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고의 동굴(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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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걱-
6명 중 4명은 갑작스러운 기습에 손도 써보지 못하고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그만큼 루시펠과 이강호의 실력은 스텟의 우위를 고려하더라도 무척이나 탁월하다.
때문에 유세현은 이때까지만 해도 적에게 잠입한 것을 들키지 않고 넘어갈 수 있으리라 판단하고 있었다.
그래, 놈들이 말도 안 되는 이변을 일으키기 전까지는...
“큭! 대체 어떻게 이곳에! 죽어라!!”
공격을 받기 직전 여성 엘프 한 명이 이강호를 향해 손을 들어올렸다.
파앗-
익숙하기 그지없는 원형의 진이 밝은 빛을 내뿜으며 구현화 된다.
이 순간만큼은 루시펠, 이강호 너나 할 것 없이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저건!’
마법, 그것도 1~3서클 가량 되는 기본마법이 아닌 5서클의 중급마법.
[파이어 블래스트]
쿠우우웅!
타오르는 불꽃이 이강호의 육신을 덮친다. 중급마법이라지만 마력을 모두 쏟아 부었는지 위력은 일반적인 6서클 마법을 웃돌 정도였다.
화염은 파괴적이라 내성을 지니고 있지 않으면 심각한 타격을 입는 만큼, 치명상을 입었으리라 판단한 엘프가 시선이 자연스레 루시펠을 향해 돌아간 순간이었다.
후웅!
턱!
난데없이 불꽃 속에서 뻗어 나온 손이 엘프의 목을 움켜잡았다. 이강호가 불길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자 엘프의 얼굴은 당황으로 물들다 못해 경악어린 표정이 된다.
“커...컥! 어, 어떻게 아무런 타격도...”
뚜둑-
그게 마지막 말.
목이 부러진 엘프는 높은 스텟 덕분에 즉사하진 않았지만,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었다.
그사이 루시펠이 나머지 엘프도 처리.
유세현은 이강호가 놈의 머리를 깨부수기 무섭게 크라베스를 데리고 부리나케 뛰어갔다.
어떻게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단 말인가!
설마 진짜 엘프?
“강호야 이놈들...”
“아니, 진짜가 아니야.”
시체가 액체가 되어 녹아내리고 있다. 게다가 코인도 주지 않는다.
이강호의 말처럼 진짜가 아니라는 뜻.
코인을 응시하는 이강호의 눈썹이 한순간 움찔거린다.
이곳이 예사롭지 않은 장소라 판단이 섰음에도 그가 동류를 구출하러온 이유는 혹시 모를 불확실성 때문에 동료를 버릴 수 없던 것도 있지만, 적들이 도플갱어와는 다르게 스킬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이유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 그 조건 하나 깨졌다.
게다가 놈들이 스킬을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은 이곳이 생각보다 더 위험한 장소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정말로 이대로 계속 나아가는 것이 옳은 것일까?
정체도 모르는 크라베스의 안내에만 의지하며.
[크흐흐흐! 좋군! 좋아!]
크라베스의 음침한 웃음소리가 귀전을 때린다. 놈은 지금까지 쌓아두고 있던 분을 시체를 짓밟는 것으로 풀고 있었다.
“......”
이강호는 눈을 돌려 이번에는 유세현을 응시했다. 유세현의 표정도 별로 좋지 못하다.
분명 많은 갈등을 하고 있는 것이리라.
[크크크! 그럼 가볼까! 곧 놈들이 몰려 올 거다!]
크라베스가 뚫은 길을 향해 몸을 돌렸다.
확실히 고민거리고 자시고 지금 이곳에 그대로 서 있는 건 무척이나 좋지 못한 행동.
일행은 일단 벗어나기 위해 몸을 날렸다.
* * *
현재 일행의 대략적인 구출계획은 이러했다.
지하 감옥에 구속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동료를 구출하여, 내부 특정 장소에 존재하는 포탈을 열고 외부로 탈출한다.
지하 감옥에는 특수한 결계가 쳐져있기에 사전 작업으로 그 결계를 강화 및 유지시켜주고 있는 장치를 찾아 파괴한다.
때문에 본래라면 당장에 장치가 존재하는 2층으로 향했어야 정상이었다.
허나.
“......”
일행은 잠시 멈춰있었다.
첫 번째 전투 이후 약 3번의 전투를 더 겪은 이강호와 유세현 사이에 갈등이 일어났기 때문.
“아무리 봐도 무리다 세현아.”
적들은 내부로 갈수록 더욱 강해졌다.
스텟 수준도 올라가고, 스킬도 사용한다.
종족은 델바람, 엘프, 마족, 천족, 그 이외에도 다양하게 분포되어있다.
아직까지는 상대가 가능하지만...
이강호는 확신했다.
