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기치 못한 결전(1) >
카르베스, 그가 중얼거렸다.
[역시, 함께하고 있었군.]
그의 망막에는 유세현이 맺혀 있었다.
그는 눈동자만 살짝 돌려 주위에 분포해 있는 남궁시영, 레피아, 에반 비텔스바흐를 살폈다.
본연의 힘을 발휘할 수 있다면 몰라도 유세현의 간섭을 받게 된다면 하나 하나 쉽게 상대할 수 없는 강자들.
허나, 카르베스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이전보다 압도적으로 강해진 군체의 지배력.
그것이 마약처럼 불안감이라는 감정을 일체 느끼지 못하게 만들었기 때문.
쉬이익-
슈슈슈슈슉!
그때 한줄기의 참격이 지상으로부터 쏘아져 날아왔다.
에반이 사용한 절기였다.
거리가 제법 되는 만큼, 카르베스는 단 세 번의 날갯짓만으로 간단히 회피했다.
기분 같아선 맞받아쳐주고 싶은 느낌.
허나, 뇌리 속에 울려 퍼지는 소집 명령에 카르베스는 곧바로 등을 돌렸다.
후웅. 후웅.
수백, 수천 번의 날개 짓이 이어진다.
이윽고 소집 장소에 도착한 카르베스가 내려앉은 곳에는 이미 5마리의 모든 직속호위병들이 모여 있었다.
카르베스는 베아렉클의 등에 요염한 자세로 앉아있는 알베타스를 향해 무릎을 꿇었다.
서서히 열리는 그녀의 입술.
“카르베스. 네가 판단하기에 놈들의 전력은 어떤 것 같나?”
[강합니다. 하지만...]
충분히 부숴버릴 수 있다.
카르베스는 그리 판단했다.
사실, 알베타스는 인간세력이 반격을 취한 이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들을 제대로 상대한 적이 없었다.
왜냐하면.
접어두고 있던 알베타스의 2쌍의 날개가 한순간 뒤척였다. 갑주의 틈 사이로 희미하게 비치는 5개의 깃털모양의 문신.
이전 4개였던 것을 감안하자면 그새 하나가 더 늘은 셈.
그렇다.
이제 알베타스는 파편 하나만 더 모으면 판도라 내부로 향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리고 마지막 타겟만큼은 이미 예전부터 지정 해놓은 상태.
[유세현.]
수확관, 레브레스와의 전투 때 유세현이 전쟁갑주를 약간 변형시켜 손을 방어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두 개 중 하나가 드러나 보인 것!
파편과 유세현의 힘.
두 마리의 토끼를 동시에 잡는다.
자리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킨 알베타스의 입가에 미소가 감돌았다.
잔잔하게 울려 퍼지는 매혹적인 음색.
“미끼를 뿌려라. 이번에야말로 놈을 내 것으로 만들고 내부로 향한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카르베스를 포함한 직속호위병 일동이 고개 숙여 답했다.
* * *
생존자들의 고군분투.
그들은 얼마 안가 남부 초기지역 대부분을 수복할 수 있었다.
이젠 새내기들이 알베타스에게 어이없게 넘어가지 않는 것.
허나, 생존자들은 마냥 좋아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알베타스를 완전히 몰아낸 것은 아니었기 때문.
만약, 이대로 방치하고 에반이 위로 복귀한다면, 다시 점령당하는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놈들의 생산시설을 찾아내서 부숴버려야겠습니다.”
에반은 지금 당장 알베타스를 말살할 생각을 갖고 있진 않았다.
알베타스를 몰아낸 뒤 방어진을 구축하여 병력 충원 루트를 확보하는 것이 이곳까지 내려온 목적이었으므로.
이에 유세현이 차분히 턱을 짚었다.
지금 에반이 하는 말은 북쪽으로 향하고 싶은 주관적인 생각을 배제한다 하더라도 대체로 옳다.
확실히 위협만 되지 않는다면 알베타스의 일은 위쪽 일을 해결하고 처리해도 되는 것.
허나.
안정화가 그렇게 쉽게 가능할까?
