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경의 길(10) >
“크윽...”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연합군은 망연자실한 표정이 되었다.
길이 완전히 막혔다.
빠져나가기 일보직전이었지만 폭발에 휘말려 튕겨나간 크로커다일족의 병사 한 명이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이내 터져 나오는 분노 섞인 괴성.
“크아아아악! 이 빌어먹을 오우거 새끼가아아아! 하필이면 왜 지금 자폭을 해!!”
허나, 일을 벌인 당사자는 이미 사망한 상태.
분노는 근처 오우거들에게 향했다.
“너, 너 이 자식들...왜, 왜! 그딴 짓을 벌인 거냐!”
“젠장! 나도 몰라! 모른다고! 같은 오우거라고 생각이 같은 줄 알아? 짜증나는 건 나도 마찬가지야!!”
상황은 완전 개판.
그들은 서로 말로만 치고 박고 싸웠다.
본래라면 칼부림이 일어났겠지만 종족 전체를 옭아매고 있는 강력한 계약.
그것이 목숨을 앗아갈 것이기 때문이었다.
유세현은 그 잠깐 사이 어떻게 현 상황을 타파해야 될지 머리를 굴렸다.
‘분명 봉쇄가 된다고 했다.’
즉, 던전이 완전히 폐쇄 된 건 아니라는 뜻.
이 넓은 지역 어딘가에 길을 다시 열 수 있는 장치가 존재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허나.
‘그런 걸 찾을 시간 따위는 없다.’
트레크라가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이곳에 많은 적들이 낙오됐지만, 이곳을 벗어난 연합군도 어마어마하게 많다.
한시라도 빨리 이곳에서 빠져나가지 못한다면 아린이나 이용석이나 전부 당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나마 지금 약간이라도 여유 시간이 있는 것은 구울이 함께 빠져나갔기에.
유세현의 시선이 이제는 사라진 포탈의 저 너머에 위치한 길을 향했다.
연합군이 그토록 넘고 싶어 했던 관문.
그러나 도저히 넘지 못한 관문.
저 길에 끝에는 분명 탈출구가 있을 터다.
아이템을 지니고 있지 않는데 괜찮을까?
악몽이 지금까지 침투하지 못한 만큼 괜찮을 가능성이 높다.
아니, 괜찮지 않더라도 무조건 나아가야 된다.
혼자였다면 유세현은 당장에 발을 내딛었을 터였다.
허나.
어깨위에 기절해 있는 루시아를 보니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그녀는 100% 저 악몽을 전부 받아내야 되었다.
그녀가 버틸 수 있을까?
‘젠장! 젠장!’
나가지 않으면 동생이 높은 확률로 죽는다. 나가려고 하면 루시아가 높은 확률로 죽는다.
마음속에 휘몰아치는 갈등.
그것을 가라 앉혀준 것은 다름 아닌 정신을 차린 루시아였다.
“가, 가요. 세현씨.”
“......”
“빨리. 늦기 전에.”
무리해서 하는 말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정말 미안합니다.”
유세현은 앞을 향해 달려 나갔다.
“크으으! 이렇게 된 건 다 네놈 때문이다아아아! 죽어라아아!”
잔뜩 분노한 트롤 한 마리가 그를 노려왔다.
사용할 수 있는 최강의 스킬을 발동시킨 나름의 회심의 일격!
허나 그 공격이 유세현의 몸에 닿을 수는 없었다.
“꺼져!”
퍽-
발길질에 의해 날아간 트롤의 몸이 뭉쳐있던 연합군들을 강타하자 다투고 있던 놈들의 불같은 눈동자가 유세현을 향했다.
이내 개미떼처럼 와르르 몰려드는 수많은 몬스터들.
“크윽! 이렇게 된 거 놈이라도 처리하자!”
“썰어버려!”
“죽이는 놈이 코인을 갖는 거다!”
퍼버벅-
“크아악!”
유세현은 그야말로 순식간에 길을 뚫었다. 한계에 다다른 육체 때문에 정신이 아늑해져왔지만 그는 결코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다다른 길의 너머.
악몽을 본 연합군들은 유세현을 비웃었다.
“크크크, 스스로 사지 속으로 들어가다니. 아둔하기 짝이 없구나!”
그간 봐온 것이 있는지라 너무도 당연하게 유세현이 버티질 못할 것이라 생각한 것.
허나.
유세현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내부로 들어갔다.
10보, 20보.
다행이도 악몽은 여전히 유세현에게 침투하지 못했다.
“무, 무슨! 어떻게!!”
등뒤에서 들려오는 경악 섞인 음성.
