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389화 (389/612)

-------------- 383/606 --------------

두 진형, 아니 유세현과 연합 사이에 날카로운 기류가 흐른다.

난데없이 찾아와 내건 제안, 협상.

“협상? 대체 무슨 협상을 하기 위해 온 거냐?”

선봉을 맡고 있던 상위 엘프 한 명이 물었지만 유세현은 반응하지 않았다.

마치 잡졸에게는 더 이상 들려줄 말이 없다는 듯이.

이에 등장한 놈이 누구인가 병력사이에서 유심히 지켜보고 있던 카그네프는 그 담력에 감탄했다.

‘대단한 놈이군.’

이곳에 있는 자들은 전부 최정예 인원들로 그 하나하나가 한 부대를 통솔하는 대장이다.

게다가 대놓고 다가왔기에 마법이나 스킬을 언제고 발현할 준비가 끝나있다.

단신이라면 그 어떤 강자, 흡사 마왕이나 로드급 드래곤이라해도 감히 몸 성히 돌아갈 수 없는 게 현재의 상황인 것이다.

그런데도 전혀 위축되지 않다니?

딱-

휘익-

흥미를 느낀 카그네프가 손가락을 튕긴 순간 카시우스도 휘파람을 불어 신호를 보냈다.

순식간에 질서정연하게 갈라지며 열리는 길!

“그래, 협상이 하고 싶다고?”

카시우스와 함께 다가온 카그네프가 그 특유의 에메랄드빛 눈동자를 번뜩였다.

유세현은 카그네프를 보자마자 그가 말로만 듣던 카그네프 제벨이란 걸 단번에 알아챌 수 있었다.

“그렇다.”

“크크 그래, 그럼 어디 어떤 거래 물품을 들고 왔는지 들어나 보도록 하지.”

“현 상황, 그리고 타파할 수 있는 단서를 얻을 수 있는 방법.”

카그네프가 툭 띄운 운에 유세현이 훅 치고 들어왔다.

단순명료하면서도 상대의 의표를 찌르는 말.

카그네프의 얼굴에 웃음기가 가시기 시작한다.

사실 유세현의 답변은 당당히 찾아온 것에서 얼추 예상할 수 있던 거긴 했다.

그러나 듣기 전까지만 해도 카그네프는 설마 설마 했다.

자신들도 지금 제대로 파악하지 못 한 상황을 이놈이 알고 있다니?

거기다가 더 나아가 타파할 방도까지?

말이 되는가?

“허, 상당히 호쾌하군. 이름이 뭐지?”

“유세현.”

“나는 카그네프 제벨이다. 현 델바람족을 이끌고 있지, 상태를 보니 이쪽과는 이미 구면인거 같은데, 전에 한바탕하기라도 한건가?”

카그네프가 슬쩍 떠보며 카시우스를 쳐다봤지만 유세현은 묵과했다.

카그네프는 이를 보며 자잘한 농담 따먹기로는 유세현에게서 정보를 이끌어 낼 수 없다는 것을 확실히 인지했다.

말뜻을 이해한 카시우스가 말했다.

“정보를 줄 테니 손을 잡자는 건가?”

“바로 그거...”

“우리가 왜 구태여 그래야하지? 우리는 현 상황을 잘 인지하고 있다. 실마리도 어느 정도 잡은 상태지. 거기다 너와 우리의 전력차가 대체 얼마라고 생각하나? 우린 지금 당장 너를 포획할 수 있다. 정보야 뭐가 됐던 포획한 다음에 들으면 되는 법이지.”

“흥, 어설픈 협박이로군. 카시우스, 네 말이 진짜였다면 너는 지금 이렇게 나와 대화를 하고 있지 않았을 거다. 전에처럼 당장 공격했겠지. 게다가 확실히 포획할 수 있으리라 정말로 장담할 수 있나? 내가 아무런 준비도 없이 접근했으리라보나?”

유세현의 입꼬리가 미미하게 올라갔다.

일전 루시펠에게 당한 게 있던 카시우스가 마음속으로 혀를 쯧 찼다. 확실히, 대비하지 않은 바에야 정말 미친 심장이 아니고서는 이렇게 접근하지 않으리라.

‘하지만 그런 아이템이 절대 흔하진 않다.’

입수난이도와는 별개로 희소의 문제다. 허세일 가능성도 0%는 아닌 것.

허나.

‘여차하면 모종의 아이템을 사용해 탈출하겠다는 의도가 너무나도 대놓고 보이는군.’

공격하는 즉시 협상은 끝이다.

만약 놈의 말이 허세였을 때는 희생을 감수하여 붙잡으면 되지만, 만약 아니라면 희망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는 동아줄을 스스로 잘라버린 셈이 된다.

도박...

그리고 카시우스는 도박을 싫어하는 인물이었다.

그래서 목숨을 빌미로 협박해 정보를 캐내보려고 생각도 해본 것인데...

‘하긴, 단신으로 이곳에 다가온 놈이다. 절대 통할리가 없었겠군.’

엘프나 델바람이나 이 유적 공략에 많은 시간을 쏟았다.

