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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왕 유세현-372화 (372/612)

지고의 동굴(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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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이 가능했던 답변인지라 놀라는 이들은 없었다.

갇혀 있는 이가 자유를 갈망하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니까.

저벅. 저벅.

마력 분포도로 함정이 없음을 확인한 유세현이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가 크라베스와의 거리를 좁혔다.

바로 코앞까지 도착한 그는 철장을 유심히 관찰했다.

‘흠...’

뭔가 굉장한 마법이 걸려있는 게 아닌가했는데, 예상과는 다르게 평범하기 그지없는 감옥.

그 흔한 강화 버프조차도 부여되어있지 않다.

[이 철장은...]

크라베스가 뭔가를 일러 주려 했지만, 그보다도 유세현이 취한 행동이 더욱 빨랐다.

안전하다고 판단한 그가 보다 세밀한 조사를 위해 철장을 향해 손을 갖다 댄 것이다.

이에 한순간 날카롭게 변하는 크라베스의 눈.

이 방에 대해 눈치챈 것도 그러하고, 서슴지 않고 행동하는 것도 그러하고, 잔뜩 경계하는 눈빛이었다.

유세현은 시선을 일부러 모른 척하며 금속으로 된 봉에 천천히 힘을 가했다.

꾸구국-

트득-

재질이 그리 강하지 않은지 압력을 버텨내지 못한 봉의 일부에 균열이 가며 파편조각이 떨어져나갔다.

판단컨대 눈앞의 철장은 대략 S랭크 정도의 힘만 지니고 있다면 무기를 사용해 자를 수 있는 수준.

즉.

‘현재 놈의 순수 무력은 그다지 강하지 않다.’

유세현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떨어진 파편조각을 들어 정보를 확인했다.

아이템명: 영령제원석(파편)

등급: 에픽 [A Rank]

상세정보: 영령의 움직임을 봉할 수 있는 힘을 지닌 원석의 파편입니다. 파손되어 이것만으로는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이 감옥이 놈의 힘을 제한하고 있는 게 아닌가 했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움직임을 봉할 수 있다는 것이 힘을 약화시킨다는 의미는 아니었으니까.

등급을 확인한 그의 눈이 한순간 번뜩인다.

‘에픽이라...’

놈이 예사 놈이 아닐 거란 느낌은 처음부터 들었다.

이강호도 루시펠도 파악하지 못할 정도의 알려지지 않은 약소 종족이 이런 알 수 없는 공간에 이유 없이 감금되어 있을 리가 없기 때문.

놈은 이 세계, 언젠가 부활하여 하늘을 뒤덮을 망령의 왕 크람베르 시나리오와 어떤 식으로든 연관이 되어 있는 게 틀림없다.

그래, 이전 알그하브처럼.

유세현은 일단 파편조각을 이강호에게도 보여주었다.

그의 동공이 미세하게 확장된다.

달의 거울에 비치던 입자, 파악이 불가능 했었던 놈의 정체, 놈이 언급했던 망령의 수하 등등.

그 또한 깨달은 것이다.

이강호가 천천히 입을 뗐다.

“크라베스, 네 제안에 대해 결정을 내리기 전에 몇 가지 듣고 싶은 게 있다.”

[흠...어차피 너희에게 선택권은 없다고 생각한다만...뭐지?]

“별거 아니다. 우선 우리를 어떻게 도와 줄 거냐.”

그 말에 크라베스가 즉답했다.

[너희들을 동료들이 잡혀있는 장소까지 안내해주도록 하겠다.]

“...안내? 설마 그곳의 지리를 꿰고 있다는 뜻이냐?”

[그렇다. 지금은 어떻게 바뀌었는지 모르지만, 큰 틀은 변하지 않았을 테니 찾아낼 수 있다.]

“......”

이강호와 유세현의 눈빛이 한순간 교차했다.

만약 사실이라면 놈은 과거에 그 알지 못하는 지역에서 활동했다는 의미가 된다.

이번에는 유세현이 물었다.

“그 망령의 수하라는 놈들과 너는 어떤 관계지?”

[적대 관계다. 나는 놈들에게 붙잡혀 이곳에 갇혔지.]

“자세한 이야기를 좀 듣고 싶은데...”

[거절한다. 난 나에 대해 별로 말하고 싶지 않다.]

크라베스가 딱 잘라 말 했다.

“그럼 우리는 너를 신뢰할 수가 없다. 네가 연기를 하고 있는 것인지 아닌지 우리가 어떻게 구별하지?”

[...연기? 오호라, 너흰 내가 놈들의 수하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군.]

“바로 그렇...”

[크하하하, 그거 때문이라면 나는 답할 필요가 더더욱 없다.]

크라베스가 기괴한 웃음을 터트렸다. 유세현이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자 크라베스는 연기를 움직여 유세현을 가리키며 말했다.

