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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동안 반갑게 인사를 나눈 사람들은 말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주위에 사일런스 마법을 건 뒤 바로 본격적인 이야기로 들어갔다.
“그래서? 오빤 지금까지 어디서 뭘 하면서 지냈는데?”
유혜인의 질문이었다.
이에 이강호가 설명을 위해 차분히 자리를 잡고 앉자, 사람들이 그를 포위하듯 빙그르르 둘러쌌다.
이용석도 이한별도 유혜인도, 지금만큼은 그 레피아조차도 도무지 궁금증 넘치는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이강호가 입을 열자, 듣는 사람들의 표정이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경악으로 물들었다.
“그, 그러니까. 이, 이 여자가 원래는 천족이라고?”
“그... 그것도 그냥 천사가 아니라 대천사요? 그 근육몬 같았던 천사 놈하고 같은?”
“루시펠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아... 아...”
루시펠이 예의범절 있게 자신을 소개하자 이태광을 제외한 모두가 반쯤 넋이 나가 입을 뻐끔거렸다.
“마, 말도 안돼.”
당연히 도통 믿지 못하는 것이었는데, 루시펠이 증명하듯 숨겨뒀던 날개를 활짝 펼쳐 보이자 모두는 인정을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었다.
“지... 진짜잖아?”
“미, 미친...”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모르고 있었다.
그건 고작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을.
유세현의 팔 재생 이야기가 나오자 다급히 그의 어깨를 살핀 레피아가 정말 놀란 어조로 탄성을 내질렀다.
“진짜네? 진짜 팔이 재생됐네?”
“여기까지 같이 와놓고도 모르고 있었어요? 언니?”
“너희도 방금 전까지 몰랐잖아, 이년들아.”
“호호... 호호호...”
다분한 지적에 검은꽃들이 민망했는지 웃어 재꼈지만, 유혜인은 자신 때문에 잘린 유세현의 팔이 복구 된 게 정말 기뻤는지 재회 이후 참고 있던 눈물을 기어코 터트렸다.
“흑흑... 다행이야 오빠... 팔이 돌아와서 정말 다행이야...”
“울지 마라 혜인아.”
“오빠...”
“안 그래도 못 생긴 얼굴 더 못 생겨 보이니까.”
“아나~! 진짜! 쫌!”
그 후에도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는데 사람들은 이강호가 뭔가를 말할 때마다 마치 갓 잡아 올린 물고기마냥 펄떡였다.
이강호가 비로소 마지막 이야기를 한 순간이었다.
“가, 강호씨 지금 뭐라고 했어요?”
말을 들은 남궁시영이 믿기지 않는지 눈을 깜빡였다.
표정이 잔뜩 굳어 있는 게 여태까지의 반응과는 사뭇 다른 반응이었다.
“신물 파편 조각을 획득했다고 했습니다.”
이에 이강호가 그 언제나처럼 들뜨지 않은 차분한 목소리로 재차 말하자 사람들은 말문이 막혀 좀처럼 아무런 말도 내뱉지 못했다.
당연한 것이었다.
이강호가 말한 파편 조각이 외부에서 구할 수 있는 파편이 아니라, 내부 파편이었기 때문이었다.
무려 이 세계에 단 6개 밖에 존재하지 않는 신물 파편 말이다.
“......”
잠시 동안 정적이 이어졌다.
그 정적을 깬 건 레피아였다.
“수고했어. 정말 고생 많았다.”
짧고 간결하지만 많은 의미, 그리고 진심이 담겨져 있는 말이었다.
“아니, 너희들이야 말로 고생 많았다.”
그렇게 회포를 푸는 건 끝이 나고, 곧바로 향후를 위한 대책 회의가 시작됐다.
* * *
“일단은 흩어진 인원들은 다시 찾아 한데 모으겠습니다. 레피아, 혹시 이탈한 길드와 제국군이 어디에 자리 잡았는지 대충이라도 알고 있나?”
“제국군 쪽은 대충 알아. 마족의 습격이 있기 전까진 보구를 이용해 이벨린과 주기적으로 교신을 나눴었으니까. 하지만 길드 쪽은...”
“됐다. 일단은 그거면 충분해. 제국군 정도만 다시 움직일 수 있게 되도 일이 많이 수월해질 테니.”
“...힘으로 제압할 생각이야?”
“직접 보고 결정할 생각이다. 그보다도 지금 중요한건 그게 아니야. 바로 움직일 거야. 적이 우리의 존재를 느끼고 움츠러들었을 지금이 벗어날 절호의 찬스니까. 앞으로 30분 내에 이동할 수 있게 준비시켜줘.”
말을 마친 이강호가 포켓을 꺼내 모아둔 장비를 우르르 쏟았다.