때문에 퇴각이 불가능해진 이유도 있지만 만약 가능하다면 최대한 얻어가야 되는 입장이었다.

결과는 저 인간이 다가온 순간부터 정해져있던 것과 다름이 없었다.

결정을 내린 것인지 카그네프가 카시우스를 향해 말했다.

“난, 저 종족과 손을 잡겠다. 만약 엘프측이 거절하면 이 연합은 여기서 끝이다. 어떻게 하겠나?”

“...의도한 것에 당하는 것 같아 기분 나쁘긴 하지만... 확실히 지금은 좋고 싫고를 가릴 때가 아니긴 하지.”

“크크크, 좋아. 그럼 결정됐군. 유세현이라고 했나? 일단 신뢰의 담보로써 기본정보부터 말해봐라. 어설프다면... 가지고 있을 비장의 아이템이 여기서 날아가게 될 것이다.”

“바라던 바다.”

유세현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 * *

“왜... 왜! 네가 카시우스님과 함께?”

일행을 본 로리엔이 엘프 그 특유의 고운 얼굴을 구기며 치를 떨었다. 그녀는 곧장 카시우를 찾아갔다.

“카시우스님! 어째서 저자들과 손을??”

“필요에 의해서지. 저들은 많을 것을 알고 있다. 지금은 옛일 때문에 싸울 때가 아니다. 사태는 너도 잘 알고 있지 않나.”

“하지만! 저들에 의해 죽어나간 엘프가 한 둘이 아닙니다! 퀴르가스님도 저놈과 싸우다가 전사하셨...”

“거기까지. 다시 말하지만 이건 우리가 이기기 위한 거래다. 그러니 더 이상 이일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을 금한다. 이건 명령이다.”

“......”

뿌득-

돌아온 답변에 그녀의 이가 갈렸다.

로리엔은 유세현의 곁으로 터벅터벅 걸어가 다짜고짜 그의 멱살을 붙잡았다.

누가 막을 새도 없이 갑작스레 일어난 일이었다.

“네놈, 어떻게 연합 전체를 회유한 건진 몰라도 이 일이 끝나면 반드시 죽여주겠...”

“로리엔!!”

순식간에 사방에서 제지가 들어온다.

유세현이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

“엘프들은 자기 병사하나도 제대로 관리 못하는 건가? 이래서야 내가 믿고 움직일 수 있겠나?”

“큭...”

여러 엘프들의 날카로운 눈초리가 로리엔에게로 빗발쳤다.

연합은 겉으로나마 신뢰가 최우선인 만큼, 추후 이걸 꼬투리로 잡고 늘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는 실제로 유세현이 순순히 멱살을 잡혀준 이유이기도 했다.

이윽고 끌려 나가는 로리엔.

김주희가 혀를 삐죽 내밀며 조롱했다.

“감히 세현 선배의 멱살을 잡아? 베~ 꼴좋다.”

“너도 그런 도발은 하지마라.”

“옙 선배. 쟤도 아마 정신없어서 못 봤을 거예요.”

“뭐? 못 봐? 이게에에에에! 야! 너도 내...”

“어이쿠 스토킹이 특기라 그런가 눈도 좋고 귀도 밝네요.”

“......”

사실 김주희의 이런 도발은 딱히 도발도 아니었기에, 유세현은 웃으며 넘어갔다. 그래 삭막한 세상을 살아가는데 이런 맛이라도 있어야 되지 않겠는가.

세 연합은 곧장 회의를 했다.

유세현은 이들에게 아슬아슬한 수준에서 정보 주었다.

마족과 손을 잡은 추종자들, 추종자들의 목적.

그리고 갑작스레 크라베스가 등장한 이유.

너무 많은 수준의 정보를 퍼 준게 아닌가 생각될 정도로 정보를 준다.

이유는 있었다.

‘어차피 우리끼리 알고 있어봐야 아무것도 안 된다.’

적은 대군이었다.

반면 유세현일행은 꼴랑 5명.

그들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천족, 마족, 그리고 크라베스를 피해 핵심에 다다르는 건 무리였다.

그러니 이쪽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줄 무리가 필요하다.

이들은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연합이었다.

‘하지만 모든 정보를 주면 안 되지.’

이강호는 라벤에게서 N3연구소가 자신이 알고 있는 던전이라는 것을 알자마자 확신했다.

천족과 마족이 분포해있는 곳에 있는 N3연구소를 제외하고도, 놈들의 약점이 되는 재료를 모을 수 있는 던전들에는 분명 다른 단서가 있으리라고.

“그러니까 미리 알아놨던 다른 던전을 들려보면서 N3연구소가 있는 장소로 이동하자는 거로군.”

“그렇다. 이견 있나?”

현재 그들은 정보를 주기만 한 것뿐만 아니라 몇 개는 받기도 했다.

그들은 명백한 후발주의자였기 때문이다.

물론, 혹시나 얻었을 비장의 수는 당연히 숨겼을 테지만, 아무쪼록 일행에게도 제법 도움이 되는 정보가 있긴 있었다.

