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287화 (287/612)

< 역경의 길(9) >

“크하아아압! 죽어라!”

곧이어 트레크라와 오우거의 새로운 대표 오루투, 악어의 형상을 띠고 있는 크로커다일족의 대표 크로쿠스가 모습을 드러내며 날카롭게 벼려진 무기를 내리꽂았다.

콰앙!

세 명의 힘과 이에 더해진 중력가속도.

보통의 사람이라면 그대로 짓눌려 찌부러졌어야 정상이었지만 유세현은 무릎을 굽힌 채 그 힘을 온건히 받아냈다.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상황에 트레크라의 미간이 한순간 꿈틀거렸다.

‘이걸 버텨내다니.’

이 기습을 위해 그 아까운 텔레포트 스크롤까지 사용했는데.

게다가 그만큼 스킬을 남발하고도 또다시 저런 모습으로 변할 수 있다니...

그야말로 사기.

‘하지만 준비한건 이게 끝이 아니다!’

트레크라는 곧바로 다음 행동을 취했다. 항상 뒤를 생각하는 만큼, 기습이 통하지 않았을 때의 전법도 구상해 온 것이다.

신호를 보내기 무섭게 이루어지는 연계 공격!

양손으로 거대몽둥이를 쥐고 있던 오루투가 왼손을 치켜세웠다.

“풀 차징 웨폰!”

말과 동시에 생겨나는 마력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검.

콰앙!

검이 재차 강타하자, 안 그래도 방금 전의 일격으로 인해 지면으로 움푹 박혀 들어간 유세현의 발이 더욱 깊숙이 파고들었다.

그리고 그사이 지면에 착지한 트레크라와 크로쿠스.

단일 최강의 스킬을 발동시킨 그들의 병장기가 맹렬한 빛을 토해내며 유세현의 허리와 다리를 향해 쇄도했다.

둘 중 하나만 공격을 허용해도 돌이킬 수 없는 치명상을 입게 되는 상황.

양손으로 루베르크를 잡고 있던 유세현의 왼손이 황급히 좌측에 있는 트레크라를 향했다.

이를 본 오루투가 광소를 내뱉었다.

“크하하하! 끝이다! 빌어먹을 인간!!”

현 상황에서 스킬로 강화된 병장기를 맨손으로 잡는 것은 자살행위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뒤에 있는 크로쿠스의 미늘창에는 반응 하지도 못했다.

허나 그 순간, 어디선가 날아온 한 개의 물체.

치치지직-

루크루프가 제작한 보구, 입자검 라 아닐더가 크로쿠스의 앞을 가로막기 무섭게 유세현은 천마혈사장을 운용했다.

콰아앙!

시간이 없어 마력을 얼마 쏟아 붙지 못했음에도 상당한 위력.

“크으으으.”

허나, 트레크라도 지략만으로 왕 후보가 되었던 것은 아니다.

그의 해머는 천마혈사장을 뚫으며 전진했다.

너무 빨라 전쟁갑주를 변형시켜 팔에 두를 시간 같은 것은 없었다.

이윽고 이두박근을 정확히 강타하는 해머!

콰직.

뼈가 뒤틀리고 근육이 갈기갈기 찢겨져 나간다.

유세현의 끊어진 팔이 지면을 뒹굴자 최선두에 있던 아린이 경악어린 표정이 되어 고함을 질렀다.

“세현!”

아린은 어떻게든 그를 도와주고 싶었다.

허나, 현재 그는 앞을 가로막은 정예병을 상대하느라 얼마 없던 마력을 전부 소진 한 상태였다.

몸으로라도 막을 수 있다면 막겠지만, 육체능력으로는 시간 내에 당도할 수 없다.

“자네는 정말 강했네. 인정하지.”

읊조린 트레크라가 그대로 몸을 회전시키며 한 번 더 있는 힘껏 해머를 휘둘렀다.

그는 원심력을 더한 이번의 공격으로 완전히 끝장을 볼 셈이었다.

해머가 다다르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약 0.5초.

유세현은 머리를 최대한 굴렸다.

어떻게 해야 이 상황을 타파할 수 있을까.

부패의 어둠? 아니, 느리다.

그렇다면 천마대멸겁?

이것도 발동되기 전에 해머가 다다를 것이다.

어떻게 생각해도 완벽한 외통수.

지쳐서 움직임이 느려진 현재, 첫 공격을 피하지 못한 순간부터 이 상황은 이미 정해져있던 것이었다.

그의 눈동자에 해머가 비쳤다.

* * *

유세현이 죽는다.

그런 생각이 들자 루시아의 머릿속은 백지장처럼 새하얗게 변했다.

한계상황인 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그토록 괴롭히던 고통도 더는 느껴지지 않았다.

알베타스 때와 비슷한 상황.

아니, 다른 게 있다면 지금 고유특성을 사용해 그를 돕는다면 악몽에 버티지 못하고 몸이 붕괴해 자신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허나,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모든 정신력을 끓어 올렸다.

