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439화 (425/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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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측과 달리 피해는 있었지만 성과는 나쁘지 않아. 할 수 있어.”

위기는 기회, 이 층에서만 생존자들의 스탯이 비약적으로 증가됐다.

대다수가 S랭크 50%는 가뿐이 넘었고 SS랭크를 넘은 인원도 꽤 있었다.

이 상태라면 5층에 도달했을 때는 살아남은 많은 이들이 SS랭크 하위 정도는 가뿐히 웃도는 스탯을 지니고 있게 될 터였다.

이후 이강호는 계속해서 전심전력으로 생존자들을 이끌었다.

* * *

아가레스는 뱀프리안의 보고를 기다리며 제르오펜과의 교신을 계속해서 시도했다.

그러나.

‘역시 받지 않는군. 아무리 인간들의 경계를 각별히 주의하고 있다고 해도 이건 너무 심하다. 역시 차단되었다고 봐야겠어.’

아가레스는 그리 결론을 내리고 더 이상의 교신을 포기했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아가레스, 네 생각이 맞았다. 벨제뷔트의 군세가 우리가 있는 곳을 향해 북상하고 있다.”

마침내 그가 그토록 기다리고 기다리던 보고가 들어왔다.

“흐음, 역시... 그래서? 얼마나 되는 병력이 이쪽으로 오고 있지? 군을 이끄는 놈이 누군지도 알아냈나?”

아가레스가 묻자, 뱀프리안은 잠시 침묵했다.

그의 살짝 굳은 표정에서 평소와는 다른, 뭔가 복잡 미묘한 감정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이내 뱀프리안이 입을 열었다.

“전 병력이다.”

“...뭐?”

진중한 목소리에 아가레스의 눈빛이 일순간 당황에 물들었다.

이건 그 정도의 일이었다.

“뭐라고? 다시 한번 제대로 말해봐라. 전 병력?”

“그래, 전 병력.”

“...장난 같은 건... 역시 아니겠지?”

“내가 널 싫어한다고 할지언정 이딴 장난을 할 것 같으냐?”

“그래, 그렇겠지.”

아가레스가 생각에 잠겼다.

전 병력을 이끌고 올라오고 있다는 것은, 벨제뷔트의 유적공략이 어떤 형태로든 완전히 막을 내렸다는 뜻이었다.

‘설마 붕괴가 일어난 건 혹시 그 때문인가? 아니, 그건 아니다. 시기가 안 맞아.’

드라플라가 연락을 한 당일 날에 붕괴가 발생했다.

유적이 클리어 되고 나서 바로 연락을 했을 리가 없으니, 유적은 당연히 그 전에 클리어 됐어야 정상인 것이다.

‘그렇다면 붕괴와 이 일은 전혀 상관없는 일이다. 후... 생각하자. 생각해.’

아가레스는 침착하게 하나씩 정리해 나갔다.

‘일단 벨제뷔트가 인간을 노리고 올라오고 있는 건 분명하다.’

드라플라와 나눈 대화 중 의심의 여지가 될만한 거리는 그것밖에 없었으니까.

그러니 왜 노리고 있는 것인가... 거기에 답이 있을 게 분명했다.

아가레스는 유적이 클리어 된 것, 그거에 대한 인간과의 인과관계 등등 여러 가지를 복합적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정말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지만 한 가지 가설을 떠올리는데 성공했다.

‘설마... 놈들이...’

유적을 클리어 했다는 가설 말이다.

‘말도 안돼...’

스스로 되뇌었지만, 사실 그것 말고 다른 이유는 떠오르지 않았다. 아니, 없었다.

무공은 확실히 대단한 능력임은 틀림없었지만, 저렇게 전 병력을 이끌고 올 이유까진 되지 않는다.

“아가레스, 어떡할 셈이냐. 넌 배신을 한 셈이니 벨제뷔트의 손에 잡히면 틀림없이 죽음을 면치 못할 텐데.”

“큭큭, 그렇겠지. 벨제뷔트는 자길 속이는 놈을 제일로 싫어하니까. 정작 자기는 부하를 속여 사지로 떠미는 주제에 말이지.”

“퇴각 밖에 답이 없겠군. 뭐, 소득도 있었고 말이야.”

뱀프리안은 이미 스스로 결론을 내놓은듯했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아가레스는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 퇴각하지 않겠다.”

“뭐?”

“이건 더할 나위 없는 기회라서 말이지.”

“...미친놈이... 잡히면 그 즉시 죽게 될 텐데 뭘 어쩌겠다는 거냐.”

“크크크, 그거야 도주하다 잡히면 그렇게 되는 거고. 내 발로 돌아갈 시에는 좀 상황이 다르지. 만약 내 스스로 처음 데리고 나왔던 부하들과 함께 돌아간다면 인간들에 대한 정보를 캐내기 위해서라도 바로 죽이진 않을 거다. 인간진형에 제르오펜을 침투시켜 놓기까지 했으니 이건 100%지.”

“......”

