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255화 (255/612)

< 미끼(2) >

‘살았다고? 거기서 도망쳐 나왔다고?’

무려 300명이다.

살아있던 생존자의 1/2이나 되는 병력!

병사들 몇 명이 황급히 눈꺼풀을 비볐다.

도저히 믿을 수 없어 재차 확인하는 것이었지만.

‘이럴 수가 정말로 살아서 돌아오다니.’

이번 전투로 인해 알라함은 유세현의 무력이 얼마나 강한지 알 수 있었다.

그는 스스로 강자라 자부하는 자신조차도 상대할 엄두가 나지 않았던 괴물과 1:1로 밀리지 않고 맞붙었으니까.

본래 강자가 살아서 귀환하면 기뻐해야 된다.

그러나 스스로 한 짓을 잘 아는 알라함은 결코 그럴 수가 없었다.

스르륵.

수많은 병사에게 둘러싸여 있던 유세현이 시선이 알라함을 향했다.

쳐다보기 무섭게 움찔거리는 알라함의 몸.

인솔병사가 그런 그를 향해 잽싸게 뛰어왔다.

“알라함 백작님. 송구하오나 잠시 무엇 좀 여쭈어 봐도 괜찮으시겠습니까?”

“무...무어냐.”

정신이 팔려 있던 알라함은 떨떠름한 목소리로 답했다.

“명단에서 귀환자들의 신원은 확인했습니다만 너무 소수라 그런데...혹시 안면이 있으신 분들이십니까?”

“......”

알라함은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

어떻게 말하는 게 좋을까.

지금 안다고 대답하면 유세현의 신변은 곧바로 자유로워 질것이고 자신에게 이일에 대해 캐물어올 것이다.

그리고 대면하기 싫은 것이 그의 본심이었다.

허나.

‘그래봤자 의미가 없지.’

아무리 유세현이 껄끄럽다지만 귀환한 이상 언제고 피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그런 거짓말을 하면 도둑이 제 발 저리는 것에 불과했다.

빠르냐 느리냐의 차이일 뿐이지 결국에는 밝혀질 테니까.

‘그래, 변명거리는 만들어 놨다.’

이곳에 있는 지휘관들에게도 구색을 잘 퍼트려놨고.

‘괜찮아. 놈이 날 법으로 어떻게 할 수는 없다.’

생각을 마친 알라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알고 있는 자들이다.”

“아, 예! 알겠습니다! 충성!”

잽싸게 경례를 한 병사가 유세현에게 부리나케 뛰어갔다.

이윽고 행동의 자유를 얻게 된 유세현.

전례를 떠올린 병사가 그를 향해 조심스레 말했다.

“저...휴식을 취하실 수 있는 장소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원하신다면 목욕도 가능하니...”

“아뇨, 괜찮습니다.”

허나, 유세현은 단칼에 호의를 거절했다.

그리고는 묵묵히 알라함을 향해 걸어 나갔다.

한 걸음, 또 한걸음.

지휘관들은 그저 유세현의 행동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건드려서는 안 될 것 같은 싸늘한 기류가 그의 주위에 흐르고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기 때문이었다.

아니, 사실 유세현에게서 저런 느낌이 우러나오는 것이 이해는 되었다.

왜냐하면 알라함에게 이미 이야기를 들었으니까.

상황을 보건데 잘 이탈한 알라함 부대와는 달리 저쪽 부대의 귀환자는 단 두 명.

어쩌면 날이 서있지 않는 것이 이상한 것일지도 모른다.

‘뭐, 별일이야 있겠어?’

그러나 생각과는 반대로 표정에서는 긴장감이 잔뜩 비쳐지고 있었다.

척-

마침내 알라함의 앞에서 멈춰선 유세현.

현재 이 장소의 모든 인원들의 이목을 끌고 있는 그가 주위를 둘러보더니 툭 말을 내뱉었다.

“무사히 이탈하신 모양이시군요.”

분위기와는 전혀 상반된 나긋한 어조였다.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의 입에서 참고 있던 숨이 터져 나왔다.

그래, 어쩔 수 없었던 거였다는데.

지휘관들은 스스로가 너무 민감하게 반응했다고 생각하는 반면, 알라함은 등골이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차라리 왜 그랬냐고 물었다면 ‘정식 작전이 아니었다.’ 혹은 ‘그땐 그게 최선의 판단이었다.’ 등등 대답할 거리는 많았다.

그러나 이런 반응은...

“그, 그렇다네. 운 좋게도 잘 벗어났지...그보다 그쪽은 두 명이 전부인가?”

“예.”

“......”

알라함은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았다.

‘대체 무슨 의도로 이런 말을 건넨 것이냐...’

도저히 대화를 이어나갈 수가 없다.

그런 알라함을 구해준 것은 다름 아닌 그가 얕보던 이곳의 지휘관 중 한 명이었다.

