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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왕 유세현-256화 (256/612)

< 미끼(3) >

알라함은 황급히 고개를 돌려 병사가 응시하고 있는 장소를 살폈다.

“?!”

능선의 저편.

산과 하늘이 맞닿는 경계로부터 새까만 어둠이 점점 드리우고 있었다.

마치 깊은 밤이 다가오고 있는 느낌.

허나, 자세히 쳐다보면 어둠이 꿈틀거린다는 점에서 결코 자연현상은 아니다.

또한 알베타스와 대치해왔던 사람들은 이런 현상이 언제 발생하는 것인지도 잘 알고 있었다.

스카이레블이 상공을 까마득히 메웠을 때!

이것은 그로 인한 착시 효과다.

“젠장! 갑자기 왜!”

지휘관들은 낭패어린 표정이 되었다.

당분간은 안전할 줄 알았는데 되려 공격을 감행해오다니?

“놈들이 쳐들어올 기미가 보인다! 전투준비! 지휘관들께서는 빨리 각자의 위치로 되돌아가 주시기 바랍니다!”

그 말에 가장 먼 곳에 진지가 있는 팀장들이 오만 욕설을 내뱉으며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런 씨발! 왜 하필 회의 때 이런 일이 터지고 지랄이야!”

순식간에 난리가 난 진형.

한편 넋이 반쯤 나간 표정이 되어 상공을 응시하고 있던 알라함의 입에서 허탈한 실소가 터져 나왔다.

아무것도 모르는 지휘관들과 달리, 알라함과 그의 병사들은 잠잠하던 알베타스가 왜 저런 이상행동을 보이는지 알고 있었다.

이런 식의 위기를 겪은 것이 고작 며칠 전이었으니까.

“하...빌어먹을...”

설마가 현실이 되었다.

유세현, 그 놈이 알베타스를 자극했다.

뿌득 갈리는 알라함의 이빨.

‘젠장, 이렇게 막나가는 놈이었다니...’

내면 깊숙한 곳에서부터 화가 부글부글 끓어올랐지만 그는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

열을 내는 것보다는 대책을 세워야 한다.

그는 우선 이곳이 뚫릴지 안 뚫릴지 부터 계산했다.

순수한 화력이라면, 알베타스보다 인간이 무척 우세하다.

물량도 많고, 지형적 우세가 있으니까.

웬만하면 방어해낼 수 있겠지.

허나, 이건 정말 아무런 변수도 작용하지 않았을 때의 이야기였다.

유세현이 존재하는 이상, 그리고 놈들이 이렇게 반응한 이상 변수는 무조건 적으로 발생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필히 특이개체와 직속호위병이 등장하리라.

그리고 유세현을 노리는 그놈들이 전장에 나타나는 순간.

‘이 장소는 무조건 뚫린다.’

그야말로 풍비박산이 날 것이다.

스킬로 커버가 불가능할 정도로 스텟의 차가 압도적이니까.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빠지는 게 옳은 선택이라는 것인데.

지나가던 길드장 한 명이 갑자기 서더니 알라함을 향해 말했다.

“알라함 백작님! 사태가 사태이니만큼 전투에 참가해주셔야 될 것 같습니다.”

명분도 없을 뿐더러, 받아먹은 게 있어서 곧바로 퇴각도 불가능하다.

알라함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젠장, 그 놈 분명 은근슬쩍 나를 공격해올 것 같은데...’

혼란한 틈을 타 유세현이 기습을 가해오면 승률은 0%.

그 반대가 되어야 그나마 승산이 있었다.

혹은 놈이 처음부터 직속호위병 맞닥뜨려 자신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어야 되거나.

‘상황을 봐가면서 행동을 해야겠군.’

생각을 정리한 알라함은 황급히 병사를 집결시켰다.

* * *

-캬아아아.

서걱.

루베르크가 궤적을 가르자 달려들던 알비론 3마리의 목이 단번에 지면으로 떨어졌다.

뿜어져 나오기 무섭게 유세현의 몸으로 자취를 감추는 코인.

이번에는 루시아가 발생시킨 붉은 검기가 포이즌레블을 향했다.

촤자작.

-캬아악

황급히 산성독을 쏴 대응했지만 놈도 별 수 없는 건 마찬가지였다.

루시아가 잽싸게 다음 타겟을 향해 몸을 돌린 순간이었다.

-퓨웃!

사방에서 쏟아지는 노란 액체.

포이즌레블의 스텟이 일정 수준에 다다르게 되면 자연스럽게 개발되는 독계열의 능력, 극성 마비독이었다.

이 독은 산성독과 달리 맞아도 목숨에 지장은 없지만, 꽤나 강력해 B랭크 40% 이상의 독 저항력을 지니고 않다면 육체에 상당한 패널티를 선사한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현재 루시아의 독 저항력 스텟은 B랭크 15%.

허나, 독이 그녀의 몸에 닿는 일은 없었다.

