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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압!”
트드드득!
커다란 기합과 함께 김주희의 창에서 생성된 냉기가 지면을 순백으로 물들이며 마족을 덮쳤다.
“하! 이딴 얼음 따위...”
이에 최선두에서 뒤쫓고 있던 마족들은 별 의구심을 느끼지 못하고 평소 하던 대로 대응했다.
무공중에서도 냉기를 다루는 무공은 그리 흔하지 않았기에 그들은 김주희가 사용한 빙공을 견제용 마법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아니?!”
그들이 뭔가 이상함을 느낀 것은 냉기가 다다른 직후.
“무, 무슨 이런 강력한 냉기가...”
얇게 친 방어막은 어느새 새하얗게 얼어붙어 제 기능을 상실한 상태였다.
트드드득!
“크아아악!”
결국 제대로 적중당한 세 명의 마족들은 순식간에 얼음동상이 되는 신세가 되었다.
직격을 피한 자들은 동상이 되는 일만큼은 면했으나, 휘청거리며 좀처럼 몸을 가누지 못했다.
“허...”
약간 뒤에서 이를 확인한 아가레스를 포함한 상위 마족들의 입가에서 헛바람이 흘러나왔다.
순도 높은 어둠의 마력을 지니고 있는 자는 그렇다 쳐도, 다른 이들까지 설마 이 정도일 줄은 차마 예상치 못한 것이다.
“뱀프리안! 키메루스! 아크샤드! 루드퀄! 너희 넷이 동시에 저 계집을 상대해라!”
“쳇! 협동은 마음에 안 드는데 말이지.”
“말을 따라라!!”
“알고 있어! 알고 있다고!”
신경질적으로 답한 뱀프리안이 지면에 착 밀착하여 달리는 자세 그대로 손을 뻗었다.
슈슈슈!
손바닥에 어마어마한 마력이 모여든다.
마력은 곧 피가 되었고 이내 칼날로 변화했다.
“그럼 어디 막아봐라!”
뱀프리안이 칼날을 날리기 무섭게, 나머지 세 명의 인물들이 각기 다른 방향으로 김주희를 향해 뻗어나갔다.
좌우, 그리고 공중까지.
그들은 최상위 대리자, 이왕 합동하기로 한거 단번에 끝내버릴 심산인 것이다.
“죽어라!”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일생일대의 위기였다.
그러나.
“그래... 어디 한번 와봐.”
툭-
김주희가 침착하게 창 뒤끝을 땅에 내려찍자 세상이 하얗게 물들었다.
* * *
“후욱... 후욱...”
숨결조차 얼어붙는 차디찬 공간, 아크샤드와 루드퀄이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느려져가는 자신의 육체를 보며 믿기지 않는다는 듯 중얼거렸다.
“뱀프리안과 키메루스는 그렇다 쳐도... 우리 둘의 합공까지 감당 해내다니...”
뱀프리안과 키메루스가 서열 200위내에 드는 마족이라면, 아크샤드와 루드퀄은 40위에 달하는 마족이었다.
추가로 파견된 이들 중 유세현과 이강호를 견제하기 위해 특별히 뽑힌 대비책으로 뱀프리안과 함께 최상위 마족으로 똑같이 분류되고 있긴 했지만, 사실상 급이 다른 인물들인 것이다.
그런데 그런 둘을 포함해 네 명을... 아니, 더 나아가 많은 수의 마족이 이곳을 벗어나지 못하도록 김주희는 발목을 붙잡고 있었다.
네 명이 여유롭게 상대하고 있는 게 아닌, 특수능력까지 개방한 상태임을 감안하자면 그들 입장에선 도무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이게 무공의 힘인가... 지금까진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확실히 탐나는 군.”
“운만 좋으면 죽일 시 나오지 않을까?”
“크크, 만약 그렇게 된다면 내가 갖겠다.”
아크샤드가 한 발짝 발을 앞으로 내딛자,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는 김주희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지금까진 분개하여 버틸 수 있었으나, 그녀는 슬슬 체력적으로나 마력적으로나 한계에 임박한 상태였다.
아크샤드와 루드퀄을 재차 흘긴 김주희가 입술을 질끈 곱씹었다.
‘오산이었어. 설마 이 정도 수준을 지닌 놈들이 지원을 왔을 줄이야...’
이강호가 예상했던 지원군의 급은 뱀프리안과 키메루스 급, 아무리 잘해봐야 서열 100위 정도였다.
