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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왕 유세현-350화 (350/612)

도우미들의 마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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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대리자분들께서 밟고 계신 이 장소는 저희 도우미들이 관리 및 거주하고 있는 지역의 시작점으로 향하는 입구입니다. 이곳을 봐주십시오.”

일행은 그 말에 도우미의 손이 가리키고 있는 장소를 바라봤다.

그곳에는 성문과 그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보초병들이 있었다.

고블린, 쥬레이족, 알 수 없는 괴물 등등 각기 다른 종족이 서로 한데 어우러져 있는 것이 꽤나 신선한 광경.

허나, 아쉽게도 일행의 눈에는 그들이 좀처럼 들어오지 않았다.

그들의 존재감보다도 더한 것이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바로 높디높은 성문과 성벽이었다.

하늘을 향해 끝없이 솟아있다.

고개를 들어 바라봐도 지평선 너머를 바라보는 것 마냥 끝이 보이지 않는다.

왜 이렇게 무식하게 크게 만들어 놓은 것일까?

이유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를 모르는 도우미는 설명을 멈추지 않았다.

“저곳을 통과하게 되면 곧바로 마을광장이 나옵니다. 마을로 들어가는 데는 아무런 대가도 필요하지 않기에 들어갈지 말지는 대리자 여러분들의 마음입니다만, 일단 한 번 들어가게 되면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반드시 특정 조건을 갖춰야만 합니다.”

그렇다.

저 높은 성은 대리자들의 불법탈출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특정조건이라 함은?”

이강호가 모른 척 물었다. 답해주는지 답해주지 않는지 오래돼서 까먹은 탓인데, 만약 답해주지 않는다면 이용가치가 꽤나 크기 때문이다.

도우미가 고개를 살며시 저었다.

“죄송하지만. 그건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직접 알아내셔야 됩니다.”

“흐음, 그렇군...잘 알았다. 혹시 또 다른 룰이 있나?”

“예, 있습니다. 이건 반드시 지켜주셔야 되는 룰입니다.”

이 지역은 그 특성상 처음 들어온 생명체는 드래곤이건 마족이건 무조건적으로 마을에 들어서게 된다.

대립하는 이종족들이 서로 조우하게 되는 것이다.

가만히 놔두면 전투가 발생하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일.

그래서 이 마을에는 몇 가지 특수한 룰과 법칙이 존재한다.

바로 그 첫째.

“마을 내에서는 이종족이건 동족이건 상대에게 그 어떤 자그마한 해도 입혀서는 안 됩니다.”

실수로 부딪치거나 하는 건 상관없지만, 얍삽하게 저주계열 등등의 스킬을 사용하는 건 곧바로 척살의 대상이 되었다.

참고로 척살조는 도우미들.

그리고 그런 도우미들의 스텟은 최소 SS랭크 최상급부터 최대 SSS랭크 최상급이었다.

한 명이 달려들어도 버거운데, 모두가 함께 달려드니 사실상 살아남을 수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

도우미는 곧바로 두 번째 룰을 말했다.

“이 마을에서 체류 가능한 기간은 입장한 뒤로부터 딱 36시간까지입니다.”

만약 그 이후에도 마을에 남아있으면 마찬가지로 척살의 대상이 된다.

이는 타종족들을 두려워 해 계속 마을 안에 짱 박혀 있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법칙이었다.

그렇다면 나가자마자 공격당하는 게 너무도 당연한 것 아니냐?

물론 이대로라면 그렇겠지만, 이 세계에는 이를 막기 또 하나의 시스템이 갖춰져 있었다.

“만약 내부에 들어가시게 된다면 일정 영역까지 표시되어있는 지도를 무료로 받게 되실 겁니다. 마을을 떠날 때 그 지도를 보고 원하는 좌표를 생각하시면 그곳으로 자동이동이 됩니다.”

운만 좋다면 적과 조우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이강호가 이 지역을 지금까지 오기 꺼려했던 이유였다.

재수 없게 보다 강한 적을 만난다면?

그것도 대규모로.

높은 확률로 전멸이다.

이 장소는 언더월드보다도 훨씬 지옥 같은 곳이었다.

괜히 최강의 3종족이 다른 장소부터 공략한 게 아닌 것!

설명을 끝냈는지 도우미가 물었다.

“들어가시겠습니까? 아니면 돌아가시겠습니까?”

유세현은 대답대신 질문을 던졌다.

“그전에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만, 마을은 한 번 나가면 다신 들어올 수 없는 건가요?”

도우미는 캐묻지 않는 이상 세세하게 알려주지 않는 것을 알기에 하는 행동.

