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335화 (335/612)

< 고대병기(5) >

타르탄의 병력을 포함한 여러 대대가 합류했다.

일행의 흔적을 뒤따라와서 그런지 걸린 시간은 5일로 예상도착 시간보다 무려 2일이나 빨랐다.

유세현은 이강호를 맞이할 준비를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유세현은 이강호의 합류를 전혀 의심치 않고 있었다.

허나.

‘왜? 어째서?’

그 어디에도 이강호는 없었다. 타르탄에게 물어도 봤지만 그는 그저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뿐이었다.

“이강호는 우리와 합류하지 않았다. 그대와 줄곧 함께 있던 거 아니었나?”

“......”

병력들 사이를 재차 샅샅이 뒤져봤지만 헛짓거리였다.

다급히 움직이던 유세현의 발이 뚝 멈췄다.

이강호가 실종 된 것이 피부에 와 닿았다.

어떻게 된 것인가. 대체 왜 타르탄과 합류하지 못한 것이지?

알테라그의 수하는 이곳에 빨리 떨어진 이유를 전투의 영향 때문이라 생각했지만 유세현은 이강호가 그 지옥 같은 불길을 통과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클리어 했을 터이니 당연히 별일 없을 줄 알았는데...

홀로 다니는 것만큼 이 세계에서 위험한 것은 없다. 게다가 일반적인 지역도 아닌 SS랭크도 벅차하는 언더월드, 그것도 파편이 잠들어있는 장소다.

다른 장소에 떨어졌는데 그곳에 미카엘과 동급의 힘을 지닌 적이 있다면?

‘젠장!’

쿠웅!

내려찍은 발길질에 대지가 요동쳤다.

김주희를 포함한 세 명은 씁쓸한 표정으로 유세현을 바라보는 반면, 영문을 모르는 대다수의 티탄들은 신기한 표정으로 그를 응시했다.

이전부터 유세현을 유의주시하고 있던 케르트란이 은밀하게 카윈을 불러 자초지종을 물었다.

“호오...한 명이 실종?”

“예. 왜 그 미늘창을 쓰던 놈 있지 않습니까.”

케르트란이 고개를 끄덕였다. 의심이 많은 그도 이것만큼은 의심하지 않았다. 스스로를 최강자라고 치부하는 그조차도 이곳에서 병력과 떨어지는 건 꺼림직 하기 짝이 없었으니까.

카윈은 이왕 이렇게 된 거 알아낸 것까지 모조리 보고했다.

케르트란이 눈을 번뜩였다.

“카윈, 방금 한 말에 네 목숨을 걸 수 있겠나?”

“예, 걸 수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제가 두 눈으로 직접 확인했습니다. 만약 알그하브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놈들은 그 자리에서 죽었을 것입니다. 놈들이 이전 던전에서 알그하브를 구할 수 있었던 건 정말

운이 좋았기 때문입니다.”

부하의 확신에 케르트란의 입꼬리가 비릿하게 올라갔다.

잔챙이라면 그가 더 이상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아니, 되려 전투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는 것이니 그로써는 달가운 일이다.

스토르 벤의 전력도 대개 파악해놨기에 더 이상의 변수는 없다.

‘하늘이 날 돕는군.’

솔직히 말하자면 알그하브가 없었을 때는 크로마스와 손을 잡은 천족을 상대하기 버거웠다.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모두 알그하브가 등장해준 덕분이었다.

케르트란은 포켓을 뒤져 2개의 아이템을 슬쩍 꺼내 살폈다.

아이템명: 에르켈의 병기제어 장치.

등급: 에픽 [SS Rank]

상세정보: 고대병기의 제작자 에르켈이 고대병기를 제어할 때 사용한 아이템입니다. 고대병기의 동력부에 사용하면 제어권을 얻을 수 있습니다.

아이템명: 에르켈의 마법지도.

등급: 에픽 [S Rank]

상세정보: 고대병기의 제작자 에르켈이 만든 마법지도입니다. 고대병기를 봉인한 일대의 지형지물 및 내부 지리가 세밀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이 두 개는 케르트란이 줄곧 숨겨온 비장의 수단이었다.

놈들이 깨운 병기를 이 아이템을 이용해 강탈한다면? 역으로 놈들에게 공포를 안겨준다면?

오르엠의 표정이 꽤나 볼만할 것이다.

막을 수 있다면 막는 것이 베스트지만, 그게 불가능해도 들어놓은 보험이 있기에 뒤가 꽤나 든든했다.

이 게임은 반드시 자신이 승리한다.

유세현에게 알테라그가 다가와 말했다.

