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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왕 유세현-380화 (38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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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세계, 의식의 깊은 곳.

유세현은 새까맣기 그지없는 그 공간속에서 바로 앞에 놓여있는 더 큰 어둠을 마주하고 있었다.

딱히 누가 설명해 주지 않았지만 정체가 무엇인지 자연스레 파악이 된다.

유세현이 도달하지 못하고 있는, 마왕에게서 건네받은 권능의 끝.

유세현은 그걸 잡기위해 본능적으로 손을 뻗었다.

현재 그는 이러한 현상을 처음 경험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마심원에 과부하가 걸렸을 때, 죽을 만큼 괴로울 때 그는 이곳에 발을 들여놓았었다.

닿을 듯하면서도 닿지 않는 손.

항상 이랬기에 그는 조바심을 내지 않았다.

아주 조금이지만, 그는 거리가 더 가까워 졌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이제 도달하기까지 정말 아주 조금, 조금밖에 남지 않았다.

파앗-

밝은 빛이 확산되며 시각이 정상화된다.

눈을 번쩍 뜬 유세현은 여전히 육신을 괴롭히고 있는 고통을 이겨내며 몸을 일으켰다.

“후우...”

얼마나 잔 것일까.

유세현이 옆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던 루시아를 살짝 건드리자 그녀는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깨는 모습을 보였다.

그가 별 대수롭지 않게 질문을 하려던 찰나였다.

“세현씨!”

별안간 그녀가 유세현을 와락 끌어안았다.

“루, 루시아씨...”

평소 조심스러운 그녀의 행실을 생각하자면 말이 안 되는 일이었기에 유세현도 이것에는 살짝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유세현은 이유를 물었다.

돌아오는 대답은 가관.

“예? 제가 한 달 동안이나 기절해있었다고요? 하루도 아니고 한 달?”

“예... 그래서 모두 깨어나지 못하는 거 아닌가 걱정하고 있었어요.”

“......”

유세현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몸도 별로 회복되지 않아 기껏 많이 자봐야 12시간 정도 잤거니 생각했는데 무려 30일이나 뻗어있었다니.

“잠시만요. 모두를 불러올게요.”

루시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 밖을 향했다.

유세현은 그 행동에서 왠지 모를 다급함을 느꼈다.

이윽고 그의 앞으로 하나 둘 집결하는 인원들.

제일 마지막에 들어온 이강호가 유세현을 보기 무섭게 말했다.

“딱 좋은 때에 깨어나줬다 세현아.”

“...역시 뭔가 일이 있는 거야?”

“응. 이 지대...아니 이세계의 정세가 확 변했다.”

“정세가?”

“어, 그건 나중에 자세히 알려줄게. 몸은 좀 어때? 뛸 수 있겠어?”

이강호의 말에 유세현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미안한데 그건 무리일 거 같다.”

“그래? 그럼 업혀. 당장 이곳을 뜰 거니까.”

“알았어.”

유세현이 답하기 무섭게 루시아와 김주희가 동시에 그에게 달라붙었다.

한 순간 교차하는 둘의 시선.

둘은 마치 미리 짜 놓기라도 한듯 동시에 가위바위보를 냈다.

“가위 바위 보!”

“악!”

결과는 루시아의 승.

유세현은 긴급해 보이는 이 와중에 뭐하는 짓인가 싶었지만 시간이 채 0.3초도 걸리지 않았기에 트집을 잡기도 뭐했다.

그렇게 이동을 개시하게 된 일행.

그들이 머물고 있던 장소는 바위틈에 가려진 천연 동굴이었다.

빠져나가자마자 익숙한 환경이 망막에 맺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사방에서 울려 퍼지는 폭음.

현재 그들이 위치한 장소의 가까이에서는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하늘 위를 물들이고 있는 광역스킬의 보건데 규모가 장난이 아니다.

최소 4천 이상.

유세현은 대체 어떤 종족들이 서로 맞붙고 있는 것인지 궁금했다.

암흑지대는 웬만한 대리자들은 발도 붙이기 힘든 장소.

그렇기에 어지간해선 전면전을 치르려 하지 않는다.

한 명 한 명이 다 인재이고 중요한 자원이기 때문이다.

‘대체 뭘 위해서...’

때문에 이러한 전투를 하는 데는 전부 이유가 있을 터였다. 인재들의 죽음을 감수하고 치러야 될 정도의 중요한 이유가.