특이개체가 있고 직속호위병이 존재하는데?
현재 알베타스를 겪어본 사람들은 똑똑히 느끼고 있었다.
지금의 알베타스는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이제까지의 놈들의 군세는 무척 강했다.
별다른 수단이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그런데 큰 노력 없이도 지역을 너무 순탄하게 수복했다.
놈들이 떼로 들이받으며 저항했더라면 이런 생각을 하진 않았겠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말이 안 되는 것!
그리고 카르베스의 정찰...
놈들이 일부러 내어준 느낌. 아니, 내어준 것이 거의 확실하다.
‘대체 뭐 때문에...’
사람들은 몇 번이고 생각을 되풀이했지만, 알베타스의 상황을 모르는 그들은 아무것도 떠올릴 수 없었다.
“어디부터 수색해 나갈 생각이십니까?”
“흠...우선은 제일 가까운 윈트산맥에 있는 군락지부터 제거할 생각입니다. 이전 침투작전을 펼쳤던 팀장님들께서 알아놓은 곳이 몇 있다고 합니다.”
에반의 차분한 답변.
이내 상념을 접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회의는 종료되었다.
* * *
유세현의 손짓에 지금까지 모아둔 4천 마리의 구울이 줄지어 움직였다. 스스로를 알려 직속호위병을 끌어내기 위함이었지만...
‘역시 나타나지 않는군.’
마력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다.
“호오...”
한편, 주위에 있던 병사들은 구울을 신기한 눈초리로 바라봤다.
이 많은 양의 시체를 고작 한 명이 조종할 수 있다니.
“스킬 장난 아닌데? 유니크 급이겠지?”
“그러게. 잘하면 레전더리급 일수도...”
이윽고 군락지에 도착한 인원들.
“가자!”
“한 마리도 남김없이 없이 죽여라!”
엄청난 수의 인원들이 동굴 안으로 밀려들어갔다.
-캬아악.
[크어억.]
순식간에 싸늘한 시체가 되어 쓰러지는 알비론과 혼종.
그들은 도무지 생존자들을 감당할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역 수비를 위한 인원 1만 명을 제외한 나머지 3만 명이 전부 몰려온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군락지 하나를 공략하는데 대략 1000명 정도 필요한 것은 고려하자면 무척 좋지 않은 효율이었지만 만에 하나 이전과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이런 조치를 취한 것!
무려 2만 7천의 병사가 주위를 감시하고, 3천의 병사가 싹 쓸어버린다.
놈들로서는 그야말로 마른하늘의 날벼락.
“큭! 알베타스 놈들...”
처음 군락지를 겪는 기사들의 인상이 와락 구겨졌다.
“젠장...구할 수 있는 방법은 정말 없는 겁니까?”
“없습니다. 목숨을 끊어주는 것이 최선이에요.”
부수고, 또 부수고.
그들의 행보는 안전한 대신 무척 느렸다.
그리고 격렬한 저항을 예상했던 것과 달리 알베타스의 반응도 굉장히 미적지근하기 그지없었다.
“놈들도 이제 안 된다는 걸 깨달은 게 아닐까요? 병력을 조금 나눠서 공략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병력을 통솔하고 있는 한 장군의 발언.
죽음의 위기를 간신히 넘겼던 알라함과 나머지 길드장들의 미간이 움찔거렸다.
“그럴 놈들이 아닐세.”
“맞습니다. 놈들은 바퀴벌레 같은 놈들입니다. 죽여도 죽여도 끝임 없이 밀려오죠. 효율 때문에 병력을 분산시키고 싶으신 모양입십니다만 저는 지금 이 상태를 유지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대로는 정말 너무 비효율적입니다. 저희가 B랭크도 아니고 A랭크인데...게다가 물량도 이전과는 격이 다르지 않습니까. 적어도 3분할 정도는 해서...”
“안된다니까요! 죽은 제 팀원들은 A랭크가 아니었던 것 같습니까?”
잔뜩 흥분한 인원 한 명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치솟았다.
평소와는 확연히 다른 굉장히 예민한 반응.
“허...”
