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392화 (60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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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

휙-

뭐라 더 할 새도 없이 유세현이 경쾌하게 팔을 휘둘렀다.

병에서 빠져나온 액체가 그를 중심으로 순식간에 사방으로 흩뿌려져 나간다.

그 속도는 무척 빨랐지만 렘벨크와 제사장들이 맘먹고 피하려면 피할 수도 있는 속도였다.

제 아무리 빠르다 한들 마력을 불어넣어 발현시킨 기술이 아닌, 단순히 액체를 뿌린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렘벨크는 회피하지 않았다.

유세현이 비장의 수단이라 생각하는 물질이 무엇인지 보자마자 대충 어림짐작이 된 덕택이었다.

‘일전 생명의 샘에서 뜬 물인가...’

생명의 샘물은 망자들에게 효과가 있다. 움직임을 더디게 하고, 흉폭성을 낮추는 것이다.

추종자들과 망자들은 서로 관련이 있으니 유세현이 자연스레 연관 지어 판단해도 전혀 이상치 않다.

그는 이렇게 생각했겠지.

약화는 될지언정 추종자들에게도 어느 정도 효과가 있으리라고.

실제로 생명의 물에 닿으면 1~2% 정도 힘이 약화되긴 하니 웬만큼 유리하지 않으면 피하는 게 좋긴 하다.

하지만 지금은 완전히 그들이 우위를 점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렘벨크와 추종자는 회피하는 것보다도 한시라도 빨리 유세현의 신변을 확보하는 것을 택했다.

그들은 물방울에 닿고 나서야 비로소 엄청난 실책을 저질렀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건!!’

예상했던 오리지널 샘물이 아니다.

화합물로 무언가를 더 넣고 효과를 훨씬 강화시켜 그들에게 있어서는 극독이 되는 물질이다.

‘어떻게??’

생각할 시간 따위는 없었다.

어느새 유세현의 검이 정확히 렘벨크의 목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 * *

“크윽!”

렘벨크는 황급히 몸을 굽혀 피했다. 허나 그것은 미끼였다.

기다렸다는 듯 이어지는 뒤돌려차기.

빠악-

가슴팍에 제대로 발이 꽂히자 렘벨크의 몸이 거칠게 밀려났다. 그가 곧바로 양손에 기운을 끌어올려 반격하려했으나 유세현은 이미 그다음에 다음에 다음까지 보고 있는 상황이었다.

“느려.”

“?!”

퍼버벅-

여태까지 그들이 유세현을 압도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강력한 신체능력과 특수능력 덕분이었다.

반대로 말하자면 이 두 가지를 때놓은 나머지, 순수 전투능력은 영 아니라는 것이다.

굳이 점수를 매겨본다면 일반 대리자들 이하.

이유는 간단했다.

이 추종자들은 전투경험이 적다. 그것이 뻔히 보였다.

그리고 막상 전투를 하더라도 약한 존재를 압도적인 힘으로 찍어 누르면 되었을 것이기에 세세한 움직임을 배워야 할 가치 따윈 느끼지 못하였으리라.

공중제비를 돈 유세현이 그대로 발등에 무게를 실어 렘벨크의 어깨를 내려찍었다.

쿠웅!

“크윽!”

몸을 지지하고 있는 다리가 지면에 파묻힌다. 육체가 약화된 렘벨크는 힘겨워했다.

만약 다른 제사장들이 이곳에 없었다면?

“이놈이!”

치지직-

순식간에 유세현의 양쪽에서 모습을 드러낸 제사장 두 명이 괴성을 지르는 영혼을 양손에 두른 채 그의 몸을 노려왔다.

유세현은 재빨리 하던 행동을 멈추고 루베르크를 하늘로 던짐과 동시에 양손을 교차하여 그 팔을 낚아챘다.

콰앙!

그대로 팔을 풀어헤치며 내려치자 제사장 두 명의 몸이 땅에 박혔다.

유세현은 다른 제사장이 또다시 공격을 감행하려는 것을 눈치 채고 자리를 벗어났다.

“후욱... 후욱...”

한계의 속도로 계속해서 움직인 덕에 차오른 숨이 도저히 진정되지 않는다.

제사장들은 비록 약화가 되었다고 하나 그래도 서로를 커버해 줄 만큼 인원이 많았기에 좀처럼 처리하기 힘들다.

물론...

“아무리 약화되었다지만 어떻게 단 한 명에게...”

유세현이 힘들어하는 만큼, 그들도 적지 않은 쇼크를 먹은 표정이었다.

하기야 당연한 일이다.

거만한 놈들은 자신의 힘이 꺾였을 때 적지 않은 충격을 받기 일쑤다.

‘아무쪼록 빨리 끝내야 된다.’

효과는 시간이 지날수록 서서히 줄어든다.

기화된 물의 잔향이 그것을 조금 늦춰줄 테지만, 아무쪼록 정말 어떻게든 하지 못한다면 위기를 맞게 될 것이다.

유세현은 어떻게 해야 될지 생각했다.

‘저 렘벨크라는 놈... 저놈만 어떻게든 잡는다.’

