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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쪽에 뭔가 있는 것인가.
‘시험해보는 편이 좋겠군.’
드람과 데르프푸스의 눈이 한순간 교차했다. 적의 약점을 공략하는 것은 전투에 있어서는 기본중의 기본이었다.
리스크가 있다면 좀 더 고민해봐야 될 일이겠지만 지금의 경우는 되면 그만 안 되면 그만이다.
“역겨운 마족 놈들... 이것도 막아봐라!”
데르프푸스가 으르릉 거리며 자신의 철퇴를 높이 치켜세웠다.
강력이 마력이 용이 되어 꿈틀거린다.
대놓고 사용한 스킬!
이를 본 고위마족, 슈라벨이 데르프푸스를 비웃었다.
“큭! 그딴 걸 우리가 맞을 것 같나?”
“글쎄?”
그러나 데르프푸스가 의미심장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갸웃거리자 슈라벨의 표정은 대번에 돌변했다.
‘이 자식, 설마?’
그 순간 데르프푸스가 철퇴를 힘껏 내려쳤다.
거대한 푸른 용이 아가리를 벌리며 적을 향해 날아든다.
노려진 이는 지금까지 그를 상대하고 있던 슈라벨이 아니라, 때마침 통로와 겹쳐져 있는 베렌토였다.
“큭!”
베렌토가 침음을 흘렸다.
피하려고 마음먹으면 충분히 회피할 수 있는 거리였다.
데르프푸스가 날린 스킬, 용아(龍牙)는 강력한 파괴력을 자랑하지만 그만큼 속도는 여타 스킬들에 비해 느린 탓이었다.
그러나 베렌토는 피하는 것 대신 곧바로 특기마법을 발산해 되받아쳤다.
“하아압!”
어둠의 마력에 의해 흉폭성 더해진 어둠의 화염, 마염광(魔炎狂)이 용의 거대한 어금니와 부딪쳐 대기를 울린다.
“하하하하! 피하면 될 걸 굳이 왜 막는 거지?”
“너 이자시이이익!!”
“뭐 저기에 꿀 발린 좋은 아이템이라도 숨겨뒀나?”
데르프푸스가 다분히 도발하며 마력을 더 불어넣었다.
용아의 푸른빛이 더욱 강해지며 불꽃을 서서히 밀어내기 시작한다.
이에 슈라벨은 혀를 차며 곧바로 데르프푸스를 저지하기 위해 움직였다.
깔보듯 말하긴 했지만 사실 데르프푸스는 마족 사이에서도 무척 잘 알려진 델바람이었다.
도합서열 50위 내에 드는 강자.
벤프로트를 죽인 미친 푸른용.
델바람들은 각각 성향에 따라 스킬에 색이 입혀지는데 그중에서도 푸른빛은 이종족들에게 가장 파괴적인 빛이라고 불리고 있었다.
반면, 베렌토의 마족내 서열은 400위.
아무리 마족이 기본적으로 좀 더 우수하다고는 해도 50위와 400위는 하늘과 땅 차이다.
“나랑 싸우다말고 감히 누구를 노리는 거냐!”
높이 치켜세운 슈라벨의 양날도끼가 큰 호선을 그리며 데르프푸스의 목을 향했다.
하지만 그 순간 드람이 눈을 빛내며 쫙 뻗은 손가락을 쓱 치켜세웠다.
“넌 빠져.”
지이잉-
마법진이 슈라벨의 발밑을 포함한 사방에서 나타났다.
스스스-
한기에 의해 기체가 고체로 승화하며 순식간에 공간을 얼려간다. 슈라벨은 이것에 살짝 닿기 무섭게 마음속으로 비명을 내지르며 다급하게 자리를 떴다.
‘이 마법은!!’
제로 포인트 필드(Zero point field).
일정 영역 안에 존재하는 개체의 온도를 절대 0도로 만들어버리는 8서클 마법.
이 마법은 난이도가 무척 높아 사용할 수 있는 이가 거의 없지만, 빙결에 대한 속성저항력을 상당수 무시하기에 저항력이 높은 이들도 동결 될 정도로 그 만큼 위력이 막강했다.
순간적인 차이가 모든 걸 좌지우지하는 이런 싸움에선 맞게 될시 목숨을 잃을 위험성이 크다.
‘저걸 사용할 줄 알다니. 게다가...’
한기는 곧장 용의 꼬리를 타고 베렌토를 향해 날아갔다.
