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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왕 유세현-382화 (382/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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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계약이 끝나면 이렇게 될 일이었어.”

이강호는 한마디 하고 할 일을 계속했다.

그녀가 사라졌던 곳을 물끄러미 응시하고 있던 유세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뒤를 따랐다.

확실히 그녀와 어떤 여행을 해왔던 마지막에는 이렇게 되었을 관계였으니까.

하지만...

‘뭐지 이 찜찜함은?’

첨탑위로 도약한 이강호가 꼭대기에 달의 빛을 올려놓았다.

비석위로 쏟아지고 있던 희미한 빛이 달의 거울에 반사되어 첨탑위에 놓여있는 구슬의 중심을 관통한다.

빛을 받은 구슬은 그 빛을 다시 화단에 있는 달의 보석에게 인도했다.

서로 연결되자 공명하며 오색찬란한 빛을 발산하는 세 개의 무구들!

쿠구구구구-

우렁찬 소리와 함께 하늘을 뒤덮고 있던 어둠이 밀리기 시작한다.

동시에 땅을 뒤흔들기 시작하는 어마어마한 진동.

-캬아아아아!

망령들이 괴로워하는 가운데 김주희나 루시아가 동시에 반응했다.

“오!”

피싯!

푸슈슈!

마치 수도꼭지가 터지듯 갈라진 땅속에서 물줄기가 치솟았다.

사원은 언제 그랬냐는 듯 순식간에 물속에 잠겼다.

꼭대기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던 이강호가 그답지 않게 감격스런 얼굴로 유세현을 향해 어깨동무를 걸쳤다.

“세현아 네 팔... 이제 고칠 수 있다. 받아.”

아공간 포켓을 연 이강호는 그 속에서 사혼의 구슬을 꺼내 유세현에게 주었다.

유세현은 기쁜 마음으로 받았지만, 몸이 떠나갈 듯이 기쁘지는 않았다.

루시펠의 그 마지막 표정 때문에 현재에 완벽하게 집중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왜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동료구출에 가담을 해준 것일까.

자신이 힘을 얻은 방법이 너무도 궁금해서? 정말 그거 때문에?

“왜 그래? 왜 멍 때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유세현은 이내 생각하고 있던 것을 털어냈다.

이전부터 줄곧 느낀 것이지만 이런 건 생각한다고 해서 답이 나오는 의문이 아니다. 궁금하다면 옆에 있을 때 물어봤어야 했다.

그리고 그러지 않은 것은 바로 자신이다.

현재의 집중하지 않는 것은 이것을 얻기 위해 애써주었던 동료의 대한 예의가 아닌 일.

유세현이 조심스레 사혼의 구슬을 샘의 중심부에 담그자, 구슬 내부를 가득 메우고 있던 혼탁한 빛이 맑아지며 정보의 변화가 일어났다.

아이템명: 사혼의 구슬.

등급: 유니크 [SSS Rank]

상세정보: 근처에서 죽은 이의 영혼을 복제하여 담는 구슬입니다.

구슬을 파괴함으로서 혼이 생전 지니고 있던 능력을 1회 발휘할 수 있습니다.

트루크의 혼이 담겨져 있습니다.

일그러져있던 혼이 회복되어 능력발휘가 가능합니다.

영혼을 바꾸는 것이 가능합니다.

부서진 구슬은 다시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사용효과: 혼의 능력 발동.

두근-

유세현은 심장이 거칠게 뛰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다.

이강호의 말마 따라 왼팔을 다시 사용할 수 있게 되는 날이 언젠가 오리라 생각하고 있긴 했었지만 그도 사람이었기에 그 날이 언제일지 막연하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사실 현실감은 그다지 없었다.

그런데 정보창이 바뀌는 것으로 그는 확실하게 깨달았다.

드디어 그토록 원하고 원했던 날이 드디어 찾아온 것을.

‘이들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유세현이 고양된 표정으로 동료들을 훑자, 그들이 고개를 살짝 끄덕인다.

콰득-

그가 구슬을 부수자 내부에서 뿜어져 나온 기운이 유세현의 전신을 감쌌다.

* * *

우득- 우드득-

변화는 빠르게 발생했다.

오랜 시간이 흘러 매끈해진 상처 단면을 뚫고 뼈가 툭 삐져나온다.

그 위로 근육이 생성되고 표피 조직이 덮인다.

그 과정에서 상상할 수 없는 격통이 발생했지만 유세현은 눈 하나 깜박하지 않았다. 이정도의 고통은 마심원에 과부하가 걸렸을 때의 고통에 비하자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쉬이이-

육신에서 피어오른 새하얀 김이 수면위로 흩어진다. 어느새 일행의 앞에는 완벽하게 회복된 유세현이 서있었다.

