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308화 (308/612)

< 알그하브의 부츠(3) >

일반적인 던전에서는 결코 맡을 수 없는 대박의 냄새가.

‘설마 시나리오가 있는 건가?’

그렇다면 어떻게 반응해야 좋을까?

다른 사람들이었다면 좀 더 나은 답을 내놓기 위해서라도 잠시 생각을 가졌을 지도 모른다.

허나, 지적 생명체의 특성상 답하는데 뜸을 들이면 진실 된 말이라 할지라도 의심이 되는 법이다.

게다가 놈이 갇혀 있는 이유도 모르는 이상, 머리는 사실상 굴려 봤자였다.

0.1초도 안되어 순간적으로 판단을 내린 이강호가 대처하려는 순간, 유세현의 입에서 먼저 답이 튀어나왔다.

“가로막고 있던 놈들을 전부 죽이고 왔다.”

이강호는 마음속으로 피식 웃었다.

자신보다도 빠르게 판단을 내려 말하다니.

막강한 힘과 지혜, 불신으로 인해 잔뜩 발단된 파악 능력.

등이 든든하다.

과거 에반보다도, 이벨린보다도 훨씬 더.

아니나 다를까 어느새 티탄족의 눈은 신기하는 표정에서 흥미 가득한 표정으로 바뀌어져 있었다.

“호오...길목을 지키고 있던 파수꾼들을 전부 처리했다고? 무척이나 강한 놈들 인데?”

“강했지. 하지만 우리가 더 강했다.”

“크크크. 그 말이 진짜라면 작지만 정말 대단한 생명체로구나. 그래서? 이 성에는 무슨 일로 온 거지?”

티탄족의 물음에 유세현은 즉답했다.

“우리가 네게 답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만.”

상대방을 의심하는 배타적인 말투.

하지만 티탄족은 되려 호쾌하게 웃었다.

지금 처음 마주한 만큼 이러한 반응이야말로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인 것이기에.

“하하하! 그래, 확실히 너희가 나에게 답할 이유는 없지!!”

이번에는 이강호가 진지한 어조로 물었다.

“당신은 왜 이곳에 잡혀 있는 거지?”

티탄족의 반응은 퉁명스러웠다.

“하하하. 너무 당연한 걸 묻는 군. 죄를 지었으니 잡혀 있는 거 아니겠나.”

“이유가 있을 텐데?”

“후후. 나도 대답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만.”

“......”

티탄족의 말에 이강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놈은 이강호가 생각하기에 던전의 메인 시나리오를 차지하는 중요 인물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적대 세력이라 판단되지 않는 상태에서 보통 이렇게 질문하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자신의 사정을 말한다.

그런데 놈은 속내를 전혀 드러내지 않았다.

‘뭐가 부족한거지? 대체 무슨 조건이 걸려있기에...’

그는 마음 같아서는 단서를 모아 다시 오고 싶었다.

허나.

지금 그건 불가능하다.

먼저 들어온 이가 보스를 처치하는 순간 시나리오고 자시고 강제 퇴장당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던전은 영원히 닫히겠지.

어떻게 해야 될까.

이강호는 일단 그간의 경험을 떠올리며 여러 가지를 시도했다.

하지만.

“길이라...별로 알려주고 싶지 않군.”

“살려준다는데도 말인가?”

“그렇다.”

놈은 대단한 철벽이었다.

그 어떤 대화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마음을 읽어보려 시도한 유세현의 눈썹이 살짝 꿈틀거렸다.

전혀 통하지 않는다.

즉 슨, 놈은 유세현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유세현은 여기서 이상함을 느꼈다.

죽음이 눈앞에 닥쳤는데 두려워하지 않는 생명체가 있다니.

그때 이강호가 깔끔히 결단은 내렸다.

‘포기해야겠군.’

그가 창을 치켜세우자 티탄족의 입꼬리가 정말 아주 찔끔 올라갔다.

그건 누구도 보지 못할 정도로 변화였다.

허나.

화르륵-

불길로 길게 늘어난 창끝이 티탄족의 목을 닿기 직전, 유세현이 앞을 막아섰다.

티탄족은 살짝 놀란 눈치였으나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영문을 모르는 이강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래?”

“그냥 가자.”

“응? 왜?”

“굳이 죽일 필요까지는 없잖아. 우리 하는 일에 방해되는 것도 아니고 놈을 죽여 봤자 이득 보는 것도 없는데...”

이강호는 그 말에서 단번에 이상함을 눈치 챘다.

이득이라.

이득이 왜 없겠는가.

코인자체가 이득이다.

‘아!’

이강호는 박수를 칠뻔했다.

“하긴...”

이윽고 돌아서는 일행.

