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원군(2) >
‘왜지?’
이유를 생각해봐도 딱히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무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놈들은 인간진형의 주요 거점을 공격하는 등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기 때문.
아니, 어쩌면 위기감을 느꼈기에 이러는 것일 수도 있다.
암흑투기와 언데드 레이즈, 마족화 그리고 천마의 무공.
확실히 자신이 강해지면 군체로서도 대책이 안 세워지긴 할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그런 걸로 자부하기에는 뭔가가 꺼림직 하단 말이지.’
알베타스는 영리하다.
인간의 특성을 파악하고 틈을 파고들어 순식간에 이런 사태를 만들었다.
지금까지도 별 피해 없이 계속 증식하고 있는 상황.
그런데 단지 자신이 두려워서 나서지 않는다?
타개책을 찾으려 할 것이지 결코 그러지 않을 것이다.
‘대체 뭐냐...’
유세현은 일단 생각을 잠시 접기로 마음먹었다.
패에 새겨져 있던 각인의 효과가 끝난 지도 어느덧 3일째.
직속호위병 2마리가 계속 붙어 다니는 데다가 이제는 마음대로 진지를 거닐 수도 없기에 그는 일단 둥지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가서, 의견도 나누고 정보도 받는다.
유세현이 알베타스를 뒤로 하고 몸을 돌리자, 그 바로 옆을 루시아가 따라붙었다.
* * *
몬스터들이 장악한 길목의 하부.
인간과의 접전지역으로부터 멀찍이 떨어진, 북서쪽에 위치해있는 고요한 숲으로 두 마리의 생명체가 날아들었다.
한 마리는 거대한 부메랑을 연상케 하는 육체를 가지고 있는 존재였으며 다른 한 마리는 단단한 4쌍의 붉은 날개를 지니고 있는 존재였다.
베아렉클과 카르베스.
무려 30m가량의 높은 나무 틈을 저공비행해 헤쳐 나가던 그들의 육체가 뚝 멈춰 섰다.
그들의 앞에는 두께만 6m가 넘는 커다란 고목이 우두커니 서있었다.
카르베스가 멈춰선 베아렉클을 보며 말했다.
[그럼 난 들어가 보도록 하지.]
[그래, 알았다.]
고목에 뚫려있는 구멍으로 카르베스가 들어가자 질척하면서도 끈적한 점막이 그를 맞이했다.
그런 그의 눈앞으로 보이는 거대한 알.
헤드리아를 포함해 먼저 당도한 4마리의 직속호위병은 이미 무릎을 꿇고 대기하고 있는 상태였다.
두근. 두근.
알이 마치 살아 숨 쉬는 것처럼 거칠게 요동친다.
알베타스의 군체가 판도라의 진입을 대비해 4차 변태에 들어 간지도 어느새 한 달.
카르베스가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무릎을 꿇기 무섭게 알에서 붉은 광명이 터져 나왔다.
트득. 트드득.
점점 균열이 생겨나는 껍질.
이내 아기새가 알을 뚫고 나오듯 두꺼운 껍질이 완전히 날아가며 그 속에서 그들의 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군체, 다름 이름으로는 알베타스.
휘하의 모든 것을 관장하는 지배자.
모습을 확인한 헤드리아와 카르베스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두개의 눈, 하나의 코, 하나의 입, 봉긋한 가슴, 구리빛의 피부 그리고 기다란 흑단의 머리카락까지.
알베타스는 인간 여성과 굉장히 흡사한 모습을 취하고 있었다.
차이점이 있다면 등에 2쌍의 붉은 날개가 돋아있다는 것.
스스로의 몸을 살핀 알베타스가 마치 시험을 하듯 이리저리 육체를 움직였다.
이내 터져 나오는 목소리.
“후후후.”
알베타스는 걸걸한 기계음이 섞인 헤드리아와 달리 제법 고운 것이 목소리조차도 인간 여성과 굉장히 유사했다.
직속호위병들은 묻고 싶었다.
다른 강력한 형태를 제쳐두고 왜 그런 형태를 취한 것인지.
허나, 군체는 그들에게 있어서 곧 하늘.
호위병들은 그저 머리를 조아렸고, 알베타스는 묵묵히 카르베스에게 다가가 어깨에 손을 얹었다.
“카르베스.”
그저 이름을 불렀을 뿐인데,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강력한 복종심이 카르베스의 자아 속으로 파고들었다.
자살하라고 명을 내린다면 당장 스스로의 목을 잘라야 될 듯한 감각.
이전에는 이렇게까지 강압적인 느낌은 들지 않았다.
카르베스는 지금까지 자신이 느끼고 있던 감각이 다른 이들이 느끼고 있던 감각에 새발의 피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군. 그래서 다른 개체들은 거역을 할 수 없었던 것이군.’