루시아가 손을 한번 휘젓기 무섭게 순식간에 몸을 둘러싸는 반투명한 구.

마비독은 방어결계를 뚫지 못하고 그대로 지면에 흘러내렸다.

포이즌레블은 황급히 산성독과 마비독을 섞어 날렸다.

보호막을 뚫고 맞추기 위함이었지만.

티딕! 티딕!

모조리 튕겨낸다.

이어서 수십 마리의 알비론이 달려들어 날카로운 팔을 휘둘렀지만 방어막은 요지부동이었다.

루시아가 손목을 쓰윽 한 바퀴 돌렸다.

붉은빛이 감돌던 검의 색상이 변화한다.

이번에는 푸른빛이었다.

“하압!”

본능적으로 터져 나오는 기합과 함께 검을 휘두르자, 날카롭게 날아가던 붉은 검기와는 다르게 푸른 검기가 채찍처럼 뻗어나갔다.

콰과광-

위력도 무척 강해 주위를 초토화 시킬 정도.

더 나아가 루시아는 스킬에만 의존하지 않고 방패로 막고, 회피하며 적과 싸워나갔다.

이에 그녀를 흘끗 살핀 유세현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전 루크루프의 저택에서도 그렇고, 둥지 때의 스킬활용도 그렇고, 그의 개인적인 주관으로 보기에 그녀는 전투에 꽤나 소질이 있는 것 같았다.

제대로 된 무공만 익힌다면...

고유특성의 차이가 있는 만큼, 순순한 무력 면에서 만큼은 레피아를 뛰어 넘을 수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한다.

유세현은 잽싸게 죽은 알비론과 포이즌레블을 되살렸다.

그리고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제대로 된 공격을 시작한지도 어느새 10분 째.

놈들이 자신을 잡을 생각이라면 슬슬 반응을 보여야 할 때였다.

‘나와라. 나와.’

그가 부패의 어둠을 쏘아내어 스카이레블의 진형을 부숴버린 순간이었다.

스륵슥.

미묘하게 흔들리는 풀숲.

지금까지 싸워온 알비론이나 포이즌레블과는 다른 움직임이었다.

조심히 유세현에게 향하는 루시아의 눈동자.

그녀도 깨달은 것이다.

유세현이 그토록 원하던 특이개체가 도착했음을.

퓩!

슈슈슈슉!

사방에서 각양각색의 파편들이 일제히 빗발쳤다.

일반 생존자들은 회피할 엄두도 나지 않을 정도의 무지막지한 물량과 빠르기였으며, 실제로도 그러했다.

무려 35%의 힘 스텟을 지니고 있는 놈들이 자신의 신체의 일부를 떼어내 날리는 것이었으니까.

허나.

일순간 펼쳐지는 천마등공의 묘리.

그가 손을 살짝 치켜들기 무섭게 모든 파편들은 힘을 잃고 허공위로 둥실둥실 떠올랐다.

유세현은 곧바로 루베르크를 휘둘러 시야를 막고 있는 주위의 고목을 베어버렸다.

그 속에서 등장하는 20마리의 특이개체.

생각지도 못했던 숫자로, 그중에는 레브레스처럼 지능이 뛰어난 놈도 존재했다.

[큭. 들은 대로 대단하군.]

상어의 형상을 띄고 있는 놈이었다.

군체가 내려준 정식 명칭은 메갈로논.

유세현이 손을 까딱였다.

도발.

달려들게 만들어 보다 더 쉽게 처리하기 위함이었지만 놈들은 이 수에 걸리지 않았다.

스스로도 자신의 처지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특이개체의 평균 힘 스텟은 35~40%.

암흑투기에 짓눌리게 되면 A랭크 초반까지 확 떨어져 루시아도 상대가 가능하게 된다.

놈들의 상태를 살핀 유세현은 다시 한 번 마력의 흐름을 읽었다.

직속호위병 두 마리가 무시무시한 속도로 접근해오고 있었지만 아직은 거리가 제법 있는 상황.

‘이 정도 속도라면...’

도착까지 예상 소요 시간은 약 10분.

유세현의 입꼬리가 사르륵 올라갔다.

10분.

초로 환산하면 600초.

유세현에게 이 600초는 무척 긴 시간이었다.

군체는 이 만큼의 특이개체를 여기에 보냈으면 안 되었다.

아니, 보냈어도 일정 간격을 두고 보냈어야 했다.

유세현이 루시아를 향해 말했다.

“2마리...처리해 보시기 바랍니다.”

“......”

루시아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특이개체는 어이없다는 투의 실소를 터트렸다.

[허, 우리가 그렇게 쉽게 당할 것 같으냐?]

허나, 사실 마음속은 달랐다.

‘변신하려는 건가? 놈이 변신하면 안 되는데...’

그럼 시간을 끌 수 없다.

어떻게든 막아야 된다.

하지만 다음 순간, 메갈로논은 생각을 이어나갈 수 없었다.

스스스.

