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끼(1) >
[크으. 어디냐! 찾아라!]
눈부신 광명과 폭발로 인해 눈과 귀가 잠시 멀었던 알베타스는 기능을 되찾기 무섭게 수색을 개시했다.
상공을 날아다니는 스카이레블과 땅을 휘젓는 알비론.
허나, 아무리 뒤져도 자취를 감춘 두 명의 인간을 찾아낼 수는 없었다.
[어떻게...그렇게 멀리까지 도망치지 못했을 텐데.]
카르베스의 생각처럼 유세현과 루시아는 멀리까지 도망치지 못했다.
다만 숨어있을 뿐.
그것도 나무 위나 풀숲 같은 일반적인 장소가 아닌 땅속에 말이다.
현재 유세현과 루시아는 미동도 하기 힘들 정도의 비좁은 굴 안에 낑겨 누워있었다.
부패의 어둠과 막대한 힘이 합쳐져 만들어진 두 사람의 합작품이었다.
장비고 자시고 손으로 무식하게 파낸 것.
파낸 흙은 마력을 쥐어 짜내 발생시킨 부패의 어둠으로 산화시켜 증거를 인멸했다.
유세현은 놈들이 한동안 이 장소를 발견하지 못할 것이라 예상했다.
일단 만들어 놓은 입구 자체가 무척 좁았고, 위화감을 못 느끼도록 주위 환경에 맞춰 바위로 잘 막아 놨기 때문.
게다가 놈들은 탈출경로확인, 경계라인구축 등 여러 가지를 동시에 신경 써야 했다.
알비론의 수도 줄은 지금, 운만 좋다면 발각 당하지 않을 수도 있으리라.
“......”
시간이 흐름에 따라 긴 침묵이 이어졌다.
두 사람은 어떠한 말도 꺼내지 않았다.
자그만 한 목소리가 새어나가 알비론에게 닿는 순간 지금까지의 노력이 모두 수포로 돌아가는 것이었으니까.
살짝 맞닿아 있는 신체로부터 느껴지는 서로의 체온과 호흡.
그리고 미미한 떨림.
그는 단번에 눈치 챌 수 있었다.
루시아가 울고 있다는 것을.
‘그래, 슬프겠지.’
본인을 위한 가족의 희생.
감정이 존재하는 생명체라면 슬플 수밖에 없다.
유혜인과 이강호, 김주희가 떠오른다. 그리고 자신을 따르던 팀원들도.
그들은 잘 살아있을까?
과연 팀원들은 몇 명이나 도망치는데 성공했을까?
유세현은 루시아를 위로하지 않았다.
어설픈 싸구려 동정은 되려 사람을 더 비참하게 만드는 법이었으니까.
마치 자신이 겪은 일 처럼.
빛 한줄기 비치지 않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굴 속.
투다다다-
땅을 울리는 알비론들의 발소리만이 간헐적으로 그들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
* * *
하루가 지났음에도 알베타스는 둘을 찾아내지 못했다.
직속호위병, 카르베스와의 거리가 멀어지는 것을 확인한 유세현이 곧바로 루시아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녀의 떨림은 하루사이에 멎은 상태였다.
분명 많은 생각을 했겠지.
쾌쾌한 굴 내부와는 다른 맑은 공기가 폐 속으로 스며들어왔지만 그런 것을 만끽할 새는 없었다.
둘은 알비론의 눈을 피해 조심스럽게 이동을 개시했다.
허나, 무조건적으로 피해 갈 수 있을 정도로 놈들의 경계망은 그리 허술하지 않았다.
-키리릭.
수색을 벌이고 있는 다수의 알비론.
루시아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물어왔다.
“어떻게 하실 건가요?”
“처리하도록 하죠.”
“......”
루시아의 표정이 살짝 불안에 물들었다.
놈들을 처리해도 다른 놈들이 우르르 몰려올 것을 예상한 것.
이에 유세현이 괜찮다는 동작을 취했다.
“순식간에 처리하면 괜찮습니다.”
이강호에게 직접 설명을 들은 유세현은 일반적인 생존자들보다도 더 자세한 정보를 알고 있었다.