레피아가 사람들을 단결시키는 동안 나머지 동료들의 장비를 스펙업 시킬 생각이었던 것이었는데, 레피아가 그런 그의 어깨를 잡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미안하지만 이강호, 지금 우리는 이전처럼 지시를 내릴 수 있는 입장이 아니야. 너도 잘 알 거 아니야.”
“...하긴 그렇겠군. 내가 직접 말하지. 대표를 모아줘.”
“흠, 분명히 반발 할 텐데. 지금 남아 있는 길드의 길드장 놈들은 하나 같이 꽤 성깔들이 있어서 말이야. 넌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도 더 많은 입지를 잃었어.”
“알고 있다. 하지만 너도 내 이야기를 들은 이상 알 거라 생각한다. 한 명씩 설득할 시간 같은 건 없어. 만약 놈들이 정말로 우리 때문에 무공을 노리게 된 거라면, 우리가 모습을 드러낸 이상 다른 쪽에서 추가 지원을 올 확률은 거의 99.9%야. 지원이 오게 되면 어떻게 될지는 구태여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겠지?”
“...후... 알았어, 사람들을 모아올게.”
레피아가 부단히 움직여 각 길드의 길드장와 무림문파를 이끄는 가주 및 문주들을 불러들였다.
그리고 그러한 부름에 사람들은 체면 불구하고 순순히 따라주었다.
이유도 알려주지 않는, 너무도 갑작스러운 소집이었지만 혹시라도 이 암담한 상황을 타파할 계책을 찾아낸 게 아닐까 생각한 탓이었다.
그렇게 각 리더들이 모이자, 그때까지 레피아의 뒤에 있던 이강호가 비로소 앞으로 나섰다.
* * *
“응?”
“잰, 뭐냐? 뭔데 레피아씨 대신에...”
익숙지 않은 얼굴에 길드장들이 술렁였다.
이강호가 제6 유적 [가이드]로 떠난 후로 어느덧 3년, 시간이 엄청나게 경과했기에 몇몇을 제외하고는 이강호를 이강호라고 알아보지 못했다.
주위를 둘러본 이강호가 곧장 자신을 소개했다.
“난, 이강호라고 한다. 3년 전 진형을 떠나 판도라 세계 곳곳을 여행했지.”
“...뭐?”
술렁임이 순식간에 커졌다.
무림인들은 여전히 차분했지만, 소형 길드의 길드장이나 중형 길드의 길드장들은 명백히 동요를 보였다.
“서, 설마 정말 그 이강호라고?”
“그렇다.”
이강호가 눈치를 주자 뒤에 있던 김주희도 앞으로 걸어 나왔다. 과거 인기가 꽤나 있었던 김주희의 얼굴을 팔아, 조금이라도 더 쉽게 스스로가 진짜임을 알리기 위함이었다.
“......”
아니나 다를까, 몇몇이 눈이 불신의 눈빛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이제야 우리 앞에 나타난 이유는?”
“사정을 이야기 하자면 길다. 나는 본래 1년 전에 돌아올 계획이었지만 피치 못할 사건에 휘말려 돌아오지 못했지.”
이후, 이강호가 정말 간략히 간추려 설명했으나 길드장들은 심드렁해할 뿐이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입으로는 뭐든 떠들 수 있으니까.
“흥, 그딴 입바른 말은 나도 할 수 있다.”
“그래?”
후웅!
그 순간 이강호의 몸이 일순간 잔상을 일으키며 장소에서 사라졌다. 이에 도발한 길드장은 헛바람을 들이키며 검을 뽑을 수밖에 없었다.
“크윽!”
이강호가 상상도 하지 못할 어마무시한 속도로 날아들었기 때문.
“이, 이 자식! 지금 한번 해 보자는 거냐!”
길드장이 잽싸게 반응했지만 무용지물이었다.
1합, 단 1합 만에 제압 당해버린 것이다.
언더월드로 들어와 강해진 것치고는 너무도 허무한 패배였다.
“너, 너무 빨라...”
“어, 얼마나 스탯이 높길래...”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이강호가 때를 놓치지 않고 나직이 말했다.
“내 실력에 의문이 있는 자는 얼마든지 시험해도 좋다. 하지만 그전에 본론부터 얘기 하겠다.”
본디 이런 말은 기세를 잡았을 때 늘어놓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게 이강호의 노림수이기도 했고.
이강호가 본론을 말하자, 한 명의 길드장이 팔을 꼰 자세 그대로 거만하게 말했다.
“그래, 이강호. 네가 강하다는 건 인정하겠다. 하지만 우리가 왜 네 말에 따라줘야 되지?”
우려하고 있던 게 훅 치고 들어온 것이었다.
“우리가 네 플랜대로 움직여준 건 단지 빠르게 강해지고 싶었기 때문이지, 네 뜻에 놀아나기 위해서가 아니다. 넌 숨겨선 안 될 정보를 숨겼어. 몇몇은 그 정보로 인해 단합이 깨질 것을 우려한 네가 구태여 말하지 않은 것일 거라 대변하고 있지만, 미안하게도 나는 그렇게 느끼지 않아.”