“안돼애애애애!”

일대를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날카로운 비명소리와 함께 유세현의 몸을 감싸는 얇은 막.

당장에 얼굴을 날려버렸어야 될 해머가 신기하게도 스르륵 미끄러지며 빗겨나갔다.

유세현은 그 찰나의 틈을 놓치지 않았다.

우지지직-

콰드득.

쨍그랑!

천마대멸겁이 발동되자 세 명은 곧바로 뒤로 빠졌다.

말도 안 되는 힘에 잠시 얼이 나간 얼굴.

채 1초가 지나지 않아 오루투가 발광했다.

“크으으으으! 무슨 이딴 일이!!”

“......”

트레크라도 어이가 없는 것은 마찬가지기에 딱히 할 말은 없었다.

분명히 확실히 노렸다. 또한 타격감도 있었다.

그런데 실상은 그냥 지나친 것이라니.

“꺄아아악!”

후유증에 루시아가 머리를 붙잡고 뒹굴었다.

쩌적.

쩌저적.

깨지기 직전인 유리창 마냥 갈라지는 피부.

‘저 여자가 주범인가.’

루시아를 흘깃 살펴본 트레크라는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유세현의 팔에 화염스킬을 사용했다.

팔을 다시는 이어 붙일 수 없도록 조취를 취한 것이지만 유세현 어차피 회수를 포기한 상태였다.

지금 중요한 건.

‘인원들의 대피.’

그렇다. 오직 대피뿐이다.

그리고 완벽한 대피를 위해서는 적어도 대장격 놈들 3명은 반드시 죽여야 된다.

저들까지 꺾는다면 완벽하게 기세가 이쪽으로 기울 것이기 때문.

몸이 말이 아닌 만큼, 유세현은 길을 뚫기 위해 만든 구울들을 일부 이용했다.

트레크라와 크로쿠스의 앞을 막아서는 100마리의 구울.

“고작 시체주제에!”

둘은 스킬을 난자하며 순식간에 구울을 처리했나갔지만 유세현도 많은 시간을 벌어주길 원한 것은 아니었다.

껄끄러운 것은 그들의 협공.

암흑투기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상 한 마리씩, 스크롤 사용만 조심해 상대한다면 그들은 결코 무서운 상대는 아니었다.

“비켜라! 비키지 않는 놈들은 전부 죽는다!”

유세현은 눈앞에 있는 적을 닥치는 데로 베어가며 오루투에게 접근했다.

흑뢰검이 담긴 루베르크를 방어한 오루투의 입에서 이전 대표들과 똑같이 경악이 터져 나왔다.

“크으으으, 제, 젠장! 어떻게 어떻게!!”

말이 채 끝나지도 않았건만 자세를 무너트린 유세현의 검은 오루투의 목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이런 힘을 지니고 있을 수 있냔 말이...”

서걱-

유세현은 코인을 흡수하기 무섭게 크로쿠스를 향해 달려 나갔다.

“크아아악”

크로쿠스의 목 또한 순식간에 떨어져나갔다.

트레크라는 한계를 뛰어넘어 행동하고 있는 유세현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대체 저 상태는 언제 풀리는 거지?’

1초가 1년처럼 느껴진다.

정말 기가차고 어이가 없는 일이었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자신도 당할 판. 아니, 여기에 있는 모두가 당할 판이다.

트레크라는 최후의 수를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던전의 보상을 이용하는 방법.

“오루데님! 오, 오루쿠님께서 당하신 모양입니다! 어, 어떻게 합니까?”

“큭! 놈의 진군을 막아라! 놈은 지쳤다! 분명히 조금만 더하면 놈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트레크라는 혼란스러운 전장을 뒤로하고 트롤병사 정예 일부를 이끌고 역경의 길 끝을 향했다.

마치 퇴각하듯 뒷걸음질을 쳐 조심히 움직였기에 그 누구도 눈치 채지 못했다.

포탈의 뒤에서는 여전히 기분 나쁜 침침한 연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트레크라는 혹시 몰라 두 개의 메달을 다시 한 번 사용했다.

“자, 가자.”

이윽고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아가는 트레크라와 병사들.

트레크라는 메달의 효과를 아직 확신할 수 없는 만큼, 이상이 생길시 언제고 몸을 돌릴 수 있도록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허나.

“오...괘, 괜찮은 것 같습니다.”

30보를 넘게 나아갔음에도 이상이 없자 인원들은 안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거의 끝에 다다랐을 때였다.

“크아아아악!”

메달을 소유하고 있는 트레크라를 제외한 모든 인원들이 고통을 호소하며 무릎을 꿇었다.

트레크라가 다급하게 재차 메달을 사용했지만 무용지물.

트득-

트드득.

몸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 병사들의 육신이 가루가 되는 것은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예상과 다른 결과에 트레크라의 몸이 잠시 부르르 떨렸다.

‘설마...’

