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258화 (258/612)

< 지원군(1) >

“토, 토벌조? 시, 실례지만 소속과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유세현의 말에 둥지의 경계병 한 명이 잽싸게 명부를 확인했다.

그사이 또 다른 한 명은 황급히 감염충 검사를 실시했다.

빨리 보내주기 위한 그들 나름의 배려였다.

벌써 수 일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경계병들의 머릿속에서는 아직도 그때의 장면이 잊혀 지지 않았다.

아니, 눈을 감을 때마다 생생히 떠오른다.

둥지 공략에 사용될 만큼의 어마어마하게 많은 스카이레블이 갑작스럽게 작전지역을 향해 방향을 돌리는 그 모습이란...

‘어우...’

재차 떠올린 병사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들 중에서는 작전의 난이도가 낮게 산출된 만큼, 참가하려 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만약에 운이 좋아 선발 되었다면?

이 두 명까지 다 합쳐봐야 지금까지 귀환자는 67명에 불과했다.

정예 3000명 중 고작 67명.

환산하면 고작 2%에 달하는 생환률이다.

자신들이 들어갔다면 절대 살아나오지 못했을 테지.

두개의 절차가 확인되기 무섭게 경계병이 말했다.

“이상 무. 지나가셔도 됩니다.”

경계병은 어떠한 사적인 말도 꺼내지 않았다. 아니, 꺼낼 수 없었다.

어설픈 동정은 되려 독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둘은 곧바로 남궁시영의 집무실 겸 거처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조우하게 된 6명.

그들은 재회의 기쁨을 나눴다.

“후...보험을 들어놓길 정말 잘했네.”

“예. 덕분에 살았습니다.”

허나, 그것도 잠시.

곧 무거운 기류가 어깨를 짓눌렀다.

사람들은 어설픈 미소를 짓고 있었으나 그것은 웃고 있는 것이 결코 아니었다.

숨통이 턱 막힐 정도의 정적이 잠시 이어진다.

침묵을 깬 것은 유세현이었다.

“잠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알베타스쪽으로 화제를 바꾼 그는 자신이 한 짓에 대해 조곤조곤 차분히 설명해나갔다.

비인도적이라면 비인도적이라고 할 수 있는 행위.

아린과 남궁시영은 묵과했고, 레피아는 되려 쌍수를 들고 좋아했다.

“그래, 그런 새끼들은 억지로라도 좀 싸워야 돼. 누구는 작전 실행하다가 이렇게 됐는데...”

이번전투로 인해 레피아는 지금까지 함께해왔던 동생, 검은꽃 3명을 잃었다.

이에 유세현이 남궁시영을 향해 물었다.

“시영씨가 생각하기에 이런 식으로 버티려고만 하는 진지가 몇 개일 것 같습니까?”

본래 정보 하면 레피아겠지만 줄곧 적진에 있던 만큼 지금은 남궁시영이 더 잘 아리라 생각한 것.

남궁시영이 답했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아마도 꽤 많을 거예요. 아니, 거의 대다수 일지도...”

“......”

유세현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남궁시영의 표정을 본 순간부터 사실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하기야 장기 대치상황에서 목숨을 걸고 타개하려는 인원들은 흔치 않겠지.

직접 토벌에 나선 알라함은 그나마 나은 편에 속하는 것이다.

유세현은 이어서 자신의 계획을 알렸다.

잔뜩 독기 품은 케드리나는 바로 따라가겠다고 하는 반면, 아린은 이내 쓰디쓴 표정이 되었다.

그런 자들이라고 해도 차마 미끼로 사용할 수 는 없다는 뜻.

대마법사 키만 올란드의 제자 아린 하이워커.

그는 타인의 희생을 딛고 살아남은 만큼, 착해도 너무 착했다.

‘그래 이럴 줄 알았지.’

유세현은 마음속으로 실소를 내뱉으며 케드리나의 말을 기각했다.

고유능력이 없는 그녀는 기습 공격에 쉽사리 죽을 가능성이 너무도 높았기 때문.

쿵!

이에 의자가 부서져라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케드리나.

실로 오랜만에 보는 반발이었다.

“세현씨! 왜 루시아씨는 되고 저는 안 된다는 건가요!”

허나 유세현은 그녀를 납득시킬 필요가 없었다.

레피아가 나서서 다 처리한 덕택이었다.

“격차가 그만큼 크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예?”

“케드리나...라고 했었지? 너 특이개체의 특수스킬 막을 수 있어?”

“예, 스킬만 잘 활용한다면...”

“아니, 그렇게 쳐내는 것 말고. 정말 순수하게 스킬로.”

“......”

“불가능하지? 하지만 내가 보기에 저 애는 가능해.”

레피아는 유세현에게 루시아의 고유특성에 대한 것을 들었다.

그리고 돌파하면서 실제로 그 힘을 직접 체감했다.

