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309화 (309/612)

< 알그하브의 부츠(4) >

100% 확실하지는 않지만 회복되었다기보다는 갑자기 확 차오른 듯한, 마력의 총량자체가 증가한 느낌이었다.

물론, 회복된 양은 발톱의 때 정도로 정말 미미한 수준이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유세현은 잠시 상념에 잠겼다.

그도 그럴 것이, 사실 테르자루가 착용하고 있던 아이템은 겉으로 보기에만 제법 그럴싸 해보일 뿐 결코 좋은 아이템은 아니었다.

유니크와 레어 등급은 하나도 없고 전부 매직 등급, 그것도 A~B랭크 정도다.

당연히 마력의 총량을 증가시키는 옵션은커녕 마력회복 옵션조차도 붙어 있지 않았다.

‘뭔가 있는 건가?’

경계해서 나쁠 것은 전혀 없다.

마왕성의 남태영처럼 은혜를 갚는 놈이 있는 반면, 배신하는 놈들도 있다고 하니까.

물론 하는 행동을 보건데 아닐 것 같지만...

유세현이 조심스레 물었다.

“야 강호야. 저 티탄. 네가 알고 있는 인물은 아니지?”

“응. 처음 보는 얼굴이야.”

“적어도 판도라에 존재하는 자는 아니라는 거군...”

“그렇지. 그런데 왜?”

“아니. 좀 특이한 점이 있어서...확실한 건 아니야.”

“뭔데?”

“저 티탄 말인데...”

유세현이 말하려는 순간 몸을 체크한 왕의 음성이 일행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

“준비가 다됐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군.”

유세현은 잠시 하던 말을 끊고 왕을 응시했다.

시선을 느낀 왕 또한 유세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때를 놓치지 않고 유세현이 불쑥 손을 내밀었다.

“그러고 보니 통성명도 하지 않았군. 나는 유세현. 사람이다. 짧은 시간이겠지만 잘 부탁한다.”

악수가 딱히 만능 인사법은 아니다.

허나, 유세현이 한 말을 들은 이상 이 행동이 무슨 의도를 지니고 있는지 알아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왕이 그 거대한 손을 내밀며 말했다.

“난 티탄족의 왕...아니, 정정하지. 티탄족 알테라그 하벤타르브라고 한다. 알테라그라고 불러라. 나도 잘 부탁한다.”

둘은 악수를 했다.

유세현은 몰랐지만, 그건 과거의 이강호 조차도 단 한 번도 해보지 못했던 악수였다.

* * *

유세현이 통성명을 한 이유는 알테라그와 친해지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엄청난 정보를 가지고 과거로 돌아온 이강호다.

행여나 이름에서 뭔가 알아 낼 수 있지 않을까 한 것!

허나.

“모르는 이름이야. 아니, 애초에 내가 알고 있는 이름은 정말 역대급으로 유명했었던 왕 정도로 몇 명 안돼.”

“그래? 그럼 알테라그는 그 정도 급은 아니라는 거네.”

“그렇겠지?”

“흐음...그렇구나...그런데 그 역대 급으로 유명했었던 놈들은 뭘 했기에 그렇게 유명해진 거냐?”

“비보를 만들었어.”

이강호의 입에서 곧바로 답이 튀어나왔다.

앞에서 일행과 나아가고 있는 알테라그를 흘깃 살핀 이강호가 말을 이었다.

“비보는 티탄족의 왕 중에서도 특수한 힘을 지닌 자들만이 제조가 가능해.”

그중에서도 최강이라 불리는 건 세 명의 왕이 만든 5개의 비보였다.

통칭 5행기.

1행기, 첫 번째 비보는 태양왕 타르타스가 만든 태양의 투구였다.

2행기, 두 번째는 폭군 카르탄이 만든 신의 철퇴.

세 번째와 네 번째, 다섯 번째는 이강호도 보지 못한 미상의 아이템으로 모두 한 명의 왕이 만들었다고 한다.

그의 이름은 알그하브.

유세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세 개의 신기는 보지 못했다고?”

“응. 무슨 영문인지 판도라에 가지고 오지 못한 모양이거든. 정말 다행이었지.”

그 말에서 알그하브가 티탄족 사이에서 얼마나 유명한지를 체감할 수 있었다.

‘알그하브라...’

대화를 마친 유세현이 다시금 전방을 주시했다.

* * *

타다닥-

질주하는 유세현의 앞으로는 도합 4마리의 티탄족 키메라가 달려가고 있었다.

허나 아쉽게도 그 키메라들이 테르자루와 자르타스를 포함한 병사들은 아니었다.

알테라그가 테르자루를 포함한 기사들만큼만은 재료로 사용하지 말아 달라 부탁한 것도 하나의 원인이긴 했으나, 그보다는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스킬이 안통하다니...’

