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난세(2) >
마침내 올라온 고지.
“전부 쏟아 부어!”
“흐아아압!”
우우웅-
마력을 끓어 올린 이용석의 검이 은은한 빛을 발했다.
일반적인 생존자들은 익히고 싶어도 감히 범접하지 못하는, 이태광의 팀에 있던 덕에 얻을 수 있었던 무공.
그의 성명절기 강태공파격(强太功波激)이 시전 되자 칼날처럼 생긴 수없이 많은 무형의 기운이 적을 집어삼켰다.
“크아아아!”
“캬아악!”
난자되어 죽어나가는 적들.
이용석이 익힌 무공은 이강호의 태양신공, 김주희의 빙백신공처럼 엄청나게 강한 네임드 무공은 아니었으나 그럼에도 절대로 무시 못 할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물론.
휘이익!
쿵!
“쿠쿠쿠쿠쿠!”
그렇다고 해서 눈앞에 있는 모든 적을 전부 죽일 수는 없는 법이지만 말이다.
순식간에 도약하여 이용석 앞에 내려앉은 오우거 세 마리가 광소를 흘렸다.
각종 방어마법으로 도배되어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 적의 육체.
이용석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뭐가 이렇게 빨리 뚫렸단 말인가?
광역스킬만 제대로 난사해도 적어도 1분은 버티며 상당한 피해를 줄 수 있었을 터인데!
세상에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는 말이 있듯 예상이 빗나간 이유는 당연히 존재했다.
스킬을 사용했어야 될 길드의 일부가 대응을 포기하고 그냥 도주를 선택한 것.
이용석은 너무 어이가 없어 화가 나지도 않았다.
지금까지 살아남아온 주제에 이등병이나 할 것 같은 얼빠진 행동을 취하다니.
“아오! 저 개병신 빡통새끼들이!”
이탈한 길드들을 확인한 인원들이 육두문자를 쏟아냈다.
허나, 그것과는 별개로 아라크네와 오우거들은 공격을 가해왔다.
“캬캬캬캬! 꿰뚫는 송곳!”
푹-
“으아아악!”
숲으로 울려 퍼지는 팀원들의 비명.
“젠장!”
이용석은 정말 안타깝게도 그들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의 힘 스텟은 A랭크 10%로 다른 인원들보다도 훨씬 높은 스텟을 지니고 있었지만 상대가 너무 좋지 않았기 때문.
오우거가 그 육중한 팔을 들어 올리며 외쳤다.
“크흐흐! 네놈이 여기의 수장인가 보구나!”
“큭!”
얼굴을 향해 날아오는 철퇴를 확인한 이용석은 황급히 지면을 데굴데굴 굴렀다.
콰앙!
거대한 폭음과 함께 크레이터처럼 움푹 파이는 지면. 허나, 놈의 철퇴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뱀처럼 움직이며 이용석의 몸을 향해 쇄도해 들어왔다.
이용석은 입술을 곱씹었다.
‘젠장...뭔 놈의 스킬이...’
그는 여태까지 무공의 힘으로 10~15%정도의 차이까지는 어찌어찌 커버를 해왔다.
B랭크 40% 때 55%의 힘을 지니고 있는 다수의 적을 동시에 때려잡은 경험도 있었다.
허나, 이놈은 그런 놈들과는 격이 달랐다.
‘이건 못 피한다.’
이용석은 어쩔 수 없이 대응했다.
콰앙!
맞붙기 무섭게 휘청거리는 무릎.
“호오오? 이걸 버텨?”
꾸구구국.
오우거가 힘을 가하기 무섭게 점점점 육체가 짓눌린다.
차마 보법을 운용할 틈도 없었다.
이용석은 행여나 도움을 줄 수 있는 인원들이 있을까 주위를 살폈다.
“깔깔깔. 죽어라 인간!”
푸슉.
“커헉!”
안타깝게도 주위 상황은 더욱 절망적.
이용석은 스스로의 죽음을 예상했다. 그러자 문득 과거가 떠올랐다.
함께 이동된 수많은 학과 인원들.
그중에서 지금까지 살아남은 사람은 자신과 이강호, 김주희 밖에 없었다.
강력한 무력과 특이한 감지스킬로 구름섬의 고블린을 도륙 냈던 유세현조차도 죽은 것이다.
“으아아! 난 죽고 싶지 않아!”
이윽고 그가 아꼈던 길드원 마저 이용석을 버리고 도망치는 모습을 보였다.
물론, 얼마 못가.
“크크크 어딜 가려고!”
콰직.
비참한 최후를 맞았지만.
이용석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태광 형님 곁에나 계속 있을 걸 그랬네.’