티탄족은 그들이 문에 다다를 때까지도 여전히 그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유세현이 입맛을 쩝 다셨다.

놈의 행동으로 보건데 뭔가 있을 거 같았는데...

그토록 바랐던 이변은 일행이 전부 빠져나간 순간 발생했다.

드르륵-

감옥 천장이 갈라지더니 그 속에서 무려 50명에 달하는 티탄족이 튀어나온 것!

‘저건 대체!’

유세현은 경악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접근하는 것을 전혀 느끼지 못했으니까.

게다가.

‘강하다.’

한 마리 한 마리가 지금까지 상대해온 놈들과는 무척 남달랐다.

안 그래도 어려운 놈들인데 난이도가 갑자기 확 증가한 것.

‘젠장...시나리오가 아니라 함정이었던 건가?’

유세현은 곧바로 임전태세를 갖췄다.

경계하고 있던 티탄족 키메라를 불러들이고, 스킬을 운용할 마력을 모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놈들이 서있는 장소가 감옥이라는 것이었다.

공간이 협소한 만큼, 천마광룡참을 피하기란 쉽지 않을 테니까.

유세현을 발견한 티탄족도 곧바로 전투태세를 갖췄다.

허나, 두 세력 간의 전투는 발생하지 않았다.

“멈춰라. 그들은 적이 아니다.”

감옥 안에 갇혀있는 티탄이 막아섰기 때문.

그 순간 이강호와 유세현은 그제야 이것이 시나리오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정녕 너희들이 우리의 적이 아니라면 거기서 한 발도 움직이지 말아라.”

일행에게 충고한 대장격 인원이 감옥 앞에 가 무릎을 꿇자 나머지 인원들도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기사단장, 테르자루가 티탄족의 왕을 뵙습니다.”

그 말에 이강호를 포함한 일행의 눈동자가 번쩍 빛났다.

왕.

왕과 관련되어있는 시나리오는 항상 보상이 어마어마하다.

게다가 지금 그들 앞에 있는 자는 듣도 보도 못한 종족의 왕이 아닌, 판도라 상위 포식자인 무력 티탄족의 왕이다.

만약 관련된 시나리오를 종료하면?

자연스레 주먹에 힘이 꽉 들어간다.

레피아는 이미 눈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 상태.

왕이 고개를 저었다.

“왕이라니...나는 더 이상 왕이 아니다. 테르자루.”

“아닙니다. 폐하께서는 여전히 저희의 위대한 왕이십니다. 타르탄...놈이 수작만 부리지 않았다면...일단 그곳에서 꺼내드리겠습니다.”

“돌아가라. 어차피 빠져 나간다 한들 이제 와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다. 괜히 너희들만 피해를 볼...”

“이미 저희는 목숨을 바치기로 정했습니다. 그러니 그런 건 나중에 생각하십시오.”

테르자루가 그 거대한 검을 뽑아 치켜세웠다.

촤작!

단 두 번의 움직임.

그것만으로 쇠창살은 깨끗이 절단되었다.

마지막으로 구속구까지 부순 테르자루는 비틀거리는 왕을 부축해 들어온 장소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한 눈에 봐도 침입할 때와 똑같이 빠져나가려는 모양인데...

“강호야 이거 따라가야 되는 거냐? 아니 따라갈 수는 있는 거냐?”

“.....”

이강호의 표정이 심각하게 변했다.

왕이 유세현 일행을 적이 아니라고 말했다지만, 테르자루를 포함한 기사들은 일행을 경계하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따라간다?

당연히 말이 안 된다. 분명히 제지를 당하겠지.

“이상하네. 이렇게 진행될 리가 없...”

그때였다.

“하하하. 정말 대단한 충성심이구나 테르자루.”

“?!”

천장에서 또 다른 티탄족 한 명이 뚝 떨어졌다. 테르자루의 눈이 파르르 흔들렸다. 계획을 발각당한 것처럼 보였는데 적잖이 쇼크를 먹은 게 틀림없었다.

“큭...자르타스 네놈...어떻게 그곳을...”

“알아낸 거냐고? 크큭. 글쎄. 어떻게 알아냈을까?”

자르타스가 손을 치켜세웠다.

유세현은 그 순간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돌아갈지 예상이 갔다.

반전영화에서, 아니 현대에 이르러서는 그냥 어떤 드라마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전법.

[뒤치기.]

서걱-

돌변한 기사의 검이 테르자루의 어깨를 스쳤다.

그의 스텟이 낮았다면 만약 그대로 목이 날아갔을 터였다.

“강호야!”

“이렇게 진행이 되는군.”

일행은 곧바로 질주했다.

전투는 불가피한 상황.

