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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왕 유세현-307화 (307/612)

< 알그하브의 부츠(2) >

그중에서도 특히나 아린과 루시아는 무척이나 덤덤했다.

김주희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은근슬쩍 유세현의 손을 잡은 뒤 방방 뛰었다.

“역시 대단하세요! 선배님!”

루시아는 아차한 얼굴이 되었다.

저렇게 자연스럽게 스킨쉽을 하다니...

‘저런 방법이 있구나.’

다음부터는 따라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든 그녀였지만, 자신의 성격과는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에 그녀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제한 조건은 없는 것 같아. 어떻게 할 거야? 가볼 거지?”

레피아에 말에 사람들의 시선이 이강호를 향했다.

이강호가 손을 지그시 들어올렸다.

그것으로 일행의 던전 탐사가 시작되었다.

* * *

[거신족의 거성에 입장하셨습니다.]

일행들은 좀처럼 시선을 떼지 못했다.

현재 지하로 들어간 그들의 앞에는 상상할 수 없는 크기의 거대한 성이 위치해있었다.

쇠창살로 이루어진 입구의 높이만 해도 유세현의 키의 30배 이상 되었으며 벽을 구성하고 있는 기본자재 등 모든 것들이 기본적으로 거대했다.

마치 걸리버 여행기에 나오는 거인국을 연상시키는 환경.

알림창을 본 이강호의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갔다.

[거신.]

그만은 거신족이 누구를 지칭하는 것이지 예상이 갔기 때문이다.

‘티탄족이 틀림없다.’

거대한 몸과 파괴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는 생명체로, 판도라 내부에서도 무척 강한 축에 드는 종족이다.

이곳은 그 티탄족을 베이스로 만들어진 것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이것뿐이라면 이강호가 기뻐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그가 기쁜 이유는 놈들이 지니고 있는 특수성 때문이었다.

놈들 중에는 미친놈들도 많지만 손재주가 뛰어난 인물들 또한 많아 상당한 높은 수준의 신기를 다수 보유하고 있다.

판도라로 넘어온 뒤로는 재료의 희소성과 뒤엉켜 버린 법칙 때문에 안타깝게도 그 좋은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지만, 이 던전은 복제이니 만큼, 판도라에 영향을 받았을 리도 없었다.

즉 슨.

운만 좋다면 코인은 덤이고 양질의 아이템을 듬뿍 얻을 수 있는 것!

거기에 보상까지 받는다면?

트드드드-

들어온 입구가 천천히 닫히기 시작했다.

[일정지역에 도달하기 전까지 이 지역을 이탈할 수 없습니다.]

이로서 이 던전의 위험도도 증명된 셈.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이라고 필히 보상도 좋으리라.

허나, 이강호의 그런 미소는 오래가지 못했다.

쇠창살 사이로 몸을 통과시킨 뒤 계단을 올라 입구 앞에 선 일행.

그들의 표정이 뻣뻣하게 굳었다.

왜냐하면...

‘이건...’

열려있지 않아야 될게 열려있었다.

* * *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고, 내부에는 티탄족 세 마리가 쓰러져있었다.

일행 말고도 다른 인원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

레피아가 지그시 혀를 찼다.

“젠장 딱 겹치다니...정말 지지리도 운도 없지.”

허나, 그녀는 결코 흥분하거나 낙담하지 않았다.

되려 차분히 시체를 살폈다.

시체는 정보의 집합체다.

적이 사용하는 무기와 실력, 대략적인 수, 그리고 잘만하면 어떤 종류의 스킬을 지니고 있는지 까지 파악이 가능하다.

물론, 마주한 적이 한 번도 없는 만큼 한계도 명확히 존재했다.

게다가 그들은 아직 거신족 사냥도 해보지 않은 상태였다.

거신족의 힘의 정도를 알아야 그들을 처리한 놈들의 스텟의 추정이 가능한데...

그때였다.

끼이익-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는 말이 있듯이, 입구에서 가장가까이 위치해 있던 좌측 문이 난데없이 덜컥 열리며 이 거성의 지킴이로 보이는 두 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너무도 갑작스러운 등장이었지만, 인원이 적은 데다가 성의 크기가 워낙 거대해 그들은 들키지 않고 모퉁이에 몸을 숨기는 것이 가능했다.

쿵! 쿵!

놈들이 발을 옮길 때마다 대지가 들썩인다. 조심히 이동하는 놈들의 눈동자에는 경계심이 잔뜩 묻어 있었다.

이내, 죽은 동료에게 다가간 놈들 중 한 마리가 침울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케르탄...침입자에게 당하다니...네 복수는 내가 반드시 해주겠다.”

