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경의 길(11) >
‘놈이 던전에서 나오기 전에 이놈들을 처리한다.’
트레크라는 곧장 인원들이 위치한 장소를 향해 파고들었다.
유세현에게 압도적인 힘을 선사해준 그 기분 나쁜 스킬은 시간이 흘러 풀렸을 것이라 예상이 되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전투 발생 이후부터 던전을 빠져나가기까지 줄곧 몸을 옭아매던 특수 스킬은 마력이 남는 한 계속 사
용이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콰아앙!
이윽고 이루어진 격돌.
공격을 받은 이태광의 눈이 화등잔만하게 커졌다.
트롤의 얼굴은, 아니 몬스터의 얼굴은 사람의 눈으로 보기에는 죄다 거기서 거기인지라 파악하기 쉽지 않았지만, 이 모든 상황을 꾸민 장본인이니 만큼 트레크라를 똑똑히 알아본 것!
“큭...네놈은!!’
몸 상태가 완벽하지도 않은 지라 이태광의 팔은 그야말로 순식간에 높이 튕겨져 나갔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목을 노려오는 트레크라.
“흐흐, 잘가거라.”
“형님!”
검이 거의 다다르기 직전 4번 조장 켈벨이 잽싸게 앞을 막아섰다. 힘이 부족하다는 것을 아는 그는 왼손으로 검등을 받혀 버티려 했다.
허나.
마치 종이를 자르듯 검신을 가르며 파고 들어오는 악몽검 가르쉬우스.
“무, 무슨...”
쉬익-
악몽검이 스쳐지나간 자리에 세찬 바람 소리가 울렸다.
자신의 최후를 눈치 챈 켈벨이 시선이 한순간 이태광을 향했다.
“혀, 형님 지금까지 감사했...”
툭-
채 말을 끝마치지 못하고 피를 뿜으며 힘없이 떨어지는 목.
순식간에 시체를 낚아채 코인을 흡수한 트레크라는 스킬코인이 나오지 않아 아쉬웠지만, 도발하기 위해서라도 일부러 조소를 내뱉었다.
“크크, 그대는 부하 복이 좀 있구먼.”
생명체라는 것은 흥분하면 할수록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냉정함을 잃은 만큼 되려 약해지기 때문이었다.
만약 걸려든다면 처리하기가 더 쉬워지리라.
“이 자식이!”
그리고 정말 안타깝게도 정신이 아직 온전하지 못한 이태광은 이 도발에 걸려들었다.
쿠웅!
지면에 커다랗게 크레이터를 남기는 이태광의 바스타드소드.
이어서 달려 나온 3번 조장 제라스 또한 공격을 시도했다.
‘후후, 도발은 정답이었군.’
트레크라는 웃으며 가르쉬우스에 내장되어있는 스킬을 발동시켰다.
솨아아.
검에서 피어오르는 흉흉한 기운의 연기!
“안돼! 피해!”
무엇인지 깨달은 이용석이 다급히 외쳤지만 때는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후웅!
촤자작-
“크아아아악!”
두 사람이 고통을 호소하며 정신을 차리지 못하자 트레크라는 검의 성능에 다시 한 번 감탄했다.
‘정말 장난 아닌 효과로군.’
서걱-
순식간에 제라스의 목을 취한 트레크라의 검이 이번에야말로 이태광을 향했다.
이태광의 한계에 다다른 육체로는 도저히 회피 불가능.
마음 같아서는 진원진기를 이끌어내고 싶은 그였지만 정신력이 부족했다.
유세현이 자신들을 구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희생을 치렀는데...
‘정말 미안하다.’
이태광은 마지막까지 트레크라의 검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이 와중에도 피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그런 마음을 이 세계가 알아주기라도 한 것일까?
쿠오오오오오!
난데없이 대지가 거칠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연합군도, 아린도, 트레크라도 갑작스러운 이변에 당황을 감출 수 없었다.
일부 클리어가 될 때까지만 해도 이런 현상은 발생하지 않았는데.
눈앞으로 나타나는 여러 개의 알림창.
[악몽의 신전이 클리어 되었습니다]
[지역, 악몽의 산맥의 붕괴가 시작됩니다.]
[완전 붕괴까지 남은 시일, 4일.]
[죽음의 강의 건널 다리가 항시 가동상태가 됩니다.]
‘크으! 이게 대체 무슨!’
땅의 진동 때문에 공격에 실패한 트레크라는 혀를 찼다.
쿠구구구궁!
그 거대하면서도 웅장한 건축물, 사원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게다가 알림창에 적혀있던 문구.
신전이 클리어 됐다니?
“설마...설마!”
