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난세(3) >
빛보다 빠른 태세전환.
단, 유세현은 거기서 추가로 조건을 내걸었다.
“팀원들은 놔두고 따라오셔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냥 혼자 가겠습니다.”
이정도의 적도 처리하지 못한 이상, 저 인원들은 단순한 짐 덩어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도움이야 될 수도 있겠지만 잠입, 유인 등 작전의 선택폭을 고려하자면 없는 편이 훨씬 났다.
이에 이용석이 실소를 내뱉었다.
“원래부터 데려갈 생각도 없었어. 사실 가자고해도 안 갈 테고. 5분 정도만 시간을 줘. 깨끗이 정리할 테니까.”
동행이 정해지자 이용석은 팀원들을 불러들였다. 하지만 모인 이들 중에서는 팀원이 아닌 자들도 있었다.
각 길드의 길드장들.
그새 유세현에 대한 소식을 듣고 친해 보이는 이용석을 찾아온 것이다.
“저 분께서 저 몬스터들 다루시는 거 맞죠?”
“아는 사이라고 들었습니다만 대체 어디서 온 건가요? 이곳에는 저희밖에 없을 텐데...”
수없이 쏟아지는 질문세례.
이용석은 일단 그들을 잠시 물렸다. 그러자 다수의 길드원들이 심란한 얼굴이 되어 고개를 푹 숙였다.
“죄, 죄송합니다. 아까는 너무 패닉이 와서...”
아까 전 도주한 이들이었다.
시선을 돌려 대충 살펴보니 일반 대원뿐만 아니라 소대장 몇몇도 포함되어 있는 상황.
하기야 최측근이었던 칑콴도 도주했는데 소대장이라고 해서 못 도주할까.
분노보다는 실망감이 더 크게 느껴졌다.
그들은 자신에게 권유를 하여 퇴각명령을 하달 받던지, 혹은 죽은 이후에 임의로 판단하여 움직였어야 했다.
팀은 신체의 일부.
고작 겁을 먹었다고 해서 두루뭉술하게 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평소였다면 엄벌에 처하거나, 목숨을 빼앗았겠지만 이용석은 그러지 않았다.
“어...”
용서해주는 것 같자 살짝 안색이 밝아지는 이들.
이용석이 그런 그들을 향해 통보했다.
“현 시간 부로 나는 길드장의 자리에서 내려오겠다. 다음 자리는...너희들이 직접 뽑도록 해라.”
“...?!”
이에 길드원들의 눈이 화등잔만하게 커졌다.
“길드장님! 안 될 말입니다!”
눈치가 빠르고, 타협도 잘하고, 잔머리도 꽤나 잘 돌아간다는 점에서 이용석은 여러모로 꽤나 유능한 길드장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태광과의 친분으로 인해 얻은 무공덕분에 이상한 작전을 짬 당하지도 않는다.
한 길드원이 외쳤다.
“도망친 놈들 때문에 그러시는 겁니까? 참수하시죠! 배신은 곧 죽음 아닙니까!”
“맞습니다. 도주는 있을 수 없는...”
그때 이용석이 피식 웃었다.
“1/3이 넘는 인원을 전부? 이것 참 쉽게 죽어줄지 모르겠네.”
“......”
“아무튼 그런 것도 있지만, 사실 이게 직접적인 이유는 아니야. 난 해야 할 일이 생겼다.”
“예? 해야 할 일이요?”
“그래.”
“갑자기 무슨...그리고 그런 것이라면 저희들도 같이...”
“게리오그 산맥에 들어갈 건데도?”
“......”
인원들의 표정이 얼음장처럼 굳었다.
게리오그 산맥.
트라우마가 있다고 해서 모든 이들이 게리오그 산맥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정말 강한 정신력을 지니고 있다면 들어가도 버틸 수는 있다.
그 말에 과거 길드원 중 몇몇은 도전을 해본 적이 있었다.
스스로를 믿고서.
그러나 결과는 리타이어.
중간까지 간 것도 아니었다.
초입에서 중간사이, 그때를 이겨내지 못하고 정신이 붕괴될 것 같아 그들은 뛰쳐나왔다.
“길드장님. 대체 거기에서 무슨 할 일이 생기셨기에...”
“너희들은 몰라도 돼.”
그 한마디는 이미 이용석이 그들에게서 떠났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이용석은 곧장 다음 타자를 만났다.
본래라면 몰래 이탈해도 상관없었지만 최단경로를 생각하자면 중간까지의 경로가 같기 때문이었다.
이동을 개시하는 구울과 생존자들.
길드장들 다수가 재차 유세현의 곁으로 몰려들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만약을 대비해 조금이라도 더 친해지려는 심산.
유세현은 일단 전부 받아주었다.
어차피 적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할 것도 마땅히 없었고, 나쁜 인상을 남기는 것보다는 좋은 인상을 남기는 편이 나으니까.