“......”
이건 상대방이 어떻게 받아들일지의 문제였기에 이강호는 굳이 이견을 내뱉지 않았다.
내뱉었다가는 되려 반발만 살뿐이다.
그렇기에 이강호가 말했다.
“그럼, 너는 내가 어떻게 해줘야 따라줄 생각이냐.”
그 말에 팀 스피어의 길드장, 제넥 브라큰이 씨익 웃었다.
“나를 힘으로 눕혀봐라. 그럼 적어도 우리 길드는 너를 따라주마.”
오만이었다. 스탯의 차이가 얼마나 나는데 저런 소리를 한다 말인가.
그러나.
“단, 내가 만든 필드 안에서 말이지.”
“......”
브라큰의 미소가 더욱 커졌다.
이에 이강호는 마음속으로 쓴웃음을 내뱉었다.
‘역시 성격은 그대로군.’
제넥 브라큰.
그는 회귀전 이강호의 동료이자 창술 스승이었던 인물이었다.
검술에는 에반이라면 창술에는 제넥.
모두가 그렇게 불렀었다.
“흠, 필드 안에서? 무슨 뜻이지?”
“후후후, 이런 뜻이다.”
후웅-
제넥이 포켓에서 동그란 구의 형태를 한 아이템을 꺼내 마력을 불어넣자, 정육면체의 공간이 생성됐다.
“이 안에서는 양측 동의하에 스탯을 조정할 수 있다. 동의만 한다면 설사 SSS랭크의 힘을 지닌 자라 할지라도 원하는 만큼 강제적으로 힘을 제약할 수 있지. 순수하게 실력을 겨룰 수 있는 이른바 트레이닝 룸이라는 거다.”
“호오, 그러니까... 힘을 제약하고 겨뤄보자는 건가.”
“맞아. 그것도 순수 체술만으로. 이기면 나를 포함해 길드원 586명이 너를 따를 거야.”
이곳에 있는 인원은 도합 3000명이었다.
무림인들이 약 1500명가량을 차지하고 있는 걸 감안했을 때 순수 길드세력으로써는 무려 1/3이 넘는 것이다.
“게다가 내 길드원들은 정예라고?”
제넥이 재차 피식 웃었고, 이강호도 마음속으로 쓴웃음을 재차 머금었다.
‘흐음... 역시 예상 되로 되는군.’
예상대로는 됐으나 사실 그는 살짝 미묘한 감정이었다.
과거 제넥을 순수 창술로 단 한 번도 이겨본 적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제넥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제넥의 창술 성장은 비정상적으로 빨랐어. 아마 비등비등할 확률이 높다.’
즉, 이강호도 온 힘을 다해야 되는 것이다.
사실 이강호는 제넥이 없었더라면, 아니 나서지 않았더라면 힘의 차이를 보여주고 현 상황의 위기감을 자극하여 그들을 설득하려 했었다.
하지만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위기감을 자극해서 설득하려 한다면 아마 틈을 봐 이탈해 버리려할 것이 분명했다.
‘제넥은 절대 놓쳐서는 안돼.’
그리고 이건 정말 우습게도 스스로를 잘 아는 제넥 본인의 부탁이기도 했다.
제넥이 아차 하더니 마치 이제야 깨달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아! 그러고 보니 내 조건을 말 안했군. 원래 이런 건 공평해야 되는 법인데 말이지. 만약 내가 이기면 네가 지니고 있는 아이템 중에 3개를 받아가도록 하겠다. 586명의 병력을 네 뜻대로 움직여주는 것 치고는 꽤 싼 값이지 않나?”
“...순수 체술이란 걸로 이미 조건을 내건 거 아니었나?”
“아니, 그건 어쩔 수 없는 거지. 마력을 왕창 사용하게 되면 만에 하나 적에게 파악 당하게 될 수도 있잖아?”
“......”
말이 청산유수다.
그리고 이것이 제넥의 또 다른 무서움이었다.
그는 자신의 실력을 맹신하지 않고 자신에게 최대한 유리한 게 상황을 만들려했다.
“좋아. 우리 에덴 길드도 제넥이 지면 너의 말에 따르겠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길드장들이 어느새 말이라도 맞춘 것 마냥 동의했다.
“흠, 제넥 정도라면 야... 좋다. 우리 점창파도...”
거기에 더 나아가 무인들까지 인정했다.
제넥의 창술이 그만큼 어마무시하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그렇다는군, 이강호. 할 텐가? 이건 한 번에 모두를 움직일 수 있는 절호의 찬스라고?”
“좋다. 받아들이지.”
이강호가 받아들이자, 제넥의 입고리가 싸늘하게 올라갔다.
신창 제넥(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