“이건 나보다 지금까지 함께한 네가 더 잘 알겠지?”

레피아는 굳이 고유특성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고유특성이 있고 없고의 차이는 자괴감을 들게 한다.

특히나 이런 상황에서는 더욱더.

굳이 쉽게 이해시킬 수 있는데 자괴감을 줄 필요는 없지 않는가?

“......”

그리고 케드리나는 실제로 납득하고 있었다.

확실히 루시아의 방어스킬은 예사 것이 아니다. 자신의 조악한 방어스킬과는 차원이 다르다.

허나.

자신도 빠르게 강해지고 싶었다. 그래서 직접 카텐의 복수를 하고 싶었다.

“네가 따라가면 민폐야. 잘 생각해라.”

하지만 레피아의 마지막 말은 그녀의 이기심을 단번에 누그러트렸다.

민폐.

그 단어는 자신 때문에 누군가가 죽을 수도 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기에.

“크윽...”

결국 케드리나의 고개가 땅을 향해 푹 꺼졌다.

유세현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레피아씨. 두 분을 잘 부탁하겠습니다.”

“...걱정 마. 그런데 혹시 바로 갈 생각인거야? 온지 얼마 안됐잖아?”

“예. 바로 떠날 생각입니다.”

루시아가 따라나서겠다고 한 이상, 본래 안 들려도 되는 것을 안부 확인 차 온 것이었다.

세상에는 만약이란 것이 존재하니까.

레피아가 무엇인가 말하려는 순간, 자리에서 일어선 유세현이 남궁시영을 향해 먼저 물었다.

“시영씨 혹시 지도 있으신가요? 대충 그려진 거라도 상관없으니 여분이 있으시면...”

“아, 이걸 써.”

반응 한 것은 이번에도 레피아였다.

포켓을 손을 넣어 뒤적거리던 그녀가 유세현을 향해 두루마리를 던진 것.

펴보니 꽤나 상세하게 지도가 그려져 있었다.

“감사합니다. 잘 쓰도록 하겠습니다.”

“...감사는 무슨. 진작 줬어야 됐는데 그 당시에는 워낙 정신이 없어서...에휴, 한 개 더 있으니까 신경 쓰지 마.”

유세현은 두루마리를 포켓에 쏙 집어넣었다.

그 순간 레피아가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이전 하려던 말을 전했다.

“아, 유세현. 어차피 긴 여행이 될 텐데 피로도 회복할 겸 그냥 딱 하루만 보내고 가. 오늘 해야 될 일이 있거든.”

“해야 될 일이요?”

유세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전혀 추측이 불가능했기 때문.

레피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해야 될 일...아니, 해줘야 될 일...”

무척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유세현은 잠시 생각하다가 그녀의 말마 따라 컨디션 조절도 할 겸 수락했고, 그날 밤 그녀가 말한 해야 될 일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 * *

탑처럼 높게 쌓아 올린 장작더미.

길드연합의 인원 한 명이 화염을 내뿜자 장작은 밝은 빛을 내뿜으며 활활 타올랐다.

죽은 이들을 위한 추모.

시신도, 유품도 그 어떤 무엇도 존재하지 않았지만 불길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의 표정은 더할 나위 없이 진지했다.

옆에 있던 레피아가 툭 말했다.

“시간 버린 것 같은 느낌이라면 사과할게.”

유세현은 고개를 저었다.

이 세계 떨어진 이후, 단 한 번도 이런 것을 떠올려 본적 없는 그였지만 나쁘다고는 전혀 생각되지 않았다.

비록 자신에게는 큰 의미가 없을지언정, 다른 누군가는 추모를 함으로써 어깨를 짓누르고 있던 무거운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버릴 수 있는 것이니 말이다.

예를 들자면...

유세현의 시선이 좌측에 위치해 있는 케드리나와 루시아를 향했다.

이 둘은 시작부터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불길이 일렁이듯 눈동자 또한 일렁인다.

추모식은 그리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불의 화력이 원체 강했던 데다가, 각자 맡은바 역할을 계속 이행해나가야 되었기 때문.

둥지의 위치가 상상도 할 수 없는 고지대인 만큼 아침은 빨리 왔다.

막 떠나려는데 내부로 들어오고 있는 병사들이 눈에 비쳤다.

알라함과 그의 군이었다.

알데우스가 친히 나와서 맞이하는 모습.

“무사히 귀환해서 정말 다행이군.”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유세현은 그곳을 스쳐지나갔다. 알라함과 병사들의 눈동자는 조금의 미동도 하지 않았다.

조용히 검문소를 통과한 유세현과 루시아.

유세현이 지도를 폈다.

본래라면 가장 가까운 도르칸 산맥이 첫 번째 타켓이었지만, 이미 거쳐 온 상태.

그들은 그보다 살짝 위에 위치한 헤들렌 계곡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 * *

“저거 뭐야? 사람?”

“어디?”