“그대의 동료가 실종된 건 정말 안타까운 일이지만, 우리도 많은 희생을 딛고 여기까지 다다른 것이다. 미안하지만 머뭇거릴 시간은 없다.”

예상하고 있던 바였기에 유세현은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았다.

“어떻게 할 건가. 계속 함께 갈 텐가. 아니면 동료를 찾기 위해 이탈하겠나.”

유세현은 딱 1초 고민했다.

처음도 아니고 이제와 이탈하는 것은 희대의 멍청한 짓이었다.

지금은 친우를 믿어야 한다.

꼭 살아있을 것이라고.

“후우...같이 가도록 하겠다.”

“알았다. 그럼 바로 준비해라. 5분 뒤에 출발할 거다.”

* * *

파죽지세로 밀고 올라가는 병력들.

그 와중 2번의 전투가 더 있었는데 케르트란은 바로 본색을 드러냈다.

“후후후.”

코인을 흡수하기 시작한 것!

별거 없다는 것을 확인했으니 정체를 숨기는 것보다도 이편이 좀 더 이득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에 일행은 정말 깜짝 놀란 표정을 연기했다.

“아, 아니? 케르트란! 당신 대리자였나?”

케르트란은 이 상황이 재미있는지 어깨를 으쓱거리며 웃었다.

잠시 후 표정을 싹 바꾼 그가 말했다.

“감히 짐의 이름을 함부로 입에 담지마라.”

엄청난 위압감이 일행을 휘감는다.

그와 중 스토르 벤들의 눈은 정말 장난 아니게 커져있었는데 놀란 티가 팍팍 났다.

케르트란의 손이 유세현의 머리를 향한다.

유세현이 잔뜩 경직된 모습을 보이자, 케르트란이 재차 웃으며 그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툭툭 밀쳤다.

“크크크, 그렇게 얼어붙지 않아도 된다. 네놈들을 치울 생각은 없으니까. 너희들은 티탄족의 위대한 왕, 알그하브의 은인 아닌가.”

“......”

“앞으로는 알아서 잘 행동해라. 벌레.”

방향을 바꾼 케르트란의 거대한 손이 유세현 바로 앞에 놓여 있던 흙을 꽉 움켜쥐었다. 완전히 가루가 되어 흩날리는 흙.

코인을 흡수하지 말라는 일종의 경고였다.

이윽고 알테라그의 눈치를 본 케르트란이 자리를 떴다.

“스토크. 이제 어떻게 해야...”

위압감이 사라지자 스토르 벤 종족들이 그제야 웅성거렸다.

마른하늘의 날벼락이라고 케르트란의 커밍아웃은 스토르 벤 종족에게는 재앙 그 자체였다.

성장을 위해 목숨을 바쳐 이곳에 들어왔는데 이 이후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니!

딱 그때였다.

스토크가 유세현에게 슬그머니 접근한 것은.

“유세현...네가 이전부터 케르트란의 정체를 파악하고 있었다는 걸 난 알고 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전혀 모르겠군. 네가 지금 내 심경을 알...”

“그런 식으로 시치미 뗄 생각하지마라. 난 지금까지 줄곧 궁금했다. 네가 왜 본 실력을 발휘하지 않는 것인지. 지금까지는 천족 때문이라고 넘겨 집고 있었지만...생각해보면 네놈의 구울과 키메라는 모이면 모일

수록 시너지가 좋다. 게다가 이제 전면전이 발생하는 건 피할 수 없다. 즉, 어차피 들킬 힘이라면 이제라도 사용하여 조금이라도 승산을 더 높이는 게 났다는 거지. 하지만 그럼에도 넌 지금껏 사용하지 않았다. 알테

라그 덕에 전력이 막상막하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넌 케르트란 때문에 애초부터 이 싸움에서 이길 생각이 없었다. 어때? 내 말이 틀리나?”

“......”

스토크, 정말 번개같이 예리한 놈이다. 은근슬쩍 빠져나가려고 하면 놈은 더욱 득달 같이 달려들 것이다.

물론, 모른다고 계속 박박 우길 수도 있긴 하다.

허나 놈은 자신의 약점을 잡고 있었다.

놈이 케르트란에게 자신의 능력을 폭로하겠다고 협박을 해온다면?

그때는 주도권이 넘어간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지금 인정해버리는 편이 났다.

“그래서? 지금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가 뭐지?”

“동맹을 맺자.”

“...뭐?”

갑작스런 제안에 유세현이 순간적으로 고개를 갸웃거리자, 못 알아들은 것이라 판단한 스토크가 재차 말했다.