그렇다.

놈들은 시나리오 진행을 위한 이벤트 몬스터였다는 것을 증명하듯 그 어떤 스킬도 통하지 않았다.

덕분에 키메라를 만드는데 이용한 건 이전 방에 남아있던 시체.

먼저 침입한 자들이 한발 앞서 왕을 처리하면 말짱 도루묵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길을 되돌아가는 그들의 발걸음은 무척이나 분주했다.

그렇게 상당한 체력을 소비해 절반정도 되돌아왔을 때였다.

“잠깐, 멈춰봐라.”

대뜸 구석진 곳으로 향한 왕이 벽에 손을 얹었다.

드드륵-

벽 틈이 살짝 벌어지며 나타나는 통로.

“지름길이다. 이전에는 나와 테르자루 밖에 알지 못했던 길이지. 이곳을 사용하면 좀 더 빠르게 다가갈 수 있겠지만...”

알테라그가 말꼬리를 흘렸다.

바보가 아닌 이상 왜 그러는지는 굳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상황.

분명히 엄청나게 난이도가 올라갈 것이 분명했다.

이전처럼 위태위태한 아찔한 상황이 연출될 가능성이 무척 높은 것이다.

허나.

유세현과 이강호를 응시한 인원들이 마치 미리 말을 맞추기라도 한 것 마냥 한마디씩 했다.

“가자.”

“나도 이쪽으로 가는 게 좋을 것 같아. 오빠.”

이것은 기회라는 것을 그들도 알고 있었다.

고속으로 성장도 할 수도 있고, 운만 좋으면 앞서 갈 수도 있으리라.

“좋아. 이 길로 가자.”

* * *

통로에는 무수히 많은 적들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리고 예상처럼 무척이나 강했다.

쾅!

콰직-

놈들이 내지른 폴암에 머리통이 짓이겨져 움직임을 멈추는 키메라. 이어서 구울들이 달려들었지만, 지능이 낮은데다가 수도 많이 부족해 휘황찬란하게 몸을 놀리는 놈들의 상대는 될 수 없었다.

콰아아앙!

“크하아아압!”

목숨을 건 혈투가 이어진다. 마족화로 스텟이 상승 된 유세현을 제외하고는 전부다 아슬아슬한 외줄타기였다.

유세현은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더더욱 몸을 빨리 움직였다.

하지만.

빠악-

“으으윽!”

안타깝게도 결국 중상자는 발생했다.

레피아와 함께 다니던 검은 꽃들 중 3명이 당한 것.

다른 이들에 비해 결코 떨어지는 실력은 아니었지만 사방에서 쏟아지는 티탄족의 그 무지막지한 공격을 전부 받아내지 못한 것이다.

아니, 사실 죽지 않은 것이 용하다.

“다리, 어깨, 허벅지가 완전히 으깨졌어. 세 명은 당분간은...아니 어쩌면 던전을 나갈 때까지도 참전이 불가능할지도 몰라.”

“젠장...빌어먹을 괴물들...”

일행은 통로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어둠에 숨어 은밀하게 다가와 기습을 가하는 놈들도 있기에 경계는 절대 늦추지 않았다.

유세현은 스텟을 살폈다.

외부에 있을 때는 그토록 죽도록 오르지 않던 힘과 민첩 스텟이 벌써 S랭크 25%가 되었다.

비록 다른 스텟은 부족하다지만, 고작 던전 하나를 돌고 있는 결과로 치기에는 이루어 말할 수 없을 정도의 성장속도인 것이다.

하기야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같은 스텟이라면 통상 몇백 명이 달려들었어야 되었을 적을 고작 25명가량 되는 인원으로 잡고 있는 것이었으니까.

알테라그가 신기한 듯 말했다.

“성장이 정말 장난 아니게 빠르군. 솔직히 난 너희가 여기까지 다다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었다.”

알테라그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성장을 하나도 하지 못했다.

코인을 보지도, 흡수하지도 못하기에 당연한 것일 수도 있었지만 그것을 떠나 유세현은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있었다.

왜냐하면 알테라그의 수준은 아무리 잘 봐줘야 S랭크 5~10%정도로 초반부이기 때문이었다.

즉.

‘왕을 하기에는 너무 약하다.’

이강호에게 듣기로 티탄족의 왕은 비보 제작은 부과적인 것이고 기본적으로 누구보다도 강해야지만 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등장하는 적이 왕보다도 강했다.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가?

물론, 이곳이 던전이기에 개연성을 생각하는 건 어쩌면 덧없고 미련한 짓일 수도 있었다.

허나.

세심한 것이야말로 유세현의 장점.

그는 뭔가 있을 거라는 것을 염두 해둔 채 계속 위를 향했다.