이곳이 던전이란 것을 인식하지 못했다면, 정말 살아 숨 쉬는 생명체처럼 느껴질 법한 그런 모습이었다.

이것이 바로 내부와 외부의 차이.

외부 던전 중 몬스터가 사고 판단을 하는 던전은 성물파편이 숨겨져 있던 유적 정도나 최상급의 던전 뿐이다.

아니 최상급의 던전이라고 할지라도 의지가 깃들어 있는 이는 보스 정도뿐이다.

그 외 대다수의 적대 몬스터는 생명체로서 본능은 지니고 있었으나, 이렇게까지 정교한 감정선을 지니고 있진 않다.

허나, 내부 던전은 이러한 모습이 기본이었다.

그렇기에 몬스터와 싸우고 있자면, 정말 이 종족과 싸우는 느낌을 받는다. 아니 실제로도 거의 그러하다.

이전보다도 몇 배 이상으로 높아진 위험도!

마력량을 읽은 유세현이 행여나 놈들에게 들킬까 아주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강호야, 저놈들 우리를 기습했던 놈들보다도 강해.”

“그렇겠지.”

무려, 티탄족이다.

정확한 정도를 모른다고 하나 일반적인 수준보다 강하지 않게 등장할 리가 없었다.

하지만 이강호는 놈들을 쓰러트릴 자신이 있었다.

두 가지 이유에서였는데 첫 번째는 놈들이 자신들의 존재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즉, 단 한 번에 한에서 기습이 가능하다는 것.

그리고 두 번째는 저항력.

놈들의 기본 저항력은 분명 강할 것이다.

허나, 그 정도가 비약을 섭취한 트루크나, 연합군에 비할 바는 결코 못 된다. 놈들은 레드드래곤처럼 화(火)속성 저항력에 특화된 것이 아니었으니까.

이강호가 인원들을 향해 신호를 보냈다.

무슨 말인지 깨달은 사람들은 각자 최상의 스킬을 준비했다.

그리고 티탄족이 침입자를 잡기 위해 열려있는 문을 향해 몸을 돌린 순간.

[만독화극형(萬毒火極形)!]

레피아를 시작으로 눈을 번뜩 빛낸 인원들에게서 터져나온 절기가 적을 향해 쇄도했다.

* * *

기습은 무척 성공적이었다.

“크아아아아악!”

비명과 함께 청염에 휩싸인 티탄족이 지면으로 털썩 쓰러졌다.

더 이상 약간의 미동도 하지 않는 몸과 그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코인.

완전히 절명했다는 뜻으로 사람들은 정확히 1/n로 나눠 코인을 흡수했다.

“와...증가량이 정말 장난 아닌데?”

레피아가 감탄했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이태광, 남궁시영 등등 모두가 놀란 눈이 되어있었다.

사실, 기습에 성공했다고 하나, 그들이 성공한 이유는 단순히 타이밍을 잘 맞췄기 때문만은 아니다.

놈들의 능력이 워낙 강하기 때문이었다.

만약 강한 화력을 낼 수 있는, 에픽 혹은 레전더리 급의 무공을 지니고 있지 않았더라면 되려 실패하고 반격을 맞을 수도 있었던 것!

그리고 이것이 바로 무공을 가지고 있냐 없냐의 차이다.

과거 이강호는 정말 힘들었다.

고유특성을 개화 했음에도 이것을 뒷받침 해줄 스킬이 너무도 좋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그때, 이강호에게 다가온 유세현이 말했다.

“야 강호야 어느 길로 갈 거냐?”

“음...”

티탄족의 거성은, 성이라는 특성상 길이 한 개가 아니다.

그리고 유세현은 이강호가 다 알고 있을거라는 전제하에 물은 것이었지만, 사실 이강호도 이곳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이강호는 일단 먼저 이곳에 진입한 이 종족이 나아간 길은 피할 생각을 했다. 놈들에게 보스를 빼앗기고 싶지는 않았으나, 일단은 성장이 먼저 이기 때문.

성장을 하지 못하면 죽도 밥도 되지 않는다.

‘그리고 놈들도 쉽게 보스까지 다다르진 못할 테고.’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우선은 놈들이 죽이고 간 티탄족의 사체가 깔끔하지 못하다는 점.

이는 꽤나 병장기를 많이 휘둘렀다는 것이고, 스텟이 압도적으로 우위를 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결론을 낸다.

또한 놈들이 나아간 길이 지름길이라는 보장도 없었다.