“아뇨, 그렇지 않습니다. 14일이 지나면 재진입이 가능합니다.”

도우미가 말했다.

유세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은근슬쩍 다른 것도 물었다.

“혹시 이 지역 안에 100억 명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철의 성이 존재합니까?”

이전 질문은 사실 이강호에게 들어 알고 있던 것이었고 이게 진짜 본론이었다.

물론.

‘안 알려주겠지만.’

다만, 그럼에도 그가 이런 질문은 구태여 한 이유는 그의 모습을 관찰하기 위해.

혹시 아는가?

약간의 틈을 보일지.

유세현은 그의 표정은 보지 않았다. 모든것을 무미건조하게 말하는 그가 이런일로 표정 변화를 보일 리 없을 테니까.

그래서 그는 도우미의 육체를 살폈다.

손이라든가 발이라든가.

아무거나 라도 좋다.

허나.

“그런 질문에는 답해드릴 수 없습니다.”

도우미는 완벽했다.

도우미다웠다.

유세현은 쿨하게 넘어가기로 했다.

아직 기회는 끝난 것이, 희망이 꺾여버린 것은 아니었기에.

짜놓은 플랜이 있다.

결과가 좋을지 안 좋을지는 모르지만, 어차피 밑져야 본전인 그런 플랜이.

“들어가시겠습니까? 아니면 돌아가시겠습니까?”

도우미가 재차 물어왔다.

일행은 곧장 들어가겠다고 했고, 성벽에 다가섰다.

끼이이익-

성문, 아니 하늘이 열리며 하나의 세계가 그들을 맞이해주었다.

* * *

“와~”

주위를 둘러본 김주희가 감탄사를 내뱉으며 막 서울로 상경한 듯한 시골소녀의 모습을 자아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마을에는 빌딩, 중세건물, 마굴, 거성, 첨단 기술력으로 만들어진 구조물까지 정말 없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모든 것이 복합, 하나로 합쳐져 있는 도시랄까?

찌릿-

주위를 걷고 있는 이종족들의 시선들이 대번에 그녀에게 쏠린다.

새로 들어온 종족인 것을 깨닫고 아이템 등을 식별해놓기 위함이었는데...

“쳇!”

“옘병할.”

재수 없다는 듯 땅에 침을 퉷 뱉은 그들은 이내 다시 갈 길을 가기 시작했다.

김주희의 전신은 로브로 가려져있었는데, 그들의 눈에는 얼굴조차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이템명, 은닉자의 로브.

유니크 SS랭크의 이 아이템은 비전투 때만 사용한 아이템으로서, 장착한 사람의 체형을 왜곡하여 달라보이게 만들고 더 나아가 얼굴까지 어둡게 가려준다.

마치 짙은 그림자가 낀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현재 유세현 일행은 모두 이것을 입고 있었다.

손을 댈 수 있었다면 달려들었겠지만, 그건 불가능 하니 할 일이나 하러 가는 것.

이에 유세현 일행도 움직였다.

마을에서 퇴출되기까지 36시간.

처음 들어온 사람이라면 보통 뭘 해야 될지 몰라 퇴출될 때까지 이도저도 못하는 게 다반사지만, 이강호가 있는 그들은 이미 할 것을 정해놓은 상태였다.

유세현이 말했다.

“3시간 후에 다시 이곳에서 만나는 거다.”

“알았어요. 선배.”

구역을 나눈 그들은 각기 다른 방향으로 쪼개졌다.

유세현이 맡은 장소는 북서쪽으로 마굴형태의 거주지가 많이 있는 장소.

그들은 대체 무엇을 하기위해 이렇게 따로따로 움직이는 것일까?

유세현이 점액질이 잔뜩 묻어있는 문을 열고 마굴내부로 들어가자, 벽장에 꽂혀 있는 수많은 책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곳은 일종의 서점이었다.

내부에 주인장 빼고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유세현이 책엔 눈길도 주지 않고 카운터로 다가갔다.

그러자 유세현을 슬쩍 흘긴 발 4개 달린 괴물 주인장, 도우미가 입을 열었다.

“뭐, 찾으시는 책이라도 있으십니까?”

인간 도우미와 마찬가지로 무미건조한 음성.

유세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중요한 건 음성따위가 아니다.

“예. 100억 명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철의성에 대해 저술되어있는 책을 찾고 있습니다만, 혹시 있습니까?”

이 세계가 왜 [가이드]라고 불리는 것인가.

그건 단순히 도우미가 사는 마을이기 때문이 아니다.

이 세계에서 살아가는 도우미들은 당연이 이 세계에 대한 여러 지식이나 과거의 유래를 알고 있다.