이용석은 이태광의 팀이 전멸 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별로 놀라지 않았다.
그의 행동양식상 언젠간 그런 꼴이 날 것이라는 예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화를 피하기 위해 이용석은 그의 팀에서 빠져나왔다.
허나. 그럼에도 죽음의 상황을 피하지 못했다.
자신은 뭐 때문에 지금까지 이렇게 애써왔던 것일까.
김길태, 이한별, 이태광.
이용석은 그들이 그리웠다.
그들과 함께 다닐 때는 적어도 지금과 달리 즐거운 기분이 들 때도 있었다.
‘뭐, 어차피 이제 와서 이런 생각을 해봤자 늦었지만...’
이용석이 오우거를 응시했다.
이글이글 불타오르고 있는 눈동자.
“난 오늘 죽지만, 네놈도 여기서 나한테 죽는다.”
그가 모든 것을 쏟아 붙기 위해 진원진기를 해방하려던 순간이었다.
휘이익-
어디선가 날아온 검 하나가 오우거의 머리위로 내리 꽂혔다.
너무도 순식간에 일어난 일인지라 이용석도, 오우거도 당황을 금치 못했다.
“아니?”
치지직-
보랏빛 입자를 내뿜고 있는 검!
형상이 미미하게 바뀌는 것이 검은 마치 번개와도 비슷한 느낌이었다.
이용석이 보름달처럼 커진 눈을 깜박였다.
그는 현재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자신을 도와주는 이가 있다니.
게다가 오우거를 몰아붙이고 있다고?
‘대체 누가?’
이용석의 두뇌가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일단 무림인은 아니야.’
맹의 인원들은 이곳에 제법 먼 장소에 위치해 있었고, 마교나 사파의 놈들은 도와줄 리가 없으니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제국군이나 길드일리도 없었다.
그렇다면 설마?
‘이강호?’
라고 그가 생각하는 순간.
쉬익-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풀숲에서 사람 한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창이 아닌 검.
찰나의 틈을 놓치지 않고 얼굴을 확인한 이용석의 초점이 한순간 흔들렸다.
시간이 흘러 이제는 떠올리려고 해도 잘 기억나지도 않는 얼굴.
허나, 그럼에도 이용석은 눈앞에 있는 자가 누군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네, 네놈은 대체 뭐기에 어떻게 이런 힘을...”
오우거는 말도 끝마칠 수 없었다.
너무도 허무하게 떨어지는 목.
이어서 흑뢰가 주위에 흩뿌려졌다.
이에 나름 준수한 마법방어력을 지니고 있던 아라크네들은 버텨보려고 했지만.
“캬아아악!”
이제 곧 레전더리 등급을 바라보고 있는 흑뢰검은 어마어마한 위력을 선보이며 놈들의 육신을 새까맣게 그을렸다.
경직되어있는 놈들을 마저 처리한 남성이 그제야 이용석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당신이 이곳의 지휘관 맞으십니...”
뚝 끊기는 말.
1초 뒤 남성이 다시 말을 이었다.
“과대 형?”
“어, 어...너...”
이용석은 말을 잇지 못했다.
과대.
실로 정말 오랜만에 들어보는 단어였다.
“큭...오르칸이 당했다! 놈을 집중공략해라!”
유세현을 의식한 수많은 오우거들이 등 뒤에서 일제히 달려들었다. 이용석이 다급하게 외치려는 순간이었다.
유세현이 보지도 않고 검을 휘둘렀다.
-서걱.
정확히 절반으로 잘려나가는 오우거의 육신.
동시에 칠흑의 어둠이 일자로 뻗어나가 일대를 집어삼켰다. 적들로서는 처음 겪어보는 스킬.
“크아아악! 내 몸이!”
유세현이 몸을 홱 돌리며 한마디 했다.
“이야기는 끝나고 하도록 하죠.”
이용석은 그가 보지 못하는 것을 알면서도 반자동적으로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 * *
“허억...허억...산...건가?”
시체로 이루어진 산을 바라보며 생존자들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엄청난 열세의 상황이었다.
도저히 당해낼 수 없으리라 판단될 정도로.
그런데 그것이 단 한 순간에 뒤바뀌어 버렸다.
일대를 몰아친 강력한 광범위 스킬과 어디선가 난데없이 튀어나온 괴물들에 의해서.
이용석이 그 답지 않게 고개 푹 숙여 정식으로 감사를 표했다.
“정말 고맙다. 너가 아니였으면...”
“......”
유세현은 묵묵히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
사실 엄연히 말하자면 도와주고 싶어서 도와준 것이 아니었기에 이런 감사를 받을 이유는 없었지만, 굳이 감사를 표하겠다는데 거절할 이유는 없기 때문.