팔을 굽혔다 폈다, 손을 쥐었다 놨다하며 감각을 시험하는 유세현.

이강호가 물었다.

“어때 느낌은?”

피식 웃은 유세현이 왼손으로 그의 가슴을 툭 치며 답했다.

“최고야.”

* * *

몸이 회복되었다는 기쁨도 잠시, 일행은 곧바로 준비해둔 일을 하기 시작했다.

제사장이 쿨 한척 답하긴 했지만, 이 샘은 본디 세 개의 아이템이 모두 모여야만 비로소 봉인에서 해방되는 끔찍한 악조건을 지니고 있다.

아이템이 봉인 지역에 고스란히 숨겨져 있을 때야 어찌어찌 모을 수 있지만 여타 종족의 손에 들어가는 순간 하늘의 별따기가 되어버린다.

때문에 실제로 회귀 전에는 크람베르가 이 세계를 다 뒤덮은 뒤에야 봉인이 해방됐고, 이번에는 루시펠 때문에 개고생을 했다.

그리고 그만큼 이 샘은 그들에게 있어선 풀려선 안 되는 치명적인 맹독이다.

그렇기에 놈들이 일행이 이 샘의 사용법을 모른다 생각한다 하더라도 틀림없이 빠른 시일 내에 점령하려 할 터.

아니, 쫓기는 와중이니 제사장들은 움직이지 않는다 해도 크라베스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일행은 이곳을 떠나기 전 놈들의 힘을 일시적으로나마 약화시킬 수 있는 미완성 약을 만들 생각을 했다.

완벽한 약은 크람베르와 관련 되어있는 몇 가지의 주요 유적지를 탐험하여 재료를 추가적으로 얻어야한다.

“케르카르크의 심장.”

“여기요.”

이강호가 재료의 명칭을 말하자 옆에서 보조하고 있던 김주희가 얼른 심장을 넘겨주었다.

미완성 약은 불완전한 만큼, 완벽한 약을 만드는 것보다도 보다 정밀하게 비율을 맞출 필요성이 있다.

만약 오차가 발생하면 그만큼 약의 효력은 떨어지게 되고, 재수 없으면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기까지 한다.

한 번 제조하는데 희귀재료도 꽤나 많이 써야 되기에 실패는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상황.

이강호는 모든 신경을 약 제조에 쏟았다.

하지만 최근 하는 일이 어디 착착 진행되기만 했던 때가 있었던가.

불청객은 난데없이 등장했다.

“이건!!”

“자이로님! 망령들이 더 이상 접근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뭣이?”

공격하는 망자들을 피해 이동해온 엘프들이었다.

수는 마력으로 파악하건데 총 스물다섯.

그들은 마치 전설 속에나 나오는 장소를 발견한 것 마냥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감탄했다.

“어째서 이곳만 망령들이 접근하지 못하는 걸까요?”

“흠... 이 물 때문인가? 아니면...”

“아무튼 운이 좋았습니다. 설마 그런 놈이 망령들 틈에 섞여있을 줄이야...”

유세현은 안도하고 있는 엘프들을 멀찍이 떨어져 관찰했다.

약이 완성되기까지 10분.

유세현은 저들이 그냥 눈치 채지 못한다면 나서지 않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잠깐! 자이로님! 저쪽 방향에서 미세하지만 열기가 느껴집니다!”

“열기?”

“예! 누군가가 불을 지핀 것 같습니다!”

역시나 예민한 엘프들이 못 알아챌 리가 없었다.

검에 손을 얹자 루시아와 아퀼라도 자세를 잡는다.

하지만 유세현은 그런 둘을 만류했다.

“루시아씨, 약 제조에 지장이 가지 않도록 여길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주희가 잘 방어하겠지만 그래도 만약이란 게 있으니...아퀼라 너도 마찬가지로 이곳을 보호해.”

둘은 깜짝 놀라 반문했다.

“예? 그래도 적은 25명이나 되는데...”

“맞습니다 군주시어. 게다가 군주님께서는 이제 막 팔을 회복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이전 팔을 잃었을 때와 같이 이번에도 적응하는 기간이 필요...”

그때 잘 내뱉고 있던 아퀼라의 말이 대뜸 뚝 끊겼다.

그녀들의 눈앞에는 확신의 찬 눈동자 하고 있는 유세현이 있었다.

아퀼라가 먼저 고개를 푹 숙였다.