“아니, 내가 보기에도 확실히 나쁘지 않은 방법이다.”

카그네프가 먼저 자신의 의견을 표했다.

이어서 카시우스도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동의한다. 만약 네 말대로라면 잘만하면 빨리 클리어 할 수도 있을 테니.”

“좋아, 정해졌다면 바로 움직이지.”

엘프와 델바람, 대군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행군이 이어졌다.

유세현은 그사이 카시우스와 카그네프를 세밀하게 관찰했다.

카시우스의 주력무기인 활과 검.

무장은 간략한 가죽갑옷이지만 분명 재질이 장난이 아닐 것이 분명하다.

카시우스는 복장 자체도 고유특성에 살려 무척이나 날렵해보였다.

‘반면...’

카그네프의 무장은 상당히 무거워 보이는 중무장.

무기는 워엑스로 양손도끼보단 짧지만 한손도끼보다는 기다란 특이한 도끼다.

시선을 의식한 것인지 카그네프가 유세현을 돌아보았다.

그 특이한 용모가 시야에 들어온다.

카그네프는 델바람중에서도 약간 독특한 외형을 지닌 존재였다.

“왜? 내 장비가 탐이나나?”

델바람은 보통 용인(龍人)의 외형을 띠고 있다.

몸체는 리자드맨과 비슷한 적갈색가죽으로 덮여있지만 얼굴은 도마뱀이 아닌 용의형상을 닮은 사람의 얼굴인 것이 큰 특징이다.

사지는 다리 두 개와 팔 두 개로 일반적인 생명체와 똑같지만 두꺼운 꼬리가 달려 있었고 이마에는 아주 작은 뾰족한 뿔이 두 개 나있다.

“미안하지만 줄 순 없다. 꽤 아끼는 거라 말이지. 하지만 한 번쯤은 만져보게 해줄 수 있지.”

카그네프가 씨익 웃으며 도끼를 앞으로 내밀었다.

그는 일반 델바람과 달리 가죽색이 완벽한 적색이었다. 뿔도 다른 이들처럼 손톱만큼 난 것이 아니라 마치 악마처럼 손바닥만 하게 크다.

“됐다. 거절하지.”

“흐음... 그래? 아쉽군. 이런 기회는 흔치 않은데 말이지.”

은근슬쩍 접촉하여 기억을 읽어보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유세현이 거절하자 카그네프는 입맛을 다셨다.

마침내 첫 번째 목적지에 도착한 일행이 곧장 내부를 향했다.

* * *

“호오, 정말로 몬스터가 없군. 올 때마다 들끓었었는데 말이지.”

카그네프가 미소를 지었다.

이 장소는 본디 엘프와 델바람이 일전에 한 번씩 방문한 적이 있던 장소였다.

뭔가 있음을 느끼고 있던 그들은 탐색하다가 적이 보이지 않자 인원들을 풀었다.

내부가 그리 크지 않았기에 비밀 문을 발견하는 건 오래지 않아서였다.

지잉-

안으로 들어가자, 부서진 잔재들이 보인다.

인원들은 마치 압수수색을 하는 검찰마냥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았다.

“A-3부대 구역 특이점 없음.”

“B-2부대 구역 특이점 없음.”

새삼 물량이 괜히 좋은 게 아니다. 그들은 곧 숨겨진 실험실까지 찾아낼 수 있었다.

기기앞에선 이강호가 버튼을 조작했다.

지이잉-

기기에 전원이 들어오고 화면이 켜진다.

일전 라벤 테이메르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며 일러준 덕택이었다.

조작하고 있자 카그네프와 카시우스가 동시에 엄포를 놨다.

“조건을 잊지 않았겠지?”

“다시 말하지만 너희는 이곳에서 빠져나갈 때까지 우리 곁을 죽어도 떠날 수 없다.”

추후 몰래 정보를 빼돌릴 걸 우려한 것이었다.

“알고 있다.”

이강호가 버튼을 눌렀다.

딸깍-

우우우웅!

기계 내부 부품이 가속하는 소리가 고요한 방안에 울리며 천장에 매달려 있는 화면이 켜진다.

세 종족의 시선이 자연스레 쏠렸다.

치짓-

치지짓-

이윽고 화면에서 한 종족이 모습을 드러냈다.

화면에 나타난 종족은 각 대표모두 본적 있는 종족이었다.

천문대.

크레이 스테이룬스의 종족!

[나는 베레느크 아루프리아박사다.]

[우리를 낙원으로 안내해 줄 크람베르에게 치명적인 오류가 발생했다.]

[이 오류를 수정할 수 있는 자는 영혼의 권위자인 라벤 테이메르 박사뿐이다.]

[행방불명된 그를 찾아라.]

[찾아서 N3연구소로 데려와라. 그가 있어야지만 우리에게 미래가 있다.]

[N3연구소의 접속코드를 넘겨주겠다. 정말 시급한 상황이다. 누구라도 좋다! 라벤 테이메르박사를 찾아 N3연구소를 찾아라!]

파앗!

난데없이 발생한 전자파가 이곳에 있는 전체를 휩쓸었다.

연합(2)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