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437화 (423/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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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호가 지휘를 시작하자 사람들은 이에 따라 움직였다.

아르카드 제국의 국왕인 베르네브가 격노하며 반발했지만 강대한 힘의 차이와 붕괴를 맛본 사람들을 회유하는 것은 더는 불가능했다.

사람들은 이강호가 어떤 존재건 간에 갑작스레 정세가 변한 이상 일단은 따르는 게 유익하리라 판단하고 있었다.

“그러니 너도 이젠 그냥 얌전히 내말에 따라라. 아니면 너의 기사들만 데리고 떠나던가.”

베르네브에게 가까이 접근한 이강호가 그의 귀에 대고 싸늘하게 속삭였다.

이전이였다면 이렇게까지 하진 않았겠지만 이제 그는 더 이상 손속에 사정을 둘 여유가 없었다.

‘시간이 없다.’

변수에 의해 미래가 틀어져 생각보다 빠르게 5번째 신물 파편이 해방된 지금, 마지막 파편이라고 빠르게 해방되지 않으리란 법이 없는 탓이었다.

‘만약 이 상태로 6번째 파편이 해방 된다면...’

그때부터는 진짜 지옥의 시작이었다.

튜토리얼에서부터 시작하여 판도라 외부, 내부 이 모든 곳이 대리자에겐 전부 지옥이나 다름없었지만, 6개가 전부 해방된 이후에는 앞서서 경험했던 모든 게 어린아이의 장난이라 느껴질 정도의 절망이 찾아오는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지금 인간 측에서 내부 신물 파편을 두 개나 소유하고 있다는 것.

“그래서 지금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거지? 설마 막무가내로 이동하고 있는 건 아닐 테고.”

“아, 그걸 미리 말해줬어야 하는데 경황이 없어 깜박했군. 미안하다.”

제넥의 물음에 이강호가 그를 포함해 다가온 팀의 리더들을 향해 답했다.

“지금 우린 던전을 향해 가고 있다.”

“던전?”

“그래, 이곳에 있는 인원 전부를 수용할 수 있는 대규모 던전이지.”

“...이곳에 있는 모두를 수용할 수 있다고?”

제넥과 사람들은 순식간에 반쯤 넋이 나간 얼굴이 되었다.

내부로 들어온 이래로 그들이 경험해본 최대 규모의 던전은 5000명 남짓 하는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던전이었기 때문이다.

통칭, 비밀의 사원.

보통 규모가 클수록 난이도가 높은 경향을 보이는 만큼, 이곳은 화산지대에 있을 적 최악의 난이도로 악명이 자자했다.

때문에 사람도 굉장히 많이 죽었다.

그런데 5000명을 수용하는 장소조차도 그 정도의 난이도인데, 무려 23000명을 웃도는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던전이라니?

물론 수용인원이 많다 해서 던전의 난이도가 절대적으로 높은 건 아니었지만, 대다수가 그런 만큼 사람들은 이강호에게 질문세례를 퍼붓기 시작했다.

“혹시 입장해 봤나?”

“던전의 수준이 어떻게 되는지는 당연히 조사한 상태겠지?”

이에 이강호는 한 마디로 일축했다.

“그런 게 전부 뭐가 중요하지?”

“뭐?”

사람들의 인상이 대번에 구겨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목숨이 걸린 그들의 입장에서는 너무도 어처구니없는 답변이 아닐 수가 없었다.

“당연히 중요한 거 아닌가? 만약 우리가 감당하지 못하는 던전이라면...”

“들어가지 않겠다는 건가? 저걸 보고도 지금 그 말이 나오나?”

“......”

“지금 판도라는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이강호가 손가락을 뻗어 저편을 가리켰다.

그곳에서는 무너져 내린 산맥이 이제는 아예 먼지처럼 흩날려 사라지고 있었다.

설산지대라는 지역자체가 마침내 완전히 소멸된 것이다.

“저런 현상이 왜 일어나는지는 이젠 구태여 설명하지 않아도 알고 있겠지. 그렇다. 또 신물 파편이 해방된 거다.”

“......”

“그리고 방금 붕괴된 저 지역은 판도라 내부에서도 꽤 깊은 장소에 해당하는 곳이었다. 이게 뭘 의미하는지 알겠나?”

“끙...”

“이제 우리에겐 시간이 없다. 날이 지날수록 판도라는 더더욱 붕괴할 테고 이종족들은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움직일 테지. 너희들은 그런 놈들과 조우할 시 당해낼 수 있겠나? 지금 현재의 능력으로?”

“......”

“잘 들어라. 우리는 약하다. 외부 파편만 지니고 있을 뿐 내부 파편은 하나도 얻지 못했다. 그러니 우리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강해져야 할 필요성이 있다. 할 수 있냐 없냐를 따지는 게 아니라 이제는 할 수 없더라도 무조건 해야 된다는 거다.”

결연히 의사를 표현한 이강호가 입을 닫았을 쯤에는 적의를 보내던 인원 모두가 침묵하고 있었다.

* * *

“어때? 성과가 있었나?”

아가레스의 질문에 고문역을 맡고 있던 게르만의 입에 비릿한 미소가 맺혔다.

