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족 아가레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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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호의 입에서 작은 한숨이 새어나왔다.
“쯧...”
나침반은 분명 3개의 아이템을 추적하는 장치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봉인되어있는 위치까지 가리켜주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가 아이템을 얻어야지만 비로소 바늘이 작동을 했다.
즉, 현재 나침반이 뜻하고 있는 바는 1개의 아이템이 해방되었다는 것이었다.
과연 누가 얻은 것일까? 세 개 중 어떤 물건이 해방된 것일까?
일이 복잡해질 가능성이 높았으나 일행은 낙담하지 않았다. 애초에 이 같은 일이 발생했을 것을 대비해 얻은 나침반이 아니겠는가.
일행은 계획대로 이곳에서 가장 가까운 장소, 달의 보석이 봉인 되어있는 광산으로 향했다.
가깝다고는 하나 그래도 상당히 떨어져 있는 위치였던지라 당도하기까지는 꽤나 많은 시일이 소요됐다.
몬스터들과 조우하고 이종족들과 맞닥뜨리고.
일행이 이강호의 뒤를 따라 빛 한 줌 들어오지 않는 동굴의 내부로 들어서자 탁하면서도 역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사람이라면 기분이 나빠지는 건 당연한 이치.
허나, 이강호는 되려 입꼬리를 올렸다.
누군가 오간 흔적은 확실히 있었다. 하지만 그건 별로 중요치 않은 일이었다.
과거, 아니 미래로부터 알아내온 정보.
이 냄새는 광산의 내부가 완벽히 털리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망설임 없이 나아가는 이강호.
그가 멈춰선 장소는 미세한 구멍을 통해 한 줄기의 빛이 투과되고 있는 곳이었다.
희미한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것이 보인다.
냄새의 원인이었다.
아공간 포켓을 연 이강호가 내부에서 마수의 뿔, 식인 식물의 꽃가루 등등 여러 가지 아이템을 꺼냈다.
그가 마지막으로 이 장소에 도착하기 직전 잡은 악어괴물의 껍질을 내려놓는 순간이었다.
화륵-
재료들이 불타기 시작하며 피어오른 연기가 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쿠구구궁!
거대한 진동이 일었다.
당장이라도 무너질 듯 동굴이 미친 듯이 흔들렸지만 이강호는 선 자리에서 단 한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이윽고 약간의 시간이 흐르자 진동이 서서히 멎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띵-
툭!
진동으로 인해 벌어진 구멍의 틈으로 무엇인가가 뚝 떨어졌다.
아이템명: 달의 보석
등급: 에픽 [SS Rank]
상세정보: 달의 여신의 힘을 일부 담고 있는 보석입니다. 지닌 자의 정신이 보다 맑아집니다.
원하던 물건을 마침내 손에 넣었다.
아니, 사실 거창하게 마침내라고 할 것까지도 없었다. 나침반을 얻을 때보다도 훨씬 쉬웠으니까.
허나 이는 중관과정을 생각했기에 그렇게 보이는 것뿐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였다면, 그래서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조사를 해야 되었더라면 이곳에 도달하기까지 얼마나 걸렸을지 모른다.
정보.
이것은 실로 거대한 힘이었다.
상세정보란을 읽은 유세현이 툭 말했다.
“설명 한 번 지독하게 간단명료하네.”
등급이 무려 에픽 SS랭크다.
이 아이템이 중요한 것이란 건 둘도 없는 사실.
그런데 적혀 있는 것이 딱히 없었다.
기억의 명옥보다도 훨씬 불친절하다.
사용 용도를 모르는 사람은 어디에 쓰이는 것인지, 왜 이 아이템이 존재하는지는 소유자가 직접 추가적인 조사를 해야 되었다.
다른 한 개를 어떤 이가 얻었는지는 모르지만 써져있는 정보가 이거와 비슷하다면 읽고 꽤나 열불이 터졌을 것이 분명했다.
“강호야 네 아공간 포켓에 보관해줘.”
“알았다.”
이강호가 달의 보석을 아공간 포켓에 집어넣었다.
이제 회수해야 될 아이템은 두 개였다.
* * *
같은 시각.
“전부 모아놨습니다.”
“그래?”
수하의 말에 누워있던 아가레스가 몸을 일으켰다.
이내 발걸음을 옮기는 아가레스.
시체를 짓밟으며 도착한 장소에는 타 종족의 생명체들이 사시나무 떨듯이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그가 쫙 찢어진 입꼬리를 씨익 올리자 생명체들의 떨림이 더욱 거세진다.
