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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놈도 그러하고 저놈도 그러하고, 놈들은 이강호가 말해준 추종자중 상급 부류에 속한다.
근접 전투능력은 웬만한 대리자는 그냥 씹어 먹을 수 있을 정도였으며 스킬도 본적 없는 것들이라 대응이 다른 것에 비해 힘들다.
게다가 루시펠이 상대하고 있는 놈은 그녀와 마찬가지로 창술사였기에 그녀의 실력을 충분히 인지하고 방심하지 않고 있었다.
즉.
휘이익-
파앙!
‘큭! 이대로는 위험하다.’
루시펠이 적을 어찌어찌 쓰러트릴 수 있다 해도 자신이 그때까지 버틸 수가 없다.
또한 사실상 그녀가 승리한다는 보장도 없었다. 거기에 다른 잡졸들까지 몰려온다면?
생각을 이어갈 틈도 없이 적이 곧장 다시 쇄도했다.
유세현은 벌처럼 쏘아오는 날렵한 주먹을 검으로 쳐냈다.
하지만 당연히 공격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권갑 사용자인 놈의 주먹이 더더욱 가속한다. 아무리 신묘한 움직임을 선보일 수 있는 유세현이라 한들 하나의 불완전한 팔로 완벽한 대응은 불가능.
퍼억!
이윽고 주먹이 안면을 강타했다. 턱을 맞았다면 그대로 끝장이 났겠지만 유세현이 고개를 잽싸게 틀어 그런 일이 일어나는 불상사만큼은 피했다.
지이잉-
그럼에도 충격의 여파는 컸다.
놈의 파괴적인 힘에 의해 골이 흔들린다.
허나 유세현은 그 때문에 당황하지도 검을 놓치지도 않았다.
그는 추가타를 날리기 위해 움직인 놈의 목을 향해 냉정하게 검을 휘둘렀다.
휘익-
아쉽게도 검은 허공을 갈랐다.
잽싸게 몸을 뒤로 물린 놈의 입에서 비릿한 조소가 흘러나온다.
“크크크, 힘들어 보이는 구나.”
표정은 로브에 가려져 여전히 볼 수 없었으나 완벽하게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하기야 이토록 상황이 극명한데 그런 생각을 안 하는 것이 되려 이상한 것이리라.
놈이 계속 말했다.
“숨기고 있는 패가 있다면 지금 꺼내는 게 좋을 것이다.”
“......”
“역시 허세였나.”
혼잣말을 한 놈이 무언가를 찾기라도 하듯 잠시 주위를 두리번거리는가 싶더니 다시 유세현을 응시했다.
그리고 그 순간.
슈웅!
놈이 육신이 순간이동이라도 한 것 마냥 자리에서 자취를 감췄다.
휘이잉-
돌풍이 분다.
스탭을 좌우로 밟으며 복서처럼 자세를 낮추고 빠르게 파고든 놈의 팔은 어느새 유세현의 근처에 다다라있었다.
유세현은 기회가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한 적들은 대개 빈틈을 보이기 마련이니까.
이번에 놈의 목을 치지 못한다면 이제는 최후의 수단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파앙!
첫 번째 공격은 방어했다.
하지만 권법의 장점은 빠르면서도 매끄럽게 연계공격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파바바바박!
합이 이어질수록 점점 몸이 밀착된다.
놈이 검의 간격에서 벗어나 더욱 안으로 파고들어오게 된다면 가드하기가 더 힘들어지기에 유세현은 거리를 벌리기 위해 다급히 몸을 물리려했다.
허나.
빠악!
“크헉.”
그런 걸 놓칠 놈이 아니었다.
찰나에 생긴 빈틈을 노려 복부를 가격.
놈은 조소를 재차 흘리며 벽을 향해 날아가고 있는 유세현을 향해 도약해왔다.
이 일격으로 끝장낼 생각!
‘끝이다.’
하지만 그때.
쉬익-
난데없이 흑빛의 섬광이 번쩍였다.
“...?!”
재빨리 반응하긴 했으나 완벽하게 피하기엔 상대의 공격은 너무도 빨랐다.
치직-
목을 감싸고 있던 펑퍼짐한 로브의 일부가 잘려나가고 얇게 스친 목에서 푸른 액체가 흘러나온다.
이를 빠득 간 놈이 불타오르는 시선으로 유세현을 노려보며 말했다.
