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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왕 유세현-387화 (387/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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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지? 약해도 너무 약하다.’

본래 등장해야 될 서리아귀도 이보다는 훨씬 강하다. 지능은 말할 것도 없고.

처음 놈들이 말을 내뱉었을 때는 크라베스가 떠올랐었으나 놈들을 베어 넘기고 있는 지금에 들어서는 똑똑히 알 수 있다.

이놈들은 크라베스와는 다르다.

지능적인 면도 그렇지만 제일 큰 차이는 특수입자였다.

‘이놈들은 특수입자를 단 1%도 지니고 있지 않다.’

후웅!

콰아앙!

일행의 광역기가 사방으로 쏟아졌다. 일부 공간이 얼어붙고 또 일부 공간은 불살라진다.

유세현이 손을 내렸을 때 일대의 놈들은 완전히 소멸되어있었다.

코인을 흡수한 루시아가 제일먼저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너무 이상한데요.”

단 한마디에 불과했지만 모두가 이 말에 공감했다.

이곳은 최고위 던전이다.

내부로 들어오기 위해서만해도 이 에베스트로에서 조작해야 될 것들이 무려 3가지나 된다.

크라베스가 뭔 짓을 했다 하더라도 난이도가 올랐으면 올랐지, 내려가진 않을 종류의 던전인 것이다.

“함정... 일까요?”

“흠...”

이강호가 왔던 길을 되돌아봤다.

보통 최고위 던전, 아니 중상위 던전만 되도 퇴로가 막혀버리기 일쑤이건만 이곳은 퇴로가 차단되지 않았다.

이도 갑작스레 발생한 이변 중에 하나였다.

이강호가 생각을 말하려는 순간 유세현이 입을 열었다.

“난 아니라고 봐. 함정이었다면 진입하자마자 진즉 퇴로를 막아버렸겠지.”

“하긴... 그것도 그러네요.”

“흠... 그럼 일단 계속 들어가 볼까요?”

가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진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들은 지금 정보가 시급하다.

그리고 이 이변은 생각보다 그리 나쁘지 않은 것일 수도 있었다.

던전의 초반 등장 몬스터가 바뀌었다는 것은, 그 앞에 기다리고 있는 것도 바뀌었다는 뜻이니까.

일행이 지나가자, 외벽이 한 순간 붉게 번쩍였다.

* * *

휘익-

쾅!

20번째 전투가 끝이 났다. 김주희가 이마에서 송글송글 흘러내리는 땀을 닦아내며 말했다.

“후우... 등장 몬스터가 도통 바뀔 생각을 안 하네요.”

“......”

현재 그들은 내부 꽤 깊숙한 장소까지 침투한 상태였다.

등장몬스터는 변한데 반면, 지리는 이강호가 알고 있던 그대로였기에 틀림없었다.

그리고 이에 의구심이 드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일.

“왜 안 바뀌는 걸까요?”

“글쎄...”

현재 이곳에서 답을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에, 일행은 일단 체력을 회복할 겸 잠시 휴식시작을 갖기로 했다.

유세현이 땅에 털썩 앉자, 그 옆에 자리 잡은 김주희가 입고 있던 옷을 한 꺼풀 벗어재꼈다.

“어우... 더워...”

손부채질까지 하는 걸 보니 생각보다도 많이 더운 모양이었다.

유세현은 미미한 실소와 함께 자신 또한 보온용 털옷을 벗었다. 처음 던전에 들어왔을 때는 딱 좋았는데 내부로 꽤나 들어와서 그런지 기온이 약간이나마 오른 느낌이...

‘응?’

거기까지 생각하던 유세현은 착각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미미하지만 정말 기온이 올랐다. 이강호가 사용한 스킬 때문이 결코 아니다.

“이강호!”

그는 곧바로 이강호를 찾았다.

말을 들은 이강호가 냉정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확실히... 기본 온도가 올랐어.”

보통이라면 이렇게 심각하게 반응하지 않을만한 일이었다.

허나, 이곳은 빙하의 던전이라 불리는 장소다.

사방이 얼음으로 뒤덮여있으며, 웬만한 광역 스킬을 사용해도 외벽이 드러나지 않을 정도의 두께를 지니고 있다.

“기온이 오른 이유가 있겠지.”

그들은 곧장 조사를 시작했다.

원인은 구석에 붙어있는 얼음으로부터였다.

“열기는 이곳으로부터 뿜어져 나오고 있습니다 군주이시어.”

“그렇단 말이지.”