[예. 왕이시어.]
충실히 답하자 알베타스가 환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리고는 물었다.
“놈의 행방은 어떻게 되었느냐. 내 마지막 추격은 직접 보지 못해서 말이다.”
[이전과 동일합니다. 저와 베아렉클이 도착하니 놈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카르베스의 말에 알베타스가 턱을 짚었다.
사람의 관점에서 친다면 무엇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그런 표정이었다.
남들과는 좀 다른 변종호위병, 카르베스가 조심스레 물었다.
[왕이시어 송구하오나 한 가지 여쭙고 싶을 게 있사옵니다.]
“무어냐, 윤허한다. 말해보아라.”
[왜, 구태여 그런 모습을 취하셨는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이전 알베타스의 모습은 3m가 넘고, 팔이 12개가 달린 괴물의 형태였다.
그리고 그만큼 어마어마한 위력을 발휘했다.
그런데 지금은 2m도 채 안 되는 작은 체구.
체구가 작은 만큼 공격거리가 짧아진다.
또한 2개의 팔은 스스로 제약을 두는 것과 같았다.
카르베스가 조심히 언급하자 알베타스가 뭐가 웃긴지 킥킥 웃었다.
“체구가 크다고 좋은 것만은 아니지. 타겟이 될 확률이 높지 않느냐.”
[그건 저희가...]
“후후, 그리고 그것을 제외하고도 이런 모습을 취한 건 다른 이유도 있느니라.”
그 말에 직속호위병들의 귀가 쫑긋 섰다.
카르베스를 바라보는 알베타스의 눈이 번뜩 빛났다
“난 놈의 모든 것을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
누구처럼 불완전하지 않게.
정상적인 상태로.
알베타스는 마지막 말은 꺼내지 않았다.
내용을 알아챈 카르베스가 고개를 푹 조아렸다.
충복으로 삼고 싶다는 것인가.
‘나 때와 같이...’
카르베스의 고개가 순간 갸웃거렸다.
복종심은 견고해진 그대로였다. 그런데 이상한 기억이 무심코 떠오르다니.
그 순간 알베타스의 명령이 동시다발적으로 떨어졌다.
내용은 [파편 소지자와 놈을 찾는 것.]
파앗.
2마리의 호위병을 제외한 나머지 4마리의 호위병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누구는 몬스터들이 있는 경계지역 쪽으로.
또 다른 누군가는 인간의 진형 쪽으로.
헤드리아가 알베타스에게 다가와 공손히 갑주를 내밀었다.
무려 유니크 A랭크의 아이템으로 인간을 죽이고 강탈한 물품 중 최상품 속하는 물품이었다.
“잘 쓰도록 하지.”
[송구하옵니다.]
헤드리아는 연이어 유니크 B랭크의 검과 방패도 알베타스에게 넘겼다.
착용하기 무섭게 알아서 딱 맞게 줄어드는 갑주.
갑주의 등에는 곧바로 길고 커다란 홈도 생겨 날개를 사용하는데 전혀 지장을 주지 않았다.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알베타스.
그녀는 날개만 없다면 영락없는 베테랑 생존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바깥으로 나가자 베아렉클이 휘어져있던 기다란 꼬리를 지면에 내렸다.
밟고 올라타라는 의미였지만.
“시험 삼아 직접 날아보겠다. 헤드리아나 태우도록.”
[알겠습니다.]
후웅. 후웅.
알베타스가 힘차게 날갯짓을 하자 거센 바람이 일었다.
점점 상공으로 떠오르는 알베타스의 육체.
이윽고 세 명이 자리를 뜨자 고요한 숲에는 정말 깊은 적막이 찾아왔다.
* * *
둥지로 돌아온 유세현과 루시아.
“야, 들었냐?”
“뭐? 에반님?”
“어! 그걸 뚫고 내려오셨다잖아!”
“루머 아니야?”
“아니야, 내 상관이 조만간 정식 전파가 있을 거라고 했었어.”
지나가는 사람들의 표정도 그렇고 말도 그렇고, 둥지는 이전과 달리 뭔가 묘하게 들뜬 분위기가 구성되어 있었다.
유세현은 곧바로 남궁시영을 찾아갔다.
안타깝게도 회의를 위해 자리를 잠시 비운 상태.
곧바로 방향을 틀어 레피아를 찾아갔지만 그녀 또한 숲속을 탐색하러 나간 모양이었다.
마땅히 할일도 없었던 유세현과 루시아는 대충 근처에 자리를 잡고 남궁시영이 돌아올 때까지 대기하기로 했다.
“......”
적막감이 흐른다.
항상 이런 식이었다.