레피아를 추격하던 마족들을 묵사발 냈다곤 하나, 그건 서열 200위 정도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최상위 마족은 하나하나가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기에 일행의 수준을 정확히 알지 못하는 이상, 그런 거물은 파견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것.
그래서 자신 있게 나설 수 있었던 것인데 그게 빗나가버렸다.
덕분에 완벽히 막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처음과 다르게 마족들도 꽤나 많은 수가 통과해 버린 상황.
‘어떡하지? 루시아와 아퀼라는 사람들을 지키느라 지원을 못 와줄 텐데...’
결국 아무리 생각해도 현 김주희에게 남아있는 선택지는 하나였다.
‘혼자서 어떻게든 해야 해.’
결론을 내린 그녀는 시선을 끌어줄 디네를 소환했다.
그리고 말을 맞추기 무섭게 냉기를 흩뿌리며 자리에서 도약했다.
“디네야 부탁한다!”
“나만 믿어!”
“흥! 어딜!”
그런 김주희를 안개화를 시전한 뱀프리안이 재빨리 막아서려던 순간이었다.
쿠궁!
쿠구구구궁!
난데없이 천지가 뒤흔들렸다.
“응? 이게 뭔...”
미처 대화를 나눌 틈도 없이 적란운에서 눈보라가 세차게 떨어지기 시작하고, 산맥 곳곳에서 눈사태가 일어난다.
쿠구궁!
콰광!
눈은 10초도 되지 않아 쓰나미가 되어 골짜기에 있던 마족과 사람들을 뒤덮쳤다.
“크윽!”
“크아아!”
많은 마족과 사람들이 여파를 견뎌내지 못하고 휩쓸려 내려갔다.
날개를 가진 악마와 경공을 펼칠 수 있는 무림인들은 이 여파에서 간신히 벗어날 수 있었지만, 다른 이들은 아니었다.
“젠장할! 놓치다니!”
그리고 이 틈을 타 김주희가 도주하는데 성공했다.
그녀는 천운이 따라준 게 아닐까 생각했지만, 무심코 하늘을 올려보기 무섭게 스스로의 생각이 틀렸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뭐, 뭐야? 이건?”
거칠게 눈보라를 내뿜고 있는 구름들이 마치 유리가 깨지듯 점점 조각나고 있었다.
이게 무슨 현상인지 알고 있는 김주희가 반쯤 넋이 나간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마, 말도 안돼. 이럴 리가...”
그녀는 부정했으나, 지옥이 시작되었다.
* * *
콰과과과!
천지에 이어서 대지가 뒤흔들리더니 이윽고 지면까지 갈라지기 시작했다.
쿠구구구!
크게 벌어진 벼랑 사이로 눈이 우수수 흘러내렸다.
명백한 붕괴 현상이었다.
“대체 왜지? 어째서...”
이강호에 말에 따르자면 이곳이 붕괴되는 건 정말 나중의 일이었다.
왜냐하면 이곳은 판도라 내부에서도 신물파편이 잠들어있던 유적, 언더월드의 입구에 꽤나 가까운 장소인 탓이었다.
풀려난 신물파편이 5개가 되어야 비로소...
‘...설마?’
거기까지 생각한 김주희의 동공이 파르르 흔들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원인은 그것밖에 없었다.
이윽고 상공에 이전과 같이 붕괴지역을 비춰주는 수많은 균열이 나타나자 김주희는 설마가 현실이 되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누군가가...’
지금 방금 5번째 신물파편을 손에 넣었다.
“큭!”
김주희는 온 힘을 다해 눈 위를 내달렸다. 지금 그녀의 의식에는 빨리 동료들과 합류해야 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마력이 고갈되어 신법을 제대로 운용할 수 없어 발이 푹푹 들어간다.
“으아아아! 살려줘!”
휩쓸린 몇몇 사람의 구호요청이 들렸으나, 현재 그녀는 자신의 몸 하나 제대로 간수하기도 힘든 상태였기에 외면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몇 걸음 갔을 때, 눈 속에서 불쑥 튀어나온 손 하나가 그녀의 발목을 홱 낚아챘다.
“사, 살려줘!”
생존자였다.
“이런!”
힘이 다한 김주희는 그대로 푹 빨려 들어갔다.
재빨리 일어나려 했으나, 생명의 위협을 느낀 남성이 붙잡은 다리를 놓질 않는데다가 마력을 잔뜩 머금은 밀도 있는 눈이 계속해서 급류처럼 쏟아지고 있었기에 균형을 다잡는 게 불가능했다.
“이, 이거 놔주세요!”
