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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왕 유세현-394화 (603/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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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세력이 대립하고 있는 원인. 크라베스가 자신이 진짜 왕이라고 한 이유.

지금까지 애매모호하기 짝이 없던 퍼즐조각이 이 일지로 인해 전부 맞춰졌다.

내용을 들은 김주희의 감상문은 이러했다.

“이거 너무 차별대우 아니에요? 우리는 F랭크부터 죽어라 노력해서 여기까지 온 건데 쟤네들은 잘만하면 그냥 날로 먹는 거잖아요.”

“......”

유세현은 그 말에 살짝 어이가 없어져 실소를 내뿜었다. 이건 또 다른 방식의 접근이다.

현 상황에 대한 게 아니라 놈들이 신과 한 거래 자체에 딴지를 잡고 늘어지다니.

‘김주희 답군.’

유세현은 딱히 뭐라 하지 않았다. 그녀는 침울해지면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일부러 이러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김주희는 루시아와 친구가 된 이후로 그녀와 정말 무척이나 친하게 지냈었다. 무려 연적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지금 그녀는... 유세현과 마찬가지로 루시아의 신변에 대해 심히 걱정하고 있다.

현 상황에선 어떻게 하는 게 최선의 방책일까?

“내 생각에 베스트는 크람베르가 부활하지 못하게 저지하는 거라고 봐.”

“흐음... 확실히 그렇지.”

과거에는 크람베르가 부활한 다음에야 대리자들이 손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크람베르가 일종의 시스템이란 걸 알아낸 이상, 분명 본체는 존재할 것이다.

만약 그걸 찾아내 부순다면?

“추종자들과 크라베스는 길 잃은 개가 되서 나락으로 추락하게 되겠지. 하지만 솔직히 유세현... 이건 루시아가 납치당한 순간 늦었다고 생각한다.”

이강호는 이미 루시아의 죽음을 거의 반 확정으로 잡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추종자들은 본디 크람베르의 부활 이전까지는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았었다.

아마도 이유는 대리자들이 경각심을 가지고 득달같이 달려드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었을 터.

가정에 불과하지만 크람베르의 부활이 사전에 저지 가능하다고 놓고 볼 때 모든 게 납득이 되는 일이다.

지금은 크라베스에게 까지 쫓기고 있는 상황.

그런데 그런 놈들이 고작 생명체 하나를 잡기 위해 집합했다?

볼 수 있는 경우의 수는 하나다.

‘높은 격... 루시아씨를 제물로 받칠 시 크람베르가 깨어난다.’

“......”

유세현과 김주희가 침통하게 속을 앓았다. 확실히 지금 이 순간에도 루시아는 거대 구덩이가 있는 쪽으로 이송되고 있는 중이었다.

이 상태라면...

‘무조건 늦는다.’

그때였다.

김주희와 아퀼라가 난데없이 벌떡 일어나 전방을 향해 무기를 겨눴다.

“거기 정지! 쉴 때는 함부로 접근하지 않기로 했는데... 무슨 이유로 다가온 거지?”

“워워, 진정하라고 인간족 아가씨. 나는 그저 잠시 너희들과 대화를 나누기 위해 온 거니까.”

등장한 이는 카그네프 제벨이었다.

유세현이 대표로 말했다.

“대화? 무슨 대화 말이지?”

“음... 별건 아니고 하나 궁금한 게 있어서.”

“질문?”

“그래, 질문. 뭐 별로 큰 대단한 질문은 아니다.”

카그네프가 히죽 웃으며 말을 계속 이었다.

“네 동료... 역시 그놈들에게 당한건가?”

“......”

“오우, 그리 무서운 눈으로 쳐다보지 말라고~ 괜히 쓸데없이 도발하기 위해서 물은 건 아니니까.”

“...그럼 뭐냐.”

“말했잖아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어서라고. 놈들이 왜 너희를 노렸지? 아니 정확히는 너희만 노렸다. 그중에서도 셋.”

카그네프가 손가락을 들어 이강호와 유세현을 가리켰다.

“우리의 입장에선 이게 굉장히 찝찝하단 말이지.”

일행은 그제야 카그네프의 의도를 알아챘다.

하기야 충분히 그럴 만도 하다.

유세현은 쓸데없는 입씨름을 하고 싶지 않았기에 적당히 짜 맞춰 답하기로 했다.

“일전에도 한 번 말했지만 우리는 놈들과 이전에 한 번 붙은 적이 있다. 그리고 놈들은 망령들이 창궐한 것과 관련이 있지.”

“그래서?”

“던전에 들어가 무엇인가를 조작했을 때 우리의 몸에 특별한 증표가 새겨졌다.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그거 때문이 아닐까 한다.”

“흐음... 그래서 그렇다?”

카그네프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별로 믿지는 않는 표정이었다.

이내 그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말.

“난, 다른 이유 때문인 거 같은데?”