조심스레 끼어든 그가 회의중이었다고 양해를 구한 것.

타이밍을 잡은 알라함은 변명하듯 동조했다.

“아, 그래 맞아 아직 회의중이었지...안타깝지만 다음에 이야기 하세나. 힘들 터인데 자네도 좀 쉬게.”

허나, 유세현의 대답은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저도 길드장입니다만...회의에 참석해도 상관없겠죠?”

“......”

사람들의 표정이 재차 굳었다.

외부인인 유세현이 참가하겠다는 게 싫어서는 딱히 아니었다.

비록 팀원은 전부 죽어버렸을지 몰라도 작전을 행한 팀의 수장에게는 그만한 자격이 있으니까.

문제는...

사람들의 시선이 유세현의 육체를 위아래로 훑었다.

현재 그는 꼴이 정말 말이 아니었다.

전신을 뒤덮고 있는 질펀한 녹색의 액체와 진흙.

그리고 핏물에 의해 껌딱지처럼 눌러 붙은 머리카락.

상처는 월등한 치유력으로 전부 회복했는지 마땅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우선은 간단이라도 씻는 게 먼저이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너무도 당연했다.

몇몇이 만류했으나 유세현은 기어코 조촐한 막사 내부로 들어서 끝에 자리를 잡았다.

관여하지는 않고 지켜보기만 하겠다는 간접적의 의사표현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본 회의.

“A-10 수색대의 말로 알비론의 수가 많이 줄었다고 합니다.”

“이쪽도 그런 보고를 받았습니다.”

유세현은 경청했다.

허나, 수많은 말이 오고 갈뿐 내용은 별게 없었다.

수가 줄었으니 좀 더 수월이 방어해낼 수 있을 것 같다.

어느 곳의 감시는 더 강화하는 게 하는 게 더 좋겠다.

전부 그런류의 이야기.

그들이 현재 하고 있는 것은 알베타스를 타개하는 데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오직 버티기만을 위한 회의였다.

이에 유세현이 별 대수롭지 않은 듯 질문을 툭 던졌다.

“수가 줄었다면 지금이 놈들을 몰아내기에 적기 아닙니까?”

일반적인 부대에도 A랭크 인원들이 100명 정도는 존재한다.

간간히 등장하는 특이개체를 상대하기 위함.

그러니 헤드리아 같은 직속호위병만 나타나지 않는다면 공격에는 사실상 무리가 없다.

하지만.

“큼큼...”

헛기침만 할뿐 아무도 똑바로 답하지 않는다. 전투는 피하고 싶다는 의미였다.

뒤늦게 누군가가 변명하듯 말했다.

“확실히 적기이긴 합니다만 몰아내봤자 별 큰 소득이 없습니다. 괜히 희생만 많아질 뿐이죠.”

“......”

그 말에 유세현의 입꼬리가 그 누구도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아주 미미하게 올라갔다.

변명도 그럴싸하게 해야지 이건 뭐 수준이 초등학생 급이 아닌가.

아니, 초등학생도 이런 변명은 안하리라.

도르칸 산맥은 두개의 높은 봉우리를 가지고 있다.

그중에서 알베타스가 점령한 봉우리의 뒤편에는 배반자 진형이 상당 수 죽치고 있다.

놈들을 쓸어버린다면 그곳까지 타개할 수 있으니 이득이면 이득이었지 결코 손해는 아니다.

또한, 영역을 넓히면 수색범위도 늘어날 뿐만 아니라 운만 좋다면 근처에 있을 군락지 또한 발견할 수 있을 터였다.

유세현은 굳이 더 말을 늘어놓지 않았다.

이미 판단은 내린 상태였음으로.

이들은 누군가가 이 일을 해결해주기만을 원하고 있다.

‘알기 편해서 좋네.’

스스로가 버티고만 싶다는데 별 수 있겠는가.

버티게 해줘야지.

쉬겠다는 핑계를 댄 유세현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껄끄러운 질문을 한 인물이니만큼, 사람들은 마음속으로 무척 달가워했지만 알라함 만큼은 불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뭔가 걸어 다니는 핵폭탄 같달까?

아니, 실제로 알베타스가 득달같이 달려든다는 점에서 핵폭탄은 맞았다.

그래도 알라함은 설마설마 했다.

유세현 본인의 목숨도 위험할 테니 뭘 쉽사리 하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한 것.

하지만 그는 미처 몰랐다.

그 설마가 여태까지 많은 사람들을 잡아왔다는 것을.

* * *

밖으로 빠져나간 유세현은 병사 한 명에게 회의가 언제까지 계속되는지 물었다.

“아마 30분 정도면 끝이 날 것입니다.”

유세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의미 없는 회의를 30분이나 더한다는 것은 참 우스운 일이었지만, 그에게는 좋은 찬스를 주는 것이었으므로.