“저기, 두 명이 다가오고 있잖아.”

두 명이란 말에 동료 보초병의 눈의 동그랗게 변했다. 인간의 세력 내에도 알베타스는 존재한다.

다만 수가 적을 뿐.

그런데 이런 세계에서 달랑 두 명이서 움직이는 미친놈이 어디 있단 말인가.

감염된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 그래도 절차는 지켜야 되는 법이었다.

‘뭐, 뭐야? 감염 안됐잖아?’

보초병은 유세현이 내미는 패를 받았다.

파르르 진동하는 눈동자.

패에는 붉은 각인이 새겨져있었다.

그리고 붉은 각인은 일정기간의 자유를 뜻한다.

정말 힘든 작전을 성공하지 않고는 얻을 수 없는 그런 것인데.

아니, 행여나 얻을 수 있다고 해도 얻지 않는다.

일정기간의 자유보다도, 묵혀두었다가 다음 작전에서 제외되는 게 훨씬 좋기 때문.

‘도대체 뭐하는 자들이지?’

용무를 물은 보초병은 유세현의 대답에 기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전투를 도와주러 왔다고 답했기 때문.

그리고 그 말처럼 유세현은 스스로가 A랭크 이상의 힘을 지녔다는 것을 같은 A랭크 인원을 이용해 간단히 증명한 뒤 회의에 참석했다.

이전처럼 가만히 경청만 하는 유세현.

회의 20분도 지나지 않아 이미 판단은 내려진 상태였다.

‘여기도 싸우길 싫어하는 구나.’

그는 은근슬쩍 끼어들어 대화 방향을 유도해 특이개체가 있나 없나를 살폈다.

만약에 있다면 굳이 처음부터 일을 벌일 필요는 없기 때문.

지휘관 한 명이 답했다.

“특이개체 말씀이십니까? 거미형태처럼 생긴 놈이 3마리 있긴 있습니다만 A랭크 인원들의 스킬로 물릴 수 있을 정도입니다.”

“호오, 그럼 놈은 주로 어느 장소에 등장합니까? 항상 같은 위치는 아닐 테고.”

“그렇죠. 주로...”

지휘관은 유세현의 물음을 이상하게 생각하면서도 굉장히 성실히 대답해 주었다.

A랭크의 인원을 친히 그의 앞에서 압살해준 덕분에 거부를 하지 못하는 것!

그렇게 회의가 끝난 직후.

유세현과 루시아는 알베타스의 진형 쪽으로 자취를 감췄다.

보초병들은 도르칸 산맥 때처럼 유세현이 머리가 어떻게 된 것이라 사료했다.

저런 지옥에 스스로 자처해 들어가려하는 정상인은 아무도 없었으므로.

그리고 그렇게 그들이 사라진지 이튿날이 되던 늦저녁.

“미친! 알베타스! 알베타스가 몰려온다!”

“어, 어디? 헉!”

헤들렌 계곡에 상상도 못할 어마어마한 물량의 알비론과 혼종, 스카이레블, 그리고 직속호위병이 들이닥쳤다.

* * *

종족의 운명을 결정하는 치열한 전쟁.

유세현이 등장했던 지역은 항상 얼마못가 패퇴를 면치 못했다.

특이개체와는 차원이 다른, 한 번도 상대해본 적 없는 너무도 강한 적이 매번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걸어 다니는 핵폭탄 유세현.

허나, 다시 경계라인을 재구축 하는데 급급했던 사람들은 정보교환을 하지 못해 원인이 유세현에게 있다는 것을 파악할 수 없었다.

그는 그 후에도 약 20일 동안 노란빛의 숲, 핏빛 늪지대, 설산 등을 합쳐 도합 7군데의 격전지를 돌며 사냥을 했지만, 그런 부단한 노력에도 그의 힘 스텟은 31.4%, 민첩은 16.2%로 그렇게 많은 성장을 이룩하지 못한 상태였

다.

헤들렌 계곡 이후 군체가 눈치를 챘는지 특이개체를 완전히 빼버렸기 때문.

특이개체가 등장할 때는 항상 카르베스와 베아렉클이 옆에 있어 어떻게 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결국 별 소득 없이 돌아다닌 꼴이 된 그들.

그러나 유세현과 루시아는 이 과정을 거치면서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눈치 챌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유세현이 인간진형을 쑥대밭으로 만든 뒤 되돌아가고 있는 알베타스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역시...일정 수준 이상으로는 들어오지 않는군요.”

“그러게요.”

그렇다.

놈들은 전력으로 하면 싹 밀어버릴 수 있음에도 일정 선이 넘으면 더 이상 넘어오지 않았다.

마치 인간과의 싸움은 더 이상 관심이 없다는 듯.

이정도의 반응을 하는 것도 그나마 유세현이 도발해서 그런 것이지 평소에는 잘 공격해 들어오지도 않았다.

< 지원군(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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