“......”

“높은 격... 놈들은 분명 그리 말했지. 그리고 그건 너희들의 그 특수한 힘을 뜻하는 거 아닌가?”

“......”

“뭐 됐다. 걸리는 게 이것뿐인 것도 아니고. 넘어가주지, 쉬어라.”

카그네프가 몸을 홱 돌렸다. 유세현이 침착하게 중얼거렸다.

“경고하러 온 거였군.”

“아아, 앞으로는 경계가 더 심해지겠어.”

허튼 수작 부리려 하지 마라.

카그네프는 간접적으로 그리 표현한 것이다.

유세현은 놈이 모습을 감추기 무섭게 집중력을 높여 루시아의 마력을 탐지했다.

추종자들의 체내 입자를 직접적으로 파악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아쉽게도 놈들의 입자는 현재의 감각으로써는 추적이 불가능하다.

그렇게 30분이 흘렀을 때였다.

‘?!’

감각을 예리하게 끌어올리고 있던 유세현의 두 눈이 번쩍 떠졌다.

루시아의 마력 이동이 갑자기 멈췄다.

* * *

렘벨크는 제2 제사장 크루아크가 둘러업고 있는 루시아를 보며 흡족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높은 격을 지니고 있는 생명체.

다른 둘과 달리 힘을 다루는 게 어리숙하여 생각보다 쉽게 붙잡았다.

이 생명체를 제물로 바친다면 영혼의 왕, 크람베르가 깊은 잠에서 깨어날 터.

이변이 일어난 것은 딱 그 순간이었다.

솨아아아아-

까마득한 거친 어둠의 안개와 함께, 난데없이 밀려들어온 고농도의 흑색 입자가 일대를 뒤덮었다.

망령들의 소름끼치는 비명이 천공에 울려 퍼지고, 고요했던 대지가 들끓는다.

그 어느 때도 여유롭던 제사장들의 표정은 순식간에 사색이 되었다.

이 전조현상의 의미, 그것을 단번에 깨우친 것이다.

“이, 이건!”

“크하하하하! 어딜 그렇게 급히 가시나?”

망자들 속에서 크라베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렘벨크는 치를 떨었다.

“이, 이놈! 대체 어떻게! 우리를 추적할 수는...”

“없지. 하지만 굳이 너희들을 추적할 필요가 있을까? 떡하니 미끼가 있는데.”

크라베스가 루시아를 가리켰다.

렘벨크는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크크크, 안일하구나 렘벨크! 내가 최상등의 제물의 움직임을 파악하지 않고 있으리라 생각했나?”

“으...”

렘벨크의 안면이 꿈틀꿈틀 요동쳤다.

그들에게 있어서 현재 크라베스와의 조우는 최악중의 최악의 사태였다.

대리자들로 인한 전투로 힘을 많이 써버린 데다, 그 이후 잠시도 쉬지 않고 계속 이동해왔기 때문이었다.

“제물을 순순히 넘겨라 렘벨크! 그렇다면 자비를 베풀어 주겠다!”

“웃기는군! 우리 제사장들이 쉬워 보이나? 반역자?”

“물론... 쉬워 보이지. 가라!”

크라베스가 손을 뻗자, 그의 주위에 머물며 호위하고 있던 사도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 * *

마치 유성이라도 충돌한 마냥 크레이터가 진 지면의 위.

흙먼지가 가라앉자 발걸음을 옮겨 쓰러져 있는 루시아에게 다가간 크라베스는 입가에 은은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후후후...”

그는 줄곧 이때만을 노려왔다.

제사장들이 움직일 이때만을.

그 결과 상당수의 하위 넘버 제사장들은 살아남지 못했다. 그의 뼈와 육신이 되어 흡수 되었다.

비록 렘벨크와 상위 제사장들은 놓쳤지만, 루시아를 얻은 것이 그에게는 더 큰 소득이었다.

왜냐하면...

‘그놈들을... 아니 그놈을 움직일 수 있을 테니까.’

크라베스의 뇌리속에 한 남자의 모습이 떠올랐다.

유세현.

유세현의 동료애착은 그가 직접 봤기에 너무도 잘 안다.

그 무모함. 0.1%도 안 되는 희망에 불과할지라도 가능성만 보인다면 목숨까지 내거는 그 간절함은 충분히 이용할 가치가 있다.

“그 여자를 챙겨라. 돌아간다.”

“예!”

크라베스가 입자와 함께 자리에서 자취를 감췄다.

* * *

‘방향이 갑자기 바뀌었다.’

유세현은 뭔 일이 일어났음을 확신했다. 처음에는 잠깐 쉬는 게 아닌가했는데, 아무리 그래도 지금까지 줄곧 직선방향으로만 움직이고 있던 놈들이 난데없이 방향을 틀 리가 없었다.

이것은 호재인가 악재인가.