군체가 어떤 식으로 병력을 운용하는지.
그리고 어떤 식의 지휘체계를 가지고 있는지.
군체는 모든 병사에게 강제적으로 명령을 내릴 수 있다. 그리고 병사의 눈을 통해 직접 그 장소를 살필 수 있다.
어찌 보면 모두가 부러워할만한 만능의 능력.
허나, 이런 능력도 단점은 존재한다.
반대는 불가능 하다는 점.
일반 병사인 알비론이나 스카이레블은 군체의 라인을 통해 직접 보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애초에 하급 병사들은 의사도 없는데다가 만약 있다 하더라도 모두에게 보고를 받기란, 군체 또한 생명체로서의 한계가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예외도 존재하긴 하다.
직속호위병이나, 케르가나 같은 감염충의 모체, 그리고 레브레스 같이 지능이 높은 특이개체들.
이놈들은 직속 라인을 통해 직접적인 보고를 올리는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놈들은 알비론들 뿐이었다.
즉.
쉬이익-
유세현이 루베르크를 휘두르자 소리 소문 없이 날아간 부패의 어둠이 알비론들을 순식간에 집어삼켰다.
그리고 곧바로 이어진 두개의 섬광.
타다닥!
쏜살같이 접근한 루시아의 검이 알비론의 급소를 꿰뚫었다.
이번 전투에서 살아남은 루시아는 이전보다 차원이 다르게 강해져 있었다.
둥지의 인원을 제외한, 일반적인 생존자들은 다다르지 못한 마의 벽.
A랭크에 도달한 것이다.
촤자작-
유세현이 검격을 두 번 내지르는 것으로 전투는 마무리가 되었다.
불과 5초도 걸리지 않았다.
군체가 만약 살피고 있지 않았다면, 뒤늦게서야 병사가 일부 증발했다는 것을 깨달으리라.
유세현과 루시아는 걷고 또 걸었다.
레피아가 일러준 장소는 그리 멀지 않은 장소에 위치해 있었으나, 지리도 잘 모르고, 될 수 있는 한 적을 피해가느라 적잖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그렇게 사흘.
유세현과 루시아는 마침내 돌고 돌아 레피아가 말해준 통로를 걷고 있었다.
이제야 살짝 생긴 여유.
먼저 대화를 건넨 사람은 유세현이었다.
“우리 팀원...몇 명이나 살아남은 것 같습니까.”
낮은 중저음의 씁쓸한 목소리.
루시아가 입술을 달싹였다.
차마 진실을 말해주기가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다 죽었다.
자신을 포함한 세 명을 제외하고.
유세현의 그 부단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렇군요. 카텐씨가...”
“......”
카텐.
블랙홀에 빨려든 이후, 상황을 파악하고 있던 자신과 처음으로 조우했었던 인물.
자신을 초짜로 착각해 다짜고짜 내뱉은 거친 욕설이 꽤나 인상 깊었던 남자였다.
“후...”
양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린 유세현의 입에서 한숨이 터져 나왔다.
처음으로 해본 생존자들과의 합동전선.
상황이 상황이고 일리가 있는 만큼, 의구심을 접고 생존자들의 말에 따라주었지만 결과는 최악이었다.
게다가 제국군은 진형을 이탈하기까지.
꾸구국-
루베르크를 쥐고 있는 손아귀에 힘이 꽉 들어간다.
적어도 이렇게 죽을 사람들이 아니었는데.
팀원들에 의해 아주 약간이나마 사람들에게 호의를 가질 수 있었었고, 팀원들이 죽음으로서 완전히 불신하게 되었다.
유세현은 다짐했다.
다시는 흔들리지 않을 것을.
이 이후로는 그 누구에게도 마음을 내어 주지 않을 것을.
유세현은 스스로도 자신의 습성에 대해서 잘 파악하고 있었다.
마음을 내어준 준 사람에게는 간도 쓸개도 전부 떼어주는 인간.
그게 자신이다.
그러니 소중한 사람은 더는 만들지 않는다.
그리고 소중하지 않은 모든 것을 이용해 철저하게 부숴나간다.
