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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왕 유세현-374화 (374/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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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뚝...

빛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어두운 공간, 천장으로부터 떨어진 물방울이 이마를 살포시 때리자 김주희는 화들짝 놀라며 눈을 떴다.

“헉!”

전투에서 찰나의 기절은 곧 죽음.

김주희는 일단 지끈거리는 머리를 뒤로 하고 몸을 움직여 보려 하다가 이내 자신의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이게 대체 어떻게 된...’

끈적끈적한 액체가 몸을 뒤덮고 있다.

힘으로 풀어보려 했지만 꿈적도 하지 않는다.

‘큭!’

김주희는 현 상황이 무척 심각하다는 것을 단번에 인지했다.

자신의 힘 스텟은 무려 트리플 S랭크, 웬만한 돌조각도 종잇장처럼 찢어버릴 수 있는 힘이 건만 그것이 전혀 통하지 않는다는 건 이 액체는 단순한 액체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아니나 다를까 액체는 몸을 속박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체내에 있는 마력 또한 가져가고 있었다.

‘적에게 붙잡힌 건가? 대체 언제? 어떻게? 난 분명 루시펠이 열어준 포탈 속으로 선배님들과 함께...’

기억이 정리되지 않아 혼란스럽다.

그녀는 일단 제일 기본적인 것들은 하기로 마음을 먹고 주위를 살폈다.

처음에는 아예 보이지 않았지만 어둠에 익숙해진 지금에서는 높아진 안력 덕에 빛이 없더라도 사물이 흐릿하게나마 구별이 간다.

지금 그녀가 있는 공간은 3면이 벽으로 막혀있고, 마지막 1면은 쇠창살 된 전형적인 감옥 형식의 방이었다.

김주희는 같은 방에 아퀼라와 루시아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기 무섭게 몸을 굴려 그들의 곁으로 다가가 깨웠다.

“으으...주희?”

“응, 나야. 몸을 움직여보면 알겠지만 지금 상황이 심각해. 그래서 말인데 난 기억이 잘 안 나서 그런데 너희 둘은 뭐가 어떻게 된 건지 기억나?”

“기...억?”

김주희의 말에 안 그래도 살짝 일그러져 있던 루시아의 인상이 더더욱 구겨졌다.

이내 그녀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말.

“가짜들...”

“가짜?”

“응. 가짜. 세현씨 강호씨 그리고 아퀼라씨와 주희 너도...전부 가짜였어.”

“...!!”

김주희의 눈이 대번에 토끼처럼 커졌다.

그녀 또한 생각이 난 것.

‘맞아...깜박 속아 함정에 걸렸었지...’

으드득-

김주희의 입이 꾹 아물렸다.

자신에게 화가 나서였다.

진짜와 가짜를 파악해내지 못하다니.

김주희가 스스로 자책하는 모습을 보이자 루시아가 한마디 했다.

“자책하지 마. 내가 생각하기에 놈들은 도플갱어가 아니었어.”

아퀼라도 이에 맞장구를 쳤다.

“이 여자의 말이 맞다. 네가 아무리 멍청하다고 해도 성격, 행동...그 뿐 만이었다면 너도 속지 않았겠지.”

맞다, 맞는 말이다. 놈들은 도플갱어가 아니다.

“그럼 대체 그놈들은...”

쾅!

그때 쇠창살의 저편에서 괴음이 울려 퍼졌다.

시선이 돌아가는 건 자연스러운 이치.

“크아아아! 당장 풀어라! 이거 풀란 말이다!”

쾅! 쾅!

소음의 주범은 다른 곳에 격리 되어 있던 이종족이었다.

꽁꽁 묶여있지만 반동을 최대한 이용해 쇠창살을 치고 있는 것.

그러고 보면 맞은편 방도 그러하고 인기척으로 보건데 잡혀온 놈들이 한 두 명이 아닌듯하다.

“......”