아퀼라의 확신에 이강호가 얼음에 손을 얹은 뒤 녹이기 시작했다.

치이이익-

이윽고 드러나는 외벽.

겉으로 보기에는 돌로 된 평범한 벽이었다.

허나, 손을 대고 있던 이강호는 미세한 틈 사이사이로 뜨거운 바람이 흘러나오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벽을 툭툭 쳐 빈공간이 있다는 것을 알아챈 그가 일장을 내질렀다.

쾅!

쿠구궁!

부서진 벽 너머로 이강호조차도 처음 보는 장소가 모습을 드러냈다.

* * *

저벅 저벅.

내부는 그야말로 개판이었다.

산산조각 나 깨져있는 포르말린 케이스, 이곳저곳에 널브러져있는 부서진 기계파편.

그들이 봤을 때 이곳은 무엇인가를 연구하기 위한 연구소 같았다.

잠시 고민하던 유세현이 말했다.

“강호야, 과거에는 이곳을 발견한 이종족이 없다고 했었지?”

“응. 그건 확실해. 이런 건물은 고사하고 길조차 나오지 않았어.”

“그럼 그때는 뭔가 조건이 갖춰지지 않아서였겠군.”

“그렇겠지.”

그럼 그 조건이란 무엇일까?

아무쪼록 크라베스와 관련이 있을 것이 분명하기에 일행은 던전에서 이탈하기로 정한 뒤 이곳의 본격적인 탐사를 시작했다.

걷고 또 걷고.

주의를 요했기에 다 둘러보는 데만 만 하루의 시간이 걸렸지만 수확은 꽤나 있었다.

바로...

“이 건물... 던전의 모든 길과 이어져 있어.”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이 거대 연구소를 중심으로 던전이 구성되어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일행은 좀 더 세세히 살폈다.

그리고 그렇게 발견한 비밀의 방.

“조작할 수 있겠어?”

“아니, 전혀.”

전원이 켜진 기기 앞에서 이강호가 고개를 저었다.

이 컴퓨터처럼 보이는 기기는 이 연구소에서 유일하게 찾은 망가지지 않은 기기였는데 다룰 수가 없는 것이다.

이유는 일행 모두가 알고 있었다.

‘아무런 정보도 모으지 않고 들어왔기 때문이다.’

본래 이곳에 당도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던전을 거쳐야한다.

대리자는 분명 그 과정에서 기기를 다룰 수 있는 방법을 자연스럽게 획득하게 되는 것이리라.

하지만 모두 건너뛰고 와버렸으니 지금의 일행에게는 방도가 없었다.

“으음... 대충 막 눌러보는 건... 역시 안 되겠죠? 헤헤.”

“죽고 싶다면야...”

“하하하... 그냥 해본 말이에요. 선배~”

버튼을 응시하던 김주희가 홱 돌아섰다.

유세현이 이강호를 향해 말했다.

“지금부터 되돌아가서 전부 클리어하고 오는 건 역시 무리겠지?”

“그렇지... 게다가 나도 이곳과 연관되어있는 던전은 한 곳 밖에 몰라.”

“......”

난관봉착.

유세현은 생각했다.

여기서 끝인 것인지, 이렇게 아무 소득도 얻지 못하고 되돌아가야 되는 것인지.’

그는 곧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렇지 않아.’

이 세계, 판도라는 변칙적이다.

함정에 걸려 던전에 떨어지기도 하고, 난데없이 어딘가로 날려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재수 없는 대리자들은 어쩔 수 없이 전부 죽어야하는가?

아니다.

‘분명 이 안에 풀 수 있는 힌트가 있을 거다.’

유세현이 말했다.

“일단, 들어왔던 곳으로 나가서 던전을 계속 나아가보자.”

“흠... 굳이?”

이강호가 반문했다.

이 연구소를 통하면 재료가 존재하는 던전의 끝으로 바로 나갈 수 있는 탓이었다.

하지만 유세현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제 우리의 최종목적은 그 재료가 아니잖아.”

“흠... 혹시 있을지 모르는 단서를 발견해보자 그건가...”

“응.”

“좋아, 가보자.”

이강호가 동의하자 김주희가 힘차게 외쳤다.

“아자잣! 우리 꼭 발견하죠!”

그렇게 일행은 나타나는 적을 죽이며 다시 나아가기 시작했다.

* * *

[아아아아! 살려줘!]

[살려줘!]

던전의 끝이 거의 보이기 시작했다.

나타나는 똑같은 적을 죽여 가며 이곳까지 탐색을 해온 일행이었지만 아쉽게도 원하던 바를 얻진 못했다.

