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386화 (386/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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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웅!

화면을 향해 주먹이 날아온다.

천문대 곳곳에 달려있던 사이렌이 격렬하게 울리며 시스템이 경고했다.

[치명적 오류 발생! 치명적 오류 발생!]

파짓-

파지지짓-

기기에 격렬한 스파크가 튄다. 이강호가 재빨리 대처해 보려 안간힘을 썼지만 무리였다.

[치명적인 오류를 개선하기 위해 시스템이 다운됩니다.]

[복구 예상 소요시간, 360시간.]

화면의 픽셀이 와르르 무너지며 이내 완전히 다운되는 기기.

“......”

짧은 적막이 감돌았다.

김주희와 루시아는 당연했고, 이강호조차도 상당히 충격을 먹은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대체 어떻게...’

이 기기의 최고장점은 감시당하는 자가 스스로 인지를 못한다는 점이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 기기는 아퀼라의 제3의 눈처럼, 혹은 여타 감시 마법처럼 확실한 매개체가 없기 때문이다.

위험을 무릅쓰고 이 지역에 도달한 자만이 사용할 수 있는 특전.

그것이 이 천문대인 것이다.

“...후우...”

이강호의 입에서 한 번 더 쓰디쓴 한숨이 밀려나왔다.

사실 이뿐만이었다면 그는 이렇게까지 쇼크를 받지 않았을 것이다.

이 기기는 이 유적이 클리어 되기까지 자신포함 여타 종족을 막론하고 크람베르조차도 이 기기를 감지해내지 못했다.

게다가 마지막에는 놈의 음성까지 전송이 되었다.

본래 천문대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

“이제부턴 완전히 미지의 영역이라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편이 났겠군.”

“응?”

“내가 가지고 있는 지식이 하나도 쓸모없을 수 있다는 얘기야.”

이강호가 시약병을 살짝 흔들어댔다.

크라베스는 스틱스를 상대할 때 극상성의 힘을 사용하여 놈을 잡아먹었는데, 그런 걸 고려했을 때 통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이해한 유세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우리를 눈치 챈 것도 그렇고. 어떻게 하는 게 좋으려나.”

일행은 잠시 머리를 맞대고 생각했다.

위치가 발각된 게 분명하였으나 거리가 멀기에 당장은 큰 위협이 되지 않는다.

문제는 이대로라면 계속 휘둘리기만 할 게 너무도 뻔하다는 것.

현재의 상황에서는 가능만 하다면 이 유적을 깔끔히 포기하고 결판이 날 때까지 어딘가 안전한 장소에 숨어있는 편이 베스트였다.

하지만 크라베스는 굉장히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그것이 한눈에도 보인다.

당장이야 어찌어찌 피할 수 있다 하더라도 천문대까지 파악당한 마당에 놈이 뭔가를 하면 할수록 발각당할 가능성은 무척 높다.

김주희가 말했다.

“선택의 여지는 없어 보이네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 주희야.”

루시아도 적극 동의했다.

그리고 이는 나머지 인원들의 생각이기도 했다.

이번에는 이강호가 말했다.

“힘들 거야 모든 걸 이용해야 해.”

천사, 마족과 크람베르의 추종자, 그리고 여러 종족들.

“그럼 일단은 빙하의 던전으로 가보자.”

“주요 던전이니만큼 뭔가 다른 단서가 있을 수도 있겠네요.”

“그러길 바라야지.”

일행이 밖을 향해 등을 돌린 순간이었다.

치직-

치지직-

“...?!”

알 수 없는 노이즈와 함께 완전히 다운되었던 화면이 대뜸 켜졌다.

난데없는 이상 현상에 일행의 눈빛이 돌변한다.

“강호야!”

“몰라! 지금까지 제멋대로 켜진 경우는 한 번도 없었어!”

“...그렇단 말이지.”

일행은 사방을 경계하며 주의를 요했다. 이강호는 잽싸게 컨트롤러로 다가가 살폈다.

“역시... 시스템은 작동하지 않고 있...”

지잉-

그때 화면에 난데없이 한 생명체가 나타났다.

이마를 포함한 세 개의 눈과 붉은빛의 피부, 그리고 마치 가시처럼 삐죽삐죽 서 있는 머리카락.

그자는 주름으로 인해 늙었다는 것만 알 수 있을 뿐 이강호의 기억에도 없는 종족이었다.

이강호가 시험 삼아 물었다.

“너는 누구냐! 정체를...”

[나는 이 장소를 설계한 장본인, 크레이 스테이룬스박사다.]

생명체는 채 말이 끝나기 전에 답했다.

“장본인? 우리가 그 말을 어떻게 믿...”

[우리는 멸망했다.]

“......”

[앞으로 150일, 그것이 우리에게 남은 전부다.]

“...대체 무슨 말을...”

[N3 연구소를 찾아라. 그곳에 우리의 미래가 있다.]