남하한 병력들은 대체 어떤 경험을 한 것인지 궁금증을 가지면서도 한편으로는 한심스럽다는 시선을 보냈다.
알베타스의 진면모를 알지 못한 채, 지금까지 너무도 쉽게 승리를 거머쥐어 온 탓.
에반은 어떻게 해야 될지 생각했다.
확실히 장군의 말처럼 지금 이대로는 너무도 비효율적이다.
수개월 동안 너무도 많은 생존자가 포획된 탓에, 군락지를 찾아내고 처리하는데 얼마의 시간이 소요될지 감이 안 잡히는 것.
허나, 그도 레피아에게 그때의 참변에 대해서 들은 바가 있었다.
그때 당한 병력이 3천명.
지금상태에서 3분할하면 1만 명으로 그때의 3배다.
많다고 하면 많은 병력이지만 변수가 존재하는 만큼 살짝 애매한 느낌.
에반이 말했다.
“일단은 조금 더 지금의 상태를 유지하도록 하겠습니다.”
* * *
수색을 나간 팀의 보고가 이어졌다.
“갈락크락스를 발견했습니다.”
정말 운 좋게 자취를 찾아낼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뒤를 추적해본 결과 발견된 엄청난 수의 군락지와 주위를 지키고 있는 특이개체.
위치는 윈트산맥의 북서쪽으로 경계지대 근처였다.
내용을 들은 에반이 말했다.
“특이개체가 꽤 많군요.”
수색팀이 대충 헤아린 수 만해도 무려 50마리.
게다가 특이개체의 힘스텟은 A랭크 35%정도에 달한다.
평균 힘 스텟이 A랭크 18%인 생존자들에 비하면 월등한 스텟.
허나.
“고작해야 50마리. 충분히 가능합니다. 아니, 500마리가 있다고 해도 상관없습니다.”
그들에게는 막대한 병력과 무인들, 그리고 더 강한 지휘관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각자가 지니고 있는 성명절기를 고려하자면 사실상 비교할 바가 못 되는 것.
이에, 유세현이 비릿한 실소를 내뱉었다.
경계지역에 위치해 있는 군락지와 그 주위에 분포하고 있는 특이개체.
사람들이 뭐라고 하건 지금 그가 판단하기에 이것은 명백한 함정이었다. 아니, 유혹이다.
알베타스는 지금 노골적으로 유세현에게 말하고 있었다.
특이개체를 잡고 싶으면 들어와라.
아니면 주지 않을 것이다.
‘내 감지 범위를 파악했나 보군.’
하기야 그렇게 치고 빠지기를 반복했는데 어찌 보면 모르는 것이 더 이상한 일이긴 했다.
분명 경계지역 뒤에는 직속호위병과 엄청나게 많은 병력이 도사리고 있겠지.
“흠...”
언뜻 보면 적이 짜놓은 판으로 들어가는 것이기에 엄청난 고육지책이 아닐 수 없었다.
허나, 면밀히 따진다면 결코 나쁜 것은 아니었다.
그 첫째, 우선 이곳의 인원들이 엄청 강하다.
아니, 현재로서는 지닐 수 있는 최고 전력이다.
에반, 남궁시영, 레피아, 그리고 무인들.
무공 하나하나가 막강한 위력을 지니고 있는 만큼, 이전처럼 단순한 수적 우위로는 놈들도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것.
그리고 두 번째.
이전과 달리 퇴로가 확실히 확보되어있다.
즉, 퇴각하려는 자신을 붙잡기 위해서는 놈들도 시작부터 전력을 다해야만 하는 것.
때문에 유세현의 예상이 맞을시 놈들은 시작부터 직속호위병을 동원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다면 여기서 중요한 점.
직속호위병은 과연 몇 마리나 될 것인가.
유세현은 과거 알베타스와의 전투이후 이강호와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야, 알베타스에는 저런 괴물이 대체 몇 마리나 있는 거냐?]
[어? 호위병들? 그때는 헤드리아나 베아렉클 말고도 15마리는 더 있었지.]
[...미친. 그러면 지금은 몇 마리나 될 거 같냐?]