“이놈...설마 일부러...”
“......”
유세현은 그 모습을 보며 마음속으로 혀를 찼다.
얕았다.
놈의 방심을 이용해 위험을 감수하면서 가까스로 만들어낸 기회이건만 이걸 피해낼 줄이야.
“감히...”
분노에 찬 놈이 손을 치켜 들어올렸다.
쉬이이-
피어오르고 있던 입자가 뭉치기 시작하며 수많은 창이 만들어진다.
더 이상 일말의 틈도 보이지 않겠다는 놈의 의지였다.
이제 현 상태로 승산은 0%.
결의를 다짐한 유세현은 권능을 발현 시켰다.
* * *
파짓! 파지직!
콰앙!
합을 나눌 때마다 천지가 요동치듯 공간이 요란하게 흔들렸다.
유세현과 제사장의 전투.
유세현은 마족화까지 사용했으나 일방적으로 압도하지는 못했다.
한계에 다다른 체력과 지속되는 통증 등 여러 복합적인 이유로 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유세현은 1:1전투보다는 암흑투기를 적극 활용해 루시펠과 협공을 펼쳤다.
유세현이 신호를 주자 루시펠이 롱기누스를 투척한다.
롱기누스에는 사용자의 의지를 받들어 이기어검술처럼 공간을 누빌 수 있는 기능이 있었다.
시간이 경과될수록 속도가 줄어 위력은 다소 떨어지게 되지만 롱기누스는 보통의 창이 아닌 신창.
적의 입장에서는 어디서 날아올지 모르는 창에 항상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기에 부담스럽기 그지없다.
치익-
그때 혼란을 틈타 창술사, 제9 제사장의 옆구리를 창의 날이 아슬아슬하게 스쳤다. 제9 제사장은 이 상황이 믿기지 않는 듯 한순간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크으으...이놈들이!! 망자의 함!!”
이어서 사방에 발생되어 쏟아지는 검은 구체.
적들에게 롱기누스가 부담이라면 유세현과 루시펠, 둘에게는 이것이 부담이었다.
뭐로 이루어져있는지는 모르나 그 위력이 하나하나 말도 안 되게 강하기 때문.
챙!
천마반탄기를 운용해 구체를 쳐낸 유세현의 두 눈에 루시펠의 등을 노리는 구체가 비쳤다.
그는 얼른 뛰어가 그 구체를 쳐냈다.
둘 중 한 명이라도 당하면 이 전투는 패배하기에 서로를 반드시 지켜줘야 될 필요성이 있다.
서서히 밀린다는 걸 알았는지 제10 제사장이 제9 제사장을 향해 말했다.
“아비아스! 이놈들의 포획은 포기한다! 자칫 잘못하다간 우리가 당한다!”
“알았다!”
두 제사장의 몸에서 입자가 더욱 빠르게 분출되기 시작했다.
그게 전력이 아니었다는 건가.
곧 생성된 새까만 구체가 이 공간을 완전히 뒤덮었다.
* * *
“허억...허억...허억...”
피어오른 흙먼지 속으로부터 두 명이 비틀거리며 튀어나왔다.
유세현과 루시펠이었다.
가까스로 이긴 하지만 놈들에게서 승리한 것이다.
승리의 보상은 달콤한 코인.
놈들이 떨어뜨린 코인은 수준이 수준이었던 만큼 순도가 정말 높았지만 지금 그들은 이것을 취한 것이 전혀 달갑지 않았다.
유세현이 물었다.
“모, 몸은 좀 어떠십니까.”
“...솔직히 괜찮...지는 않군요.”
“......”
유세현의 입이 한순간 꾹 닫혔다.
사실 그녀가 괜찮지 않다는 것은 그도 익히 알고 있었다.
겉모습도 무척 만신창이였지만 창술사를 처리할 때 놈이 죽음을 무릅쓰고 구체를 컨트롤 하여 기습해 온 것을 루시펠이 막아주려 하다가 대신 적중 당했기 때문이다.
“일단...움직이죠. 전투가 끝난 걸 눈치 챈 잡졸들이 곧 몰려들 겁니다.”
현재 그들은 두 명의 추종자를 제외하고도 잡졸도 처리해둔 상태였다.
2층에서 싸우다가 안 될 것 같은 추종자가 1층으로 도주했는데 그때 잡졸들은 전투에 휘말려 대다수가 죽은 것.
