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381화 (38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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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호의 예리한 눈빛이 반짝 빛난다.

‘눈치 챈 모양이군. 소유하고 있는 달의 빛이 이것과 관련이 있다는 걸.’

독특한 아이템 명칭도 명칭이지만, 에픽 SS랭크라는 좀처럼 볼 수 없는 등급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제 그녀는 이강호가 하려는 일에 스스로가 관련이 있을 수도 있다는 걸 안다.

그리고 생명체는 본디 자신과 관련이 있는 일에 더 큰 관심을 보이기 마련이다.

이강호가 아이템을 보여주기 위해 뻗었던 손을 거두자, 루시펠이 재차 물었다.

“대체 무슨 시도를 하시려고...”

“...흠.”

이강호는 뜸을 들였다.

스스로가 판단하길 자신은 적에게 하려는 일을 결코 알려주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섣불리 말을 내뱉었다가는 그녀는 자신이 왜 노려졌던 것인지 깨닫게 될 것이다.

계약기간이 끝나면 적으로 돌변할 일행을 위해 죽음을 감수하고 움직였다는 점에서 그녀는 바보였으나 멍청이는 결코 아니니까.

그렇게 되면 그녀가 어떤 행동을 취할지 모른다.

그러니...

‘적절하게 완급 조절을 한다.’

이강호는 사원을 걸었다. 그리고 일부러 애매모호하게 말했다.

“달의 힘이 메마른 땅을 비추니 어둠이 가시리라.”

“......”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이정도 뿐입니다. 사원을 조사하다가 혹 특수해 보이는 장소를 발견하면 바로 말해주십시오.”

“...알겠어요.”

일행이 세 팀으로 나뉘어 활동을 시작했다.

사실 그들은 어디어디에 아이템을 안치시켜야 하는지 전부 알고 있었지만 루시펠이 하나의 장소를 찾아 낼 때까지 기다렸다.

첨탑의 꼭대기, 식물이 살아 숨 쉬고 있는 화단의 중심, 그리고 마지막으로 어두운 하늘을 관통하여 희미한 빛이 쏟아지고 있는 비석.

아이템 두개를 순서대로 안치시킨 이강호가 아무런 반응이 일어나지 않자 다분히 혀를 찼다.

“실패군. 아이템이 부족해.”

연기.

일행의 시선이 일시적으로 루시펠에게 향했다가 원래의 장소로 돌아온다.

그들은 현재 온 신경이 루시펠에게 쏠려있었다.

그녀는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눈치 채지 못했다면 꺼낼 가능성이 높다.’

보상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녀도 대리자인 만큼, 아니 복수를 원하는 자인만큼 얻을 수 있는 건 얻어 놓고 싶을 터.

이윽고 그녀가 의미심장한 미소와 함께 말했다.

“이것 때문이군요. 저를 습격한 건.”

“...!!”

일행의 표정이 한순간 뻣뻣이 굳는다.

“눈치 챘던 건가.”

“예. 당신들의 습격에는 뭔가 석연찮은 점이 굉장히 많았었으니까요.”

“......”

이강호는 쓴 입맛을 다신 뒤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할 겁니까? 봉인을 해제한다면 뭔가 보상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인데.”

“...흠.”

루시펠이 턱을 어루만지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계약이 끝나게 되면 세 개의 아이템이 다시 한곳에 모이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 분명하기에 지금 봉인을 지금 해제하는 건 루시펠에게 있어서도 사실 그리 나쁜 일은 아니었다.

침묵이 이어지자 분위기가 고조된다.

루시펠의 한 마디로 모든 게 결정 나는 상황.

이윽고 그녀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좋아요. 하지만 조건이 있어요. 당신들이 이 봉인을 풀어 이루려는 목적이 뭔지 알려주세요.”

“......”

이강호는 최악의 답변에 마음속으로 혀를 찼다.

이렇게 될 가능성을 고려하여, 그녀에게 처음부터 직설적으로 제안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지금에 와선 어쩔 수 없는 상황.

내용을 들은 루시펠이 유세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잘려나가 휑하게 비어있는 왼쪽 팔을 본 그녀가 중얼거렸다.

“그렇군요. 팔을...”

“자, 당신이 말한 대로 저희는 목적을 밝혔습니다. 이번에는 당신이 약속을 지켜줄 차례입니다.”

이강호가 말하자 루시펠이 포켓을 뒤적여 은은한 보랏빛을 발산하는 구슬을 꺼냈다.