이곳에 존재할 것으로 예상되는 추종자는 보통의 스텟을 지니고 있는 일반적인 추종자가 아닐 거라는 것을.
‘최소 SSS랭크급...’
만약 SSS랭크 급의 추종자가 한 놈일 경우, 현재 전력으로도 상대는 가능하다.
이쪽도 보통은 아니니까.
과거 천족의 최고 전력이었던 루시펠, 화신의 특수특성과 고유특성을 지니고 있는 자신.
그리고 마왕의 힘을 지니고 있는 유세현까지.
비록 루시펠의 신성력의 순도가 이전에 비해 턱없이 낮아져 최상급 강화 버프마법은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고는 하나, 그래도 비벼볼만 한 것이다.
문제는 이런 특수한 장소에 한 놈만 있을 거라는 보장이 없다는 것.
최소 2~3마리.
‘그 뿐만이 아니다. 어쩌면 정말 [놈]이 이곳에 있을지도 모른다.’
크람베르의 최강의 추종자.
통칭, [소울이터]
놈은 비록 열화된 능력에 불과하다지만 크람베르와 같은 영혼포식 스킬을 지니고 있었다.
덕분에 성장하지 못하는 일반적인 적과 다르게 대리자처럼 성장이 가능하다.
회귀 전 순수 스텟으로는 오르엠 조차도 따라가지 못했던 명실상부한 스텟 최강자.
만약 놈에게 치명적인 약점이 없었더라면 그 누구도 공략은 하지 못했을 터다.
그리고 현재 일행은 그 치명적일 약점을 지니고 있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재료가 부족해 만들지 못했다.
일행이 부활시키려고 하고 있는 달의 샘물.
그것이 재료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피해가는 것이 가능하다면 공략이 가능할 터지만, 침입자를 인지한 적들이 목적을 짐작하고 있을게 분명하기에 후반에는 전면전이 될 것이 불보듯 뻔했다.
“네 생각에는 우리가 놈들 전부를 상대할 수 있으리라 생각해?”
“......”
뿌득, 뿌드득-
유세현이 이를 갈았다.
그도 마음속으로는 인정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강호의 가설이 높은 확률로 맞아 떨어질 것이란 걸.
하지만...
‘큭!’
한편 루시펠은 팔짱을 낀 채 흥미로운 표정으로 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비록 유세현과 이강호가 직접적으로 추종자들에 대해서 언급한 적은 없었다지만 생명체이니 만큼 낌새로 느낀 것이다.
이 앞에 지금까지 상대해온 놈들보다 더한 뭔가가 있을 가능성이 높고, 그것 때문에 이러고 있다는 것을.
그녀가 본 바 둘의 의견이 갈린 건 동굴에서 포함하여 두 번째, 하지만 수렴하지 않은 건 처음.
과연 어떤 결론이 도출될 것인가.
[하아, 그래서? 계속 갈 건가 말 건가? 슬슬 정해라.]
30분이 경과되자 크라베스가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유세현은 어떡할지 마음을 정했다.
“강호야.”
“...결정한거냐?”
“응.”
결연한 표정.
이강호는 자신의 이마를 턱 붙잡았다.
“야...말했잖아. 아퀼라나 루시아씨 뿐만 아니라 주희도 네가 오지 않는 걸 원할 거라고.”
“그래, 그러겠지. 주희는...바뀌었으니까.”
“......”
무거운 침묵이 감돈다.
유세현이 말을 이었다.
“그래서 말인데, 강호야 넌 돌아가.”
“응?”
“넌 돌아가라고.”
이강호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유세현이 무슨 생각을 한 것인지 읽을 수 있었다.
이강호는 영웅.
그는 미래의 동료를 대변해서 온 사람이었다.
항상 최선을 선택하여, 그들의 바람을 이뤄줘야 될 의무가 있다.
물론, 유세현이 과거 목숨을 바쳐 살려주지 않았다면 그는 동료를 만날 수도 없었겠으나...유세현은 스스로의 의지로 그를 살려준 것이었다.
보상을 바라지 않고 한 일이 아니니 그에게 강요할 수 없다.
아니, 할 수 있더라도 결코 하지 않으리라.
“큭, 세현아...한 번 더 생각...”
“정했어. 미안하다.”
유세현은 담담히 말했다.
이 와중에도 미안한 감정이 든다.
만약 신물파편 소유자가 대리자가 아닌 일반 몬스터에게 죽게 된다면 신물파편은 죽인 몬스터에게 귀속되는 것이 아니라, 그 몬스터를 다루는 존재에게 가게 되는데 즉, 이곳에서 죽게 된다면 이 지역의 최고 존재인 크람베르가 지니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놈을 처치하는 자가 단숨에 두 개를 얻게 된다.
‘역시...내가 가지게 되면 안됐던 건데...’