“아, 물론 너희를 배신하는 건 아니야. 방금 말했듯이 바로 죽지만 않을 뿐 결국에는 죽게 될 테니까. 그러니 오해는 말라고.”

“오해는 개뿔... 나를 뭐로 보고...”

“아무쪼록, 마왕님께 받은 부대를 내 본대에서 분리시키겠다. 너희는 그 부대를 이끌고 탑에 먼저 들어가 있어라.”

“놈들의 뒤를 밟고 있으라는 거냐?”

“그래, 만약 놈들이 안 보일시에는 층을 클리어 하면서 올라가고 있어라. 연락을 주겠다.”

“큭, 완전 제멋대로로군. 내가 왜 네 말을 따라야 하지?”

뱀프리안이 이죽거렸다. 그는 이게 도통 위험한 일이 아닐 거라 느끼고 발을 빼고 싶은 것이었다.

그런데 그때 아가레스가 뱀프리안을 보며 조소를 흘렸다.

“언제까지 그런 애매한 서열에 머무르고 있을 거지?”

“...뭐?”

“왜? 내가 틀린 말했나? 서열 196위 시초의 뱀파이어 뱀프리안.”

“이 자식이 죽고 싶어서 환장...”

“잘 들어라 뱀프리안. 넌 그 따위로 해서는 그 서열에서 평생 못 벗어난다. 언제까지 마냥 몸을 사릴 거냐. 죽을 때까지? 아니면 콩고물이 알아서 떨어질 때까지? 벨제뷔트가 친히 인간을 치러 나서는 거란 말이다! 무려 벨제뷔트나 되는 인물이! 이게 뭘 의미하는지 모르겠나?”

“......”

“인간 놈들... 내가 이전 말했었던 놈들 중 한 놈이 벨제뷔트가 원하는 걸 갖고 있다는 뜻이다. 정확히 뭘 가지고 있는 진 알 수 없어도 이 상황은 충분히 이용할 수 있지. 잘 만하면 이것을 기회로 무지막지한 성장을 이루게 될 수도 있다.”

“너...”

“그러니 내말을 따라라. 판은 알아서 만들어 줄테니 다른 셋도 설득해. 하다가 정 안 되면 그때 내빼면 되지 않나. 다른 이들은 몰라도 너희 넷은 다른 이들을 희생시키면 충분히 가능할 텐데? 아니면 약간의 리스크조차도 짊어지기 싫은 겁쟁이인가?”

뱀프리안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아가레스는 그의 아픈 곳을 찌르는 것으로서 마음을 휘젓고 있었다.

아가레스가 마지막 일격을 갈겼다.

“너도 레오릭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하지 않겠나?”

* * *

이강호는 생각하고 또 생각해서 최선의 선택을 하고 최고의 결과를 내놓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옥 같은 탑의 난이도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불러왔다.

2층에서는 유혜인이 죽을뻔하는 위기를 맞았고, 3층에서는 검은꽃들 중 2명이 목숨을 잃었다.

“괴로워... 너무 괴로워...”

동료들의 죽음을 딛고 올라선 많은 사람들의 마음은 바람에 풍화되듯 깎여갔다.

마치 과거의 이강호처럼, 점점 무미건조해져 감정을 잃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클리어 한 4층.

“사람들의 상태가 안 좋아 이강호.”

5층으로 올라가기 전, 잠깐의 여유를 틈타 다가온 이용석이 이강호를 향해 말했다.

사람들을 대강 훑은 이강호가 이내 무덤덤하게 답했다.

“그렇겠지.”

“......꼭, 꼭 이곳에 왔어야 했냐? 벌써 3000명이 넘게 죽었어. 고작 4개 층을 올라오는데 3000명이 넘게 죽었다고...”

“반드시 올 필요성이 있었다.”

“...하, 너는 매번... 후... 아니다. 됐다.”

단호한 이강호의 말에 이용석은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순간적으로 입을 달싹거렸지만 이내 체념한 얼굴로 물러섰다.

이강호는 그가 자리로 돌아가자 잦은 전투로 인해 피로해진 눈두덩이를 손가락으로 지그시 눌렀다.

“후우...”

지긋한 한숨이 입을 뚫고 터져 나온다.

사실 이강호의 입장에서 사람들의 이러한 모습은 그저 어리광을 피우는 것에 불과했다.

만약 자신이 없었더라면 그들은 4층을 클리어 하긴 커녕 3층에서 전멸 했었을 터니까.

하지만 이강호는 그렇다 해서 마음이 가는 대로 사람들을 다그치거나 나무라진 않았다.

이것 또한 이미 짐작하고 있던 예측범주 내였기 때문이다.

“드디어 5층이네.”

“어, 유세현...”

“괜찮냐? 많이 피곤해 보이는데.”

유세현의 다분한 말에 굳어 있던 이강호의 얼굴에 미미한 미소가 피어났다.

“괜찮아 멀쩡해.”

“그러냐? 너 다크서클 생겼는데?”

“그건 너도 마찬가지고.”