여기까지 본 일행은 그제야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지금 이 자는 자신들을 향해 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건 단순한 영상.

파앗-

제 할 말을 끝낸 스테이룬스라는 작자가 화면에서 자취를 감췄다.

이에 유세현은 생각했다.

과거에는 등장하지 않았던 영상...

‘그러니 이 영상은 분명 크라베스와 관련이 있다.”

그러니 중요한 정보임일 것임에는 틀림없는 사실.

문제는 연결고리를 전혀 모른다는 점이었다.

생뚱맞게 멸망이라니?

‘만약 답이 있다면 N3라고 불린 장소에 있겠지만...’

이강호도 모르는 눈치였다.

아니, 되려 가지고 있던 정보와 규합이 되지 않아 더 헷갈려하는 얼굴이다.

정보의 혼란.

유세현이 이강호의 어깨에 툭 손을 얹었다.

“야, 그만 생각해. 어차피 답 안 나오잖아.”

“흠...”

“일단 예정대로 하자. 답이야 정보를 모으다보면 다다를 수 있겠지.”

“하긴, 좋아 그럼 진짜로 이동하자.”

일행은 밖으로 나가려고 하자 다시 반복되어 울리기 시작하는 영상을 뒤로한 채 천문대를 빠져나왔다.

* * *

쉬이이이-

벨제뷔트의 손으로 부터 빠져나간 어둠의 기운이 루시펠의 몸속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고통으로 인해 루시펠의 인상이 살짝 찡그려진다.

벨제뷔트가 살짝 탄성을 내뱉으며 감탄했다.

“호오... 몸속이 휘저어지는 느낌일 텐데 신음소리 하나 내지르지 않다니 역시 정말 대단하군.”

“......”

“하지만 지금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자, 의식을 집중해라.”

현재 루시펠은 신성기관을 완전히 버린 상태였다.

덕분에 신성력이 완전한 순수마력으로 탈바꿈 되어 어둠의 마력을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가 됐다.

벨제뷔트는 서서히 고유특성을 끌어올렸다.

[동화]

이 고유특성이 없다면 어둠의 힘을 얻는 것은 불가능하다.

일반적인 마력 생성 기관을 어둠의 마력 생성 기관으로 바꿀 수도 없을 뿐더러, 행여나 편법으로 여차저해 해냈다 하더라도 몸의 거부반응으로 인해 산산조각나기 일쑤이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이론상 낮은 확률로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은, 근원 그자체인 마심원을 통째로 넘겨줄 때.

하지만 마왕이 죽으면 죽었지 절대 그런 짓을 할리가 없었으므로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결국 타종족을 마족으로 만들 수 있는 건 오직 자신뿐.

루시펠이 자신의 수족이 되었을 때를 상상한 벨제뷔트의 입꼬리가 자연스레 올라간다.

게다가 더 나아가 추종자들과 계약을 맺었다.

이 세계를 점령하고, 크라베스를 잡게 되면 신물파편도 손에 들어오는 될 가능성이 높았다.

순조롭게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는 일.

슈우우욱-

한편 루시펠은 어둠의 마력을 주입받으면 주입받을수록 의식이 몽롱해지는 것을 느꼈다.

머릿속으로 누군가가 침투하는 느낌.

하지만 힘을 얻기 위해서는 참을 수밖에 없다.

‘...난...’

왜 일까? 한 순간 유세현 일행이 문득 떠올랐다.

핏!

둘을 이어주고 있는 마력이 찌릿 튀었다.

자기방어를 체감한 벨제뷔트는 루시펠과 접촉하고 있는 몸에서 손을 서서히 뗐다.

‘흠... 역시 손쉽게 인격을 건드리게 해주지는 않는군.’

하지만 그는 조바심을 내지 않았다.

자신은 그 고고한 성룡, 리뷔크 젠 데프하우어도 손에 넣는데 성공한 인물이었으므로.

천천히 아주 천천히 물들인다.

그녀는 결국 끓는 물속의 개구리처럼 자신의 수족이 될 것이다.

“크크크, 고생 많았다. 오늘은 여기까지하지. 가서 좀 쉬어라.”

“그럼 그러도록 하죠.”

루시펠이 자리를 떠났다.

그러자 줄곧 이를 지켜보고 있던 제1 제사장 렘벨크가 말했다.

“놈이 핵심 구역하나를 파괴했다. 그곳에서 얻은 정보를 토대로 차례차례 이동해 나가다 보면 결국엔 오랜시간이 지나지 않아 이곳에 당도하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그전에 빨리 특수영혼을 바쳐 크람베르님을 깨워야 된다.”

“알고 있다. 그래서 확실하게 하기위해 이렇게 준비중이지 않나.”

“...저 천사 말인가?”

“그래.”