제1 제사장이건 제5 제사장이건 놈들이 서로를 대하는 말투로 볼 때 그들은 서열이 없는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총괄자가 없는 건 아니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누가 제일 강자인지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위기를 느낀 지금은 개인플레이가 아닌 렘벨크를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

놈을 죽인다면 사기를 꺾고 승리를 가져올 수 있으리라.

일명 한 놈만 노리기 전법!

후웅!

접근하려하자 놈들은 거리를 벌려 사방에서 검은 구체를 던졌다.

접근전으로는 패배할 것을 깨닫고 전략을 바꾼 것이다.

크기가 어마어마하기에 유세현은 필사적으로 움직였다.

피할 수 없는 것은 천마광룡참으로 잘라버리고.

피할 수 있는 것은 회피한다.

유세현은 흡사 곡예와 같은 움직임이 연속적으로 선보이며 다가갔다.

자신이 만들어 날린 구체가 공간과 함께 잘려나가는 것을 본 제사장 한 명이 치를 떨었다.

“큭! 저건 대체 뭐냐! 대체 뭐기에 망자의 함을 이렇게 간단하게 자를 수 있는 거지??”

“포레메츠! 집약기 말고 확산기를 사용해라! 움직일 공간을 차단해!”

“크으으! 알았다!”

충고를 새겨들은 제사장이 보다 광역능력인 망자들을 흩뿌렸다.

닿으면 몸에 달라붙어 정신을 어지럽히고 신경기관에 손상을 주는 효과가 있지만...

“제사장이란 것들이 하나같이 다 겁쟁이로군. 멀리서 날리는 것밖에 하지 못하다니. 너희들이 할 줄 아는 건 번지르르한 말뿐인가? 내가 이런 거에 맞으리라 진심으로 생각하나?”

“뭐라?”

“도발이다! 걸려들지 마라!”

‘칫.’

제사장들이 전투스타일을 바꿨다. 이는 유세현에게는 결코 좋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일부러 도발을 해본 것인데 뻔해서 그런지 걸렸다.

마력재생은 진즉에 끝이 났고, 마족화도 슬슬 풀려 가는데...

‘영역선포가 끝이 나면 난 진다.’

이제 타임리미트는 2분.

“후웁...”

그는 숨을 들이켰다.

이것에 모든 것을 걸어본다.

천마군림보 운용에 마력을 더 부과하자 그의 몸이 더더욱 가속하기 시작했다.

* * *

‘힘들지만 잡을 수 있다!’

렘벨크는 그리 생각하고 있었다. 몸 상태는 전혀 좋아지지 않았지만 그는 유세현이 조금씩 느려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조금만 더 버티면 한계에 달하겠지.

이변이 발생한 것은 딱 그 순간이었다.

쉬이이익-

공기가 찢어지는 듯한 괴음과 함께 놈이 가속했다. 지금껏 최대치의 능력을 발휘하고 있던 게 아니라는 것인가?

“이, 이 자식! 어딜!”

“꺼져라!”

빠악-

광역스킬을 날리려던 제6 제사장 크리네프가 다가온 유세현을 보고 황급히 쥐고 있던 창을 휘둘렀지만 그는 곧 안면을 강타당해 날아가는 신세가 되었다.

유세현이 보지도 않고 크리네프를 향해 검 끝을 겨눴다.

[천마혈사장.]

콰앙!

검 끝에서 발생한 검붉은 에너지가 크리네프를 휩쓴다.

“크아아아악!”

정통으로 당한 건 아니었지만 팔 한쪽이 완전히 분해되어 사라졌다.

“크리네프!”

“이런!”

이러면 한 명은 전투 불능이다. 팔 한쪽이 없는 것만으로도 유세현에게 목숨을 내주기엔 충분한 탓이었다.

“전부 꺼져!”

유세현은 곧바로 천마대멸겁을 운용했다.

자신을 중심으로 전후좌우 할 것 없이 주위에 모든 것이 괴기스럽게 찌그러지기 시작한다. 그건 추종자들이 사용한 스킬이라고 해서 다를 바가 없었다.

‘남아있는 마력을 고려하자면 천마반탄기로 쳐내는 편이 더 나았겠지만...’

천마반탄기는 천마대멸겁과 달리 검을 사용해야하는 무공이다.

수많은 적이 눈에 불을 켜고 있는 이상 자그마한 틈이라도 내어주는 건 사절이다.

빠악-

접근을 허용한 다른 제사장 한 명이 발길질을 얻어맞고 지면에 내리 꽂혔다. 유세현의 두 눈이 10m 너머에 있는 렘벨크를 향했다.

이쯤까지 접근했다면...

솨아아아-

루베르크의 검신으로부터 발생한 어둠이 넘실넘실 춤춘다. 유세현은 부패의 어둠을 사용할 때 모든 신경을 집중했다.

‘부패의 어둠은 나의 권능...’

단순히 마력을 넣는 것이 아니라, 권능을 담는다는 마음으로 발현시킨다.

후웅!

그가 검을 휘두르자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어둠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렘벨크를 향해 쏟아졌다.