불길이 냉기에 의해 약화되기 시작한다.
이는 누가 봐도 명백히 엘프인 드람이 델바람인 데르프푸스를 도와주는 행위였다.
“크으으으! 슈라벨! 빨리 도와줘라!”
“큭! 이미 하고 있어!”
슈라벨도 손에서 불길을 일으켰다.
당장에 당할 것 같은 베렌토를 우선 구한 다음 그 후 놈들을 노리려는 생각이었지만, 용의 어금니는 이미 베렌토에게 너무도 가까이 다가와 있다.
‘젠장, 늦었...’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멍청한 놈들.”
다수를 상대하고 있던 데프하우어가 휙 손짓했다.
쿠웅-
“크악!”
갑작스레 드람과 데르프푸스의 고개가 땅으로 떨궈진다.
엄청난 중력 때문이었다.
“크으으...”
그들은 대항해보려 했지만 허리와 무릎이 굽혀지는 것을 도무지 막을 수 없었다.
억지로 고개를 치켜든 둘의 눈에서 불신이 감돈다.
그들은 SSS랭크의 힘 스텟을 지니고 있는 대리자들이었다.
보통의 중력마법, 그래비티나 그보다 상위인 기가 그래비티로도 이정도의 제약을 거는 건 불가능했다.
이건...
“9서클 마법?”
얼티밋 기가 그래비티(ultimate giga gravity).
마법의 종주만이 사용할 수 있는 마법.
엘프들도 9서클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자가 있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보편화 된 마법뿐이었다.
전파하지 않은 것들, 드래곤만이 알고 있는 것들은 엘프들도 사용하지 못한다.
“지금이다! 슈라벨!”
“알고 있어!”
슈슉!
상당한 집중력을 요하는 제로 포인트 마법이 끊기고, 용아의 위력이 약해지자 슈라벨이 능력을 해제하고 데르프푸스에게 달려들었다. 드람이 도와주기 위해 황급히 다른 마법을 사용했지만, 슈라벨은 묘기를 부리듯 양쪽으로 이리저리 움직이며 전부 회피했다.
“크윽!”
순식간에 좁혀지는 거리.
“빌어먹을 데프하우어!!”
데르프푸스가 위험하다는 걸 느낀 델바람과 엘프가 데프하우어에게 날아들었다.
그러나 데프하우어가 블링크를 사용하여 거리를 벌리자 그들은 놀라 까무러칠 수밖에 없었다.
9서클 마법과 블링크를 동시에 캐스팅하다니?
“미친!”
데르프푸스는 용아를 해제하고 튈까 생각했지만 곧 늦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참에 끝내버릴 생각인지 데프하우어가 능력을 그에게만 집중한 것이다.
일반적인 드래곤이 사용한 마법이라면 아무리 9서클이라도 광역기인 만큼 지금이라도 대응이 가능했을 터인데... 데프하우어는 고룡, 게다가 블랙드래곤의 차기로드로 꼽혔던 자였다.
“젠장할! 이렇게 되면 너만이라도!!”
데르프푸스는 용아에 다시 힘을 실었다. 베렌토라도 처리하고 죽을 생각이었던 것이지만.
파앙!
공기를 찢는 파공성과 함께 데르프푸스를 짓누르고 있던 중력이 사라졌다. 그는 본능적으로 재빨리 자리를 떴다.
쿠우우웅!
화염이 아슬아슬하게 몸통을 스침과 동시에 슈라벨이 휘두른 양날도끼가 허공을 가른다.
슈라벨은 아쉬움에 혀를 차며 데프하우어쪽을 응시했다.
왜 하필 끊어도 지금 순간에 끊은 것인가, 1초만 더 유지했으면 100% 잡은 것이었는데.
“큭.”
데프하우어는 달라붙은 한 남자의 검을 받아치고 있었다.
‘저놈은...’
맨 처음 데프하우어에게 말장난을 걸었던 인간. 검술 깨나 할 줄 아는 것 같이 보였는데 아직도 살아있던 것인가?
“후욱... 후욱... 진짜로 뒤질 뻔 했군.”
“운이 좋았다 데르프푸스. 유세현이 놈을 공격하는데 성공하지 못했다면 죽었을 거야.”
“유세현이?”
데르프푸스의 시선도 둘에게로 잠시 향했다.
둘은 그야말로 뜨거운 공방을 벌이고 있었다.