두려움에 완전히 잠식된 표정.
주위를 둘러본 아가레스가 입을 열었다.
“큭큭큭, 만나서 반갑다 인간. 혹시 우리가 누군지는 알고 있나?”
“......”
대답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자 아가레스가 한 남성의 앞으로 다가갔다.
“난 말이지...”
쉬익-
바람소리가 일었다.
“두 번 말하는 걸 싫어한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사람들은 알 수 없었다.
보이지 않았으니까.
허나, 그것도 잠시.
남성의 목 전체에 선이 그어졌다.
단면에서 핏방울이 한 방울 새어나왔다.
“어?”
이상함을 느낀 남성이 자신의 목을 살짝 어루만진 순간이었다.
툭-
그대로 지면으로 낙하하는 목.
분수처럼 뿜어져 나온 피가 주위를 물들이고 피비린내가 진동한다.
사람들은 경악했지만 감히 비명을 지르지 못했다.
아가레스가 붉은 안광을 번뜩이며 말을 이었다.
“알겠나?”
“......”
“학습능력이 많이 딸리는...”
“아,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아가레스가 움직이려 하자 사람들이 다급히 외쳤다.
고개를 끄덕인 아가레스가 말을 이었다.
“좋아. 봐주지. 그럼 다시 묻겠다. 우리가 누구인지 알고 있나?”
“죄, 죄송하지만 모릅니다.”
“저, 저는 알고 있습니다. 마족 아니신가요?”
의견이 갈렸다.
아가레스가 마족을 언급한 여성을 응시했다.
“제대로 맞췄다. 그럼 혹시 우리 종족의 특성에 대해서도 알고 있나?”
“트, 특성 말인가요?”
“그래.”
“무, 무슨 의미로 하시는 말씀이신지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만...”
“계약 말이다 계약.”
아가레스가 단도직입적으로 설명했다.
“아! 계, 계약 말씀인가요? 아, 알고 있습니다.”
여성의 말에 현대인들의 시선이 그녀에게 쏠렸다.
아가레스가 마음속으로 웃었다.
마족의 계약.
악마인 본인이 설명하는 편보다, 인간 쪽에서 내용을 알고 있는 자가 직접 설명해주는 것이 인간들에게 신뢰를 얻기 쉽기 때문이었다.
“모르는 인간들에게 계약에 대해 설명해라. 암컷.”
“예, 예? 아, 알겠습니다.”
여성은 갑작스런 요구에 당황스러워 했지만 곧 열심히 설명을 이어나갔다.
그녀 스스로도 깨달은 것이다.
잘만 한다면 이곳에서 살아나갈 수 있으리라는 것을.
마족은 계약을 하면 그것을 반드시 지켜야 된다. 그것은 결코 깰 수 없는 룰이었다.
“트리체씨의 말이 사실입니까?”
꼼꼼한 현대인 한 명이 다른 알테리아 대륙인에게 사실 유무를 확인했다.
“예...저도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마침내 현대인들이 납득했다.
아가레스는 지금까지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굳이 돌려 말하지 않겠다. 난 어떤 정보를 원한다. 너희들이 잘 알고 있는 정보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만약 너희 전부가 모른다면 너희들을 죽일 것이고, 너희 중에 한 명이라도 내가 원하는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자가 있다면 계약에 의거해 목숨을 보장해주겠다.”
아가레스는 생명체를 다루는 방법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냥 묻는다면 독기가 있기에 입을 열지 않는다.
어차피 죽을 거 엿이나 먹으라는 것이다.
반면, 적당한 리스크를 동반하여 빠져나갈 길을 제시해 주면 대다수의 인원들은 이에 혹해 입을 열었다.
물론.
‘전부 거짓이지만.’
계약 시스템은 판도라로 넘어오면서 붕괴되었다. 엘프나 다른 종족들은 이에 대해서 알고 있기에 통하지 않았다.
아가레스는 곧바로 마법을 이용해 사람들에게 표식을 새겨나갔다.
의미나 효과는 없는, 이제는 그저 그럴싸해 보이는 특수효과에 불과한 것이었다.
곧 아가레스에게 속은 그들은 죄책감을 뒤로한 채 아는 것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들은 이강호를 알고 있는 세대였다.
화염을 다루는 남성 창술사와 냉기를 다루는 여성 창술사.
아가레스는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경청했다.
허나, 그들은 유세현에 대한 것만큼은 대답하지 못했다.