그리고 또다시 조우하게 된 적.
길드장들은 무조건적으로 구울이 앞장 서줄 줄 알았다.
허나.
“앞장은 서 드리겠습니다. 대신 여러분들께서 죽인 적 코인의 1/3은 저희가 먹도록 하겠습니다.”
“...예? 1/3이요?”
길드장들의 표정이 본인도 모르게 와락 구겨졌다.
설마 이런 상황에서 딜을 하다니?
“세현씨 이건 던전을 도는 게 아니고 전쟁입니다만.”
“맞습니다. 먹으면서 싸워도 힘든데...”
“그럼 나눠서 진군하면 되겠군요.”
유세현은 딱 선을 그었다.
코인을 줄지, 아니면 나눠서 격파를 할 지.
유세현에게 있어서 구울은 그들의 목숨보다도 훨씬 중요한 병사이기 때문이었다.
자선사업 따위는 하지 않는다.
무조건 기브 엔 테이크.
‘젠장...’
유세현이 확고히 하자 길드장들은 이를 부득 갈았다. 마냥 좋은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때 이용석의 팀 헤비레인의 새로운 길드장이 된 헨돌이 초강수를 두었다.
“세현씨...당신께서 그렇게 나오신다면 저희는 이 전투를 해야 될지 말아야 될지 그 자체에 대해 깊이 고려해 봐야 됩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상 구울을 내세우지 않으면 싸우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일종의 협박!
허나, 유세현은 반응은 무척이나 덤덤했다.
“마음대로 하시죠.”
유세현은 취약부분을 찾아 곧장 전투태세를 갖췄다.
그 옆으로 다가서는 아린과 루시아.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모습이었기에 이용석은 그 유대감이 살짝 부러웠다.
‘너는 언제나 신뢰해주는 사람과 함께 나아가는 구나.’
이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유세현이 갑작스레 검을 뽑자 길드장들은 깜짝 놀라 눈을 깜빡였다.
설마 지금 공격하려는 것인가?
‘에이, 설마...아직 적의 수준도 파악하지 못했고 우리의 답도 못 들었는...’
그 순간.
엄청난 수의 구울이 괴성을 지르며 돌진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앞으로 뛰쳐나가는 3명.
헨돌은 당황하여 이용석이 있던 자리를 바라봤다.
설마 이런 미친놈들을 따라가기 위해 길드를 그만두었다는 것인가?
이 냉정한 남자가?
그럴 리는 없겠지.
그러나 그런 헨돌의 예상과 달리 이용석도 어느 새인가 자리에서 벗어나 세 명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순식간에 일어나는 패닉.
사람들이 길드장들을 향해 다급하게 외쳤다.
“어, 어떻게 합니까? 저 놈 진짜 가버렸습니다!”
“겨, 격퇴가 아닌 뚫기만 하려는 거라면 순식간에 돌파 할 수도...”
헨돌을 포함한 길드장들이 이마를 감싸 쥐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결과.
그들도 아군과 합류하기 위해서는 사실 이곳을 통과해야만 했었다.
이전이었다면 동쪽으로 우회했겠지만 경계라인이 무너져 이제는 곳곳에 적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
‘젠장,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건가?’
확실히 이전 전투에서는 그 구울로 인해 전세가 역전되긴 했었다.
헨돌은 결정을 내렸다.
“으으! 이렇게 되면 우리도 뒤따른다!”
“옙!”
그러자 다른 길드장들도 줄줄이 소세지처럼 뒤따를 것을 택했다.
헨돌이 돌격명령을 내리려는 순간이었다.
갑작스럽게 다가온 길드원 한 명이 대뜸 물었다.
“기, 길드장님 그런데 코인은 어떻게?”
“어떡하긴? 뭘 어떡해? 그놈이 말한 것처럼 해!”
“아, 알겠습니다.”
길드원의 대답과 함께 대규모의 인원들이 전방을 향해 질주해 나갔다.
* * *
전투가 끝난 후.
길드장과 헨돌은 완벽하게 깨달았다.
칼자루는 처음부터 유세현이 쥐고 있었다는 것을.
자신들은 괜한 욕심을 부렸던 것이라는 것을.
‘이 남자는 굉장히 무서운 인간이다.’
그 이후 길드 인원들은 유세현이 말한 것을 착실히 지켰다.
계속 이어지는 행군.
또 다른 적을 격퇴한 생존자들의 눈에 이채가 스쳤다.
“후...앞으로 이 산만 넘어가면...”
주둔군과 팀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허나.
휘이잉-
넓은 들판으로 흩어지는 서늘한 바람.
인원들의 표정이 망연자실하게 바뀌었다.
“제, 젠장...”
“크으!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부서져 폐허가 된 진지와 지면 곳곳에 나뒹굴고 있는 시체.