“이해할 수 없군. 별 대단한 영혼은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만. 아니 되려 격이 떨어졌다. 정말로 특수영혼이 너의 계략에 걸리리라 보는가?”

렘벨크의 말에 벨제뷔트가 피식 웃었다.

“물론, 너희가 오직 영혼의 급만을 운운하며 그것만을 최중시하기에 이해하지 못하는 거다. 이 세상은 너희가 생각하는 것보다 좀 더 복잡하지.”

“...지금까지 해내온 게 있으니 믿긴 믿겠다만 그것과는 별개로 우리도 따로 생각해둔 일을 진행하도록 하겠다.”

그 말에 벨제뷔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상당히 신경이 거슬린 것이다.

그가 설마하는 마음으로 물었다.

“그 일... 설마 일전에 루시펠과 같이 다녔던 그 다섯 명의 인간들과 관련이 있는 건 아니겠지?”

“아니, 바로 맞췄다. 우리는 놈들을 추적할 것이다.”

“하!”

예상과도 같은 답변에 벨제뷔트가 어이없는 탄성을 내질렀다.

그런 쓸모없는 일에 시간을 낭비하다니.

렘벨크가 곧바로 반박했다.

“다시 말하지만 그 중 셋은 너보다도 영혼의 격이 높다. 셋 중 한 명을 바친다면 크람베르님은 깨어...”

“후, 됐다. 그만하도록 하지. 그럴 수가 없다는 대도 말이 안 통하면 어쩔 수 없지. 맘대로 해라. 대신 일을 진행시켰을 때는 내 일을 최우선시 해줘야 되는 건 잘 알고 있겠지?”

“물론이다.”

“그래, 그럼 됐다. 가봐라.”

렘벨크가 이어서 신형을 감췄다.

벨제뷔트는 한동안 렘벨크가 사라진 장소를 응시했다. 필히 개소리일 것이기에 굳이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일임이 분명한데, 왠지 모르게 심기를 건드리는 게 기분이 좋지 못했다.

‘나보다 격이 높다고? 그놈들이?’

벨제뷔트는 루시뷀트와 오르엠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에게도 꿇리지 않는다 생각하는 자였다. 그만큼 자존심이 높고 실력도 있었다.

그는 화를 눌렀다.

그래, 중요한 일을 앞두고 괜한 생각을 갖지 말자.

인간 따위, 아니 인간처럼 행세하는 놈들 따위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벨제뷔트는 더 이상 생각지 않으려했다. 하지만 그 순간 암흑지대에서 루시펠을 찾아갔을 때가 떠올랐다.

‘그때 루시펠은 내 제안을 6개월 미뤘었지. 나를 찾는 동안 다른 할 일이 생겼다고.’

설마...

벨제뷔트는 분명 자존심이 높다. 하지만 그는 그 이상으로 치밀한 작자였다. 그렇지 않았다면 반란을 일으켜 루시뷀트에게서 독립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나중에 한 번... 떠 볼 필요는 있겠군.’

어두운 밤, 빛에 반사된 벨제뷔트의 보랏빛 눈동자가 고요히 빛났다.

* * *

“이건...”

통칭, 빙하의 던전에 들어간 이강호의 표정에 변화가 살짝 일었다.

본래 이 던전의 초반부는 냉기에 특화된 파충류형 도마뱀, 서리아귀의 서식지다.

파충류 특유의 높은 불꽃저항력과 특이능력으로 인한 냉기저항력으로 웬만한 대리자들을 애먹이는 게 초반부의 큰 특징이라면 특징인 것.

그런데 지금은 달랐다.

“뭐지 이것들은?”

지금 이곳에는 본래 있어야 될 도마뱀 대신 인간과 비슷한 형상을 한 새까만 존재들이 있었다.

언뜻 보면 망자라고 착각할 수도 있지만 형체를 확실히 유지하고 있다는 점과 하늘을 날아다니지 않고 흐느적거리며 주위를 배회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차이가 확연하다.

일행은 일단 놈들을 처리해보기로 마음먹었다.

후웅!

이윽고 바람과 같은 속도로 쇄도하는 5명!

놈들의 반응은 생각보다도 느렸다.

화륵!

쿠구구궁!

이강호가 한 놈을 불살라 버린 순간이었다.

[크으?]

마치 감각을 공유하듯 놈들의 목이 일제히 일행에게 돌아갔다. 유세현은 한 순간 알베타스를 마주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놈들...”

놈들의 입이 쫙 찢어진다.

그리고 그 순간, 놈들이 일제히 일행에게 달려들었다.

[캬아아아!]

[괴로워! 괴로워!]

[괴로워어어어어!]

[그만해!!]

속도, 힘, 아무리 잘 쳐봐야 S랭크정도 수준이었다.

게다가 마땅한 스킬도 없는 모양인지 놈들은 팔과 다리, 이빨만을 이용해서 공격해왔다.

유세현은 죽이면서도 찜찜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연구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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