‘아무리 그래도 제사장에게 잡혀가는 것보다 나쁜 일은 없긴 하다만...’

대체 누가?

누가 그들을 덮쳤단 말인가.

‘설마...’

한 얼굴이 스쳐지나갔다.

‘만약 놈에게 잡혔다면... 그리고 인질로 써먹을 생각이라면... 루시아씨는 당장은 괜찮을 가능성이 높다.’

유세현은 생각을 마치고 주먹을 움켜쥐었다.

어둠의 마력이 의지대로 그의 손을 타고 흐르며 회오리처럼 휘몰아친다. 천마신공을 운공 하지 않았음에도 발생하는 현상이었다.

‘거의 다 다다랐다...정말 거의 다...’

그는 잠시 마력을 보다가 이내 눈을 감고 피로에 찌든 몸을 달랬다.

* * *

“확신 하더니 꼴이 참 좋아 보이는군.”

“......”

다분한 비아냥에 렘벨크가 도끼눈을 치켜떴다. 벨제뷔트는 그 행동에서 렘벨크가 얼마나 분노해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하기야 다 된 밥에 재를 뿌려도 정도가 있지.’

전력손실도 어마어마하다.

하위 제사장들은 물론이고 제5 제사장까지 소멸해버렸으니까.

“하지만 너무 걱정마라. 내가 다 준비해둔 게 있다고 하지 않았나. 놈들이 함정에 빠졌다. 곧 날을 잡아서 결행하겠지.”

“...결행? 놈들 쪽에서 싸움을 걸어 올 거라는 뜻이냐? 보다 상세히 말해봐라.”

“훗, 그래, 이젠 말해주도록 하지.”

벨제뷔트가 다리를 꼰 채 오만하게 앉은 자세 그대로 작전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내용을 들은 렘벨크가 작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호오... 확실히 괜찮은 방법이군.”

“역시 그렇지?”

“하지만 변수는 존재한다. 크라베스와... 지금 이쪽을 향해 진군하고 있는 대군은 결코 만만치 않다.”

“흥! 엘프와 델바람을 말하는 건가? 놈들의 연합은 모래성이다. 이제야 이곳에 도달한 이상 놈들은 자기 병력이 아까워서라도 뭘 제대로 할 수 없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라면 그렇겠지.”

“...그게 무슨 말이냐?”

벨제뷔트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렘벨크가 털어놨다.

“놈들을 이끄는 자들이 있다. 내가 이전 말했었던...”

“하...그런 이야기라면...”

“혹시 몰라 수정구에 기록했었다. 봐봐라.”

휙-

렘벨크가 던진 수정구를 벨제뷔트가 무심히 받아들었다.

이내 관람을 시작하는 벨제뷔트.

“...뭐냐, 이놈은...”

벨제뷔트는 자신의 눈을 비볐다. 평소에는 결코 하지 않는 행동이었다.

“내가 말하지 않았나. 저자는 너보다도 격이...”

“잠깐 나갔다 오지.”

자리를 박찬 그가 단박에 루시펠에게 향했다.

* * *

루시펠은 벨제뷔트의 물음에 답했다.

“그는...마왕... 그 힘을 넘겨받은 존재...”

시간이 갈수록 속도가 빨라진 현재, 루시펠의 동화 상태는 어느덧 55%를 넘겼다.

그 결과 이제는 의식에까지 필연적으로 영향을 미쳐 그녀는 벨제뷔트에게 웬만한 건 숨기지 않았다.

“마왕의 힘...이라고? 정말로 순수한? 어디서 얻었다지?”

“그...”

루시펠의 말이 뚝 끊긴다.

이런 건 별로 말하고 싶지 않다는 뜻이었는데, 상대에게 나름의 각별한 감정을 지니고 있어야지만 나오는 반응이었다.

평소라면 반발을 고려해 물러났겠지만...벨제뷔트는 이번만큼은 추궁을 멈추지 않았다.

“말해라.”

“그, 그는... 초창기... 초창기에...유, 유세현...”

몇 번을 물어도 저항이 거세다.

‘안되겠군. 이러다간 사고가 뒤틀려 망가진다.’

그는 그만하기로 하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설마, 설마 했지만... 판도라에서는 특수특성까지 얻을 수 있는 건가.’

아무쪼록 이렇게 되면 놈은 변수가 맞긴 하다.

놈은 무슨 정보를 가지고 있을까? 더불어 어디까지 알고 있을까?

그가 손을 까딱이자, 검은 머리칼이 돋보이는 인간의 형상을 띄고 있는 인물이 한 명 모습을 드러냈다.

“데프하우어.”

차기 블랙드래곤 로드 후보였던 리뷔크 젠 데프하우어!

“지금 북상하고 있는 연합군을 조심히 감시해라.”

“알겠습니다.”

고개 숙여 인사한 그가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무저갱(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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