데프하우어가 블링크를 사용할 기미가 보이면 유세현은 어째서인지 방향을 틀어 어딘가로 달려간다. 그러면 그곳에 정말 신기하게도 데프하우어가 나타났다.
블링크가 추적이 된다지만, 지금 유세현의 눈앞에 있는 자는 사실상 블랙드래곤 로드였다.
때문에 마법에 능통한 엘프들도 애를 먹으며 감당을 못하고 있는 것인데...
‘마치 뭘 쓸지 알고 있는 듯한 움직임이다.’
데프하우어가 세 개의 마법을 동시 영창했다.
유세현의 좌측에서는 얼음의 기둥이, 머리위에서는 번개가 내려친다.
그러나 이건 전부 페이크.
저랭크 마법으로 이목을 끄는 행위일 뿐이었고 진짜는 따로 있었다.
검을 불길, 헬파이어.
안 그래도 강력한 마법이 흉폭한 마력으로 더욱 강화되어 등 뒤에서 유세현을 덮친다. 저것에 정통으로 맞으면 전투불능은 기본이거니와 목숨을 빼앗길 수도 있다.
하지만 유세현은 마치 보이는 듯 허공을 발로 차 이리저리 곡예를 넘으며 헬파이어는 물론이거니와 나머지 두 개의 마법을 전부 피해냈다.
저랭크라지만 데프하우어정도가 사용하면 그것도 엄청난 흉기이기에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있는 걸 고려한 것이다.
유세현이 그대로 허공에서 빙그르르 돌며 데프하우어의 머리통을 향해 발을 내려찍었다.
빠악-
재빨리 팔을 들어 방어한 데프하우어의 신형이 그대로 추락했다. 땅에 박기 직전 재빨리 플라이마법을 시전하여 충돌은 면했지만 그럼에도 데프하우어의 표정은 상당히 일그러져있었다.
신체능력도 떨어지고, 마법도 사용하지 못하는 종족에게 한순간이라고는 하나 공격을 허용한 것이 믿기지 않은 것이다.
“이놈...”
그는 벨제뷔트에게 들어 유세현이 완전하진 않으나 마왕의 권능을 지니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싸움이 발생했을 때 되려 쉽게 생각했다.
마법은 어둠의 마력을 베이스로 파생된 것이 아니기에 상당한 효과를 줄 수 있는 반면, 어둠의 마력을 베이스로 하는 마왕의 순수 스킬들은 어둠의 마력을 손에 넣게 되면서 얻게 된 막대한 어둠저항력 덕에 상당히 위력이 감소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어둠의 마력에 관한 능력을 사용하질 않는다.’
마치 8개의 상위 종족 중 강력한 체술을 구사하는 쿠룬 종족처럼 싸운다.
‘짜증나는군.’
그는 쿠룬 종족의 위대한 투사보다도 유세현의 체술이 더 짜증나게 느껴졌다.
신묘한 발놀림, 허공을 밟는 마법, 특별한 형식이 없어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검법.
게다가 기이하게도 강하다.
마치 모든 무게 중심과 힘을 한곳에 실린 것처럼.
데프하우어는 근접전은 거의 하지 않는 드래곤이었다. 하긴 하지만 주가 마법이고 체술은 보조정도다. 본체로 돌아가면 그만의 싸움법이 있긴 했지만 본체는 너무 크기에 이런 장소에서는 역효과가 날 가능성이 있었다.
‘아니 사실 이런 건 다 괜찮다.’
유세현은 그 대단한 체술을 지니고 있음에도 육체적 격차 때문에 유효타를 넣지 못하고 있으니까.
때문에 그가 진짜 거슬리는 건 그의 마법 파훼였다.
대체 어떻게 쓰기도 전에 알아채는 것인가?
‘루시펠, 이년...’
루시펠은 동화가 되며 벨제뷔트에게 유세현과 그의 동료에 대한 많은 것을 털어놨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묻는 말에만 대답할 뿐 추측 같은 주관적인 생각은 전혀 말하지 않았다.
능력을 어떻게 파악하는 것인지 진즉 알고 있었으면 상대하기 전 마땅한 대책을 내놓을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이렇게 되면 일단은 양으로 공략 해보는 편이 좋겠군.’
“이것도 한 번 피해볼 수 있으면 피해봐라.”
데프하우어의 주위에 수백 개의 화살이 생성됐다.