“군주님을 믿겠습니다.”

루시아도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무리하시는 것 같아 보이면 곧바로 갈 거예요.”

유세현은 고개를 살짝 끄덕인 뒤 주위를 경계하며 다가오고 있는 엘프들의 앞에 섰다.

엘프들은 살짝 황당하면서도 의아한 얼굴을 했다.

“뭐냐 이놈은...”

“단신?”

그도 그럴 것이 홀로 튀어나오다니?

“겁대가리를 상실한건가?”

엘프들은 우선 주위를 살폈다. 미끼일 것을 고려해서였다.

유세현을 응시하는 통솔자 자이로의 눈매가 게슴츠레하게 변한다.

비슷한 외모에 위화감을 느낀 것이었으나 너무 오랜만에 봐서 유세현의 종족이 사람이라는 걸 곧바로 인지하지 못한 것이다.

유세현이 발을 뗐다.

자이로는 그 순간에서야 비로소 떠올릴 수 있었다.

카시우스가 직접적으로 보내온 공문.

믿을 수 없던 충격적인 내용이었기에 뇌리 속에는 더욱 또렷이 각인된 그 공문은 다름 아닌 한 종족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었다.

로우윈드를 깨부수는 걸로도 모자라 퀴르가스의 부대까지 전멸시키고, 더 나아가 카시우스의 추격에서도 벗어나는데 성공한...

“인간?! 전원!! 산개하...”

서걱-

말을 채 끝낼 새도 없이 최전방에 있던 엘프 한 명의 목이 떨어져나갔다.

그것을 시작으로 새까만 검신이 번개처럼 내리친다.

유세현의 검은 확실하고 정확했으며 빠르고 날카로웠다.

“큭! 미친!”

엘프 한 명이 반사적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그리고 그것이 그 엘프의 생애 마지막 말이었다.

좀처럼 맥을 못 추리며 픽픽 쓰러지는 이들.

지켜보고 있던 루시아와 아퀼라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현재 유세현은 압도적인 스텟이나 스킬로 찍어 누르고 있는 게 아니었다.

오직 순수한 검술만으로 상대하고 있다.

“크윽! 파이어...”

서걱-

엘프 한 명이 채 마법발현도 하지 못하고 또 나가 떨어졌다.

자이로는 추풍낙엽처럼 휙휙 쓸려나가는 부하를 보며 감히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의 부하들이 어떤 존재들인가?

상위종족을 제외한 웬만한 인원들은 압살할 수 있는 실력은 지닌 자들이다.

아무리 체력이 떨어졌거니 해도 그렇지, 스킬도 사용하지 않고 있는 놈에게 이렇게 쉽사리 당하다니?

“워터 웨이브!”

후웅!

거친 물결의 파도가 일었다.

마력을 포함하고 있기에 단순히 일으키는 일반적인 파도와는 비교도 안 될 파괴력을 지닌 파도였다.

허나.

서걱-

유세현이 횡으로 검격을 내지르자 파도가 일자로 갈라지며 윗부분이 부서져 내린다.

천마광룡참을 운용했는가?

아니었다.

그런 연유로 공간이 잘리진 않았으나, 사실 이는 단순히 검격의 풍압만으로는 도무지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인가?

마력운용이 없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자이로의 마음은 동요로 요동치는 반면, 유세현의 마음은 평온하기 짝이 없었다.

천마혈사장의 응용이후, 유세현은 줄곧 앞을 가로막고 있던 안개가 옅어지며 길이 보이는 것을 느꼈다.

지금 그는 그것을 또박또박 틀리지 않게 헤쳐 나가고 있는 중이었다.

“컥... 어, 어떻게...”

맹공을 받던 자이로가 이내 숨을 거뒀다.

엘프들을 전부 처리한 유세현은 숨을 크게 한 번 내쉬었다.

적의 시선을 반대쪽으로 잘 끈 덕분에 동료들은 딱히 방어를 하지 않았음에도 아무런 마법 피해도 입지 않았다.

그리고 무공의 증진으로 인한 성취감.

유세현이 주먹을 다부 쥐었다.

‘할 수 있다.’

천마의 무공을 완벽하게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

그렇게 느낀 유세현은 시체를 모아 돌아가려했다. 이놈들의 시체를 이용하면 좋은 키메라를 제작할 수 있을 터다.

딱 그때였다.

이 사원을 어둠으로 부터 보호해주고 있던 역장이 갈라지며 놈이 내부로 들어온 것은.

놈이 유세현을 발견하기 무섭게 낄낄 웃었다.

“크크크, 드디어 발견했다.”

정세(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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