이곳은 몬스터 연합이 휩쓸고 지나간 모양인지 무척 황폐하기 그지없었다.
유세현의 탐지에 마력이 잡힌다.
동쪽 방향.
방향만 보자면 인간진형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당해서 도망쳤다고 보기에는 느껴지는 마력의 수가 너무 많았다.
‘밀린 건가? 아니면 죽었어도 저 정도나 남아있는 건가?’
아무쪼록 유세현은 이 사실을 길드세력에게 알리지 않았다.
말해준다면, 다른 진지에 다다랐을 때 신분을 보장해줄 수 있는 인원들을 스스로 보내주는 꼴이 되는 것이기 때문.
그는 계속해서 북쪽으로 향했다. 그러면서 뚫을 곳은 뚫고, 피할 수 있는 것은 피했다.
그렇게 2주.
높은 바위위로 올라가 정찰을 한 인원들이 기쁨의 함성을 터트렸다.
마침내 살아있는 여타 생존자 진형에 다다른 것이다.
게다가 이 진지는 현 시국에서는 꽤나 막강해 보이기까지 한다.
“저 괴물들은 안전합니다. 스킬로 되살린 전투 병력...”
생존자들은 유세현이 별말 하지 않아도 알아서 나서서 구울에 대한 안전을 보장해주었다.
덕분에 유세현은 별 힘들이지 않고 근처에 주둔할 수 있었다.
“호오...”
다소곳이 않아있는 구울이 신기한지 귀족 몇 명이 턱을 쓰다듬으며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허나, 유세현은 그것에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지도를 펼쳤다.
이제 게리오그 산맥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꽤나 하드코어하게 달려왔기에 일행은 이곳에서 하루를 머무른 뒤 이동할 생각을 가졌다.
그런데.
“미안하지만 지금부터는 우리 쪽의 통솔을 따라줘야겠다.”
권유도 아닌 일방적인 통보가 내려졌다.
룰로 따지자면 결코 말도 안 되는 일.
허나, 시국이 시국이니 만큼 룰은 붕괴되어 있었다.
알데우스가 그랬던 것처럼 소수나, 약자를 자기 마음대로 다루려는 것이었다.
아니, 알데우스 쪽이 좀 더 나은 편이다.
그는 모두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자신을 이용하려고 한 것이었지만 이들은...
“오늘 합류한 인원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우리는 내일 당장 본대로 귀환하기위한 작전을 펼칠 것이다. 길드는 총 7천 명을 뽑아 선두를 맡아 주어야겠다. 자세한 작전은 곧 통보해주도록 하지.”
무려 7천 명의 차출.
반면 제국군은 3천 명 밖에 차출 되지 않았다.
이에 유세현은 지휘관의 천막을 찾아갔다. 남쪽에서 북상한 만큼, 본래부터 준비해두었던 대로 적당히 핑계를 대고 빠져나가기 위함이었지만.
“사령관님과의 독대는 불가능하다. 나에게 말해라. 전해줄 터이니.”
“흠...”
유세현은 3분간의 시간을 들여 조곤조곤 잘 설명했지만 반응은 굉장히 퉁명스러웠다.
“호오...남쪽이 완전히 수복되었다는 거군. 넌 알데우스 후작님의 명령으로 바람의 길을 뚫고 올라와 비밀작전을 펼치고 있는 중이고.”
“예.”
“알았다 전해주지.”
병사가 몸을 돌렸다.
그때 유세현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자신이 원하는 소식은 절대 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그는 조용히 빠져나갈 틈이 있는지 살피기 위해 진지 외곽으로 향했다.
허나.
“더 이상. 접근하지 마라.”
반경 10m도 아니라 50m이내로 접근을 불허한다.
유세현은 어떻게 해야 될지 생각했다.
천마군림보는 너무 눈에 띄고, 아린의 블링크는 혼자밖에 이동이 불가능하다.
‘흐음...’
결국 생각나는 방법은 이번에도 하나 뿐.
대기 장소로 돌아오자 길드장들이 열띤 의견을 나누고 있었다. 유세현은 묵묵히 지켜봤다.
“젠장! 난 가서 따져야겠어! 이건 아무리 봐도 아니야!”
이에 진지에 그들보다도 먼저 도착해 있었던 남성, 가레크가 말했다.
“후...소용없어요.”
“아니, 설마 이전에도 이런 일이?”
“하...이전이라뇨. 벌써 네 번째에요. 그놈 덕분에 얼마나 죽었는지 알아요?”
“그런데 왜...”
헨돌의 말에 가레크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너무 강해서요.”
“...예?”
“힘으로 찍어 누른다고요. 다시는 덤비지 못하게.”
“아니...그래도 계속 해봐야...”
“그게 불가능하니 그렇죠. 놈은 덤비는 자들을 살려두지 않아요.”
가레크의 말에 헨돌과 수많은 길드장들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 난세(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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