다른 부대에 속해있어 판도라 외부 최후의 전투에 참여하지 않은데다가, 강제적으로 판도라 내부에 이끌려 들어온 이후로는 다른 생존자들과 합류하지 못했기에 모르는 것이었다.
아가레스는 일부러 불같이 화를 냈다.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너희가 영웅이라고 부르는 창잡이보다도 강한 놈이다. 그런데 모른다고?”
“저, 정말로 모릅니다. 진짜입니다.”
“......”
아가레스가 턱을 짚었다.
너무나도 이상했지만 그래서 되려 진짜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이곳 사람들에게 유세현에 대해 알아내는 것을 포기한 아가레스는 다른 쪽으로 관심을 돌렸다.
“아까 보니 특이한 기술을 사용하던데. 그건 뭐지?”
아가레스는 이날 무공에 대한 지식을 얻었다.
무공은 그가 생각하기에 일개 인간이 창조한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무척이나 뛰어난 기술이었다.
‘보다 효율적인 마력 운용이 가능하다라...’
하지만 이건 새 발의 피.
“뛰어난 무공 중에는 속성을 지니고 있는 것도 있습니다. 그토록 알고 싶어 하셨던 화염과 냉기를 다루는 창잡이들이 그 예입니다.”
“호오...”
아가레스가 감탄사를 내뱉었다.
셀론이 왜 그곳에 있었던 것인지, 드래곤 세력 중 셀론이 속해있던 집단이 왜 갑자기 강해졌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인간들에게서 무공을 얻은 거로군.’
아가레스의 입에서 음흉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드래곤이 배웠다는 것은 그 또한 배울 수 있다는 뜻이었기 때문이었다.
“너희들도 무공 전수가 가능한가?”
아가레스의 물음에 생존자들의 표정이 굳었다.
뭔가 굉장히 싸한 느낌.
“저, 저희들은 할 수 없습니다. 숙련치가 낮아서...”
“그럼 누가 할 수 있지?”
“그...숙련도 100%에 달한 자만이 할 수 있습니다.”
“마법 전수와 똑같군. 100%에 도달한 인간은 많나?”
“이, 일반무공은 도달한 자들이 꽤 있는 걸로 압니다.”
“일반무공은? 그럼 상승무공은?”
“그게...상승무공은 애초 희귀한데다가 정보도 공유해주지 않아 저희도 잘...”
“후후. 그래, 잘 알았다. 내 이야기에 충실히 대답해줘서 상당히 기분이 좋군.”
아가레스의 말에 생존자들의 낯빛이 약간이나마 나아졌다.
역시 단순한 느낌에 불과했던 것인가.
계약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여자는 그럼 그렇지라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그럼 잘 가라.”
별안간 날카로이 손날을 세운 아가레스가 팔을 쓱 휘둘렀다.
파직-
바로 옆에 있던 생존자의 육신이 순식간에 조각조각 난다.
여성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어, 어떻게 일방적으로 계약 파기를...분명 진짜 계약이었는데...”
아가레스는 이를 비웃었다.
“멍청하구나. 이 세계로 넘어온 직후 제약이 풀렸다는 말을 도우미에게 듣지 못한 것이냐?”
“서, 설마?”
“그래 맞다. 이제 계약 따윈 아무런 의미가 없다. 조금만 깊게 생각해봤더라면 눈치 챌 수 있었을 것을...”
물론, 그러한 틈을 아가레스가 주지 않았다.
궁지에 몰린 생존자들이 대번에 들고 일어섰다.
“크으으! 우릴 속이다니! 이 빌어먹을 새끼가아아!”
허나, 아가레스는 무척 평온한 모습이었다.
“본래는 그냥 죽이려고 했으나 너희가 너무 잘 대답해 주었기에 특별히 알려 준 것이다. 그러니 고맙게 생각하거라.”
“죽어라아아!”
“뭐, 그래봤자...”
아가레스가 손가락을 툭 튕겼다.
콰직-
달려든 생존자들의 두개골이 힘없이 터져나갔다.
“그 누구에게도 전할 수는 없을 테지만.”
이윽고 일대가 완전히 으깨지며 시끌벅적했던 주위가 순식간에 고요히 가라앉았다.
아가레스가 스킬 코인 하나를 집어 들며 음흉하게 웃었다.
[일반 내공 심법서]
“극악의 확률일 터인데...운이 따라주는구나.”
그는 그것을 제법 유능한 수하에게 하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