쾅!

콰과광!

폭음 소리가 점점 더 커져간다. 일행이 격전지로 이동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유세현은 깜짝 놀라 물었다.

“루시아씨 왜 이 방향으로...”

“저곳이 현재 이곳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에요. 그리고 지금이 뚫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기회이기도 하죠.”

“...기회라고요?”

유세현이 의문을 표했다.

저곳을 지나려면 양 종족 모두를 상대해야 되는 부담을 끌어안아야 되는데 되려 기회라고 표현하는 게 이해가 안 가는 것이다.

“보시면 알 거에요.”

루시아가 이강호를 따라 도약했다.

절벽처럼 가파른 돌길을 넘어서자 비로소 전투를 하고 있는 종족들의 모습이 보였다.

유세현은 그들의 정체를 파악한 순간 살짝 경악했다.

“이건...”

종족대 종족 싸움이 아니다.

종족대 망령의 싸움.

[캬캬캬캬캬캬!]

[끼아아아아!]

“큭 빌어먹을 망령들이!”

“죽어라!”

망령을 상대하고 있는 종족은 하나가 아니었다.

리 로버리족과 엘프, 그리고 델바람 등등 그 외에도 다양하게 섞여있다.

그들은 신기하게도 살기위해 서로 협력하고 있었다.

루시아가 이강호의 옆으로 따라붙자 그가 말했다.

“많은 게 변했다고 했지?”

“...확실히.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망자들은 크람베르만이 다룰 수 있잖아? 설마 크람베르가 벌써 부활한거야?”

“아니.”

“뭐? 아니라고?”

“응.”

이강호가 창을 내려 긋자 달려들던 망령이 반으로 갈라졌다. 그가 재차 창을 휘두르며 말했다.

“아까도 말했지만 설명은 나중에... 우선은...”

“그래, 우선은 이곳에서 벗어나자.”

그들이 여타 종족들의 틈 사이로 껴들었다.

* * *

일행은 철저하게 정체를 숨겼다.

루시펠은 날개와 링을 개방하지 않았고, 이강호는 화염을 사용하지 않았다.

김주희나 아퀼라, 루시아도 스킬을 숨기긴 마찬가지.

이목이 집중되지 않은 덕에 길을 뚫는 데 성공.

그렇게 암흑지대를 벗어나 안전한 장소에 도착한 유세현은 어떻게 된 것이지 물었고, 이강호는 그것에 상세하게 답해주었다.

“놈이 그렇게 제사장들을 쳐부순 이후...”

바깥으로 나간 크라베스는 권능을 사용해 망령들을 규합하여 빠르게 암흑지대를 장악해 나갔다.

“놈의 목적은 도망친 제사장들과 우리를 찾아내는 거였어.”

“뭐? 왜?”

유세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사장이야 놈의 입장에선 제거해야 될 놈들이니 그렇다 쳐도 자신들은 왜 추격한단 말인가.

“설마... 우리가 한 협박 때문에?”

“아니. 그럴 리가.”

처음에는 이강호도 그 이유를 추측할 수 없었다.

허나, 루시아에게 정황을 들었고 그는 얼마 걸리지 않아 쉽게 이유를 밝혀냈다.

영혼.

특수특성을 지닌 영혼은 놈들에게 보다 좋은 양분이 된다.

혹은 위협을 느낀 것일 수도 있고.

아무쪼록 제단을 탈출하여 암흑지대로 나온 크라베스는 그들을 해하지 못했다.

던전 탈출이후 놈의 배신을 고려했던 이강호가 달아 놓은 조건 때문이었다.

조건의 내용은 10일간 일행에게 손대지 않는 것.

여기에는 추격불가나 추적불가도 포함되어있었기에 놈은 일단 순순히 자취를 감췄다.

일행은 이 기한이 끝나기 전 이곳을 탈출할 생각을 했다.

문제가 발생한 건 그때.

“내가 잠에서 깨지 않게 된 거구나.”

사실 단순히 깨어나지만 않는 것이었다면 좀 힘들되 어떻게든 할 수는 있었을 터다.

심각한 문제가 된 건 간헐적으로 일어나는 폭주.

처음에는 주위에 있던 모든 것을 부패시킬 정도로 심각했기에 그들은 기다리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추후에는 점차 잦아들게 됐지만 그때는 이미 크라베스와의 약속기간이 끝난 상태였다.

