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족 아가레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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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냐 이건...’
기분이 무척 더러운 표정.
그의 입장에서는 갑작스레 기습을 당한 것이었기에 당연한 반응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감정에 집어 삼켜져 막무가내로 달려들진 않았다.
그의 머리는 비록 돌이었지만 현재의 심각함을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완전한 돌은 아니었기에.
수많은 언데드들이 이 근방에 배치되어 아이템을 찾고 있었다. 빈틈이 있다고는 하나 다수였다면 진즉 발각 되었어야만 했다.
즉, 적은 소수라는 것인데 판도라에서 소수로 행동하는 인물들은 극히 드물다. 게다가 이길 자신감이 없는 한 머리가 반쯤 돌지 않고서야 먼저 선제타를 가할 리가 없었다.
‘젠장...설마 카시우스인가?’
엘프의 짓이 아니란 것은 전투의 흔적으로 봐서 이미 판명이 난 상태였지만 현재 그렉크스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는 이밖에 없었다.
‘정말로 놈이라면...’
그렉크스가 보좌하기 위해 주위로 몰려든 수하를 향해 명령을 내렸다.
“언데드들을 미끼로 이곳을 벗어난다!”
“예!”
수하 마족들도 토를 달지 않았다.
그렉크스가 반대편으로 몸을 날린 순간이었다.
후우우욱!
화염의 폭풍이 휘몰아쳤다.
고위 마족, 그렉크스도 놀랄 정도의 엄청난 열기였다.
주위가 잠식되고 견뎌내지 못한 스켈레톤들은 순식간에 형체를 잃고 녹아내렸다.
그리고 곧바로 이어 그 중간을 파고드는 냉기.
길이 열리며 그 속에서 일행이 등장했다.
그렉크스와 수하는 그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모습을 확인하기 무섭게 휘둥그렇게 커지는 눈.
‘하이엘프가 아니다!’
이어 그렉크스는 놈들이 누구인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과거 탐욕을 부리며 마족과 가장 많이 계약을 했던 존재.
‘인간?’
그의 눈이 잽싸게 아퀼라를 훑었다.
서큐버스 퀸의 형태를 띠고 있는 존재.
허나, 마족이 인간과 같이 다닌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누구인지 확인은 했지만 그렉크스는 더욱 혼란에 휩싸였다.
인간은 약한 존재였다.
그런데 지금 그의 눈앞에 있는 놈들은 사용하는 기술만 봐도 확실히 강했다.
‘저놈들은 대체 정체가 뭐지?’
3마리의 데스나이트와 머리 없는 기사, 듀라한 10명이 검을 치켜세우고 일행에게 달려들었다.
스켈레톤들도 지지 않고 몸을 날렸다.
이에 이강호가 유세현을 향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이곳은 자신이 맡을 테니 먼저가라는 의미.
모두가 함께 깨부순 뒤 뒤쫓아도 되는 일이었지만 1분 1초가 중요한 상황이기에 선택한 방법이었다.
“세현아 아무리 늦어도 5분 안에는 처리해야 된다.”
“오케이.”
슈욱!
쿠웅!
데스나이트와 격돌하는 이강호를 뒤로한 채 적을 추격해나가는 일행.
오랜만에 마족화를 사용한 유세현의 육신이 더욱 가속했다.
어느새 그는 그렉크스의 근처까지 쫓아온 상태였다.
“...!!”
유세현을 확인한 그렉크스의 미간이 움찔거렸다. 외관 때문이 아니다. 그 속에 내재 되어 있는 힘!
‘이 자식! 분명 인간일 터인데...하지만 이 힘은 분명...’
존재 그 자체에 대해 이해가 불가능하다.
마족들이 장기 기술을 아끼지 않고 쏟아냈다. 그만큼 여유가 없다는 뜻이었다.
‘지옥불꽃!’
‘죽음의 섬광!’
파앗!
콰과과광!
일행을 향해 쏟아진 가양각색의 스킬들!
위력은 상당했다.
산을 이루고 있는 고목들이 힘을 버티지 못하고 부서지고, 수풀이 잿가루로 변해 흩날렸다.
물론.
스슥-
먼지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유세현이 그렉크스의 바로 뒤에 있는 마족, 가르게라스를 향해 검을 뻗었다. 보법을 운용해 회피한 일행들도 저마다 여타 마족들을 향해 공격을 감행했다.
“큭!”
대처하기 위해 다급히 몸을 튼 가르게라스의 눈동자가 파르르 흔들렸다. 생채기가 나 있지 않았다.
전부 회피했다는 의미였다.
‘그새 그걸 전부 피하다니!’
챙!