[거기 너. 너는 이장소를 어떻게 발견할 수 있었지? 아니, 질문을 정정하겠다. 이 장소를 발견하기가 쉬웠나? 결코 그렇지 않았을 텐데?]

“......”

[네가 어떻게 이 장소를 찾아낸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이곳은 오직 나를 가두기 위하여 만들어진 공간이다. 일개 탐지능력 따위로는 절대 찾아낼 수 없지. 만약 내가 놈들의 수하고 너희를 함정에 빠트릴 의도였다면 이 장소를 좀 더 파악하기 쉽게 만들었어야 정상 아닌가? 못 찾을 텐데.]

전부 맞는 말.

그리고 사실 유세현도 깨닫지 못한 척 했을 뿐 익히 눈치 채고 있던 부분이었다.

이곳은 발견하기가 너무 힘들다.

[자! 답은 충분히 되었으리라 본다. 어떻게 할 것이냐! 날 풀어주지 않으면 너희는 동료들이 있는 장소까지 다다를 수 없다. 아니, 이곳을 눈치 챈 만큼 언젠가 다다르기야 하겠군. 하지만 단언한다. 그땐 이미 너무 늦은 후다.]

크라베스의 확신의 찬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린다. 이강호의 표정이 미세하게 구겨졌다.

“잠시 동료들과 상의를 나눈 뒤 결정하도록 하겠다. 5분 정도는 상관없겠지?”

[그 정도는 상관없다.]

셋은 곧 뒤로 물러났다.

이강호가 유세현의 귀에다 대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어때? 놈한테 통찰력이 통할 것 같아?”

통찰력이 통한다면 굳이 협력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

허나.

“모르겠어.”

유세현도 이번만큼은 확신할 수 없었다.

대개 통하지만 통하지 않는 이도 분명 존재 했기에.

만약 실패하면 관계는 회복 불가능이다.

그렇기에 시도한다면 이는 완벽한 도박.

이강호가 쯧 혀를 찼다.

어떻게 해야 크람베르를 약화시킬 수 있는지.

어떤 식으로 공략해야 하는지.

현재 이강호는 크람베르에 대해 그 누구보다도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뭐니뭐니해도 그는 크람베르의 부활이후 직접 그 군세를 상대하기까지 해봤으니까.

그리고 그렇기에 이강호는 지금 닥친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도 잘 알고 있었다.

‘제물...틀림없이 추종자와 관련이 있다.’

크람베르에게는 추종자가 여럿 존재한다.

정확히는 크람베르가 자신의 부활을 위해 창조한 분신.

놈들은 크람베르의 부활 시기를 앞당기기 위해 이 세계를 떠도는 대리자들을 제압해 그 영혼을 제물로 바친다.

놈들은 적게는 SS랭크부터, 강하게는 SSS랭크까지 다양한 전투력을 지니고 있었다.

때문에 지금의 일행이라면 어설픈 놈들은 쉽게 쓰러트리는 게 가능하다. 문제는 향할 장소에 어떤 급의 추종자가 존재하는지 모른다는 것.

만약 최강 추종자가 존재할 경우...

“후우...”

거기까지 생각한 이강호는 답답함에 머리를 쓸어 올렸다. 되는 일이 없다.

하지만 되돌리기에는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승산이 존재하는 이상 유세현은 포기하지 않을 터.

“그럼 그렇게 하는 걸로...”

두 사람이 결정을 내리자, 루시펠은 아무런 이유도 묻지 않고 따라주겠다 했다.

유세현은 그런 그녀를 흘끗 흘겼다. 저 천사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루시펠씨 진실의 비도를 잠시 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루시펠은 아무런 대가도 받지 않고 비도도 순순히 빌려주었다. 물론, 유세현은 억지로 대가를 지불했지만.

크라베스의 앞으로 다시 다가간 그가 비도를 꽂았다.

“이 비도의 능력은...”

잠시 아이템에 대해 설명을 한 뒤 계약을 진행한다.

적어도 지금까지 놈이 내뱉은 말이 진실인지 아닌지 확실히 하기 위함이었다.

허나.

치짓-

후웅!

계약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크라베스가 음침한 웃음을 흘렸다.

[나에게는 적용이 안 되는 물건인가 보군.]

“......”

[자, 그럼 이젠 나를 풀어줘라.]

* * *

쿠구궁!

검에 의해 철장이 갈라지자 크라베스는 힘찬 환호성을 내지르며 아이처럼 기뻐했다.

[흐하하하! 드디어! 드디어! 풀려났다!!]

꾸물꾸물.

시시각각 변화하던 크라베스의 형체가 고착화를 시작한다.

놈은 어느새 인간과 비슷한 형체를 하고 있었다.

[이 모습이 좀 더 편하겠지.]

제 딴에는 위화감을 줄여주기 위한 배려 같았으나, 그 알 수 없는 도플갱어가 떠올랐기에 유세현로서는 그다지 달갑지 않았다.