후우우웅!
파앗.
밝은 광명이 뻗어나가며 어마어마하게 많은 인원들이 사원의 상공에 모습을 드러냈다.
미처 빠져나오지 못했던 연합군과 구울.
그리고.
[유세현]
그의 시선이 마치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정확히 트레크라가 있는 장소를 향했다.
동시에 일대를 짓누르는 막대한 힘.
상황이 상황인 만큼 유세현은 곧바로 천마군림보를 사용해 낙하방향을 틀었다.
이제 잔여마력은 3%.
‘빨리 뚫어야 된다.’
트레크라도 지금상황이 몹시 달갑지 않았지만, 사실 그건 유세현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하늘을 떠받들고 있는 것처럼 무겁기 그지없는 몸.
잘려나간 왼팔.
심장은 아까 전부터 계속 한계에 달해 터지기 직전이었으며, 숨은 항상 턱 끝까지 차올라 있었다.
현재 유세현의 신체는 단 한곳도 정상이 곳이 없었다.
“허억...허억...루시아씨 저놈은 제가 상대하겠습니다. 인원들과 함께 돌파에 힘써주세요.”
“......”
“루시아씨?”
“아, 알겠어요.”
루시아는 평소와 달리 살짝 어눌한 모습을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던 특수한 알림창이 그녀의 앞에만 나타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심마의 근원 악옥정을 얻으셨습니다. 특수특성: 악몽(惡夢)이 개화 됩니다.]
[특수특성에 의해 마력이 악의(惡意)을 품게 됩니다. 축복 종류의 스킬 사용이 불가능해 졌습니다.]
‘악몽...’
루시아는 일단 더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지금 중요한 것은 돌파하는 것.
콰앙!
지면에 착지한 유세현의 검이 트레크라와 맞부딪쳤다.
생각보다 덜한 충격에 트레크라가 비릿한 조소를 내뱉었다.
“후후후, 많이 약해졌구먼.”
“허억...허억...”
챙!
채재재쟁!
순식간에 이루어지는 수십 번의 공방.
“이제 보니 자세도 많이 엉성하군. 잘려나간 왼팔 때문에 무게중심이 잘 잡히지 않는 모양이지?”
트레크라는 집요하게 유세현의 좌측을 노렸다.
유세현의 몸에서 땀이 비오듯 쏟아진다.
점점점 밀리는 형세.
허나, 유세현은 트레크라의 생각보다도 훨씬 잘 버텼다.
익숙해질 만하면 변화를 보이는 움직임 때문이었다. 저 요상한 검법만 아니었다면 벌써 목을 베었을 텐데.
‘실수하는 순간 죽는다.’
유세현은 온정신을 쏟아 공격을 이어나갔지만 한 팔과 양팔은 그 힘의 차이가 어마어마했다.
똑같은 올려치기라도 양손으로 휘둘렀다면 쳐낼 수 있는 것이, 쳐내지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순수한 힘의 격차를 느낀 트레크라는 차라리 단순한 쪽으로 가기로 했다.
‘놈을 짓눌러 버린다.’
후웅!
콰아아앙!
내려찍기를 방어한 유세현의 팔이 부들부들 떨렸다.
뚜두둑-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끊어지는 세포.
부하를 이기지 못하고 터져나간 실핏줄에서는 핏물이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유세현은 낭패어린 표정이 되었다.
‘젠장...어떻게든 이길 수는 있을 줄 알았는데.’
계산 미스다.
너무 지쳤다.
이놈을 죽여야 그나마 놈들의 기세가 누그러들 터인데.
이윽고 유세현의 육신을 휩쓸고 지나가는 심마의 절규.
“흐하하하!”
트레크라는 끝났다고 생각했다.
놈도 머리를 싸매고 고통을 호소하겠지.
결과를 확인한 트레크라의 인상이 일순간 와락 구겨졌다.
유세현은 아직도 두발을 지면에 붙인 채 당당히 서있었다.
‘어떻게? 설마 클리어 보상 때문인가?’
그 순간 루시아가 옆에서 치고 들어왔다.
“세현씨 역할을 바꿔요! 이자는 제가 상대할게요!”
“허억...허억...”
유세현이 고개만 살짝 돌려 루시아를 흘겼다. 트레크라는 이중에 있는 연합군 중 최강자.
그녀가 과연 상대할 수 있을까?
‘지금은 믿어야 된다.’
“부탁드리겠습니다. 절대...죽지 마십쇼.”
유세현은 루시아는 고개만 끄덕여 답했다.
유세현이 몸을 휙 돌려 방향을 꺾었다. 자신을 무시하는 행동에 어이가 없어진 트레크라가 콧방귀를 꼈다.