이제 남은 적은 10마리.

놈들은 승산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도주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일반적인 패턴이었다.

달려든 놈들의 95% 이상이 죽으면 놈들은 항상 도주를 시도했다.

물론 그래봐야 스텟도 훨씬 낮은 지들이 어딜 도망가겠냐만은.

“어딜!”

촤악!

김주희가 순식간에 한 마리를 베어 넘겼다.

이어서 루시아와 아퀼라도 각각 두 마리를 처리했다.

순식간에 따라잡은 유세현도 놈을 향해 검을 내지른 찰나였다.

[살려줘! 살려줘!]

그 순간 난데없이 놈의 말이 귀를 타고 고막을 찔렀다. 유세현은 뭔가 위화감을 느꼈다.

그리고 그 위화감은...

‘그래 맞아... 본래 이 던전은 최상급 대리자용이다.’

유세현은 하던 행동을 멈췄다.

처음 놈들과 마주했을 때를 제외하곤 놈들을 죽이는데 너무 익숙해져 지금까지 미처 생각하지 못했는데, 과연 스텟도 올려주지 못하는 놈들은 왜 이곳에 존재하는 것일까?

“잠깐!! 다들 사냥을 멈춰봐!”

“...!!”

유세현이 외치기 무섭게 일행의 움직임이 멈췄다.

다들 살짝 놀란 기색.

“왜, 왜요 선배? 뭔가 잘못 됐어요?”

“아니, 그게 아니라...”

유세현이 동료에게 자신의 생각을 밝히자, 그들은 순식간에 감탄어린 표정이 되었다.

“호오... 과연...”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이야.”

“그래도 걸어볼 만은 한 것 같아요!”

“좋아... 그럼 뒤따라가 볼까?”

일행은 그사이 사라진 놈들을 쫓기 시작했다.

* * *

[살려줘! 살려줘!]

여러 갈래로 나뉘어져있는 길을 놈들이 번개와도 같은 속도로 빠져나갔다.

여러 군데로 나뉘면 한 놈이라도 살 확률이 높건만... 놈들은 하나같이 같은 길을 택했다.

뒤에서 쫓던 일행의 입꼬리가 다분히 올라간다.

이건 그들에게 있어서 무척이나 좋은 징조였다.

그렇게 도착한 연구소로 이어진 길목.

유세현과 일행은 긴장한 눈빛으로 놈들의 행동을 지켜봤다.

마침내 세 놈이 동시에 방향을 꺾자 김주희가 외쳤다.

“정말로 연구소 쪽으로 향했어요!”

“붙어!”

파앗!

행여나 놓칠라 약간이나마 거리를 두고 있던 일행이 순식간에 가속하여 놈들을 따라잡았다. 놈들은 마치 연구소의 지리를 잘 알고 있는 것 마냥 매우 익숙하게 내부를 누볐다.

슈우욱!

미친 듯이 달리던 놈들의 발걸음이 멈춘다. 놈들의 앞에는 이 연구소에서 유일하게 멀쩡한 기기가 놓여있었다.

놈들이 울부짖었다.

[살려줘! 살려줘!]

위이잉-

놈들의 말을 인식한 것일까?

자동적으로 전원이 켜지며 사방에서 퍼져 나오는 붉은빛에 방 전체가 새빨갛게 물들었다.

기계음과 함께 벽에 특수한 문자가 새겨진다.

무슨 문자인진 전혀 알 수 없었으나 유세현은 왠지 모르게 그 문자가 낯설지 않았다.

지이잉-

바닥이 열리며 팔뚝만한 크기의 플라스크병이 올라온다.

플라스크병에는 흑색의 물질이 담겨있었다.

세 개의 눈을 번쩍 뜬 흑색의 물질이 말했다.

[나를 깨운 건 자네들인가.]

일행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 * *

“그렇습니다.”

유세현은 경계를 늦추지 않고 차분하게 답했다.

그러자 흑색의 물질은 플라스크 내부에서 한 바퀴 빙 돌며 이곳저곳을 살피기 시작했다.

언뜻 보기에는 연구소 내부를 살피는 것 같아보였으나 놈의 시선이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결국 일행이었다.

그가 입을 열었다.

[결국 종말이 찾아왔나보군. 그래서 자네들은 누구지?]

“우리는 인간입니다.”

[인간? 흠... 눈이 두개라... 정말 신기하게 생겼군.]

놈이 뚫어져라 유세현을 쳐다봤다.

연구소(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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