“예.”

상대의 정신을 유린하여 파괴하고, 영혼을 손상시키는 게 전문인 그가 갖은 노력 끝에 드디어 암호화 되어 있던 비급서를 탈취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잘했다! 아주 잘했어!”

아가레스가 잔뜩 반색하여 게르만에게 다가갔다.

아가레스는 비급서를 받기 무섭게 정보를 살폈다.

무영일문의 무영창제검이라는 무려 S랭크의 무공이었다.

“오... S랭크인가? 하지만 아쉽군. 꼭 검을 써야 되는 무공이라니. 혹시 잡은 무림인 중에 권법을 사용하는 자는 없었나?”

“있었습니다. 다음은 그자로 할까요?”

“그렇게 해라. 꼭 비급서를 얻어낼 수 있도록.”

“염려 마십시오.”

“후후, 그래 믿겠다.”

그리 말한 아가레스는 게르만에게 상을 내린 뒤 고문실을 빠져나왔다.

그는 자신의 막사로 돌아가는 내내 비급서를 보며 아쉬움의 입맛을 다셨다.

‘권법이었다면 바로 흡수했을 텐데...’

아쉽게도 아가레스는 검을 쓰지 않는 악마였다.

그리고 게르만이 아무리 고문의 달인이라고 한들 비급서는 문주 정도만이 지니고 있었기에 또 얻어낼 수 있을 거라는 보장은 없었다.

그는 마음 같아서는 인간진형을 다시 한번 쳐 사람들을 더 잡아오고 싶었지만, 차마 그런 명령을 내릴 순 없었다.

‘너무 많이 모였어.’

개미 떼도 뭉치면 무서운 법인데, 거기에 플러스로 위협이 되는 강력한 존재들까지 끼어있는 탓이었다.

만에 하나라도 일을 진행하려면 희생은 불가피하기에 더 많은 인원이 필요한데, 현재 마왕군은 신물 파편을 두고 타 종족과 대립 중인지라 많은 인원을 충원 해줄 여유가 없었다.

‘여기까진가...’

아가레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보다 강자들을 부리며 간간히 이종족을 사냥해 이전보다 훨씬 강해진 아가레스였지만 그는 아직도 배가 고팠다.

‘정녕 방도가 없는 것인가...’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아가레스의 손등에 새겨진 표식이 다시금 진동했다.

아가레스는 이번에는 무시하지 않고 통신을 받았다.

의도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어, 드라플라. 나다. 이렇게 연락이 가능하게 된 걸 보니 출구가 드디어 해방된 모양이구나. 전에는 일이 있어 받지 못했다.]

[예, 너무 늦게 연락드리게 되어 죄송합니다. 출구가 봉쇄됐었다는 걸 파악하고 계셨군요.]

[그래, 네가 너무 돌아오지 않아 추가로 전령을 보냈었는데 입구가 막혀있다 하더군. 안도 똑같은 상황일 거라 예상했지.]

[옥체는 괜찮으십니까?]

[뭐, 아직까지는 괜찮다.]

아가레스는 드라플라가 의구심을 갖지 않도록 평소처럼 행동했다.

그리고 기다렸다.

드라플라가 본론을 꺼내기만을.

[저... 아가레스님. 아직도 인간을 쫓고 계신 중입니까?]

아가레스는 듣자마자 이게 본론이란 걸 눈치 챌 수 있었다.

아가레스가 인간을 쫓은 건 상부에 알려지면 안 되는 대외비적인 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신에서 언급한 데는 이유가 있을 터기 때문이었다.

‘왜지? 왜... 왜 인간의 동향에 대해 묻는 거냐.’

아가레스는 머리를 필사적으로 굴렸지만 정보가 없었기에 추측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혹시 인간 놈들이 뭔가 중요한 아이템이라도 빼돌린 건가?’

거기까지 생각한 아가레스는 이내 생각하기를 그만뒀다.

어차피 막연할 뿐이고 지금 핵심은 그게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이 상황... 잘만하면 이용해 먹을 수 있겠군.’

만약 벨제뷔트가 이끄는 휘하부대 일부가 인간을 노리고 있는 거라면?

안내를 해줌으로써 전투가 발발하게 된다면?

[그래, 아직 쫓고 있다. 원하는 비급을 얻지 못했거든.]

[아... 죄송합니다. 시간이 상당히 흐른 터라 지금쯤이라면 얻으셨을 줄 알고...]

[뭐 됐다. 그보다도 대체 유적에서 무슨 일이 발생했었던 건지나 말해봐라.]

[그건 합류한 뒤 말씀드리겠습니다. 보통 사건이 아닌지라...]

[호오, 그래?]

[예, 위치를 알려주십시오. 찾아가겠습니다.]

[알겠다.]

좌표를 일러준 아가레스가 말을 이었다.

[지금은 방금 일러준 좌표 근처에 있다만 인간들이 매일 이동하고 있기 때문에 좌표가 매일 바뀔 거다. 바뀐 좌표는 연락할 때마다 알려주도록 하마.]

[알겠습니다.]

[그래. 그럼 빨리 복귀할 수 있도록.]