그는 본래 코인도 얻을 겸, 언데드를 아군으로 인식시키기 위해 이 전투에 참여한 것이다.
그런데.
‘설마. 과대가 있을 줄이야.’
정말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이긴 하지만 이는 꽤나 좋은 일이 아닐 수 없다.
별 쓰잘데 없이 간섭하려 하지도 않을 것일 뿐더러, 쉽게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을 것이기에.
이용석의 시선이 루시아와 아린을 향했다.
그는 두 사람에게도 정중하게 감사를 표했다.
어느새 그들의 주위를 생존자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이분들이야?”
“어...진짜 장난 아니였어...무림인들보다 강할지도...”
이에 인파를 흘겨 본 유세현이 이용석만 데리고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는 잠시 서서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지 말고 일단 이곳을 뜬 뒤에 하는 게 어떻겠어?”
“죄송하지만 그럴 시간은 없습니다.”
“...그러냐.”
이용석은 일단 받은 도움이 있는 만큼 하고 싶은 질문까지도 참으며 유세현의 질문에 성심성의껏 답해주었다.
물론.
별 큰 소득은 없었다.
“...미안하다.”
“아뇨, 괜찮습니다.”
조심스럽게 말한 유세현이 마지막으로 질문했다.
“게리오그 산맥으로 간 태광 형님의 팀...아직 발견되지 않았나요?”
“......”
이용석은 한대 쥐어 맞은 느낌을 받았다.
왜, 단번에 떠올리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지?
그는 유세현의 여동생을 만난 적이 있었다. 그리고 레피아의 팀에 있던 그녀가 본의 아니게 이태광의 팀과 함께하게 되었다는 것도.
침묵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깨달은 유세현의 얼굴에 씁쓸함이 담겼다.
기대를 한건 아니었지만, 그도 사람이었기에.
유세현은 곧바로 작별을 고했다.
“미안합니다. 과대 형. 제가 바빠서...”
“...아니 뭐...괜찮아.”
이용석은 사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으나 개의치 않았다.
유세현이 당장이라도 게리오그 산맥으로 달려갈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기...
‘어?’
이용석은 아차한 표정이 되었다.
“야! 세현아. 너 설마 게리오그 산맥으로 갈 생각이냐?”
“예.”
“...가지마라. 거기 근처는 지금 완전히 몬스터 소굴이야. 그리고 태광 형님이 실종된 지 무려 2개월이나 넘게 지났어. 지금 가봤자 이미 너무 늦었다. 너 정도라면 사실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을 거 아니냐.”
이용석은 진심으로 충고했다.
허나.
“아직 늦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뭐?”
이용석의 눈이 커졌다.
“...늦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예.”
단호한 대답.
확신이 묻어져 나오는 말이었다.
그리고 이용석은 유세현이라는 사람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유세현이 이렇게 말하는 데는 어떤 이유가 있는 것이라고.
“......”
이용석은 생각했다.
자신이 묻는다고 유세현이 제대로 답해줄까?
자신이 생각하기에는 절대 아니었다.
싫다고 하겠지.
그는 고개를 돌려 저편을 살폈다.
도망쳤다가 돌아온 수많은 팀들.
자신을 버리고 튀었던 길드원들.
‘태광 형님...’
어차피 아무리 잘해봤자 재수 없으면 죽을 수도 있는 세계.
그들이 살아있다면, 구출할 수 있다면 다시 함께할 수 있을까?
“야, 세현아.”
“예.”
“그럼 나도 같이 가자. 끼어...”
“안 됩니다.”
이용석은 말도 채 끝내기도 전에 거절당했다.
허나, 이용석에게는 비장의 수단이 있었다.
“야, 세현아. 네가 만약 사원으로 들어갈 생각이라면 날 데리고 가는 게 좋은 판단이야. 그쪽 길에 엄청 능통하거든. 동굴이나 숨을 곳도 꽤 알고 있지. 그래서 묻는 건데 세현아. 내 성격에 트라우마가 있을 것 같냐?”
유세현은 묵묵히 이용석을 바라봤다.
초기에는 한없이 얍삽하여 실리만 추구했던 인물.
그런 그가 현재 어필하고자 하는 바는 분명했다.
자신은 과거에 게리오그산맥에 들어갔다 왔다는 것. 그리고 알아서 1인분을 할 수 있다는 것.
“...사원 내부의 구조. 잘 알고 있으십니까?”
“물론. 전부 파악하고 있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장치가 있는 곳까지는 알아.”
“좋습니다. 그럼 함께 가시죠.”
< 난세(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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