“어디서 마음대로...”
허나.
쉬익-
이어진 루시아의 공격은 절대 무시할 수 있을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 * *
“큭...무슨...”
트레크라의 눈이 잔뜩 불신으로 물들었다.
분명히 심마의 절규를 맞췄음에도 불구하고 생채기하나 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유세현은 적어도 상처라도 났는데...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지? 보상을 여러 개 받은 건가?’
그렇다 해도 완전 무시라니.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사기성이란 말인가?
더 이상 투정부릴 시간은 없었다.
급소를 향해 파고드는 날카로운 검.
채쟁!
“크으윽.”
공격은 1초 단위마다 점점 날카로워 졌다.
설마 밀릴 거라고는 생각 못한 트레크라는 재차 자리를 이탈할 기회를 엿봤다.
“이 암컷을 죽여라!”
그리고는 다수의 병력이 루시아에게 달려든 틈을 타 도약했다.
허나.
“넌 여기서 끝이야.”
무형의 기운이 벽이 되어 트레크라를 막아섰다.
쿵!
머리가 방벽과 충돌하기 무섭게 당황으로 물드는 눈동자.
“?!”
스킬의 대다수는 발동 전 사전 동작이 있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그러한 동작도 없이 이런 방벽을 만들다니?
아니, 그래 동작이 없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미친 강도는 뭐란 말인가?
슈욱.
촤자작-
루시아는 균형을 잃고 추락하는 트레크라를 난자했다. 육체를 대신해 잘려나간 왼팔.
‘괜찮아. 붙일 수 있다.’
잽싸게 팔을 회수한 트레크라는 이번에는 좌측으로 빠지려했다.
여지없이 나타나는 방벽.
좌우 그리고 머리 위까지 3방향으로 만들어진 방벽은 트레크라의 활동영역을 순식간에 좁혀나갔다.
‘무, 무슨!’
그리고 그 순간.
푹-
루시아의 검이 당황한 트레크라의 미간을 정확히 관통했다.
* * *
“이, 이럴 수가!”
“트, 트레크라님까지!”
“후욱...후욱...”
루시아는 호흡을 고를 새도 없이 트레크라가 들고 있는 검과 몸에 장착되어있는 포켓을 잡아 뜯었다.
놈을 죽였다고 하지만 기세를 누그러트린 것 빼고는 사실상 나아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직도 주위에 분포해 있는 수많은 적들.
인원들이 억지로 뚫고는 있지만 전부 한계 상황이었다.
한방이 필요하다.
이 모든 것을 타개할 수 있는 거대한 한방이.
허나, 루시아도 회복된 마력을 상당히 많이 사용한 상태였다.
게다가 그녀에게는 마법이나, 무공을 익힌 것이 아니었기에 아린이나 이용석 같이 어마어마하게 강력한 한방이 없었다.
그때 문득 눈에 들어오는 가르쉬우스에 내장되어 있는 스킬.
루시아는 지금까지 사용하던 유니크 S랭크 검을 힐끗 살폈다.
‘세현씨가 준건데...’
좋은 성능과는 별개로 무척 아깝다는 마음이 들었지만 그녀는 한 치의 망설임도 가르쉬우스에 검을 흡수시켰다.
그러자 트레크라가 볼 때와는 달라진 상세정보가 나타났다.
아이템명: 악몽검 가르쉬우스.
등급: 레전더리 [SS Rank]
현 등급: 유니크 [A Rank]
상세정보: 악몽의 권능 일부가 담겨져 있는 마구입니다. 정신을 잡아먹는 심마를 내뿜을 수 있습니다.
권능에 의해 온건한 힘의 발휘가 가능합니다.
무기포식을 통해 등급을 올리는 것이 가능합니다.(30일 1회 제한)(사용자 귀속)
사용능력: 심마의 절규.
루시아는 곧장 방향을 틀어 달려 나갔다.
남은 모든 잔여 마력이 검에 쏠리자 가르쉬우스의 붉은 혈조가 여태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붉은빛을 토해냈다.
“한 번...한 번 밖에 사용할 수 없어요.”
스쳐지나가면서 한 말이었지만 일행 중 듣지 못한 이는 없었다.
그들은 힘겹게 버티며 마지막 기회를 기다렸다.
이번에 빠져나가지 못하면 정말로 끝이다.
“하아압!”
유세현의 옆에 다다른 그녀가 힘차게 검을 휘둘렀다.
흡사 안개와도 같은 검붉은 연기가 모든 것을 난자해가며 폭풍처럼 뻗어나갔다.
< 역경의 길(1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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