유세현은 그걸 보며 피식 웃었다.
‘괜찮군.’
놈이 육탄전의 대가였다면 유세현도 고전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강호가 말해준대로 마법사 같이 마법만 주구장창 사용하니 마력의 흐름을 느끼고 볼 수 있는 유세현에겐 이보다 좋은 게 없었다.
아슬아슬하긴 하지만 카시우스와 한판 붙었던 때보다 나은 것이다.
“맞출 수 있다면 맞춰봐라.”
“이게...”
데프하어우의 손짓과 함께 화살이 유세현을 향해 날아들었다.
* * *
쿠궁!
쿠구궁!
알 수 없는 울림이 또다시 이강호와 연합군을 강타했다.
“대체 어디서 나는 소리야?”
주위에서 딱히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연합군의 얼굴에서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히 드러나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그냥 허공에서 울리고 있는 겁니다.”
“흐음...”
엘프와 델바람들의 입에서 자그마한 한숨이 터져 나왔다.
그들은 여기까지 흩어진 연합군을 모으며 어찌어찌 온 상태였다.
그런데 이제는 거울로 찾아도 길이 보이지 않는다.
어찌해야 될까?
“고생은 고생대로하고 얻는 건 아무것도 없고. 완전 개 같구만 개 같아.”
몇몇 델바람들은 싫증이 났는지 투정까지 부렸다. 그들이 최상위 대리자임임을 감안하면 그만큼 인내심이 한계에 달했다는 뜻이다.
“카시우스, 이러다간 정말 죽도 밥도 안 된다. 가지고 있는 거 빨리 다 털어놔라.”
“무슨 뜻이지?”
“우리 대장처럼 꽁쳐두고 있는 게 있으면 쓰라는 거다.”
안뷜리루뎀이라는 델바람이 대놓고 카그네프를 들먹이며 말했다.
아무리그래도 그렇지 하위멤버는 신경을 안 쓰고 최상위 25명만 데리고 쏙 빠진 것에 상당히 기분이 상한 게 분명했다.
“......”
덕분에 충성심이 높은 다른 델바람들도 이건 모른 체 넘어가준다.
“흠...”
카시우스가 턱을 짚었다. 사실 이런 상황에서 사용할 아이템이 그에겐 있긴 있었다.
‘하지만 정녕 지금 사용해야 되는가.’
카시우스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그래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벨제뷔트는 우리를 일부러 퍼뜨렸다. 그건 필히 우리가 무언가를 방해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일 터...’
그렇다면 주어진 시간은 그리 많지 않으리라.
아니, 애초에 이 알 수 없는 울림도 놈이 무언가를 해서 만들어진 것일 가능성이 높다.
“카시우스, 아끼면 똥 된다는 말이 있다. 그러니...”
“좋다. 사용하지.”
“호오, 잘 생각했...”
“하지만 조건이 있다.”
“응?”
안뷜리루뎀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카시우스가 계속 말했다.
“내가 사용할 아이템은 우리 전부에게 도움이 되는 물품이다. 너희의 대장 카그네프가 사용한 것과 달리 말이다.”
무슨 뜻인지는 이곳에 있는 모두가 단번에 이해했다.
“뭘 원하는데? 참고로 말하지만 착용 장비는 안 되는 거 알고 있겠지? 그건 너무 부당한 요구니까.”
“알고 있다. 우선 이강호.”
“뭐지?”
카시우스의 지목에 이강호가 그를 응시했다.
“이 던전에 대해 추가적으로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말해라.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그에 상응하는 장비를 받겠다. 네가 착용하고 있는 거라고 해도 말이지.”
“......”
이강호의 입이 다물어졌다. 장비는 요구하지 않기로 해놓고 금붕어처럼 바로 저리 말해버리다니. 아니 당최 정보를 불라니?
“무슨 근거에서 그리 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알고 있는 건 이전에 다 말했...”
“을 리가 없지. 절대로. 넌 그럴만한 인물이 아니다. 지금까지야 잠자코 있었지만 내가 볼 때 이제 이 유적은 거의 막바지다. 뭔가가 일어나려 하고 있어. 그러니 정해라. 정보를 불 것이냐. 아이템을 줄 것이냐. 정보를 준다 해도 내가 납득하지 못하면 이 거래는 무효다.”
“...막나가자는 거냐?”
이강호의 전신에서 열기가 서서히 피어올랐다.
천사사냥(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