어지자 섬을 구성하고 있는 수많은 지형지물이 자취를 감추는 게 멀리 떨어져있는 이곳에서도 흐릿하게나마 보였다.
스토크가 한 마디 했다.
“저 섬에 머무르고 있는 종족은 리 로버리 종족이다. 저들과도 접촉을 시도해보려 했지만 아쉽게도 이곳에선 갈 수 있는 방도가 없어 그러지 못했지.”
최후의 섬은 동서남북 4개의 섬으로 둘러싸여 있는 구조였다.
각기 다른 방향에서 들어온 이종족들이 최후의 섬에서 모이게 되는 것이었는데, 4개의 섬에 있는 이들은 최후의 섬을 경유하지 않고는 서로 왕래가 불가능했다.
“자, 내가 지금 너에게 일러줄 수 있는 정보는 이 정도 뿐이다.”
“별로 쓸모 있는 정보는 아니군. 저 숲 내부로는 안 들어 가봤나?”
“가봤지. 얼마 못가고 죽을 뻔했지만.”
“...엄살은...”
뛰어난 고유특성을 지니고 있는 스토크는 상대가 드래곤이라 할지라도 쉽게 당할 인물이 아니었다.
창을 한번 맞대본 그때 이강호는 스토크가 예상보다도 더 성장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드래곤 3~4마리에게 완벽하게 포위되지 않는 이상에야 현재 그의 능력이라면 어찌어찌 빠져나오는 것 정도는 가능한 것이다.
“후... 아무튼 어떻게 할 생각이냐. 너도 한번 들어가 볼 테냐?”
“흠... 만약 들어가 보겠다면?”
스토크의 눈이 순간 번뜩 빛났다. 마치 그 얘길 꺼내길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나도 동행하겠다.”
“혼자서 말이냐?”
“아니, 나를 포함해서 세 명이 참여하겠다. 내가 가본 데까지는 길 안내를 해주도록 하지.”
“어설픈 놈들은 아니겠지?”
“물론, 전부 자기 몸 하나쯤은 내뺄 수 있는 실력을 지닌 자들이다.”
대단한 자신감이었다.
허나.
“미안한 말이지만 거절하도록 하겠다.”
이강호는 단호히 말했다.
스토크와 스토르 벤은 마력을 완벽히 감추지는 못하기 때문이었다.
다른 이들이라면 몰라도 마법의 종주라 불리는 드래곤이 자신의 영역 안에서 이를 감지하지 못하진 않을 터.
그들이 습격당한 이유는 아마 이것일 가능성이 컸다.
길 안내는 구미가 당기는 일이었지만 위험성을 고려하자면 이러한 선택은 불가피한 일이었다.
“흠... 뭐 그렇게 단호히 거절하니 어쩔 수 없군. 대신 뭔가를 알아낸 뒤에는 어느 정도 공유 해줘야 된다는 거 알고 있겠지? 이래봬도 동맹 입장이니 말이야.”
“걱정마라. 현재로선 딱히 숨겨도 의미가 없으니 손에 넣게 된 정보는 바로바로 알려주도록 하겠다.”
“그래, 그럼...”
스스슥-
스토크가 그의 앞에서 자취를 감추기 무섭게 이강호가 동료들을 불러 모았다.
* * *
잠입하겠단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적잖이 당황해했다.
왜냐하면...
“내일도 아니고 바로 두 시간 뒤에 말인가?”
“예, 하늘을 밝히고 있는 빛이 꺼지는 즉시 출발할 겁니다.”
구성된 멤버는 총 다섯 명이었다.
이강호, 유세현, 김주희, 아퀼라 그리고...
“흐응~? 내가 필요하다고?”
팔짱을 낀 레피아의 한쪽 눈꼬리가 씰룩였다.
마력을 완전히 숨기지 못하는 루시아와 루시펠은 이번 작전에서 제외대고 대신 잠입의 스페셜리스트인 그녀가 들어가게 된 것이다.
점거된 땅(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