말도 안 된다 생각되는 일이었지만 유세현의 검을 받은 가르게라스는 더 이상 생각을 이어나갈 수 없었다.
분명 양손 대 한손의 대결이었다.
그런데 조금씩이나마 자신이 밀리고 있었다.
‘말도 안 된다! 어떻게!!’
그렉크스 조차도 한손으로는 가르게라스의 양손을 당해내지 못한다. 게다가 지금 그들은 공중에 떠 있었다.
날개가 있는 마족이야 그렇다 쳐도, 하늘을 날지 못하는 인간들은 힘을 잘 싣지 못해야 한다.
“크윽!”
이윽고 갑주의 일부를 깨부순 유세현의 검이 틈을 파고들어 가르게라스의 가슴을 꿰뚫었다.
가르게라스는 마음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젠장할! 그 와중에 정확히 틈을 노리다니!’
허나, 가르게라스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가 지니고 있는 심장은 3개.
하나가 부서진다 하더라도 다른 기능이 대처할 수 있다. 팔을 잘리는 것보다도 훨씬 나았다.
그런데 그때였다.
쉬익-
검에서 새까만 연기가 피어올랐다. 가르게라스는 그것이 무엇인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부, 부패의 권능?”
어둠은 마족 본연의 강력한 어둠저항력을 깨부수고 가르게라스의 몸을 잠식해 나갔다. 단순 스킬이었다면 저항력에 막혔어야 정상이었다.
그렉크스와 달리 가르게라스는 그제야 눈치 챘다.
“어떻게! 어떻게! 네가 그 힘을!!”
“......”
가르게라스가 고래고래 고함을 내질렀지만 돌아오는 것은 깊은 침묵뿐이었다.
“크아아아악!”
몸이 완전히 바스라지며 그 속에서 코인이 터져 나온다.
그렉크스가 이를 갈았다.
놈이 무슨 존재이고를 떠나 완전히 잘못 걸렸다는 걸 인지한 것이다.
유세현이 검을 높게 치켜세웠다.
슈우욱!
매서운 바람소리와 함께 루베크르가 그렉크스의 머리위로 떨어졌다.
퍼엉!
검으로 내려친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의 둔중한 타격음!
지면에 내리꽂힌 그렉크스가 눈을 부릅떴다.
유세현이 그대로 낙하해오고 있었다.
“크윽!”
다급한 회피.
허나 또다시 공격이 이어졌기에 그렉크스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스텟의 격차가, 다른 것은 그저 그런데 힘 스텟의 차이가 너무 크다.
이건 뭐 해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주위에 있는 스켈레톤들이 달려들었지만...
“선배님! 이놈들은 저희가 맡을게요!”
놈의 동료들이 처리해주고 있어서 유세현에게 접근이 가능한 이는 별로 없었다.
그렉크스는 생각했다.
‘뭐 이딴 괴물들이!!’
하지만 그렉크스는 이대로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그에게는 아직 선보이지 않은 비장의 수단이 있었다.
마족이라면 하나씩 지니고 있는 특수한 능력. 그중에서도 그렉크스가 지니고 있는 능력은 과거 최하급 악마 시절 아가레스의 눈에 뜨일 정도로 정말로 특별했다.
그렉크스가 손을 뻗었다.
‘영역선포!’
파앗-
그를 중심으로 흩어진 어둠이 주위를 순식간에 장악해 나갔다. 유세현의 눈이 잽싸게 주위를 살폈다.
‘이건...’
이내 다시 그렉크스에게 향하는 눈동자.
안 그래도 근육질인 그렉크스의 몸이 더욱 부풀어 올라 흉측하게 변해 있었다. 마력도 상당량 증가한 느낌.
그렉크스가 들고 있던 배틀엑스를 고쳐 잡자 불길이 피어오르며 전신을 장악했다.
영역내부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전신발화!
엄청난 고열이었기에 여태까지 그를 상대했던 적들은 이것에 애를 먹다가 쓰러져갔다.
이번 적은 그러진 않겠지만...
‘한순간 틈은 만들 수는 있겠지.’
한 방.
그렉크스가 노리는 건 오직 그것뿐이었다.
그때 유세현이 한발자국 발을 뻗었다.
쩌저적-
괴상한 소리가 주위를 울렸다. 무엇인가가 부서질 때나 나는 음색이었다.
소리의 근원지를 바라본 그렉크스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어...”
헛바람도 새어나왔다.
공간이 붕괴되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잡아먹히고 있었다.
눈앞의 존재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짙은 어둠에게.
쨍그랑!
완전히 공간이 박살나며 불이 붙었던 그렉크스의 몸이 본래대로 되돌아왔다.