“모, 못 놔!”
그리고 어느새 그녀의 눈앞에 나타난 모든 것을 빨아들이고 있는 낭떠러지.
“으으!!”
떨어지면 아무리 김주희라 할지라도 끝장이었다.
매립되어 빠져나오지 못하고 그대로 땅과 함께 소멸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김주희에겐 이에 저항할 방도가 없었다.
“꺄아아악!”
이윽고 김주희와 남성이 바둥거리며 추락하기 시작했다.
흘러내리는 눈과 함께 점점 빠르게 멀어져가는 지면.
새카만 검은빛이 그런 둘의 앞으로 떨어진 건 딱 그 순간이었다.
* * *
마족과 인간은 물론, 무수히 많은 생명체들이 붕괴되는 땅에서 벗어나기 위해 대대적으로 이동을 벌였다.
안전한 장소에 도착한 유세현이 김주희와 남성을 내려놓자, 남성이 몇 번이고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괜찮습니다.”
유세현은 이에 무심하게 답한 뒤 아직도 붕괴가 이루어지고 있는 저편을 응시했다.
평소라면 예의를 차렸을 터지만, 지금은 도저히 그럴 때가 아니었다.
“벌써 붕괴가 시작되다니... 강호에게 미리 언질들은 거 없었지?”
“예, 제가 볼 땐 강호선배도 예측하지 못한 거 같아요.”
김주희가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그리고 이것에는 유세현도 동의했다.
“빨리 강호와 합류해서 이야기를 나눠봐야겠어... 느낌이 별로 좋지 않아.”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유세현은 각 리더들에게 의사를 전달해 사람들을 정렬시켰다.
수를 세어보니 처음에는 3천이 넘었던 사람들이 약 2300명으로 줄은 상태였다.
어떤 자는 체력이 다한 상태에서 눈사태에 휩쓸려, 또 어떤 자는 이변의 혼란을 틈타 마족들에게 납치당한 것이다.
그리고 실종당한 이들 중에는 안타깝게도 한 문파를 대표하던 문주도 있었다.
“안 좋군... 상승무공이 유출될 수도 있겠어.”
아무쪼록 이 상황에서 구하러 갈 수도 없는 법.
유세현은 곧장 병력을 움직였고,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사람들을 통솔하고 있는 이강호를 만날 수 있었다.
* * *
그들은 다른 걸 다 제쳐두고 곧장 회의를 가졌다.
이강호는 유세현을 포함하여 제6 유적을 함께했던 이들에게만 이야기를 털어놨는데 그 내용은 이러했다.
본래라면 지금으로부터 2년이 지난 뒤에야 클리어가 된다.
그리고 클리어하여 신물파편을 손에 넣는 이는 체술의 종족이라 불리는 쿠룬의 수장, 리네리아라는 대리자다.
쿠룬의 대적자는 같은 상위 8종족인 샤크아크란 종족이었는데 여기서 큰 피해를 입고 세력이 크게 약화된다.
“쿠룬 종족이라고?”
이에 유세현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의문을 표했다.
“응.”
“우리가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은 종족이잖아?”
그렇다.
쿠룬 종족은 일행이 단 한 번도 영향을 주지 않은 종족이었다.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미래가 꼬이지 않도록 이강호가 일부러 피해 다녔기 때문이었는데, 그들은 더 나아가 샤크아크란 종족에게조차도 영향력을 미친 적이 없었다.
지금 유적이 클리어된 건 아무리 봐도 변수로 인한 나비효과가 틀림없는데, 거대한 축을 이루고 있는 두 종족에게 변수를 준게 없는 것이다.
“뭐지? 그럼 대체...”
“티탄족이 개입한 게 아닐까요?”
김주희가 추론한 걸 말했다.
상위 종족이라는 점과 접촉한 적이 있다는 점에서 신빙성이 꽤나 있는 말이었다.
“어쩌면 드래곤일 수도...”
“......”
그러나 타당성이 있다 해도 단서 없는 추측은 그저 추측에 불과했다.
진실을 알고 싶다면 직접 뛰어들어 알아보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에겐 그걸 여유롭게 알아보고 있을 시간이 없어.”
이강호가 단호히 말했다.
신물파편이 5개 개방 되었다는 건 이젠 나머지 하나 만을 남겨두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하나만을 남겨 뒀을 때 이강호는 인간세력과 함께 꼭 하려던 게 있었다.
‘절멸의 탑.’
마족조차도 치를 떨게 만든 그곳을 클리어 한다.
절멸의 탑(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