“말 그대로의 의미다. 이 던전에서 빠져나갈 때까지 동맹을 맺자.”

“......”

“왜? 이상하다고 생각하나? 이전에도 암묵적으로 한 번 하지 않았나. 그거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해라.”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다.

적어도 주시해야 되는 팀 하나가 사라지는 것이니까. 또한 의견을 공유하는 것으로 보다 더 유동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가능했다.

“참고로 거절한다면...”

“좋다. 수락하지.”

더 말하기 전에 말을 끊었다.

“잘 부탁하마. 유세현.”

“나도 잘 부탁한다. 스토크.”

두 종족의 동맹은 서로 악수를 하는 것으로 간단하게 이루어졌다.

* * *

산 정상에 있는 동굴은 동굴이라고 부를 수 없을 정도의 거대한 홀이었다.

“이 안에 고대병기가 잠들어 있는 건가...”

중얼거린 알테라그가 분화구처럼 생긴 그 속으로 훅 뛰어내리자 병사들이 잽싸게 뒤따랐다.

내부 초입에는 거대한 묘가 자리 잡고 있었다.

마치 높은 언덕을 보는 듯한 느낌.

아마 묘비가 없었더라면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다.

“진행률을 살펴봐라.”

알테라그의 명령에 타르탄이 탐색기를 사용했다.

그사이 유세현은 무덤에 다가가 비석에 적혀있는 글귀를 읽었다.

[전쟁을 종식시킨 영웅 에르켈, 여기에 잠들다.]

그 밑으로는 여러 가지가 적혀있었다.

주로 업적이었는데, 뭐가 뭔지 알지 못하는 유세현이 봐도 그 이력이 무척이나 화려했다.

[3001A 02B-비전거신에 대한 기초이론 완성]

[3007A 08B-비전거신 설계도 완성]

비전거신.

티탄이 고대병기라고 칭하는 게 아마 이것임이 분명했다.

비전거신이 완성이 된 시기는 3020A 05B

전쟁을 종식시킨 시기는 정확히 1년 뒤인 3021A 05B다.

그 사이 수치 측정은 끝난 상태였다.

“얼마나 진행됐지?”

알테라그의 물음에 타르탄이 어두워진 낯빛으로 말했다.

“상당히 많이 진행됐습니다. 몸을 구속하고 있던 봉인이 전부 벗겨졌습니다. 동력원에 걸려있는 술식만 해제된다면...언제 기동해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으음...”

알테라그가 침음을 삼켰다.

“그렇단 말이지...케르트란, 이번에도 길을 찾을 수 있겠나?”

“물론입니다.”

지도를 가지고 있는 케르트란의 안내에 따라 중심부를 향해 대규모 이동이 시작되었다.

유세현이 따라가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려던 찰나였다. 문득 깨진 비석의 틈새가 눈에 비쳤다.

그곳에는 비석과 똑같은, 보호색으로 물들여져 있는 종이가 끼어있었다.

‘뭐지?’

거대한 티탄의 시선에서는 잘 안보이도록 처리가 되어있었기에 유세현은 흥미를 가지고 종이를 뺐다

그러자 종이는 순식간에 작아져 알맞은 크기로 변환되었다.

종이에는 글자가 적혀있었다.

이건 혹시 모를 방문자를 향한, 에르켈이 직접 저술해 놓은 편지였다.

[나는 거신이 힘의 균형을 붕괴시키고 있다는 모두의 의견을 수용하여 이곳에 엘리아크를 봉인했다.]

엘리아크, 비전거신의 명칭.

유세현은 티탄을 뒤따르며 빠르게 읽어 내려갔다.

대개 비전거인에 내포되어 있는 힘이 얼마나 위험한지에 대하여 저술되어 있었는데, 그렇지 않은 감상적인 부분도 있었다.

[엘리아크는 단순한 파괴병기가 아니다. 내 자식 같은 존재이다. 엘리아크는 우리와 같이 생각할 수 있는 지능을 가지고 있으며...]

이마에서 땀방울이 삐질 흘러내린다.

보고 듣고 배울 수도 있으며 거기에 사고까지 지니고 있는 자율형 병기.

놈은 감정을 지니고 있는 기계, 마크와 비슷했다.

차이가 있다면 강해지기 위해서는 몸을 교체해야 되는 놈들과 달리 것과 엘리아크는 주위의 유기물을 흡수하여 계속해서 강해질 수 있다는 것.

[나는 그대들이 내 자식을 무분멸한 파괴에 이용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이다.]

그것으로 편지의 내용은 끝이었다.

< 고대병기(5)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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