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1)
-------------- 345/606 --------------
자연스럽게 방향을 꺾으며 그 장소를 이탈하는 유세현.
그가 저편으로 사라지자, 오르엠의 고개가 유세현이 사라진 방향을 향해 홱 돌아갔다.
살며시 좁혀지는 미간과 날카롭게 날이 서는 눈매.
그 또한 마찬가지로 한순간 기분 나쁜 감각을 느낀 것이었는데...
“무슨 일이 있으셨습니까?”
반대편에서 다가온 가브리엘이 이상함을 알아채고 물었다. 오르엠은 잠시 생각에 잠기는가 싶더니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그는 유세현처럼 확신을 내리지 못했다.
정확히 신성력을 포착하여 그것에 의거해 결론을 내린 유세현과 달리, 그가 느낀 감각은 정말로 순수한 감각에 불과한 것이었기 때문.
한 종족을 이끄는 왕으로서 수하에게 단순히 느낀 바를 털어놓을 수는 없는 것 아니겠는가.
‘흐음...’
마음속으로 유세현에 대해 생각하니 오르엠이 뇌리 속에 불현듯 그의 얼굴이 다시 한 번 떠올랐다.
100% 인간.
하지만 인간이라고는 도무지 볼 수 없던 자.
오르엠은 아직까지도 그때의 일이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다른 이도 아닌 바로 자신이 왜 놈의 힘을 포착해내지 못한 것인지. 그것도 순도 낮은 어둠의 마력이 아닌, 무려 마왕 급에 달하는 그 강대한 힘을.
‘아니 그보다 어떻게 그 힘을 얻은 거지?’
무슨 특수한 아이템이라도 사용한 것일까?
아니면...
‘쯧.’
위치만 알아낼 수 있었다면 파편 회수와 함께 그 근본까지 함께 알아낼 수 있었을 터였지만, 아무쪼록 지금은 라파엘을 믿고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현재 오르엠에게는 배신자 루시펠, 아니 정확히는 좀 더 효율적인 움직임을 위하여 그녀에게 넘겨준 신기를 되찾는 것이 더 중요했다.
“그래, 그동안 새로 알아낸 것이 있나?”
오르엠의 물음에 가브리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있습니다.”
“뭐지?”
“그녀...아니, 배신자 루시펠의 목표입니다.”
“목표?”
오르엠이 고개가 갸웃 꺾였다.
구태여 들을 필요도 없이 오르엠은 애초부터 루시펠의 목표를 무척이나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나를 죽이는 것이지.’
과거, 지금은 죽은 우리엘이 아직 최상급 천사이던 시절.
사대천사 중 모든 면에서 가장 뛰어났던 루시펠은 오르엠에게 있어서 최고로 신임할 수 있는 심복이었다.
오르엠은 그만큼 그녀를 아꼈고, 그녀도 지금의 사대천사들처럼 오르엠을 위하여 목숨을 다 바쳤다.
그런 둘의 사이가 틀어지게 된 건 제약이 풀린 그녀가 부관인 중급천사에게 필요이상으로 마음을 주면서부터.
중급천사는 라미엘이라는 불리 우는 같은 여성 천사였는데, 루시펠이 그녀를 친동생처럼 여기기 시작한 것이다.
중급천사라고 한들 대악마 혹은 고룡급의 드래곤에게는 한 주먹거리도 안 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사실.
부관인 라미엘은 루시펠이 가는 곳이라면 무조건 따라다녀야 되었기에, 무리한 작전도 망설임 없이 감행하여 성공시키던 루시펠은 위험도를 따져 몸을 사리기 시작했고, 오르엠은 그것이 마음에 무척 들지 않았다.
결국 오르엠은 라미엘을 다른 최상급 천사의 배속시킨 뒤 일부러 무리한 작전을 감행시켜 죽게 만들었다.
그는 그때까지만 이렇게 하는 것으로 루시펠이 라미엘을 잊고 다시 원래대로 돌아올 줄 알았다.
허나 결과는?
지금 보는 대로.
이미 아는 사실을 들은 오르엠이 눈가를 찡그리자, 가브리엘이 재빨리 말을 덧붙였다.
“제가 알아낸 건 루시펠의 최종 목표가 아닌, 루시펠이 이 장소에 들어온 목표입니다.”
가브리엘의 말에 오르엠의 눈빛이 보다 날카롭게 변한다.
“이곳에 들어온 목표? 단순히 너의 추적을 따돌리기 위해 온 게 아니라는 뜻이냐?”
“예.”
“...말해봐라. 루시펠이 왜 이곳에 온 거지?”
“벨제뷔트 때문입니다. 놈이 이곳에 있습니다.”
“벨제뷔트...”