그렉크스의 어깨가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최하급 마족 시절, 재수 없게 고위마족과 마주 쳤을 때나 느꼈었던 기분.
성장한 이후로는 좀처럼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
두려움.
“으아아아!”
그렉크스가 괴성을 지르며 도주하기 위해 등을 돌렸다. 학살과 살육의 표본인 종족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행태였다.
차가운 검신이 그렉크스의 목 끝에 닿는다.
죽음을 앞둔 그의 망막 속으로 어느 한 악마가 불현듯 맺혔다.
무표정한 얼굴로 자신을 응시하고 있는 아가레스.
“아가레...”
서걱-
구조를 요청하듯 손을 뻗는 순간, 그의 세상이 옆으로 기울어졌다.
* * *
피바다로 흥건해진 일대.
주위에는 일행에게 당한 마족들이 싸늘한 시체가 되어 쓰러져있었다.
그렉크스의 품에서 포켓을 회수한 유세현이 곧바로 몸을 돌렸다.
아가레스의 존재를 눈치 채고는 있었지만 원하던 목표는 이뤘다.
이전 가브리엘이라는 대천사가 그랬던 것처럼 특수한 아이템을 이용해 언제 지원이 올지 모르니 벗어나는 게 상책인 것.
스슥-
그렇게 일행이 자취를 감춘 뒤였다.
전투의 현장으로 다가와 주위를 둘러보던 아가레스는 잘려나간 그렉크스의 머리통을 확인하고는 혀를 찼다.
“멍청한 놈.”
그게 끝이었다.
아가레스의 관심 속에 더 이상 그렉크스 따위는 없었다.
아가레스가 유세현의 얼굴을 떠올렸다.
‘대악마보다도 높은 순도의 마력이었다.’
게다가 부패의 권능.
이는 마왕에 근접한 거의 완벽한 권능을 지니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흐음...”
아가레스가 턱을 괴었다.
그는 사실 일전에도 이런 마력을 한 번 느껴본 적이 있긴 했었다.
셀론, 놈을 처리하기 위해 외부로 이동했을 때.
당시에는 정말 찰나의 순간이었던지라 착각이라 생각했지만, 잠시 생각을 되짚어본 아가레스는 확신했다.
지금의 그놈이 그때의 그놈이라는 것을.
‘어떻게 그 힘을 손에 넣을 수 있었던 거지?’
권능은 손에 넣고 싶다고 해서 넣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지금의 대악마들이 지니고 있는 권능도, 일전에 부여받았다가 판도라로 이동되며 운이 좋아 일부 유지되고 있는 것에 불과했다.
오직 단 한 명에게 부여되는 힘.
권능이란 탄생부터 지니고 있는, 일개 생명체로는 결코 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
그런데 그런 힘을 나약한 인간이 가지고 있다니.
‘게다가 나머지 인간들의 능력도 예사능력이 아니었다.’
한 명은 레드 드래곤의 파이어 브레스 이상의 화염을, 다른 한 명은 화이트 드래곤의 아이스 브레스와 거의 동등한 위력을 선보였다.
서큐버스 퀸도 일개 서큐버스 퀸과 달리 장난이 아니었고.
그중에서도 아가레스가 제일 유별나다고 생각된 건 백발의 인간 암컷이었다.
‘우리들의 힘과 비슷하다. 하지만 명백히 다르다.’
다른 종족이라면 몰라도 마족이었기에 그는 확실하게 분별이 가능했다.
흥미가 간다.
아니, 흥미가 가는 수준이 아니었다.
만약 권능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한다면, 그 힘을 손에 넣게 된다면 팔이 잘린 것과는 별개로 더 위로 올라 갈수 있을 터이기에.
‘셀론...힘을 제약당한 데다가 방심하여 그렇게 된 것인 줄 알았는데...’
아가레스의 어깨가 들썩였다.
아가레스는 이 일을 숨기고, 군주인 벨제뷔트에게도 알려주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렉크스의 부대가 완전히 털린 덕분에 기록 구슬만 찾아 깨부순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하이윈드에게 덮어씌운다.’
그리고 따로 인간을 조사한다.
아가레스의 입에서 음산한 웃음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 * *
안전한 장소까지 이탈한 일행.
마력을 부여하자 나침반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나침반은 각각 달의 보석, 달의 빛, 달의 거울을 가리키는 세 개의 바늘로 구성되어 있었다.
일행은 유심히 들여다봤다.
2개의 바늘은 미동도 하지 않는 반면 나머지 1개의 바늘은 그들이 방향을 바꿀 때마다 이동하여 특정 장소를 가리켜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