눈빛을 교차한 셋은 일단 대화를 멈추고 숨을 죽인 채 바깥을 살폈다.

설마 잡혀 들어온 마당에 대책 없이 난동을 부리는 머저리가 있을 줄은 미처 예상 못했지만이건 적이 누구인지 판별해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소동을 일으킨 놈을 제압하기 위해 누군가는 올 테니까.

아니나 다를까.

저벅. 저벅.

“시끄럽군.”

목소리가 울렸다.

인기척이 단숨에 수그러들며 공간이 무겁게 내려앉는다.

지금 이 공간의 모든 생명체들의 이목은 등장한 이에게 집중되어있었다.

“네놈이냐? 나를 이곳에 가둔 놈이.”

“...그렇다면?”

“당장 나를 풀어라! 그렇지 않으면...”

“않으면?”

“내 부하들과 동료들이 찾아와 이곳을 전부 쓸어버릴 것이다!”

진부적인 말, 허나 상당한 자신감 담겨있는 말이었다.

그만큼 놈은 최상위 3대 종족에는 해당되지 않지만 이종족들 사이에서는 제법 이름을 날리는 그런 놈이었다.

종족은 델바람.

그중에서도 델바람을 대표하는 카그네프 제벨의 3-10부대의 대장.

이름은 그룸파.

“자, 잘 알았으면 어서 나를 풀어줘라. 그렇다면 조용히 넘어...”

자신을 소개하고 주도권을 되찾았다고 느낀 놈의 언성이 살짝 올라간다.

허나.

“시간만 버렸군.”

푹-

장내에 싸늘한 음색이 스쳤다.

그룸파의 목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는 것과 난동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어떻게 됐을지는 안 봐도 뻔한 상황.

곳곳에서 옅은 신음이 새어나온다.

그룸파 정도 되는 자의 협박이 먹히지 않았다는 건 그만큼 이곳 지배자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내 다시 발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점점 가까워지는 발소리.

뭔가 더 볼일이라도 있는 것인가?

눈에 띄어봐야 하나도 좋을 것 없기에 셋은 쓰러진 척 연기했다.

저벅. 저벅.

이내 발걸음이 다시 멈춘다.

놈이 정지한 장소는 셋 바로 앞이었다.

‘뭐지 대체 왜 우리 앞에서...’

아무쪼록 좋은 기회.

김주희는 눈동자만 힐끔 돌려 놈의 외형을 살폈다.

인간형.

빛이 없어 명확하게 보이지는 않지만 다리 두개 팔 두개를 지닌 생명체임에는 틀림없다.

김주희는 이어서 놈의 부하들을 향해 시선을 살짝 돌렸다.

‘...?!’

그 순간 흔들리는 눈동자.

다양한 종족이 섞여있다!

‘대체 이게 무슨...’

이는 도플갱어가 아니고서는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허나 그럼에도 도플갱어는 아니다.

그 속에서 발생하는 모순!

그때 놈이 부하를 향해 입을 열었다.

“이 자인가.”

“예, 그렇습니다.”

“확실히...최상품 중에 더할 나위 없는 최상품이다. 어떻게 일개 생명체가 이런 힘을...”

두 놈들의 시선이 향해있는 곳은 루시아가 쓰러져있는 방향이었다.

“후후후. 이 정도라면 그분께서도...잘 지켜라.”

“예!”

이윽고 놈이 사라졌다.

부하도 제자리로 되돌아갔다.

허나 김주희는 그 자리에서 한동안 미동도 하지 않았다.

최상품이라는 단어와 놈이 지칭한 그분.

죽이면 코인을 얻을 수 있건만 굳이 살려 놓는 이유.

도플갱어 부분은 어찌된 영문인지 여전이 알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확신이 든다.

‘젠장...’

그녀는 입술을 질끈 곱씹었다.

* * *

“이곳에서 벗어나야 돼.”

“동감이야. 하지만 어떻게...”