메달을 지니고 있는 사람만 마지막까지 당도할 수 있다는 것인가?

이렇게 어이없게 부하를 잃다니.

‘정보가 잘못 됐던 건가.’

허나, 그는 그렇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단 한 명만이 당도할 수 있는 길.

얼마나 큰 보상이 기다리고 있을 것인가?

‘잘하면 내가 왕이 될 수도 있다.’

더 나아가자 메달모양의 음각이 새겨진 석판 두개가 나타났다. 그 뒤편으로는 보다 더 좁은 길이 이어져 있다.

‘흠...’

트레크라가 잠시 석판을 묵묵히 응시했다.

이건 아무리 봐도 메달을 석판에 꽂으라는 의미였다.

허나, 그럴시 해소 되지 않는 한 가지의 의문점.

이 좁은 길을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왜 존재한단 말인가.

우선 더 나아가보기로 마음을 먹은 트레크라가 발을 내딛은 순간이었다.

쉬이익-

등골을 서늘하게 만드는 바람과 함께 침투해오는 악몽.

그 악몽은 가호로 지금껏 안전하게 몸을 지켜왔던 트레크라는 절대로 견딜 수 없는 것이었다.

“크윽! 이게 무슨!”

본능적으로 뒷걸음질을 치자 악몽은 이내 떨어져나갔다.

그는 식은땀을 닦아냈다.

“...더 이상 나아갈 수는 없는 것인가.”

한 번의 재도전에 실패한 트레크라는 메달을 석판에 끼었다.

트르륵-

석판은 천천히 움직이더니 이내 하나로 합쳐졌다.

그리고 그 순간.

그의 눈앞으로, 아니 이 던전의 존재하는 모두의 눈앞으로 나타나는 하나의 메시지.

[악몽의 신전, 역경의 길이 일부 클리어 되었습니다. 60초 뒤 신전이 봉쇄됩니다.]

* * *

“이런 미친!”

전투를 벌이고 있던 장소에서 너나할 것 없이 욕설이 튀어나왔다.

일부가 클리어 되다니? 60초 뒤 봉쇄라니?

이게 무슨 개소리란 말인가!

“당장 이곳을 벗어나라! 갇히게 된다!”

당황한 연합군들은 점점 닫혀가는 포탈을 향해 허겁지겁 달려 나갔다. 유세현 일행도 이틈을 타 은근슬쩍 빠져나갈 생각을 가졌다.

이제 남은 잔여마력은 10%.

무척 적은 양이지만 이곳을 빠져나가기만 한다면 암흑투기로 놈들을 짓누르며 어찌어찌 벗어날 수 있을 정도는 될 것이리라.

허나, 일행은 손쉽게 포탈에 다다를 수 없었다.

“오루투의 원수! 너는 여기서 죽는다!”

“네가 감히 크로쿠스님을!!”

지성이란 것이 있는 이상 몬스터에게도 우애는 존재한다.

이제는 시체가 된 대표의 심복들은 동귀어진이라도 할 듯이 죽자고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 수는 우습게도 꽤나 많았다.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

이제 남은 시간은 약 10초 정도였다.

‘젠장 이대로라면...’

아슬아슬하다.

유세현은 탈출확률을 100%로 마력을 5% 정도 더 사용할 생각을 가졌다.

“뚫겠습니다. 딱 붙으세요!”

유세현의 외침에 쓰러져버린 루시아까지 포함해 각각 3명씩 둘러메고 있던 인원들이 마른침을 삼켰다.

지금이 생사의 갈림길.

뒤쳐지면 죽는다.

콰아앙!

천마혈사장이 일자로 길을 내기 무섭게 그들은 온힘을 다해 질주했다.

이제 남은 시간은 약 5초.

포탈과의 거리는 20m.

인원들이 거의 다다른 순간이었다.

적의 공격을 요리조리 잘 피해나가며 나아가던 이용석이 갑자기 발생한 발작에 땅을 뒹굴렀다.

그는 입을 악물고 황급히 인원들을 챙겼다.

허나.

‘큭...멀어!’

옆으로 미끄러지며 쓰러진 덕분에 루시아는 경로에서 상당히 벗어나 있었다.

그 순간 선두에 있던 유세현이 몸을 틀었다.

“오, 오빠!”

“나가있어! 따라갈 테니까! 과대 형! 그냥 달리세요!”

“큭! 부탁 한다. 세현아!”

유세현은 루시아를 낚아채기 무섭게 출구를 향해 달려 나갔다.

늦었지만 천마군림보를 사용하면 나갈 수는 있다.

그런데 그 순간.

쉬이익-

콰아아앙!

피해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어마어마한 폭발이 일어났다.

완전히 닫혀 사라진 포탈.

새까맣게 탄 오우거 한 마리가 유세현을 보며 피식 웃었다.

“흐흐흐, 내가 말했지 원수 놈아...너는 여기서 죽는다고...”

털썩.

오우거는 그 말을 끝으로 절명했다.

< 역경의 길(9)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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