어찌나 끝이 없는지 그건 마치 성을 오르는 것이 아니라 탑을 오르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그렇게 마침내 도착한 출구.

“이곳을 나가 5개의 방만 지나면 타르탄이 머물고 있는 왕의 처소가 나온다.”

“그렇군.”

유세현은 눈을 감고 마력의 흐름을 읽었다.

공간이 나뉘어져 있는지 읽히지 않는다.

‘나가서 확인할 수밖에 없겠군.’

“부상자 8명은 여기에서 대기하고 있으시기 바랍니다.”

“젠장...미안하다.”

총 부상자는 이용석, 장원석을 포함한 검은 꽃 6명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유혜인도 놓고 가고 싶었으나, 그럴 수도 없고, 유혜인을 진심으로 위한다면 결코 해서는 안 되는 행위였다.

유세현이 나가기 전 알테라그를 향해 은근슬쩍 권유했다.

“지금 우리가 잡은 놈이 입고 있는 갑주가 더 좋아 보이는데...어떻게...바꿔 입고 갈 텐가?”

유세현이 정보 창으로 보기에 쓰러진 적이 입고 있는 갑주는 유니크 등급의 아이템이었다.

동시에 가지고 가고 싶지만 축소가 되지 않아 가져갈 수 없는 아이템이기도 했다.

알테라그도 조금이라도 더 도움이 되야 되기에 이런 말을 한 것이었지만. 아이템을 집어든 알테라그는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 지금 입고 있는 게 훨씬 좋은 거다.”

“......”

동시에 알테라그가 들고 있던 아이템의 정보가 바뀌었다.

유니크에서 단번에 노말로 떨어진 것.

‘그런 설정인가...’

유세현이 아주 살짝 문을 열었다. 위치만 파악된다면 기습을 가해 일격에 죽여 볼 심산이었다.

하지만.

‘이 냄새는...’

피비린내가 진동한다.

이건 누군가가 티탄족을 쓰러뜨렸다는 의미였다.

‘여기를 지나친 건가. 고작 5개의 방만 남았다고 했는데.’

알림창이 뜨지 않는 것을 보니 아직 늦지는 않았다.

유세현이 천천히 문을 열자, 죽어 있는 티탄들과...

부서져 있는 바위 인간.

스토르 벤, 종족이 보였다.

알테라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문을 표했다.

“뭐지? 동료가 있었나?”

“......”

“아니, 종족이 다르군.”

턱을 짚은 알테라그가 씨익 미소를 지었다.

“후후후, 세상은 넓다더니...이 성에 설마 두 세력이 동시에 침입할 줄이야...재미있군 재미있어. 그래서 너희들은 어떻게 할 생각이지? 붙을 건가?”

유세현은 차분히 어둠의 마력을 주위에 흩뿌렸다.

일어나는 스토르 벤 부대.

놈들은 티탄족 만큼 거대하지 않기에, 보다 더 적은 마력으로 움직이는 것이 가능했다.

그리고 놈들을 되살린 유세현이 제일먼저 한 일은...

빠악-

놈들의 육체 강도 실험이었다.

결과를 확인한 유세현의 눈썹이 씰룩였다.

단단하다.

힘과 민첩만 눈에 띄게 높은 유세현 일행과 달리 놈들은 오랜 시간 판도라 내부에 있었다는 것을 자랑하듯 밸런스가 무척 좋았다.

“세현아 적이 어디쯤 있는지 감지 돼?”

“응. 앞으로 약 800m정도. 몇 개 방을 지난 건진 나도 모르겠어.”

“내가 또 나설 때가 됐네. 여기서 기다려.”

레피아가 그림자 속으로 숨어들더니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었다. 동시에 아퀼라가 제 3의 눈을 허공에 띄웠다.

과거 몽환의 성을 지키는 보스 몬스터 시절에는 상당히 기척이 남았지만, 유세현의 권속이 되어 서큐버스 퀸으로 진화하고, 환각계 무공까지 익힌 아퀼라의 정밀도는 말 못할 정도로 올라가 이제는 웬만해선 탐지

하기 힘들 정도의 경지에 다다른 상태였다.

방 한 개를 지난다.

방 두 개.

제 3의 눈이 멈춘 장소는 세 번째 방이었다.

티탄족을 향해 몰아치고 있는 놈들의 수는 족히 수백은 넘었다.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은 것은 기본.

그중에서도 제일 눈에 띄는 놈은 움직이지 않고 차분히 관전하고 있는 자였다. 전체적인 모습을 살핀 이강호의 눈썹이 움찔거렸다.

“아퀼라 확대해봐.”

확대하자 놈의 얼굴이 보다더 뚜렷이 비쳤다. 이강호가 입술을 살짝 곱씹었다.

아는 인물이었기 때문이었다.

‘우레의 스토크.’

< 알그하브의 부츠(4) >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