이것이 달의 빛.

그녀가 아이템을 넘기려 한 순간이었다.

“잠깐.”

메마른 대지 위로 붉은빛의 마법진이 난데없이 그려짐과 동시에 그 속에서 목소리가 울렸다.

익히 들어본 적 있는, 무척 차가운 음성이었다.

‘이놈은!’

부하와 함께 지면에서 모습을 드러낸 벨제뷔트가 주위를 흘겼다.

이강호의 눈매가 매섭게 올라간다.

‘이곳으로 순간이동을 해오다니.’

판도라내부에서 순간이동류 마법은 제약이 심하게 걸린다. 블링크 같은 근접이동기라면 몰라도 텔레포트 같은 것은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는 마법이었다.

게다가 이 장소는 일반적인 곳보다 더욱 특별하다 할 수 있는 유적지.

‘이놈... 대체 뭘 얻었기에...’

그때 벨제뷔트가 루시펠을 향해 말했다.

“루시펠, 그걸 놈들에게 넘겨주지 마라.”

“......”

“그리고 나와 동맹을 맺고 싶거든 지금 바로 합류해라.”

반 강요였다.

이 때문인지 루시펠의 인상이 살짝 찌푸려진다. 그러자 벨제뷔트는 오해하지 말라는 말과 함께 손을 휘휘 저었다.

“후후. 다 이유가 있다. 그리고 이건 네게 있어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이유지.”

“...이유 말인가요?”

“크크, 그래.”

딱-

벨제뷔트가 손가락을 튕기자 그들의 앞으로 화면이 나타난다.

그 안에는 새하얀 날개가 인상적인 천족들이 비치고 있었다.

“너도 알다시피 천족도 이 싸움에 끼어들었다. 그리고 천족을 이끌고 있는 오르엠은 명실상부 최강자지.”

“......”

“우리는 머지않아 이놈을 잡을 것이다.”

그 말에 루시펠의 눈동자가 살짝 커졌다.

오르엠은 본인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지만, 그 외에도 미카엘, 라파엘 등등 강자들이 놈을 보필하기 때문에 솔직히 말해서 마왕의 세력에서 분할 된 벨제뷔트의 세력이 순수한 무력을 사용해 잡기에는 상당히 무리가 있었다.

“어떻게 말이죠?”

“다 방도가 있지. 조력자가 있다.”

물음에 의미심장한 웃음을 흘린 그가 다시 한 번 손가락을 튕기자 그림자 속에서 다른 이가 불쑥 튀어나왔다.

루시펠은 놈의 얼굴을 확인하기 무섭게 반응했다.

“이 자들은!”

“크크, 그래. 한 번 봤을 거다.”

루시펠 뿐만 아니라 놈을 본 다른 인원들의 동공도 지진을 일으켰다.

벨제뷔트의 옆에 있는 놈은 유세현을 궁지로 몰아넣었던 제사장들이었다.

“우리는 이자들과 계약을 맺었다. 서로 공생관계가 된 거지.”

“...공생관계.”

“그렇다. 이들의 힘은 직접 경험한 네가 더 잘 알고 있겠지?”

“......”

“자, 함께 가자.”

벨제뷔트가 손을 쭉 뻗었다. 욕망이 가득감긴 놈의 보랏빛 눈동자는 희번득 빛나고 있었다.

이에 망설이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루시펠.

놈을 경계하고 있던 이강호가 유세현에게 눈빛을 보냈다.

루시펠이 넘어가고. 놈과 놈의 수하들, 제사장들이 달려든다면 답도 안 나올 것이기에 먼저 선수를 치자는 의미였다.

허나.

“저놈, 진짜가 아니야.”

“그래?”

“응, 미묘하게 달라.”

그 말에 이강호의 시선이 벨제뷔트의 발밑으로 향했다.

저 마법진 때문인가.

아무튼 이렇게 되면 지금은 그냥 지켜보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다.

루시펠은 여전히 망설이고 있었다.

일행을 한 번 바라보고, 벨제뷔트를 한 번 바라보고.

벨제뷔트가 난데없이 실소를 토해냈다.

“루시펠... 저놈들이 네 부하가 아니라는 것쯤은 이제 알고 있다. 그런데 설마 지금 저따위 것들 때문에 망설이고 있는 건 아니겠지?”

여전히 웃고는 있지만 살짝 부아가 치밀어 오른 것이 분명하다.