[글쎄...최고 오리지널인 베아렉클의 수준으로 고려해 봤을 때 활동이 빨라서 그렇지 놈들도 판도라에 온지 그리 오래 된 건 아닌 것 같아. 그러니까 많아봤자 3~5마리 정도 되지 않을까 하는데...]
약 17마리가 되는 것이 지금으로부터 8년 후의 일이다.
즉, 1년당 약 한 마리씩 늘어나는 것이라 가정한다면 아주 많으면 8마리. 적으면 6마리 정도라는 계산이 나오는 것.
물론, 존재하지 않았던 카르베스라는 놈이 등장하고, 만나지 않았어야 될 알베타스와 전투를 하고 있는 지금, 이제 더 이상 미래의 정보가 뭔 소용이 있겠냐마는.
‘그래도 10마리는 넘지 않겠지.’
역시 아무리 생각해도 제법 할 만 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언제쯤 치는 게 나을까요?”
“적도 우리의 동향을 알고 있으니 역시 바로 실행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유세현이 생각을 마쳤을 때 여론은 몇몇을 제외하고는 이미 하나로 모여 있었다.
알라함이 유세현의 눈치를 살폈다.
그는 눈치를 깐 유세현이 빨리 끼어들어 말려주었으면 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가 보기에 이것은 이전의 상황과 너무도 비슷했기 때문.
허나.
레피아도 유세현도 아무런 말을 꺼내지 않았다.
지진을 일으키는 알라함의 눈동자.
왜? 어째서?
놈이 이걸 눈치 못 챈단 말인가?
그 순간 유세현과 알라함의 시선이 교차했다.
감정 하나 비치지 않는 눈동자.
알라함은 그 순간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저놈, 알고서 일부러 이러는 것이다.
그는 체면 불구하고 반발을 하려했다.
“잠...”
그러나 때는 이미 너무 늦은 상황.
에반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럼 30분 후 곧바로 작전을 시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각 지휘관들께서는 위치로 돌아가 대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
흩어지는 사람들.
몸을 부들부들 떠는 알라함을 스쳐지나간 유세현은 팀원들을 불러 모았다.
아린, 케드리나, 루시아.
“세 분께서도 진즉 눈치 채셨겠지만 아마 이번에는 직속호위병들이 우르르 몰려올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니 전투가 발생하면 뒤로 빠져있으세요. 레피아씨께 미리 말해두었으니...”
“아뇨, 저는 싸울게요.”
케드리나가 말했다.
“나도, 싸울거네.”
“...저도.”
이어서 아린과 루시아까지.
유세현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휘말리면 살아남기 힘들다는 걸 스스로가 더 잘 알 터인데.
생각을 읽히기라도 한듯 아린이 그의 어깨에 조심스레 손을 얹었다.
“허허, 죽을 가능성이 높은데 왜 그러냐는 표정이구먼.”
“......”
“세현, 자네는 팀원들이 죽은 것에 대해 큰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네만 전혀 그럴 필요 없네. 자네를 따른 것은 강요가 아닌 우리의 선택이었으니 말일세. 그리고 죽은 모두를 포함해서 우리는 잘 알고 있네. 자네가 우리
를 조금이라도 더 많이 살리기 위해 얼마나 열과 성을 다해 싸웠는지. 단순 생존은 자네가 마크를 처단했을 때 끝났네. 우리가 이곳에 온 이유는 계속 나아가 끝을 보기 위함이지. 죽음은 당연히 각오하지 않았겠는가.”
“......”
“그러니 우리는 염려 말게나. 우린 자네의 팀원이 되고 싶은 것이지 짐이 되고 싶은 것이 아닐세. 그리고 짐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강해져야 되지 않겠는가?”
아린이 어깨를 살짝 토닥였다.
유세현은 쓴 미소를 머금었다.
“이번 전투는 이전보다도 더 정신이 없을 겁니다. 조심하시길...”
“허허, 걱정 말게나 이레 봬도 나름 대마법사이니.”
아린은 반대로 선선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 예기치 못한 결전(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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