* * *

“......”

렘벨크가 믿을 수 없다는 눈초리로 자신의 몸을 훑어보았다.

왼쪽 어깨를 기점으로 몸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왼쪽 다리가 날아갔다.

막기 위해 방어스킬을 사용했지만 뚫려 이리 된 것이다.

만약 몸체를 당했다면... 죽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통증이 몰아친다.

“크윽... 대단하군.”

렘벨크는 적의를 넘어 순수하게 감탄했다. 급하게 준비했다고는 하나, 이곳은 그들에게 어드밴티지가 있는 장소였다.

아무리 방심했다지만 그런 곳에서 자신들을 당해 내다니...

“높은 격을 지니고 있는 영혼이여... 오늘은 이렇게 물러난다만 다음은...”

슈우욱-

음성이 잔잔히 울리며 렘벨크와 제사장들이 녹아내리듯 사라졌다.

유세현은 경계를 풀지 않았다.

‘정말 퇴각한 건가?’

그 물음에 답하기라도 하듯 점막 덩어리인 환경이 녹아내리며 마치 껍질을 벗겨내듯 배경이 바뀐다.

그는 곧 함정에 빠졌었던 연구실에 홀도 덩그러니 서 있었다.

‘강호는...다른 이들은 어떻게 됐지?’

그가 두리번거리며 동료들을 찾기 시작했다.

허나 아무리 둘러봐도 개미새끼하나 보이지 않았다.

‘설마 전부 당한건가? 아니, 아니다.’

그렇다면 엘프, 델바람도 모두 전멸했다는 소리인데 사실상 이는 말이 안 된다.

유세현은 아직 못 돌아온 것이라는 가정 하에 흥분을 가라앉히고 일단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내부를 샅샅이 뒤져가던 그가 포르말린병 앞에 서자, 화면에서 4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두 명은 천문대와 연구소에서 봤던 크레이 스테이룬스와 베레느크 아루프리아라는 것을 고려했을 때 이들이 크람베르의 설계자들이었다.

유세현이 고개를 들자 그들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이것을 보고 있는 전 인류에게 알린다. 우리는 끝났다. 크람베르의 치명적 오류를 유일하게 교정할 수 있는 베레느크는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이젠 시간이 없다. 곧 세계의 경계가 완전히 무너질 거고 크람베르는 폭주하여 모든 것을 갉아먹을 것이다.]

크람베르의 치명적인 오류는 영혼이 지닌 여러 감정을 서로에게 보다 완벽하게 전달시키기 위해 감정동기화를 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생명체는 무릇 분노라는 감정을 반드시 품고 있다. 단지 평소에는 사회적 관념과 여러 요인들로 인해 절제 되고 있어 드러나지 않을 뿐인 것이다.

그러나 종말이 왔을 때, 무수히 많은 사람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절망, 분노와 함께 밤을 지새웠다.

자신이 왜 죽어야 되는가?

어째서 이런 일이 자신의 세대에 발생했는가?

그런 영혼의 악영향은 크람베르를 물들였고 이내 제 기능을 발휘하지 않게 되었다.

과학자들은 해결할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은 깨달았다.

방도는 이미 동기화된 수많은 영혼을 전부 분리시킨 뒤 리셋을 시키거나 아예 감정 동기화 자체를 없애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하지만 동기화된 영혼을 분리시키는 건 처음부터 설계하지 않았기에 그들의 힘만으로는 불가능.

‘그래서 영혼 관련 분야의 권위자인 라벤이 필요했던 거로군.’

유세현은 이야기가 거의막바지에 다다랐다는 것을 느꼈다.

영상 속에서 베레느크가 말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제 어쩔 수없이 도박을 해보려고 한다.]

[우리는 신의 사자가 내건 거래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만약 이것이 성공한다면 우리는 다시 살아날 것이고, 실패한다면 끝날 것이다.]

[이 영상을 보고 있을 혹시 모를 생존자여, 그대도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생사의 존망을 건 도박에 임하겠다면 끝없는 지하, 그 속에 존재하는 우리의 성을 찾아라. 우리 인류 100억의 희생을 만들어진 차가운 강철의 성을...]

영상은 그것이 마지막으로 끝이었다.

유세현은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100억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철의 성...

‘그렇군. 드디어 알겠다.’

그 의미가 해석 되었다.

이강호도 알지 못했던 철의 성... 그것이 뜻하는 바는 바로 이 세계의 주민들의 영혼이 갇혀 있을 장치다.

크람베르와 동기화 되어 있을 바로 그 장치 말이다!

‘흠...’

하지만 유세현은 동시에 의문이 들었다.

그들이 마지막에 했던 말 때문이었다.

신의 사자? 거래? 생존?

이건 대체...

쨍그랑!

그 순간 포르말린 병이 깨지며 박사들의 시체가 병 밖으로 떨어졌다.

유세현이 혹시 몰라 다가가자 그곳에는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태블릿만한 기기가 땅에 떨어진 채 빛을 내뿜으며 작동하고 있었다.

제6 유적의 진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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