그자들이 누군가의 연인이건, 가족이건 전혀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그들 또한 자신은 안중에도 없을 테니까.
생각을 정리하는 순간 이번에는 루시아가 물어왔다.
“저...세현씨는 앞으로 어떻게 하실 건가요?”
“흠...”
일단은 둥지로 귀환할 생각이었다.
그리고는 혼자서 빠져 나와.
‘격전지로 향한다.’
스텟을 높이기 위함이었다.
현재 유세현의 힘 스텟은 A랭크 19.5%.
암흑투기와 마족화를 고려했을 때 순수한 체술 만이라면 A랭크 30%까지만 도달해도 우위에 서는 것이 가능해 보였다.
허나, 문제는 놈들의 스킬.
헤드리아나 베아렉클도 그렇지만 카르베스라는 놈의 바람스킬은 정말 보통이 아니었다.
자신을 포획하기 위해 놈이 손속을 두지 않았다면 죽었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니 최소 A랭크 35~40%.
거기까지 스텟을 올려야 된다.
하지만 어떻게?
판도라 외부의 특성상, 가장 높은 던전의 난이도가 A랭크 초반이라는 것을 고려했을 때 방법은 한 가지 뿐이었다.
전장에 나온 특이개체를 잡는다. 아니, 특이개체가 나오도록 만든다.
미끼를 던지면 놈들은 반드시 물테니.
루시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가의 이상함을 느낀 탓.
“예? 혼자서요?”
“예.”
“......”
짧은 침묵.
유세현이 살며시 말을 이었다.
“루시아씨는 둥지에 도착하시면 레피아씨의 팀으로 이적해주시기 바랍니다.”
“......”
현실적인 이유에서였다.
앞으로 자신이 걸으려고 하는 길은 가시밭길.
자신을 따라오게 되면 당연히 죽을 확률이 무지막지하게 올라가게 된다.
유세현은 당연히 루시아가 수긍할 줄 알았다.
루시아가 어렴풋 호의를 품고 있다는 것을 이전부터 느끼고는 있었으나, 그래봤자 몇 번 대화를 나눈 것에 불과한지라 목숨을 걸 정도까지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헌데...
루시아가 입을 뗐다.
“전 레피아씨의 팀으로 이동하고 싶지 않아요.”
확고하면서도 완고한 말투였다.
유세현은 어쩔 수 없이 까놓고 말했다.
직접 입으로 듣는 것은 느낌이 많이 다를 것이기에.
“저와 함께 하면 죽을 가능성이 무척 높습니다. 루시아씨도 제 말을 들으시면서 느끼셨을 텐데요.”
“...상관없어요. 죽는다면 그건 제 능력이 부족해서겠죠.”
“......”
무엇이 이 여자를 이렇게 바뀌게 만든 것일까.
역시 지드먼의 죽음 때문인 것인가.
유세현은 미처 깨닫지 못했다.
루시아에게 이제 남은 것은 이것뿐이라는 것을.
그가 나아가기에 자신도 따라가고 싶어 했고, 그를 따라왔기에 아버지가 죽었다.
그녀는 지드먼이 죽고 나서야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평소 안전에만 운운하던 지드먼이 왜 유세현을 따라가자고 제안했는지.
유세현에 대한 자신의 마음이 어떤지.
호기심도, 호의도 아니다.
그래, 자신은 이 남자를 좋아한다.
커다란 불행을 겪었을, 그리고 그것을 이겨낸 것 같은 유세현이 좋다.
함께 알베타스를 부수고 싶다. 아버지에 대한 복수를 하고 싶다.
“제가 만약 죽게 되는 한이 있더라도 세현씨를 탓하는 일은 없을 거예요. 그러니까...”
지금까지 그녀는 유세현의 뒤를 따라 왔다.
이제부터는 뒤가 아닌 옆에 서리라.
“함께하게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차갑기만 한 루시아의 눈동자가 이글이글 불타올랐다.
* * *
와이번의 둥지로부터 북서쪽 150km너머에 위치해 있는 도르칸 산맥.