[이쪽이다.]

크라베스가 밖으로 나섰다. 유세현은 혹시 쓸 일이 있을까 따라 나가기 전 잘라낸 철창을 몇 개 챙겼다.

크라베스를 중심에 두고 포위한 형태로 움직이는 일행.

혹시 모를 도주를 고려한 것이었다.

크라베스는 일행이 지금까지 지나 왔던 길을 빠르게 되돌아갔다.

5층, 4층...그리고 1층.

놈이 마침내 발걸음을 멈췄다.

장소는 이곳으로 들어온 입구였다.

제일 처음 샅샅이 뒤져본 곳이었기에 일행의 경계심이 올라간다. 분위기도 한결 무거워졌다.

당장에 검을 겨누진 않았지만, 수상한 행동을 취할시 그 예리한 칼날은 순식간에 크라베스의 육신을 향하게 되리라.

무언의 압박을 느꼈는지 크라베스가 문에 손을 얹으며 한마디를 했다.

[이 성은 본래 나를 위해 지어진 것이었다. 그래서 지금은 그 누구도 사용하지 않지.]

“......”

[요컨데, 놈들의 입장에서 이곳은 침입자들이 쉽게 발을 들이지 못하도록 한 번 더 거쳐 지나가는 길목이라는 뜻이다.]

쉬쉬쉬-

크라베스가 문에 특수 입자를 불어넣었다. 다른 둘은 이를 보지 못했지만, 유세현의 눈에는 그것이 똑똑히 보였다.

장식처럼 문 곳곳에 박혀있던 특이한 문자들이 허공에 수를 놓으며 입구가 반대로 열리기 시작한다.

[가지. 저곳에 너희의 동료가 있다.]

넷은 동시에 진입했다.

내부는 크라베스가 예고했던 것처럼 전혀 다른 장소였다.

돔의 4배가량은 돼 보이는 높디높은 천장, 그런 천장을 지탱해주기 위해 곳곳에 거대한 기둥들이 솟아올라있다.

바닥은 대리석으로 되어있었고, 길에는 음영이 드러나지 않는 석상들이 일렬로 위엄 있게 자리 잡고 있었다.

유세현은 그 길의 끝으로 시선을 옮겼다.

끝에는 계단이 위치해 있었다. 고개를 들자 어떤 생명체를 본 따 그린 그림이 보인다.

마치 위에서 모든 걸 내려다보는 듯한, 괄시어린 눈초리를 하고 있는 존재였다.

이강호가 마음속으로 곱씹었다.

‘크람베르...’

저벅-

그때 고요한 장내에 난데없이 발소리가 울려 퍼졌다.

일행은 기둥 뒤에 숨기고 있던 몸을 더더욱 밀착시켰다.

얼마 뒤 발소리의 주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흰 날개와 머리위에 떠 있는 링이 유난히 돋보이는 존재, 3인 1개조로 움직이고 있는 놈들은 다름 아닌 천사들이었다.

물론...

‘진짜는 절대 아니겠지만.’

엄청나게 경계하고 있지 않는 것이 기척을 느끼고 다가온 게 아니라 시간마다 정기적으로 하는 수색임을 증명한다.

유세현은 놈들이 사라지자 크라베스를 향해 물었다.

“이곳은?”

[뭐, 대충 느꼈겠지만 보는 바와 같이 어떤 존재를 모시기 위한 제단이다.]

“존재? 저놈을 말하는 건가.”

유세현이 모른 척 손가락으로 그림을 가리켰다. 크라베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맞다. 놈들은 저기 그려져 있는 존재를 받들고 있지.]

“...혹시 너도 처음에는 이들과 한패였던 게 아니냐?”

은근슬쩍 던진 그 물음에 크라베스가 재미있다는 듯 어깨를 들썩였다.

[후후후, 그렇게 물으면 답하리라 생각했나? 잡혀간 동료들에게나 집중해라. 아직 하루 정도의 시간이 남아있지만 널럴한 건 결코 아니니.]

“......”

유세현은 침묵했다. 역시 이런 것에 걸릴 리는 없나.

스스슥-

들키지 않도록 은, 엄폐하여 나아간다.

길이 생각보다 복잡하고, 곳곳에 이종족들이 배치되어있었지만 크라베스 덕분에 통과는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그렇게 3시간가량이 지났을 때였다.

크라베스가 손으로 어느 한 곳을 가리켰다.

[저곳을 뚫어야 한다.]

좌우 각각 3마리씩 총 6마리의 보초병이 감시하고 있는 장소였다.

놈들이 의태하고 있는 종족은 엘프.

루시펠과 이강호가 창을 다잡았다.

본래라면 세 명이 나섰겠지만, 크라베스를 감시할 사람이 필요했기에 유세현은 전투에서 빠졌다.

쉬이이익-

콰아아앙!

이윽고 전투가 시작되자 폭음이 일대를 광활하게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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