흩뿌려져 나온 어둠이 이미 유세현의 전신을 덮어나가고 있었기 때문.

“......”

핏빛어린 눈동자가 메갈로논을 묵묵히 응시했다.

* * *

마족화의 제한시간은 약 5분.

유세현은 그 사이 15마리, 루시아는 2마리의 특이개체를 잡는데 성공했다.

나머지 3마리는 놓쳤다.

놈들이 흩어져 도주한 탓.

아니, 애초부터 놈들이 도주하지 않고 덤볐다면 진즉 전부 처리하고 빠져나갔을 터였다.

놈들은 어떻게든 시간을 끌려했고, 결국 마족화가 끝나기 직전 아슬아슬하게 빠져나왔다.

그리고 그 결과가...

타다다닥.

루시아를 어깨에 들쳐 메고 있는 유세현이 발걸음을 더욱 분주히 움직였다.

그의 등 뒤로는 무수히 많은 스카이레블이 안 좋은 의미로 뒤따르고 있었다.

스텟과 마력운용에 의해 점점점 차이가 벌어지지만, 안타깝게도 스카이레블은 후방뿐만 아니라 전방에도 존재했다.

조금이라도 시간을 끌기위해 미리 배치 시켜둔 것!

슉!슉!슉!

쏟아지는 갈고리.

유세현이 회피하려던 순간이었다.

“괜찮아요. 무시하셔도 돼요.”

덤덤한 하면서도 확신이 담겨져 있는 말투였다.

유세현은 전방을 살폈다.

갈고리는 날아가는 속도에 원심력이 더해지기 때문에 알비론의 일반 공격보다도 훨씬 강했다.

B랭크 60%짜리의 힘을 지닌 스카이레블이 갈고리를 쏘면 B랭크 90%정도의 힘을 지니고 있는 알비론이 공격을 해오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유세현이 판단컨데 이곳에 위치해있는 스카이레블의 힘은 대략 60~70%였다.

그런 게 수십 개.

그것도 쉬지 않고 연속적으로 날아온다.

과연 다 버텨낼 수 있을까?

‘그래, 지금 여기서 한계치를 알아놓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

유세현은 정말 하나도 피하지 않고 달려 나갔다.

투두두두!

계속해서 막아내는 방어막.

방어막은 그의 예상보다도 훨씬 단단해 인간진형 근처에 도착할 때까지 유지되었다.

유세현은 감탄했다.

자신이 최대한 많은 특이개체를 잡기 위해 마력을 불사른 것처럼 그녀 또한 어마어마한 마력을 소비했다.

암흑투기로 놈들의 스텟을 저하시켰다지만, 루시아는 애당초 놈들보다 스텟이 낮았기 때문.

고유특성을 듬뿍 담지 않았다면, 모든 마력을 쏟아 부어 이 방어막을 만들었다고 한들 이렇게까지 버틸 수는 없는 것이다.

아니, 애초에 담았다고 한들 이 정도까지 버틸 수 있을까?

‘성장한 건가.’

아주 예외가 아닌 바에야, 고유특성의 대가는 정신력이라고 이전 이강호가 일러준 바가 있었다.

그리고 정신력이라는 것 자체가 굉장히 오묘한 만큼, 성장하는데 여러 가지 방법이 존재한다는 것도.

지드먼의 죽음.

그녀에겐 그것이 큰 자극이 된 것이리라.

유세현은 인간진형 근처에 다다르기 무섭게 잽싸게 숲으로 내려갔다.

투다다다.

꽤나 거리가 될 터임에도,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를 가득 담고 있는 땅울림이 여기까지 느껴졌다.

유세현은 슬쩍 진지를 살폈다.

전투준비는 끝난 모양.

두 사람은 일단 잠깐 대기했다.

괜히 지금 다가서면 의미 없게 눈에 띌 뿐만 아니라, 30초도 지나지 않아...

콰과광!

스카이레블이 몰려오자 생존자들이 선제타를 가했다.

상공을 쏟아지는 수많은 스킬.

스카이레블은 코인을 흩뿌려가며 죽어나갔다.

그러나 알베타스의 장점이 무엇이겠는가.

막대한 물량!

수가 줄었다고 하나 놈들은 많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많지는 않았지만 산맥 전체가 아닌, 유세현이 자취를 감춘 근처 진지에만 공격을 감행했기에 당하는 쪽에서는 많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훅훅훅.

쾅!

“크악!”

전투가 발생한지 30초도 지나지 않아 무너지는 담벼락과 속출하는 부상자들.

틈을 확인한 유세현과 루시아가 지면에 최대한 밀착한 상태로 내부를 향해 달려 나갔다.

아직 알비론들이 도착하지 않은데다가, 스카이레블에 정신이 팔려있었기에 오직 가까이 있던 몇몇 인원만이 다가오는 둘을 발견할 수 있었다.

허나, 전투가 급급했기에 그 몇몇조차도 사람인 것을 확인하고는 이내 관심을 접었다.

< 미끼(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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