적의 시선이 다른 곳에가 있을 때 조금이라도 이득을 취하기 위해서였다.

“크윽! 이게 무슨 짓이냐!”

한편 테르자루는 무척 당황해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에게 있어 이곳에 있는 부하들은 목숨을 맡길 수 있을 정도로 신뢰하는 자들이었기에.

테르자루는 가까스로 목숨은 건졌지만, 배신당한 나머지 기사들은 그렇지 못했다.

“크윽...젤락...대체 왜...”

“미안하다. 살기 위해서는 이것밖에 방법이 없었다.”

“이 자식...너가 그러고도 기사라고 할...”

“다시 말하지만 미안하다.”

푹-

그들은 배신한 동료를 원망하며 죽어나갔다.

자르타스는 이 모습을 보며 폭소했다.

“하하하하! 어때? 믿고 있던 부하에게 뒤통수를 맞는 느낌이!”

“너 이자시이이익!”

“크크크! 잘 가라!!”

자르타스가 마무리를 위해 직접 검을 휘둘렀다. 왕이 고함을 질렀다.

“그만둬라!”

“크크크! 넌 더 이상 왕이 아니다! 내게 명령을 내릴 권한은 없어!”

“안돼!”

서걱-

결국 피분수를 내뿜으며 쓰러지는 테르자루의 육신.

왕의 눈에서 피눈물이 터져 나왔다.

“네놈들...네놈들!! 절대 용서할 수 없다!”

“크크크. 잘 알았으니 다시 감옥에나 들어갈 준비나 하시...”

자르타스는 말을 끝마칠 수 없었다.

어느 샌가 다가온 유세현이 바로 등 뒤에서 검을 내질렀기 때문.

“큭, 이놈들은 또 뭐냐!”

재빠른 방어.

허나, 온몸을 어둠으로 두른 유세현은 답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검으로 대답할 뿐이다.

콰아앙!

감옥 안에 피바람이 휘몰아쳤다.

* * *

“크으으윽...어떻게 이런 생명체가...”

털썩-

자르타스가 쓰러짐으로서 격렬하던 전투가 마침내 끝을 고했다.

살아남은 적은 단 한 마리도 없었다.

그리고 생존한 티탄족의 기사도 아무도 없었다.

왕을 제외하고는 전부다 죽었다.

“후욱...후욱...젠장...”

레피아가 혀를 찼다.

지금까지보다도 훨씬 강한 존재와의 전투.

애써 모은 키메라도 전부 부서졌다. 죽을뻔한 사람들도 몇 명이나 되었다.

때문에 본래라면 놈들에게서 나온 코인을 먹고 강해져야 되는 게 정상이었다.

허나, 시나리오 진행이라 그런지 적이고 아군이고 그 어떤 코인도 일체 주지 않았다.

즉 슨.

개고생만 하고 아무것도 얻은 것은 없는 것이다.

아니, 있긴 있다.

한없이 침울한 표정으로 테르자루의 시신을 응시하던 왕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왜...내 충복들을 도와 준거지?”

“가만히 있었다가는 우리도 위험해졌을 테니까.”

“흐흐흐. 무척 타당하군...혹시 너희들이 이 성에 침입한 이유가 비보 때문이냐?”

유세현의 눈이 번뜩였다.

“그렇다.”

“후후, 역시 그렇군...그렇다면 너희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하고 싶다.”

“뭐지?”

“내 앞에서 현재의 왕...타르탄을 죽여줘라. 그럼 너희들이 원하는 비보를 넘겨주도록 하지.”

직접 찾는 다는 방법도 있기에, 유세현이 반문하려는 순간이었다.

“참고로 덧붙여 말하자면 너희들이 아무리 성을 뒤져봤자 비보는 찾을 수 없다. 오직 전대 왕인 나만이 찾을 수 있지. 믿을 수 없다면 어쩔 수 없지만...어쩔 테냐.”

선택의 기로.

허나, 도주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임에도 되려 적 깊숙이 들어간다는 선택을 한 왕의 행동에 일행은 이미 마음을 한쪽으로 굳인 상태였다.

“좋다. 그럼 그렇게 하지.”

“호오...거절할 줄 알았는데...내가 만약 거짓말을 하는 거라면 어쩌려고 그러는 거지?”

“그땐 스스로의 아둔함을 탓하겠지. 하지만 우리는 부하를 아끼던 너를 믿는다.”

“......”

왕은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죽은 테르자루의 갑주를 벗겨 갖춰 입기 시작할 뿐이다.

“미안하다 테르자루, 잠시 빌리도록 하마.”

전부 착용하자 유세현은 묘한 느낌을 받았다.

‘마력이 증가한 거 같은데...’

< 알그하브의 부츠(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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