허나, 진짜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으으윽.”
루시아가 고통을 호소했다.
모습을 자세히 살펴보니 완전히 깨져나간 피부조각이 지면에 떨어지고 있었다.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때 마다 더 심해지는 증상.
유세현의 일순간 주춤 거리자 루시아가 외쳤다.
“계속 가세요! 절대 멈추지 말고 계속!”
짐이 되고 싶지 않다.
절대로.
죽는 한이 있더라도.
그를 좋아해서 따라온 것은 자신이었으니까.
트득-
트드득-
그녀의 가냘픈 손목이 완전히 부서져 내렸다. 이어서 툭 떨어지는 허벅지.
유세현은 그것을 보며 입술을 질끈 악물었다.
이래서는 살아나가 봤자 그녀는...
석판이 있는 장소에 도착한 유세현은 애타게 탈출구를 찾았다. 허나, 눈에 보이는 것은 뒤로 이어진 길밖에 없었다.
유세현이 다시 달려 나가기 시작하자 루시아의 곁에 붙어있던 망령이 더욱 극성을 피웠다.
[루시아.]
[루시아.]
[루시아...]
[...네가 죽어야 모두가 편해진단다.]
루시아는 들려오는 지드먼의 말처럼 모든 것을 놓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 어차피 이젠 더는 싸울 수도 있는 몸.
차라리 이곳에서 깔끔히 죽는 게 덜 비참할 수도 있다. 유세현이 쓸모가 없어진 자신을 버리고 떠난다면 정말 마음이 아플 것 같으니까.
그런데 그 순간.
마치 시간이 정지한 것 마냥 세상이 고요히 가라앉았다.
발소리도, 마음을 후벼 파는 망령들의 목소리도 더는 들리지 않았다.
그때 그녀의 눈앞으로 나타나는 한 남자.
지드먼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옅은 미소를 띤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순간 루시아는 깨달았다.
힘들 때나 괴로울 때나 지드먼은 자신의 앞에서 만큼은 항상 웃고 있었다는 것을.
[살거라.]
[네가 행복하기를 바란다.]
악몽의 산맥에 들어온 이후 줄곧 괴롭혀오던 두통이 사라진다.
쉬이익-
그녀가 눈을 번쩍 뜨자 주위를 맴돌고 있던 망령들이 전부 연기로 변해 흩날렸다.
동시에 어둠이 걷히며 환한 빛이 둘을 밝혔다.
[악몽의 신전, 역경의 길 끝에 다다랐습니다.]
후우웅-
갑작스레 나타난 가짜 유혜인이 루시아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설마 설마 했는데 정말 여기까지 다다랐네.]
그것은 항시 보여주던 비릿한 조소와는 다른, 무척이나 온화해 보이는 미소였다.
그녀가 루시아의 몸을 툭 건드리자 부서진 루시아의 몸은 순식간에 원상복구 되어 본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가짜 유혜인의 시선이 이번에는 유세현을 향했다.
[그리고 유세현 당신도.]
유세현이 거칠어진 호흡을 달래며 미간을 좁혔다.
“허억...허억...넌 설마...”
[그래, 난 악몽이자 역경. 이 신전을 유지하는 힘.]
“......”
유세현이 침묵하자 가짜 유혜인이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유세현을 응시했다.
[대단해~이 정도의 악몽을 무력화 시킬 수 있는 권능이라니...일개 인간이 지니고 있을 수 있는 힘은 절대 아닌데 말이지.]
딱-
그녀가 손가락을 튕겼다.
땅속에서 솟아올라와 모습을 드러내는 휘황찬란하면서도 거대한 문.
그녀가 몸을 휙 돌려 손가락으로 문을 가리켰다.
[이 문을 통하면 처음 들어온 장소로 나갈 수 있어.]
유세현은 곧바로 달려 나가려다 물었다.
“보상은?”
본래라면 얻는데 1초도 걸리지 않는다. 가지고 갈 수 있으면 가지고 가는 게 좋은 것이다.
[후후후, 보상이라...보상은 문을 통과하면 자동적으로 얻게 되어있어.]
“그런가.”
의심해볼 시간은 없었다.
지금은 한시가 급한 상황이었으니까.
“저...세현씨. 이제 내려주셔도 될 것 같은...”
유세현은 루시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 문 저편으로 자취를 감췄다.
끼이익-
철컥.
쿠구구구구궁!
거대한 문이 닫히기 무섭게 무너져 내리기 시작하는 공간.
존재 이유가 사라졌기에 장소가 없어지려는 것이었다.
그 속에서 가짜 유혜인이 마치 이 상황을 즐기듯 손을 활짝 펼쳤다.