“진원진기를 사용하면 돼. 내 무공으로 얼린 후에는 힘으로 어찌어찌 부숴버릴 수 있을 거야.”

현 상황의 타개 방법.

허나 이것을 김주희가 말했음에도 아퀼라의 표정은 그다지 좋아지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 후에는? 알다시피 몸 상태도 정상이 아니야. 되려 최악이지.”

“......”

그랬다.

지금 그들의 몸 상태는 당연히 정상이 아니었다. 어쩌면 이 액체를 탈출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이 액체가 특별해서가 아닌 힘이 들어가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쏟아지는 한숨.

그러나 김주희가 생각하기에 이 방법 말고는 다른 방법은 없었다.

아니, 있긴 있다.

구조를 기다리는 방법.

김주희는 알고 있었다. 유세현이 구하러 오리라는 걸.

오지 말라고 해도 올 것이다.

그는 그런 사람이니까.

‘하지만...’

지금 이곳은 그녀가 보기엔 그 어느 장소보다도 무척 위험했다.

도플갱어와 비스무리한 놈을 제작해낼 수 있는 시설이라니.

‘게다가 강호선배는 오지 않는다고 가정 한다면...’

루시펠은 당연히 제외니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럼 세현선배 혼자 오는 게 돼. 오르엠조차도 단신으로 쏘다니지 않는 세계인데...’

김주희는 의지를 굳건히 했다.

기다리는 것은 하지 않는다. 중간에 죽더라도 탈출한다.

아퀼라에게 말하자 그녀의 눈 또한 타오르기 시작했다.

“내가 약한 소리를 했군. 네 말이 전부 옳다. 주군에게 짐이 될 순 없지.”

“그래...해보자 주희야.”

“좋아. 그럼...”

김주희와 아퀼라가 동시에 진원진기를 개방했다.

* * *

“아니 이건 마력? 어떻게!!”

진원진기란 수도꼭지를 확 튼 것 마냥 폭발하는 것이었기에 반응은 곧바로 왔다.

허접한 놈들이라면 눈치 채지 못할 수도 있었겠지만 최상품이라고 한 마당에 그런 놈들을 지킴이로 남겨 둘리가 없었다.

트드득-

한기로 인해 액체가 순식간에 굳어진다.

김주희가 몸을 피자 속박하고 있던 얼음들이 깨지며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큭! 제압해라!”

김주희는 놈들이 달려드는 그 시간동안 두 사람의 몸을 속박하고 있던 액체까지 얼려버린 뒤 철창을 꺾어 열었다.

그리고 시작된 전투.

“받아 보아라!”

아퀼라가 곧바로 절기를 좌우 양방향으로 쏟아냈다.

체력 상태가 좋지 않아 단 한 번 밖에 운용이 불가능했지만, 감옥이라 길이 하나밖에 나 있지 않았기에 적들은 그 일격을 고스란히 받아야 한다.

콰앙!

“크악!”

각 방향별로 세 놈이 뒤로 날아가 벽에 처박혔지만 스킬로 대응했기에 치명상은 아니었다.

게다가 온전한 적이 4마리나 더 있는 상황.

“후우...후우...”

셋은 무거운 몸을 이끌며 놈들과 맞붙었다.

퍽!

퍼버벅!

무기를 빼앗고, 좁은 지형지물을 이용하여 둘러싸이지 않게 한다.

그들은 정말 체력이 부족하다는 것이 무색할 정도로 날아다녔다.

“이겨라! 이겨서 우리도 좀 구해줘라!!”

곳곳에서는 종족을 뛰어넘은 응원의 목소리까지 들려오기도 했다.

허나 아무리 날고 긴다한들 정상적이지 않은 상태에서 공격을 전부 받아 내거나 회피할 수는 없는 법.

“하악...하악...”

전투는 어찌어찌 승리했다.

허나, 그만큼 그녀들의 육신도 만신창이가 되어있었다.

그을린 피부와 자잘한 자상, 김주희는 허벅지가 꿰뚫리기까지 했다.