유세현은 딱히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저런 말을 할 수 있다는 건 일행에 대해 여전히 잘 모르고 있다는 뜻이었기에.

굳이 경각심을 높일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때, 옆에 있던 제사장이 놈의 심기를 더 건드리는 말을 꺼냈다.

“아니, 저들은 강하다. 제9 제사장과 제10 제사장이 저들에 의해 쓰러졌다.”

“제9 제사장? 너희들 중에서는 거의 꼴찌 아닌가?”

“우리들 중에서는 그렇지. 하지만 일반적인 생명체와는 감히 비교할 바가 못 된다. 게다가 저들 중 두 명은 너보다도 높은 격의 영혼을 지니고 있다.”

“...나보다 높다고? 영혼의 격이?”

벨제뷔트의 입꼬리가 살짝 떨렸다. 하지만 그는 이내 시원하게 웃어 재꼈다.

“하하하하! 재미있는 농담이었다! 너희들도 농담을 하는지는 전혀 몰랐군.”

“...우린 농담 같은 건...”

“후후, 알았다. 알았으니 그만 하지. 그보다도...”

벨제뷔트가 루시펠의 눈을 또렷이 바라봤다.

“루시펠, 넌 분명 어둠의 마력을 가지고 싶다 하지 않았었나? 마족이 되고 싶어 했던 거 아니었나?”

“...!!”

“저들이 너를 마족으로 바꿔줄 능력이 있다면 난 흔쾌히 이곳에서 사라지겠다. 하지만 가능할까?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는, 루시뷀트라 할지라도 불가능한 일을 일개 생명체인 저들이 과연?”

그 말은 결정적인 일격이었다.

유세현을 흘끗 살핀 루시펠이 그에게서 등을 돌렸다. 그리고는 말했다.

“...정했어요. 벨제뷔트, 당신을 따라가도록 하죠.”

웃고 있던 벨제뷔트의 얼굴에 더 짙은 미소가 번졌다.

* * *

“자 그럼 가지.”

벨제뷔트가 손을 휘젓자 마법진 중앙이 뻥 뚫리며 이전처럼 웜홀이 등장했다. 루시펠이 대뜸 유세현을 향해 무엇인가를 던졌다.

영롱한 빛을 내는 구슬.

달의 빛.

그토록 가지고 싶어 했던 아이템.

벨제뷔트가 살짝 당혹스런 목소리로 말했다.

“루시펠, 이게 갑자기 무슨 짓이지? 내가 저걸 놈들에게 넘기지 말라고 한 말을 그새 까먹...”

“이미 한 약속 때문에 어쩔 수 없어요. 지키기 않으면 계약 때문에 제가 소멸해요.”

“...계약?”

“예.”

루시펠이 다부지게 답하자, 혀를 찬 벨제뷔트가 마치 괜찮은 거냐는 듯 제사장을 바라봤다.

이에 제사장이 한 마디를 했다.

“샘이 풀리는 것 정도까지는 상관없다.”

“...그런가. 그렇다면야...”

슉-

벨제뷔트가 먼저 자취를 감추고 이어서 제사장의 모습도 사라졌다. 루시펠이 웜홀로 몸을 날리기 전 모두를 향해 살포시 손을 흔들며 말했다.

“짧은 기간 동안이었지만 즐거웠습니다.”

유세현이 듣기에는 왠지 모를 슬픔이 느껴지는 말이었다.

* * *

“어차피 계약이 끝나면 이렇게 될 일이었어.”

이강호는 한마디 하고 할 일을 계속했다.

그는 재빨리 첨탑위로 도약해 꼭대기에 달의 빛을 올려놓았다.

파앗-

그 순간 세 개의 아이템에서 광활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비석위에 올려둔 거울에 반사된 빛이 첨탑위로 날아가 구슬의 중심을 관통한다.

빛을 받은 구슬은 그 빛을 또 화단에 위치한 달의 보석에게 이끈다.

주위를 밝히고 있는 오색찬란한 빛이 하늘을 뒤덮고 있던 어둠을 물리고 일대를 휘감았다.

쿠구구구구-

동시에 발밑을 울리는 어마어마한 진동.

푸슈슈슈!

갈라진 땅속에서 물줄기가 솟아올라 일대를 적신다. 사원은 언제 그랬냐는 듯 순식간에 물속에 잠겼다.

이강호가 첨탑 꼭대기에서 이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세현아 네 팔...이제 고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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