오르엠이 중얼거렸다.
대악마, 벨제뷔트.
마계의 2인자로서 과거에는 루시뷀트의 오른팔이었지만, 지금은 루시뷀트를 배신하고 독자적인 세력을 이루고 있는 마족.
“그놈을 만나기 위해 이곳에 왔다는 거로군.”
“예 그렇습니다. 이유는...”
오르엠이 한쪽 손을 들어 올려 가브리엘의 말을 잘랐다.
루시펠, 그녀의 목적을 벨제뷔트가 거론 된 순간 알아 챈 것이다.
다양한 버프 스킬, 그리고 강력한 신성마법 등등 천사를 최강자에 속하게 만들어준 천사만이 지니고 있을 수 있는 특수특성 신성(神聖).
이 신성력의 기반은 어디까지나 특성의 본 주인인 오르엠이었다.
제약이 풀려 신성력 생성 기관을 얻게 된 지금에 와서는 굳이 그를 거치지 않아도 신성력의 사용은 가능했지만, 그에게서 직접적인 권능을 부여받지 않는 한 제대로 된 힘의 발휘는 불가능했다.
즉, 신성력을 사용할 수는 잇되 그 본연의 힘을 이끌어내지는 못하는 것이다.
현재 대다수의 마족들이 특수특성, 마(魔)에 담겨있는 죽음의 힘을 이끌어내지 못하는 것처럼.
그런 상태에서 오르엠과 루시펠이 맞붙는다면?
스텟의 차이를 제쳐두고도 순도 낮은 신성력을 지닌 루시펠은 신성력의 주인인 오르엠에게 상대가 될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루시펠이 오르엠과 대등하게 붙을 수 있을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인가?
아니, 있다.
존재한다.
오직 딱 한 가지.
그건 바로...
“신성력을 버리려는 거로군. 그리고 일반적인 마력으로는 나를 당해낼 수 없을 테니 벨제뷔트의 특성을 이용해 상극인 어둠의 마력을 손에 넣을 생각이고.”
“예. 그렇게 판단됩니다.”
벨제뷔트는 마왕의 오른팔이었던 자답게 마왕의 곁은 빠져나오고도 권속을 둘 수 있던 몇 안 되는 악마 중 하나였다.
그리고 그런 벨제뷔트에게는 마왕도 지니고 있지 않는 특수한 능력, 고유특성을 지니고 있었다.
[동화]
상대를 변화시켜 끌어들이는 능력.
동화와 권속능력을 이용하면 신성력을 버리고도 단순한 마력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 어둠의 마력을 손에 넣을 수 있게 된다.
이미 벨제뷔트는 이전 성룡급 드래곤 한 마리를 동화시키는 것으로 그 힘을 증명한 적이 있었다.
오르엠이 지그시 혀를 찼다.
벨제뷔트에게 동화된다는 것은 놈의 수족이 되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그만큼 놈의 고유특성은 치명적이다.
그렇게까지 해서 복수를 하고 싶은 것인가.
그 중급천사가 그 정도의 가치를 지니고 있는 생명체란 말인가.
“지금 전한 이 정보, 확실한거겠지? 가브리엘?”
“예, 확실합니다. 그녀는 이곳에 들어온 이후부터 줄곧 벨제뷔트의 뒤를 캐고 있었습니다.”
“후...그런가...그래서? 향한 곳은? 벨제뷔트가 있는 장소는? 그것도 알아냈나?”
오르엠의 눈동자가 번뜩였다.
사실 제일 중요한 건 이것이었다.
“아쉽지만 거기까지 알아내진 못했습니다.”
“흠...”
가브리엘의 답에 오르엠은 비난하지 않았다.
바람, 그 자체라고 불리는 하이엘프 엘프, 카시우스 델 아르베이트부터 시작하여 델바람 족의 카그네프 제벨까지.
사실 이곳은 벨제뷔트를 제외하고도 타 종족의 강자들이 서식하고 있는 장소라 표식이 박혀 힘을 제약당한 가브리엘로서도 무작정 헤치고 다닐 수 있을 만한 곳이 아니었다.
아니 되려 호위가 없으면 위험하다.
그러니 이정도만 해도 충분히 본분을 다한 것.
가브리엘이 말을 이었다.
“다만...”
“다만 뭐지?”
“루시펠이 한 번쯤 들러봤을 만한 장소는 알고 있습니다.”
“어디냐?”
“암막이라 불리는 장소가 있습니다.”
암막, 그곳은 마을에서 지도를 통해 바로 당도할 수 있는 장소로 나무나 바위 등등 주위 지형지물이 빛을 100% 흡수, 반사를 하지 않아 음영과 입체감이 사라진 공간이었다.