문제는 전부 죽은 게 아니라는 점이다.
현재 그들은 더는 적을 상대할만한 힘이 없었다.
그렇다고 마땅히 숨을 장소를 알고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둘은 곧장 지하를 향할 수밖에 없었다.
세 발자국이면 오르내릴 수 있을 것 같은 계단이 굉장히 길게만 느껴진다.
그때 문득 유세현의 눈가로 루시펠이 비쳤다.
그는 잠시 그녀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저 천사는 왜 굳이 이런 위험을 감수하면서 자신을 따라온다고 한 것일까.
이전부터 느꼈던 의문.
대체 무엇 때문일까?
‘역시 모르겠군.’
어느새 길고 길던 계단의 끝이 나타났다.
바로 앞은 넓디넓은 공동이었는데 지하에 있던 병력들이 소란을 듣고 1층으로 올라와 죽어준 덕에 지금 이곳에 보이는 적은 딱히 없었다.
공동내부로 들어간 둘은 그 끝에 만들어져 있는 두개의 문 앞에 섰다.
눈앞에 뜨는 정보창을 살펴보니 하나는 보통의 철문 문이었고, 다른 하나는 판독이 불가능했다.
유세현은 단서를 찾기 위해 깨질 것만 같은 두통을 버티며 안력을 높였다.
보통이라면 입자 때문에 마력이 가려져 보여야되는데 이곳에는 마력이 잔존하는 게 뚜렷이 보인다.
제어기를 부수기전에는 이 공동자체가 커다란 결계였음이 분명하다.
‘크라베스의 말을 틀리지 않았군.’
이윽고 철문에서 미처 지우지 못한 미량의 혈흔을 발견한 유세현은 온힘을 다해 문을 열어 재꼈다.
“...아니?”
내부에는 적이 있었다.
10명.
유세현과 루시펠은 다시 한 번 힘든 몸을 억지로 움직였다.
* * *
왔던 길을 되돌아가고 있는 이강호와 크라베스.
길 안내를 하고 있던 크라베스가 대뜸 툭 말했다.
“흠...너희들 꽤나 서로를 소중히 여기던 것 같아보였는데. 역시 생명체는 모르는 일이로군.”
“...헛소리 말고 안내나 해라.”
“크큭, 왜? 듣기 거북한가? 내가 틀린 소리를 한 것도 딱히 아니잖나. 내 입은 내거라고?”
“......”
입을 꾹 닫은 이강호가 크라베스를 노려봤다.
사실 평소의 그였다면 놈이 뭐라 말하든 무시했을 테지만, 이건 그만큼 그에게 있어서도 누구에게 언급당하고 싶지 않는, 그런 민감한 소재였다.
놈이 말한 것처럼 자신은 정말로 동료를 버린 것이었으니까.
거짓보다도 진실이 제일 마음 아픈 법이다.
사실 마음 같아서는 지금이라도 돌아가고 싶지만...
‘안돼. 그럴 순 없다.’
자신의 목숨은 자신 것만이 아니니까.
그렇게 얼마를 걸었을까.
이강호는 뭔가 같은자리를 반복하며 헤매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가 크라베스를 향해 말했다.
“네놈...지금 이게 뭐하는 짓이지?”
“뭘 말인가?”
“지금 같은 장소를 빙빙 돌고 있지 않나. 소멸당하고 싶은 건가?”
“......”
그러자 크라베스는 어깨를 들썩이며 아주 자그맣게 웃기 시작했다.
“큭큭큭,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군. 네가 그냥 그렇게 느끼는 것 아닌가? 난 제대로 잘 왔다고? 자봐라 곧...”
크라베스가 통로를 돌자 중간 중간 마다 마크해둔 표식이 나타났다.
시간차를 계산해보니 확실히 잘 가고 있는 게 맞았다.
이강호는 원인을 깨닫고는 입술을 곱씹었다.
‘젠장...’
정신이 딴 곳에 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 지금 그는 유세현과 루시펠이 어떻게 됐을지가 걱정됐다.
“그렇게 걱정이 되면 돌아가지 그래? 아직 그렇게 멀리 오건 아니니까 말이야.”
그리고 그때였다.
콰앙!!
일대를 울리는 진동.
발이 덜덜 떨릴 정도의 울림이다.
이강호는 본격적으로 유세현이 놈들과 맞붙기 시작했다는 걸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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