도우미가 만약 원하는 정보를 알고 있으면, 그에 합당한 대가를 치르는 것으로 정보를 얻을 수 있기에 그렇게 불리는 것이다.

아직 많은 종족들이 모르는, 오직 이강호가 함께하기에 알고 있을 수 있는 사실.

그리고 이는 유세현의 마지막 희망이었다.

이 세계에 단서에 대해 아는 자가 없다면, 정말 찾기 힘들어진다.

도우미가 고개를 저었다

“그런 책은 없습니다.”

“그럼 100억 명은 빼고 그냥 철의 성에 대한 건...너무 똑같이 않아도 됩니다. 비슷한 내용이라도 상관없습니다.”

“아쉽지만 100억 명이던, 철의 성이던 그런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책은 이곳에는 단 한 권도 없습니다.”

안타깝지만 완전히 꽝이라는 소리.

하지만 유세현은 낙담하지 않았다.

아직 물어볼 수 있는 도우미는 널리고 널렸으니까.

한방에 발견하는 게 오히려 더 이상한 일이리라.

인사를 건네고 나온 유세현은 이런 식으로 많은 집을 돌아다니며 수소문을 했다.

일반적인 도우미에게는 직설적으로 물어봤으며, 대장간이나 잡화점 등등 특수한 일을 하고 있는 도우미에게는 형식에 맞춰 질문을 건넸다.

허나.

“후우...역시 쉽지 않군.”

세 시간이 지나, 다시 모일 때까지도 그는 원하는 정보를 알고 있는 도우미는 만나지 못했다.

“뭔가 알아낸 거 있어?”

“죄송해요 선배. 저는 아직...”

“저도 마찬가지에요.”

“나도야.”

“송구하옵니다. 군주시어. 아직 이에 대해 알고 있는 도우미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모두가 열심히 해주었지만 아쉽게도 아직까지는 감감무소식.

“아직 시간은 많아요 선배. 분명 마을을 벗어나기 전까지 알아낼 수 있을 거예요.”

“그랬으면 좋겠네.”

일행은 다시 흩어졌다.

허나, 하루가 흐를 때까지도 정보를 알고 있는 도우미는 발견되지 않았다.

* * *

“흐음...”

유세현이 차분히 관자놀이를 짚었다.

컨디션 관리를 위한 4시간의 숙면, 그것을 제외하면 이제 그에게 남아있는 시간은 약 8시간뿐이었다.

이번에 마을을 나서면 족히 1년은 지난 후에야 이 장소로 돌아올 터이니, 그는 적어도 이 지역에 철의 성이 있는지 없는지 만큼은 반드시 알아내고 싶었다.

없다면 마음은 무척 쓰리겠지만, 미련을 깨끗이 털어버리고 앞으로 할 행동에 보다 더 집중할 수 있으니까.

“부탁한다.”

“저만 믿으세요!

사람들이 다시 흩어졌다.

1시간이 흐르고.

2시간이 흐르고.

5시간이 흐르고.

유세현은 한숨을 내쉬었다. 도우미들이 너무 많다.

대체 이 세계에는 몇 개의 종족이 존재하는 것일까?

시간은 없는데 거쳐야 될 곳이 많으니 아무리 봐도 주어진 시간 안에 도우미를 다 만나보는 것은 불가능해보였다.

아니, 그나마 여기까지 할 수 있었던 이유도 무미건조한 특유의 발음 덕에 다른 이종족과 헷갈리지 않아서다.

유세현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또 다른 도우미의 집을 향해 나아가고 있던 차였다.

스스슥-

하나의 인형(人形)이 그를 스쳐지나갔다.

살짝 돌아가는 유세현의 눈동자.

그자는 유세현과 마찬가지로 로브를 눌러쓰고 있어 얼굴이 보이지 않았지만, 유세현은 놈의 정체를 단번에 파악할 수 있었다.

억지로 꾹꾹 눌러 담아 압축 시켜 놓은 듯한 신성력.

놈은 제법 힘을 잘 감추긴 했으나, 가까이까지 접근한 유세현이 파악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오르엠...’

놈은 오르엠이 틀림없었다.

‘설마 알고 추격 해 온 건가?’

그렇게 생각하던 유세현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니, 미행은 당하지 않았었다.’

그 정도로 허술하게 움직이지도 않았을 뿐더러, 만약 당했더라면 오르엠은 분명 이 장소에 들어오기 전에 선제타를 가해 왔을 것이다.

그러니 이것은 우연.

마족, 드래곤이 파편조각을 얻었으니 분명 놈도 급해져서 이곳에 온 것이 아닐까 한다. 아니면 다른 목적이 있다거나.

‘힘을 사용할 땐 주의해야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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