본래라면 혼자 고독하게 떠안아야 했었을 부담.

눈앞의 사내는 그 부담을 상당부분, 아니 무척이나 많이 덜어주는 존재였다.

이제와 생각하는 것이지만 이강호는 만약 유세현이 없었더라면 지금쯤 어떻게 되었을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가 없었더라면 김주희도 진즉 탈락했을 것이고, 루시아는 이름조차 몰랐을 것이며, 루시펠은 벨제뷔트의 개가 되어 있었을 테니까.

이강호는 유세현을 친구로 둔 것을 다시 한 번 더 천운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대화를 시작한 둘은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눴다.

“선배님들! 30분 됐어요!”

“그래? 벌써?”

“네! 그런데 저 빼놓고 무슨 얘기를 그렇게 재미있게 하세요?”

다가온 김주희가 둘을 번갈아가며 살폈다.

자신도 잠깐 끼워달라는 듯한 굉장히 흥미 가득한 표정이었다.

“아, 뭐 별거 아냐.”

“에이 그러지 말고 좀 알려주세요.”

“흠, 안 듣는 게 좋을 텐데?”

“꼭! 듣고 싶습니다!”

“그래? 그럼 뭐... 네 첫인상이 갑자기 떠올라서 그거에 대해 얘기 중이었다.”

“히잉...”

이강호가 진중한 표정으로 말하자 김주희는 대번에 울상이 되었다. 그녀의 과거는 그녀 스스로 인정하는 흑역사였다.

“농담이다.”

“헤헤, 역시 그렇죠?”

“사실 진짜야.”

“히잉...”

아무쪼록 출발할 시간이 다가왔다.

이강호는 진입하기 전 보다 더 각별하게 주의를 요할 것을 당부하고 또 당부했다.

과연 이 층에서는 몇이나 죽을 것인가.

“후우, 그럼 가지.”

이강호를 필두로 많은 사람들이 우르르 문을 통과했다.

* * *

진입하자마자 사람들의 눈에 비친 것은 허공을 부유하고 있는 수많은 섬이었다.

하나하나가 수 킬로미터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크기가 웅장하기 짝이 없다.

탑 5층, 이곳은 중력의 법칙이 일부 왜곡되어있는 공간이었다.

이강호가 진입하기 무섭게 외쳤다.

“전원! 머리 위 습격에 대비하라!”

“?!”

말과 동시에 그들의 머리위로 더욱 짙은 어둠이 드리웠다.

인간세력의 바로 위에도 대지가 둥둥 떠 있었는데, 어마어마한 수의 몬스터들이 낙하하며 공격을 감행해온 것이다.

“제기랄! 이놈의 빌어먹을 탑은 뭐 밑도 끝도 없이 맨날 습격이냐!”

“막아!”

본래라면 엄청난 피해를 입었을 습격이었다. 아니, 실제로 이곳에 발을 처음 디딘 수많은 종족들이 이것에 괴멸 당했다.

하지만 이강호의 외침 덕에 사람들은 그 찰나의 시간 동안 대비 할 수 있었고 그다지 큰 피해를 입지 않고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허억... 허억...”

그렇게 한차례 전투가 또 끝이 나자, 이강호는 각 리더들을 불러 세웠다.

“수색대를 꾸리겠다.”

“몇 명씩 몇 팀이나 꾸릴 거지?”

“많은 곳을 둘러봐야 하니 20명씩 100팀 정도는 꾸려야겠지.”

수색대의 팀장은 대부분 무림인이 맡았다.

그들은 여전히 자존심이 높아 타인의 명령을 받는 것을 싫어했으나, 마땅한 직위를 주고 대우해주는 이상 지시에 불복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시작된 수색.

‘후우... 다 떠났군. 그럼 내 할 일을 해볼까.’

유세현은 풀숲 저편으로 동료들이 사라지자 곧장 남아있는 사람들을 향해 움직였다.

이태광, 레피아 등등 동료들 상당수가 수색에 참여했지만 유세현만은 참여하지 못하고 이곳에 남겨졌다.

사람들을 최대한 잃지 않아야 되는 상황이었기에 마력을 읽을 수 있는 그가 주위 감시 역할을 부여 받은 탓이었다.

“이곳에 진지를 구축하겠어요.”

임시 총괄자 직위를 받은 이벨린이 지시를 내리자 사람들은 이에 따라 부리나케 움직였다.

초인 같은 능력에 의해 울타리가 순식간에 만들어지고, 감시초소가 지어졌다.

솔직히 이제와선 전부 크게 의미가 없는 것들이었지만, 그래도 아예 없는 것보단 나았기에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서라도 맡은 바에 소임을 다했다.

유세현이 나무 위에서 신경을 집중하여 주위 마력의 흐름을 읽고 있을 때였다.

“젠장...”

아래에서 들려온 욕설과 함께 농땡이를 치고 있는 인원이 눈에 비쳤다.

익숙지는 않지만 유명하여 누구인지는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베르네브 론 아르카드.

아르카드 제국의 황제.

다시 만난 스토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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