유세현은 그리 생각하며 크라베스에게 말했다.
“강호를 출구까지 안전하게 안내해라.”
[...뭐? 나도 함께 보내겠다는 거냐? 그럼 대체 길을 어떻게 찾으려고...대략적으로 일러주긴 했다만 복잡해서 별 소용없다는 걸 지금까지의 길을 지나온 너라면 잘 알고 있을 텐데?]
“...잘 알지. 하지만 그건 내가 알아서 하겠다.”
[허! 말도 안 되는 소리! 넌 내가 없으면 얼마 못가 포위되어 죽을 것이다.]
“...그럴 수도. 하지만 너와는 상관없는 이야기잖아?”
유세현이 핵심을 집자, 크라베스의 입이 닫혔다.
확실히 맞는 말.
아니, 당초 놈은 이런 대화를 이어나갈 필요성이 없었다.
복수하는 것이 짜릿하긴 하겠지만 그것도 나름이다.
빠져나가면 완벽하게 자유가 되는 건데 뭐가 좋아서 태클을 건단 말인가.
‘역시 뭔가가 있는 건가?’
그렇게 밖에 생각할 수 없다.
이렇게 까지 말했음에도 따라오겠다는 뉘앙스를 풍긴다면 말이다.
잠시 뒤 크라베스가 말했다.
[뭐, 확실히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긴 하지. 좋다, 이 녀석과 함께 빠져나가도록 하겠다.]
“...그래라.”
착각이었나? 아니면 자신이 낌새를 눈치 챈 것 같아서?
뭐 아무렴 어떠하랴.
어차피 갈라질 터인데.
유세현이 굳어있는 이강호의 어깨위에 손을 얹었다. 이강호는 현재 많은 생각이 뇌 내에게서 교차하고 있었다.
기절시켜서 데리고 나간다?
불가능.
설득한다?
불가능.
불가능. 불가능. 불가능. 전부 불가능.
“그럼, 조심히 빠져나가라 강호야.”
“...유세현.”
“그럼...나중에 보자.”
유세현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지금 그에게 자그만 한 희망이 있다면 구출에 성공했을 시 어떻게 탈출해야 되는 지 숙지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무사히 그 장소에 도달할 수 있을 때의 경우지만...
이곳에 무지막지한 적이 있다는 것을 인지한 이상 유세현이 느끼기에도 이건 흡사 자살하러 가는 것과 같았다.
다만 그럼에도 가지 않을 수 없을 뿐.
자신의 목숨을 어떻게 할지는 자신이 결정한다. 돌아가지 못한다면 동생이 무척 슬퍼하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동생처럼, 그들을 버릴 수 없기에.
유세현이 홀로 나서려는 때였다.
스슥-
루시펠이 그에게 다가와 붙는다.
의미하는 바는 간단했다.
‘같이 가겠다는 건가?’
유세현으로서는 전혀 영문을 알 수 없는 행동이었다. 추종자에 대한 정보를 준 것은 아니었으나, 분위기로 봐서 심각성을 느끼기엔 충분했을 터인데.
게다가 무슨 이득이 있다고 이러는 것인가.
무식하게 접근하여 스스로의 목숨을 담보로 협박 할 때도 생각했던 것이지만 정말 이상한 천사다.
아무쪼록 그녀가 따라가 준다는 건 좋아할만한 일.
타닥-
보이지 않는 천장에서 떨어져 지면에 착지한 유세현과 루시펠은 무섭게 자리를 이탈하여 자취를 감췄다.
이강호는 그 모습을 잠시 씁쓸하게 응시했다.
정말로 다시 볼 수 있을까?
욱씬-
심장이 아파온다.
하지만 이강호는 뒤따르지 않고 몸을 돌렸다.
이건 선택.
자신은 유세현의 말마따나 살아남아 해야 할 일이 있다.
모두가 죽더라도...자신은...
그 순간, 머리가 한순간 지끈거리며 목소리가 내면속에 울려 퍼졌다.
[알고...있지?]
이전 몇 번 느껴봤던 감각.
그래, 이건 EX 아이템의 부작용으로 인해 잊혀 졌었던 기억이 잠시나마 떠올랐을 때의 그 느낌이다.
‘왜 하필 지금? 아니, 그보다 까먹은 기억이 또 있다고?’
목소리는 한 명이 아닌 여러 명의 것이었다. 다수가 자신에게 말하고 있다.
[우리가 널...]
[보내는 이유는...]
‘이유는?’
거기까지였다.
목소리가 흐릿해지며 이강호는 이전처럼 곧 자신이 무엇을 듣고 있었는지도,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잊었다.
크라베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뭐하는 거지? 계속 가만히 있을 텐가?]
이강호가 냉담한 어조로 툭 답했다.
“아니, 가지.”
탈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