[후후후.]
악몽의 신전, 역경의 길.
이곳은 거짓된 증표를 사용해서는 결코 다다를 수 없는 장소였다.
오직 강인한 정신력으로 악몽을, 역경을 이겨낸 자만이 다다를 수 있는...아니 사실 그 정도로도 부족하다.마지막 100m를 남겨두고는 모든 것을 초월해 대상자를 극한까지 몰아붙이니까.
대부분의 생명체는 버티지 못하고 가루가 되어 사라진다.
그렇기에 이곳은 한계를 초월한 자만이 도착할 있는 끝 중의 끝!
유세현에게 굳이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사실 이곳의 보상은 딱 한 가지뿐이었다.
* * *
10초가 지났음에도 나오지 않는 유세현.
인원들은 곧장 몸을 움직였다.
적에게 사로잡히는 것이야말로 그를 난처하게 만드는 행동이라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에 미친 듯이 달려드는 적.
열심히 싸워주고 있는 구울들이 없었다면 그야말로 순식간에 당했을 물량이었다.
아린의 어깨에 걸쳐있던 이태광이 갑자기 맑아진 정신에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방금 전까지 거동이 아예 불가능할 지경이었는데 신전에서 벗어나서 그런지 상태가 갑자기 호전되었다.
절대 차오르지 않던 마력도 조금씩 회복되고 있고.
이 정도라면 어찌어찌 싸울 수는 있다.
아니, 몸이 움직이는 이상 싸울 것이다.
그때 때마침 아린에게 다가온 위기.
“크윽!”
암흑투기도 더 이상 발휘되지 않고 있는데다가, 너무 많은 인원을 짐짝처럼 메고 있기에 발생한 상황이었다.
이태광은 곧장 손을 움직여 공격해 온 적군의 팔목을 붙잡았다.
“자, 자네...”
“영감님. 저도 가세하겠습니다.”
이태광은 몸을 회전시켜 적의 바스타드소드를 빼앗음과 동시에 아린의 어깨에서 내려왔다.
이어서 몸이 움직여진다는 것을 깨달은 인원들이 연달아 가세하기 시작했지만 퇴로를 뚫기란 만만치가 않았다.
그리고 그 와중 일행을 덮친 검붉은 연기.
상당한 예기를 지니고 있는 연기가 몸을 베고 지나가자 이용석이 머리를 쥐어 잡았다.
“으아아악!”
실로 어마어마한 고통.
이전에도 느껴본 적이 있는 감각이었다.
“이, 이건!!”
이에 연기를 흩뿌린 장본인, 트레크라의 입꼬리가 흡족하게 올라갔다.
그는 해머를 들고 있던 이전과 달리 양날검이 쥐고 있었는데, 새까만 검신의 날을 따라 곧게 뻗어있는 핏빛의 혈선이 유난히도 돋보였다.
아이템명: 악몽검 가르쉬우스.
등급: 레전더리 [SS Rank]
현 등급: 유니크 [A Rank]
상세정보: 악몽의 권능 일부가 담겨져 있는 마구입니다. 정신을 잡아먹는 심마를 내뿜을 수 있습니다만 사용자가 걸 맞는 권능을 지니고 있지 않아 본연의 힘을 모두 이끌어 낼 수 없습니다.
일정 수준 이상의 스킬 사용이 불가합니다.
무기포식을 통해 등급을 올리는 것이 가능합니다.(30일 1회 제한)(사용자 귀속)
사용능력: 심마의 절규.
트레크라가 악몽의 신전을 클리어하고 얻은 검.
비록 완전 공략을 하진 못했지만 난이도가 난이도였던 만큼 보상은 무척이나 좋았다.
무려 레전더리 SS랭크까지 성장시킬 수 있는 아이템이라니!
다만, 아쉬운 점도 있었는데 그건 검의 힘을 온전하게 발휘시킬 수 없다는 것.
허나, 트레크라는 깔끔히 잊기로 마음을 먹었다.
효과를 보건데 이 스킬은 훗날에도 충분히 사용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등급을 올리면 효과도 증가할 것이니 약간씩은 더 강해지리라.
그리고 결정적으로...
‘부족한건 저들은 이용해 메우면 된다.’
트레크라는 놈들 중 고위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자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운 좋게 그 마법을 손에 넣는다면?
더 나아가 아직 빠져나오지 못한 유세현의 스킬과 장비를 얻을 수 있다면?
이번 전투로 인해 엄청난 피해가 발생했지만 연합군에게 있어서 결코 손해는 아닌 것이다.
< 역경의 길(10)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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