유세현은 공적인 것이 아닌 이상 굳이 말을 걸 필요성을 못 느꼈고, 루시아는 말을 걸고 싶어도 걸만한 소재가 없었다.
기껏해야 공통 주제는 알베타스에 대한 이야기 정도인데.
둘 다 모르니까.
그러다가 문득 떠올린 생각.
불의에 휘말리기 전 같이 다녔던 사람들은 누구일까.
여자는 있을까?
이미 절반정도 까발려진 만큼, 물어봐도 상관없을 것 같았기에 루시아는 용기를 냈다.
“저...세현씨.”
“예.”
“그...여기보다도 훨씬 위쪽 지역에 동료 분들이 계신다고 들었었는데...”
“그렇죠.”
“그분들은 괜찮으실까요?”
“......”
유세현의 입이 한순간 꾹 닫혔다.
루시아는 대체 스스로가 무슨 말을 지껄인 것인지 자책했다.
안 그래도 심란한 상황인데 이런 식의 질문이라니.
생각을 더하고 말을 내뱉었어야 했는데!
“아...제가 괜한 말을...”
루시아가 다급히 수습하려던 순간이었다.
“괜찮을 겁니다.”
단언하는, 한 치의 떨림도 없는 말.
유세현의 머릿속에 김주희와 이강호의 얼굴이 떠올랐다.
자신에게는 몇 개월에 불과하지만 그들에게는 약 3년...
아마 카르베스나 헤드리아보다도 훨씬 강해지지 않았을까 한다.
아니, 강해졌을 것이다.
그 당시 스텟이 낮았던 남궁시영도 저렇게 뛰어올랐는데.
어쩌면 상황이 좋지 않은 이곳과 다르게 몬스터들을 거의 다 몰아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유세현이 말을 이었다.
“걔네는 정말 강하거든요.”
“아...그렇군요.”
루시아는 부럽다는 생각을 했다.
유세현이 그들에게 무조건적인 신뢰를 보내고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기 때문.
“그분들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김주희, 이강호.”
이강호.
너무 유명해 루시아도 벌써 몇 번 들어본 이름이었다.
지금까지의 모든 것을 일궈냈다고 할 정도로 그렇게 강하다고 하던데.
드래곤과 맞붙었었다는 것도 그렇고, 동명이인일리는 없겠지.
허나, 루시아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것보다도 그녀가 훨씬 궁금한 것은...
‘튜토리얼 때부터 같이 다닌 건가?’
유세현과 똑같이 세 단어로 이루어진 성과 이름 때문이었다.
즉, 자국민이라는 건데 나중에는 모든 인종이 섞이기에 그리 쉽게 만날 수가 없다.
“튜토리얼때 만나신건가요?”
“아뇨, 알기는 지구에 있을 때부터 알았습니다.”
“두 분 다요?”
“예.”
“와...”
상상 이상의 답변이었다.
이후 루시아는 김주희가 딱 여자라는 것까지만 알 수 있었다.
그새 남궁시영이 돌아왔기 때문.
‘그녀를 좋아하는 건가?’
아직 정확히 알지 못한다.
유세현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마무리 멘트를 날렸다.
“나중에 만나게 되면 정식으로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아...예!”
잠시 멍한 표정이 되어 있던 루시아가 황급히 끄덕였다.
인정받은 것 같아 뭔가 좋은 기분이다.
남궁시영의 뒤를 따라 내부로 들어간 유세현과 루시아.
역시 뭔가 좋은 소식이 있는 것인지 남궁시영의 표정은 꽤나 밝았다.
그녀가 다짜고짜 말했다.
“세현씨. 에반 비텔스바흐가 길을 뚫고 내려왔어요.”
“에반...비텔스바흐요?”
유세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강호에게 들어본 적이 이름이긴 했는데 오래 전이라 잘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
“아, 그러고 보니 세현씨께서는 잘 모르시겠네요.”
남궁시영은 그를 빠르게 소개했다.
아르카드 제국군의 최강 전력이자 성물 파편의 소유자.
검술의 천재.
검성, 에반 비텔스바흐.
“아...”
유세현이 그제야 손뼉을 살짝 쳤다.
그래 이제야 기억이 났다.
그가 이벨린, 이강호와 더불어 거의 최후까지 생존한 생존자이자, 1차 튜토리얼 6단계 제단을 최초로 통과한 인물이라는 것을.
‘아마 고유특성이...일도양단(一刀兩斷)이라고 했었지.’
일도양단(一刀兩斷).
말 그대로 일격에 그 어떠한 것도 베어버리는 특성.
그 사기적인 특성덕분에 과거 강한 내구력만 믿고 나대던 괴물들이 그렇게 많이 나가떨어졌다고 한다.
< 지원군(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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