성장만 잘한다면 따라잡을 여지는 충분하다.

이강호가 마력도 회복할 겸 조심조심 움직여 각 길 쭉 둘러봤다.

턱을 짚고 고심하던 이강호가 유세현을 보며 피식 웃었다. 그리고는 다른 사람은 듣지 못할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세현아 네가 좀 골라줘라. 웬만하면 적이 많이 밀집되어있지 않은 쪽으로...”

“응? 그게 무슨 말이야? 길 몰라?”

“응. 나도 조사만 했지 실제로 들어오는 건 처음이거든.”

“아...그러냐?”

“응.”

“오케이. 알았어.”

유세현은 남은 12개의 통로를 천천히 둘러 봤다.

“이곳으로 가죠.”

이윽고 결정.

유세현이 2층에 위치한 3번째 통로 내부로 들어가자, 일행들이 재빨리 그 뒤를 따랐다.

* * *

유세현이 고른 장소는 이강호의 주문처럼 적은 그리 많지는 않지만, 무수히 많은 트랩이 설치되어있는 장소였다.

후우웅!

강렬한 열기를 지닌 용암이 그들의 머리위에서 쏟아진다.

맞으면 그들의 저항력으로는 버틸 수없는, 아니 그것을 떠내 그대로 매장되어버리는 실로 어 어마어마한 양이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곧바로 벽 속에서 발사되는 거대 화살.

함정의 수준은 보법이 없었다면 알고도 당했을 만큼 실로 장난이 아니었다. 그리고 곧바로 이어지는 전투.

“큭, 빌어먹을 침입자 놈들!”

“탄타루스! 네가 방어를 담당해라!”

“알았다!”

티탄족 3마리가 달려들었다.

놈들의 움직임뿐만 아니라, 함정도 신경 써야 했기에 해치우는 데는 실로 엄청난 고역이 아닐 수 없었다.

전투가 끝나자 땅에 털썩 드러누운 레피아가 중얼거렸다.

“젠장...지옥이 다름없네.”

물론, 그만큼 보상은 꿀 같았다.

코인 하나에 5%나 증가하는 마력 스텟.

그리고 이 같은 빠른 성장은 점점 더 심해지는 강도를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선사해 주었다.

또 그 와중 획득한 한 개의 아이템.

그것은 유니크 B등급의 장갑으로 일반적인 몬스터가 줬다기엔 너무도 황송한 아이템이었다.

사람들은 그 순간 누가 굳이 누가 언급하지 않아도 깨달았다.

마지막 보스는 정말 굉장한 아이템을 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알베타스, 연합군의 일을 겪으며 그간 잊고 있던 레피아의 눈이 오랜만에 물욕으로 이글이글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녀가 꽉 주먹을 움켜쥐었다.

“까짓 거 놈들보다 빨리 가서 처리하면 되는 거잖아?”

허나, 안타깝게도 그런 레피아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2층부터 시작한 그들이지만 점점 지하를 향하고 있었기 때문.

유세현이 머리를 긁적였다.

“야 강호야. 아무래도 방향을 잘못 잡은 거 같다.”

“그러게.”

이강호는 짧게 답했다.

하지만 잠시 후 유세현의 미안한 표정을 본 그는 말을 덧붙였다.

“야야. 신경 쓰지 마. 부탁한 건 나잖아.”

아무쪼록 중간보스가 존재할 가능성이 높기에 그들은 이왕 온 거 끝까지 가기로 했다.

그렇게 얼마가 지났을까.

그들이 마지막으로 다다른 곳은 지금까지처럼 잘 정돈되어있고, 환한 빛이 있던 장소와는 전혀 다른 어둠침침한 공간이었다.

“라이트.”

아린과 이강호가 마법으로 내부를 밝히자 양옆으로 길게 나열되어있는 철장이 그들의 눈에 비친다.

그들은 비로고 이곳이 어딘지 깨달았다.

“감옥?”

“그런 거 같네.”

내부는 오직 한곳만을 제외하고 텅텅 비어 있었다.

치직-

치지직-

쇠사슬이 서로 부딪치며 마찰음이 공간을 울린다.

발자국 소리를 들었는지 옥에 갇혀 있던 티탄족이 눈을 번뜩 떴다.

그는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인원들을 쳐다봤다.

“아주 작은 생명체로군...이곳까지 어떻게 들어온 거지?”

“......”

유세현과 이강호는 그 말에 고개를 돌려 서로를 응시했다.

본래라면 단칼이 죽였겠지만, 아무리 봐도 냄새가 났기 때문이다.

< 알그하브의 부츠(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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