놈은 암흑지대의 탈출 루트를 전부 막은 뒤 그대로 포위하듯 일행을 죄여 왔다.

때문에 본래라면 피터지게 싸워야 되는 상황이 연출되었을 테지만...

망령들에게 피해를 입고 퇴로까지 차단당한 이종족들이 임시연합을 맺어 맞서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늘 연합군이 퇴로를 뚫는다는 것을 파악해 작전을 거행한 것이다.

전부 들은 유세현의 입에서 짧은 한숨이 새어나왔다.

“후... 그렇게 된 거란 말이지.”

설마 일이 이렇게 되어버릴 줄은 상상도 못했다.

엘프, 로리엔에서부터 시작된 작은 날갯짓이 모든 걸 바꿔 놨다.

한눈에 봐도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바뀌어버린 시나리오.

상황을 길게 보고 대리자들을 키워 대응을 하려 했었던 일행으로서는 낭패일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정석적인 대응이 놈에게도 통할지도 미지수.

유세현과 이강호의 시선이 동시에 교차했다.

서로 같은 생각을 한 것.

일단은 본래의 목적대로 달의 샘을 되살리는 걸 시도한다.

* * *

문라이트의 하늘을 아름답게 메우고 있던 달빛이 어둠에 서서히 물들기 시작했다. 회귀전의 크람베르가 그러했듯 크라베스도 똑같이 영역을 확장시키며 세력을 늘리고 있는 것이다.

하늘을 올려다본 이강호가 말했다.

“상당히 진행이 빠르군.”

일행이 이종족들의 눈을 피해 풀숲을 헤쳐 나가는 속도보다도 어둠이 퍼져나가는 속도가 더 빠르다.

‘하지만 크람베르에 비할 바는 아니다.’

크람베르는 부활한지 고작 수 일 만에 문라이트를 뛰어넘어 이 세계의 절반이상을 뒤덮어버렸다.

‘그나마 다행인가.’

쉬이이이-

어둠을 타고 등장한 망자들이 하늘을 헤엄친다.

공격용이 아닌 탐색용 망령.

일행은 망령들이 지상에 내려오지 못하는 낮 시간에는 걷고 밤에는 쉬었다.

그렇게 며칠을 이동했을까.

목적지에 거의 다다랐을 무렵 루시펠이 물었다.

“세현씨 약속을 기억하시죠?”

유세현은 스스로가 했던 말을 떠올리고 약속대로 그녀가 원했던 정보를 주었다.

“튜토리얼...이라고요?”

“예.”

“......”

특수특성을 얻은 장소를 들은 그녀는 무척 실망한 기색을 했다.

허나 곧 세부적인 내용을 듣자 표정이 바뀌었다.

“마왕이라... 어차피 저였다면 얻을 수 없었겠네요. 전 그를 당해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으니.”

루시펠이 하늘을 올려다봤다.

이내 그녀가 유세현을 향해 옅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유세현, 당신은 참 대단한 사람이에요.”

“......”

“당신을 보고 있는 그가 떠올라요.”

그것을 끝으로 그녀는 한동안 새까맣게 변한 하늘을 응시할 뿐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다음날 일행이 튀어나온 몬스터를 처리하고 능선을 지나자 잔뜩 훼손 된 오래된 사원 하나가 그들의 앞에 자리 잡았다.

바짝 메말라 금이 간 땅.

사원 전체를 덮은 채 시들어 죽어있는 나무 덩굴.

여태까지 잠자코 있던 루시펠이 비로소 입 열어 물었다.

“이곳에 왜 온 건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

“시도해볼게 있어서 왔습니다.”

답해주는 이강호의 말투에는 예의가 담겨있었다.

이종족에게 단 한 번도 존대를 해본 적이 없던 그였지만, 목숨을 걸고 유세현을 도와준 그녀만큼은 예외로 둔 것이다.

물론, 그것과 별개로 이를 말해준 데에는 순수한 호의가 아닌 다른 목적이 있다.

“시도요?”

“예.”

이강호가 포켓에서 물품을 꺼냈다.

달의 보석과 달의 거울.

그가 아이템 정보를 개방해 확인시켜주자 루시펠의 눈썹이 한순간 미동을 일으켰다.

루시펠의 결정(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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