부족한 체력 덕에 상처는 아물지 않는 상황.

“크으. 이런...”

고작 내부병사를 상대하는 것만으로 이렇게 되다니...

김주희의 눈이 시체로 향했다.

녹고 있다. 육신뿐만 아니라 무기나 방어구도 같이.

‘이놈들 대체...’

셋은 일단 지친 몸을 이끌고 철장을 부순 뒤 갇혀있던 적들은 풀어주기 시작했다.

탈주자는 많을수록 좋다.

액체는 순수한 힘으로 뜯기는 힘드나, 싸움의 여파로 부서진 철장의 예리한 날을 사용하자 생각보다 쉽게 잘라졌다.

그렇게 셋을 탈출시켜주자 그들이 다른 이를 구해 수는 빠르게 늘어갔다.

그중에서는 죽은 줄로만 알았던 그룸파도 있었다.

찔러 죽인 줄 알았는데 입까지 막아버리고 더 단단히 고정시켜놨었던 모양.

아무쪼록 총 갇혀있던 수감자는 32명이었다.

김주희가 뭉친 이들을 둘러보며 엄포를 놨다.

“우리가 좀 다쳤다고 어떻게 해볼 생각 따윈 하지 마라. 그 순간 탈출이고 뭐고 다 엎어버릴 테니.”

“흥! 우리가 멍청인 줄 아나? 그럴 걱정은 하지마라. 우리도 이곳이 보통장소가 아니라는 것쯤은 충분히 느끼고 있다. 지금은 뭉쳐야 할 때다.”

“...알고 있으면 됐고. 난 지금 좀 힘든 상태다. 우리가 너흴 구해줬으니 지금부터 당분간은 너희가 앞장서라.”

“흥! 어차피 전방이나 후방이나 지금은 그게 그거지. 그보다 놈들이 몰려오기 전에 출발이나 하자고!”

32명이 우르르 출구를 나선 순간이었다.

쿠구구궁!

어떤 연유에선지 지진이라도 난듯 전창이 거세게 흔들렸다.

인원들의 얼굴에서 긴장감이 묻어나온다.

딱히 진동 때문이 아니었다.

저 길목 앞에 자리 잡고 서 있는 한 명.

그리고 뒤로 포진해 있는 10명의 부하들.

“네놈!! 잘 만났다! 죽여주마!”

“...흠, 어떻게 탈출했지?”

놈을 알아본 그룸파가 치를 떨며 말했지만 정작 놈은 그룸파에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

놈이 루시아를 응시하며 말했다.

“최상품...너의 작품인가?”

“......”

“뭐, 상관없지. 뭘 하던 너희는 이곳을 빠져나갈 수 없다.”

“큭! 개소리! 가자! 적은 고작 해봐야 11명이다!”

그룸파가 먼저 몸을 날리기 무섭게 다른 이들도 질주하며 달려들기 시작했다.

* * *

“으어어...”

“크으윽.”

피투성이가 된 바닥.

그 위로는 몸을 가누지 못하는 탈주자들이 쓰러진채 신음을 내지르고 있었다.

부하들은 나서지도 않았다.

32명이 단 한 명에게 당했다.

“제, 젠장 할...”

“이들을 다시 감옥으로 옮겨라.”

“예.”

명령이 떨어지자 부하들이 신속하게 움직여 손끝하나 움직일 수 없는 탈주자들을 포박하기 시작했다.

김주희나 루시아도 얌전히 당할 수밖에 없었다.

김주희는 분에 떨었다.

‘큭!’

그녀가 보기에 놈은 못이길 상대는 결코 아니었다.

만전의 상태였다면 이겼을 것이다.

이렇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알고도 감행한 것이긴 하지만...마음이 숙연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때였다.

“제사장이시어!!”

허겁지겁 달려온 부하 한 명이 놈을 향해 말했다.

“놈이! 2층으로 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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