유세현이 옆에 있는 루시아를 향해 마지막으로 물었다.

“정말 저와 함께 하실 겁니까? 마음이 바뀌셨다면 일단은 그만 두고 둥지까지...”

“아뇨. 괜찮아요.”

허나 그녀는 단호했다.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유세현은 천천히 경계병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목적을 말했다.

“나가고 싶습니다만.”

“...예?”

당황하여 유세현을 쳐다보는 두 명의 경계병.

그들의 표정에는 경악, 의문 등등 정말 많은 감정이 동시에 묻어나오고 있었다.

“저, 정말 나가시겠다는 말씀입니까? 밖은 알베타스의 진형입니다만...”

“예. 알고 있습니다.”

“아...”

두 명의 경계병은 서로를 응시했다. 그러더니 한 명이 툭 말했다.

“음...정말 죄송한 말씀이지만 검사를 한 번 더 해봐도 되겠습니까?”

“예.”

“......”

감염충을 검사하는 경계병.

그만큼 믿기지 않는다는 뜻이었지만, 감염되지 않았다는 것이 확인되자 그들은 어쩔 수 없이 길을 터줄 수밖에 없었다.

경계병들은 두 사람이 숲으로 자취를 감추기 무섭게 혀를 내둘렀다.

“허...참...동료를 다 잃은 것 같아 보이긴 했는데...이제 와서 머리가 어떻게 된 건가? 둘 다 둥지 인원이라고 했지? A랭크라는 거잖아?”

“그렇지...그보다 죽으러 가는 건가? 여자랑 코인이 진짜 아깝네...”

“뭐? 코인이야 그렇다 쳐도 여자는 아무리 미인이라지만 마녀인데?”

“에라이! 너희 세계에서나 마녀지 짜샤! 이 세계에까지 와서 아직도 그런 미신을 믿냐?”

동료 병사의 질탄.

유세현은 아주 작게 옹알이 치는 목소리를 뒤로 한 채 손을 살짝 들어올렸다.

스르륵-

이에 반응하여 땅속에서 쥐 죽은 듯이 숨어 있던 알비론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눈대중으로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실로 무지막지한 수.

유세현은 높디높은 산맥의 봉우리를 살폈다.

이곳까지 오면서 잡은 알비론이 수는 약 1500마리.

그중에서 형체가 남아 되살린 숫자는 정확히 1204마리였다.

이 정도라면 충분히 놈들의 시선을 끄는 것은 충분하겠지.

아니, 잘만하면 능선의 일부를 뚫을 수도 있으리라.

허나, 이건 지금의 유세현에게 있어서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이건 놈들이 반응 하는가 안 하는가에 대한 실험이었으니까.

유세현이 습격당했던 당시에는 놈들이 꽤나 준비한 상태였다.

그래서 놈들이 그렇게 자신을 몰아붙일 수 있었다.

허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즉 놈들의 반격 여부는 100%가 아니라는 것.

이번 전투로 인해 자신의 가치가 정해진다.

이런 급작스러운 기습 속에서도 만약 자신을 잡기위해 우르르 몰려온다면, 자신은 진짜 걸어 다니는 미끼라고도 할 수 있었다.

유세현이 팔을 쭉 뻗었다.

투두두두!

먼지 폭풍을 일으키며 달려가는 알비론.

본래 그는 지금 곧바로 실험할 생각이 없었다.

일단은 둥지로 돌아가 안부부터 나눈 뒤에 본격적으로 시작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곳에 알라함이 있다.

나태한 이들이 있다.

“가죠.”

유세현이 말하기 무섭게 루시아가 질주해 나갔다.

* * *

회의를 마치고 나온 알라함은 일단 유세현의 위치부터 확인하려 했다.

허나, 그 누구도 유세현이 있는 장소를 알지 못했다.

단 두 명의 병사를 제외하고는.

“나갔습니다.”

“...뭐?”

당황한 알라함의 눈동자 파르르 떨렸다.

그는 믿기지 않아 다시 한 번 물었다.

“확실한가?”

“예, 분명 알베타스 쪽으로...”

병사의 답변을 들은 알라함은 온몸에 털이 곤두섰다.

오싹오싹한 등골.

그리고 간담을 서늘하게 만드는 한기.

‘왜? 어째서?’

왜 나간 것이지? 죽으려고?

절대 아니다.

그 놈이 자살하러 갔을 리가 없었다.

떠올리기 싫은 하나의 가설이 알라함의 뇌를 계속 자극한다.

정말 상상도 하기 싫은 그런 가설이었다.

그때, 귓가로 울려 퍼지는 병사의 당황스러운 목소리.

“저, 저게 뭐야...”

병사의 시선은 전방에 위치한 높은 봉우리에 가 있었다.

< 미끼(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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