오늘도 여지없이 골짜기 너머의 알베타스를 감시하고 있던 병사는 갑작스럽게 보이기 시작한 패잔병의 모습에 기겁을 했다.
둥지에서 만약을 대비해 미리 공문을 보내왔었기 때문에 병사는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새, 생존자! 생존자다! 생존자가 이곳까지 찾아왔다!”
절차를 밟고 우르르 몰려가 신변확보를 시작하는 병사들.
도착한 인원들은 가까스로 전장에서 이탈하는데 성공한 알라함의 군대였다.
황급히 뛰어와 정황을 살피는 수많은 길드장과 귀족들.
그들은 좀처럼 말을 잇지 못했다.
잘 쳐줘봐야 250명 남짓 되어 보이는 인원들.
공문에는 3천명의 인원이 작전이 투입되었다고 했었다.
그렇다면 나머지는 전부 당한 것이란 말인가?
A랭크의 스텟을 지니고 있는 상위 3%안에 드는 그들이?
얼마나 상황이 심각했으면...
“알라함 백작님. 생존자는 이게 전부인 것입니까?”
“그렇다. 일단 휴식을 취하고 싶으니 안내할 수 있도록. 자세한 상황은 나중에 말해주도록 하지.”
“아, 예. 알겠습니다.”
A랭크의 스텟을 지닌 자들은 무척 값지다.
작위가 있는 귀족들도 감히 함부로 할 수 없을 정도로.
그래서 그들은 알라함은 물론이거니와 병사들까지 편히 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주었다.
이 상황에서 건식 대신 제대로 된 음식을 차려주고, 목욕을 할 수 있도록 직접 물까지 퍼와 주었으니 말은 다한 것이라 봐도 무방했다.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근 알라함이 머리를 쓸어 올렸다.
피로가 싹 가시는 느낌.
딱 기분이 좋은 정도까지는 화속성 저항력이 전혀 관여 하지 않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목욕을 이어나가던 중 문득 의구심이 들었다.
과연 그놈들이 살아 있을까?
자신이 생각하기에는 불가능해 보였다.
하지만 행여나 살아있다면...
‘후...그럴 리가 없으려나.’
그래, 그 당시 알베타스의 수는 장난이 아니었다.
도주하는 자신들을 뒤쫓는 놈도 별로 없었고.
즉 그들이 다 상대했다는 뜻인데, 살아남았을 리가...
“어우...”
알라함은 순간적으로 오한을 느꼈지만 애써 무시했다.
그가 통나무 밖으로 나가자 귀족 한 명이 잽싸게 달라붙었다.
“저녁을 준비해놨습니다.”
마첸 케그라니라는 이름의 자작이었다.
그는 노골적으로 알라함에게 굽실거렸다.
알라함으로서는 그것이 상당히 비굴하게 보였지만 딱히 싫지는 않은 느낌이었다.
그래, 맞먹으려 하는 놈들 보다는 이게 훨씬 났지.
알라함은 시종과도 같이 움직여준 마첸 덕에 3일을 왕처럼 보낸 뒤 회의에 참석했다.
그리고는 당시 겪었던 사건을 설명해 나갔다.
쏟아지는 특이개체와 상상을 초월하는 힘을 지니고 있는 직속호위병.
그 과정에서 유세현에 대한 정보는 입을 싹 닫았다.
말해봤자 체면에 누만 되지 좋을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
“그렇게 해서 이곳까지 까까스로 다다를 수 있었지.”
마침내 말이 끝나자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전멸이 불가피하다 판단될 때는 그렇게라도 해서 최대한 많이 살리는 건 좋은 선택이었으므로.
그때였다.
병사 한 명이 막사 내부로 황급히 뛰어들어 왔다.
“새, 생존자가 또 나타났습니다!”
“뭐? 몇 명?”
알라함의 눈이 살짝 커졌다.
거기서 살아남은 사람이 정말 존재하다니.
설마? 설마?
바깥으로 뛰쳐나간 인원들.
유세현과 루시아를 확인한 알라함과 그의 병사들의 눈동자가 보름달처럼 커졌다.
< 미끼(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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