마침내 연락이 끊겼다.

아가레스는 곧바로 고위 마족 4명을 호출했다.

“뭐야? 왜 부른 거야?”

뱀프리안이 대표로 투덜댔지만, 아가레스는 그걸 무시하고 곧바로 본론에 들어갔다.

“너희들이 해줬으면 하는 게 있다.”

“응? 해줬으면 하는 거? 뭐지? 설마 쳐들어가서 무림인을 잡아오라는 개소리는 아니겠지?”

“물론, 아니다. 너희에게 부탁하고 싶은 건 감시 임무다.”

“...감시?”

루드퀄이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반문했다.

인간의 동향 파악을 위한 감시라면 지금도 하고 있는 탓이었다.

“아니, 내가 부탁할 건 인간 측 감시가 아니다.”

“그럼...”

“내가 말한 장소로 가서 벨제뷔트의 병력들이 오나 안 오나 살펴라.”

“...뭐?”

아가레스의 말에 넷의 인상이 갑자기 눈에 띄게 험악해졌다.

그들은 마왕의 명령 때문에 아가레스의 말을 따르고 있는 것이지 결코 밑이라서 따르고 있는 게 아니었다.

목적에서 벗어나 사용하고 싶은 대로 사용할 수 있는 장기 말이 아닌 것이다.

“네놈... 우리가 정말 만만한가 보구나. 감히 우리를 잡부로 사용하려 하다니...”

“워워, 진정해라. 나는 너희를 조금도 만만히 보고 있지 않으니까. 이건 인간을 잡기 위해서 필요한 일이다.”

“만약 개소리면 넌 지금 이 자리에서 죽는다.”

“기꺼이 그러도록 하지.”

목숨을 위협 받은 아가레스가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지금 내 부하에게서 연락이 왔다. 유적이 폐쇄 됐을 때 연락이 끊겼던 부하...”

넷은 들으면 들을수록 점점 납득하는 얼굴이 되었다.

“흠... 확실히 그런 거라면...”

“이 일을 해줄 수 있는 건 소수로 다닐 수 있는 너희들 밖에 없다. 부탁한다.”

“알았다. 해주마.”

이윽고 네 명이 아가레스의 앞에서 자취를 감췄다.

벨제뷔트의 군세가 얼마나 몰려올지 확인하러 떠난 것이다. 최단거리로 올게 뻔했기에 엇갈리는 일 따윈 없을 터다.

아가레스가 마음속으로 빌었다.

‘제발 많은 인원들을 데리고 오기를...’

* * *

휘이잉-

거센 바람을 뚫으며 헤쳐 나가고 있는 인간진형.

현재 이 진형을 감시하고 있는 건 마족뿐만이 아니었다.

엘프, 델바람 그리고 참가 자격을 얻은 크라베스의 종족 블러드소울까지.

카그네프가 벨제뷔트를 따돌린 뒤 루시아의 기억을 토대로 마침내 인간진형을 발견하는데 성공했으나, 엘프 로리엔의 고유특성에 의해 꼬리를 밟히게 되었고 그 엘프의 꼬리를 또 크라베스가 물어서 결국엔 세 종족 모두가 다다르게 된 것이다.

덕분에 그들은 현재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는 굉장히 답답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결국 그들은 차후를 위해서라도 한차례 만남을 가져 회담을 나누기로 결정했다.

약속시간이 되자 부하를 대동한 세 명이 각기 다른 방향에서 나타났다.

카그네프는 둘을 보기 무섭게 대놓고 비아냥거렸다.

“거머리 같은 놈들. 잘도 들러붙었군. 대체 어떻게 우리의 뒤를 밟을 수 있었던 거냐? 흔적을 다 지웠을 텐데.”

“알 것 없다.”

“알 거 없지.”

카시우스가 말하자 크라베스가 덧붙였다.

카그네프는 예기치 못한 두 사람의 합동 공격에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박박 긁었다.

“어후... 아무쪼록 어떻게 할 거냐? 이대로 계속 우리끼리 눈치싸움이나 하고 있을 수는 없는 거잖냐.”

“그건 그렇지.”

“합의를 보자고 합의를!”

카그네프가 야심차게 말했지만, 거기서 더 이상 대화가 이어지는 일은 없었다.

다들 노리는 게 똑같기에 해답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이에 카그네프의 입에서 한숨이 푹 터져 나왔다.

‘후우... 하필이면 파편 조각을 놈이 흡수해버리는 바람에...’

만약 신물 파편을 이강호가 아닌 유세현이 흡수했고, 이 때문에 두 사람이 유세현을 노린다면 카그네프는 깔끔히 포기할 생각이 있었다.

당장 신물 파편을 손에 넣는 것보다도 회귀자의 정보가 더 중요하다 판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벙어리야? 뭐 생각나는 거 있으면 말해보라니까?”

“그러는 너는? 뭐 좋은 대책이 있나?”

“......”

결국 그들은 마땅한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계속 시간이 흘러...

“뭐냐... 저건...”

어느새 그들의 눈앞으로 거대한 탑이 자리 잡았다.

인간이 진입한 절멸의 탑이었다.

절멸의 탑(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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