“이전 그곳에서 벨제뷔트가 활동했었습니다.”
“흠...그렇단 말이지.”
“예 그렇습니다.”
“그럼 그곳부터 수색을 이어나가는 게 좋겠군.”
“저도 그리 생각합니다. 바로 이동하시겠습니까? 준비는 끝나있습니다.”
가브리엘이 물었다. 오르엠은 유세현이 사라진 장소를 다시 한 번 응시했다.
여전히 불쾌한 느낌.
이건 정말 단순한 감각에 불과한 것일까? 아니면...
애써 안 좋은 느낌을 털어낸 오르엠이 근엄하게 말했다.
“좋다. 지금 바로 이동하도록 한다.”
* * *
미친 듯이 마을을 활보한 유세현, 그는 결국 노력에 결실을 맺지 못한 채 약속장소로 복귀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걸어 볼 수 있는 건 동료들 뿐.
허나, 안타깝게도 미리 도착해있던 이강호, 아퀼라, 루시아의 안색은 그다지 밝지 않았다.
“미안하다. 알아내지 못했다.”
유세현은 이강호의 사과에 손사래를 쳤다.
“어쩔 수 없던 거였는데 미안은 무슨...됐다. 앞으로 할 일에나 신경 쓰자.”
넷은 김주희가 올 때까지 잠시 대기했다.
이곳에 있는 모두가 실패했기에, 그들은 기대를 이미 거의 접은 상태였다.
그런데.
양손을 미친 듯이 흔들며 뛰어오는 김주희.
유세현은 설마설마 했다. 하지만 김주희가 저런 행동을 할 때는 항상 뭘 해냈을 때였다.
“선배님! 제가 찾았어요! 찾아냈어요!”
“정말?”
“예!”
“잘했어!”
기쁜 마음에 유세현은 방방 뛰고 있는 김주희를 와락 끌어안았다. 생각지도 못한 스킨십에 김주희의 표정이 살짝 당혹으로 물든다.
허나, 그것은 정말 잠시.
“저 잘했죠? 잘했죠?”
그녀는 그 순간을 순수하게 즐겼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찾아내길 정말 잘했어!’
그녀에게 있어선 그 어떤 것보다 완벽한 보상.
루시아가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며 입맛을 다셨다.
자신이 찾아냈어야 했는데...
그렇게 잠시 동안 이어진 즐거운 시간이 지나가고, 이강호가 김주희를 향해 말했다.
“아이템을 모아오라고 했지?”
“예, 종류가 꽤 많았어요. 일단 다 적어오긴 했는데...시간이 아직 약간 남아있으니 도우미의 위치도 알 겸 가보실래요? 거리가 제법 되지만 뛰어가면 금방이에요.”
“그래, 그러자.”
유세현은 김주희의 뒤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주위에 있던 타종족들이 뭔가 하고 흘겨봤지만, 어차피 그들 말고도 뛰어서 이동하는 대리자들은 꽤나 많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기에 굳이 의식하지 않았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현대풍으로 지어진 일반 가정건물이었다. 김주희가 내부로 들어가기 전에 말했다.
“선배님, 도우미의 얼굴 보면 좀 어이없으실 거예요.”
“응? 왜?”
고개를 갸웃거리는 유세현.
그는 도우미의 앞에 선 뒤에야 김주희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깨달았다.
“또 뵙는군요.”
인사를 건네는 이는 이 세계에 들어오기 전에 그들은 맞이해주었던 인간을 담당하는 도우미였다.
“그러게요 또 뵙는군요. 그런데 그보다 철로 만들어진 성에 대해서 알고 계신다고 들었는데...”
“예, 알고 있습니다.”
“...이전에 알려주셨으면 편했을 텐데 왜 알려주시지 않았습니까?”
“거기는 이세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게 뭔 개소리인가 할 수도 있지만, 설정이 잡혀있는 곳이니 만큼 유세현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지금 중요한건 찾아냈다는 것이었다.
유세현이 자세히 묻자, 도우미가 요구해왔다.
“지금 제게 꼭 필요한 물건들이 있습니다. 강철로 이루어진 심장, 5개의 뿔을 지니고 있는 맹수의 온건한 가죽...”
그 외에도 기타 등등.
“...이것들을 전부 구해다 주시면 대략적인 위치를 알려드리겠습니다.”
도우미가 요구한 아이템은 무려 15가지가 넘었다.
유세현은 집을 빠져나오기 무섭게 이강호에게 물었다.
“어때? 쉽게 얻을 수 있는 것들이야?”
“아니, 쉽지 않아.”
12개는 그럭저럭 얻을 수 있을 만한 것들이었다.
문제는 그 외 나머지 3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