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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왕 유세현-251화 (251/612)

< 전멸(3) >

소리 소문 없이 다가온 고요한 일격.

전조현상도 전혀 없었기에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당한 뒤에야 알아챘을 정도의 그런 수준 높은 기술이었다.

허나, 유세현은 논외.

천마군림보를 운용하여 잽싸게 회피한 유세현의 시선이 상공으로 향했다.

내리쬐는 역광 속에서 비쳐 보이는 검은 그림자.

“큭...”

자연스레 침음이 흘러나온다.

현재 그의 망막에는 거칠게 날갯짓을 하고 있는 4쌍의 거대한 붉은 날개가 맺혀있었다.

후웅. 후웅.

쉬이익!

더 이상 파악할 새도 없이 빠르게 낙하하는 놈의 육신.

놈은 공격에 대비하고 있던 유세현 쪽이 아닌 헤드리아의 옆에 내려앉았다.

유세현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뒤쫓고 있는 놈이 하늘의 총괄자인 베아렉클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미로를 탐사하기에는 놈의 몸은 너무도 거대해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중형 개체는 배제하고 있었다.

이강호의 말에 따르자면, 공중형 직속호위병은 베아렉클 한 마리였으니까.

그런데 저놈은?

‘인간의 과거가 바뀌었듯이 알베타스도 바뀌었다는 건가?’

새롭게 등장한 놈의 모습은 굉장히 익숙했다.

놈은 제 3존, 파이널 존에서 만난 가루다라는 종족와 무척 유사한 외형을 지니고 있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피부 전체가 알베타스 특유의 단단한 피갑으로 둘러싸여 있다는 것.

날개 또한 붉을 뿐, 깃털이 아니라 육체와 동일한 물질로 구성되어있었다.

‘미리 알아챘어야 했는데.’

전투가 너무도 격렬해 미처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운이 없었군. 헤드리아.]

[크...카르베스.]

새롭게 등장한 적, 카르베스의 손이 헤드리아의 무너진 육신을 향했다.

붙여주려는 심산인 모양이 분명한데...

“후우...”

유세현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그리고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카르베스를 향해 쇄도해 들어갔다.

눈꼬리를 살짝 올린 카르베스가 하던 행동을 정지하고 쥐고 있던 창을 들어올렸다.

휘이익-

휘감기는 바람.

순수한 장비의 힘으로는 루베르크를 막아낼 수 없는 것을 알고 강한 보조 스킬을 덧씌운 것이다.

챙!

회전력에서 발산되는 강한 반발력.

유세현은 끝임 없이 몰아치며 어떻게든 헤드리아를 끝장낼 기회를 엿봤다.

허나, 카르베스의 스텟도 헤드리아와 동급.

암흑투기에 마족화까지 사용해야 간신히 움직임을 따라갈 수 있었던 유세현으로서는 그 한 번을 차마 찌를 수가 없었다.

게다가 누적된 전투와 마력재생으로 인한 체력의 격하.

쌩쌩한 놈과는 달리, 유세현은 몸이 너무 무거웠다.

자신의 암흑투기를 뒤집어쓰고 있는 상대가 이런 느낌일까.

귓가로 울리는 심장의 고동소리.

두근 두근.

그것은 자그만 한 소리도 놓쳐서는 안 되는 유세현에게 무척 걸리적거리는 소음이었지만, 한계까지 몰아붙인 심장은 좀처럼 그 비명소리를 멎을 줄을 몰랐다.

‘젠장...어떻게 해야...’

유세현은 머리를 굴렸다.

답은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깎아내리듯 서서히 흩어지기 시작하는 어둠의 마력.

마족화가 풀려가고 있다는 증거였다.

이제는 정말 시간이 없다.

그는 일단 레피아의 위치를 살폈다.

강 근처에는 거의 다다른 것 같긴 하지만.

무심코 깨닫는다.

마력을 지니고 있는 생명체가 얼마 없다는 것을.

이 뜻은...

‘역시, 제국군이 빠진 게 컸나.’

허나, 문제는 그뿐만이 아닌 것 같았다.

그뿐 만이라면 이렇게 숫자가 빨리 줄어들 리가...

[호오, 아직 여유가 있나 보군.]

쉬이익-

“...!!”

어느새 복부를 향해 카르베스의 창이 날아오고 있었다.

유세현은 황급히 몸을 회전시켰다.

지지직-

아슬아슬하게 스쳐지나가는 창끝.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갑피처럼 딱딱한 8개의 날개가 동시에 찔러 들어온 것.

유세현은 정말 모든 것을 쏟아 부어야만 했다.

스쳐가는 미미한 공격은 허용해준다. 허나 치명상이 될 만한 것은 쳐낸다.

이어지는 반격까지.

콰앙!

천마의 검법이 펼쳐지자 카르베스의 눈에 놀라움이 깃들었다.

그의 자의식은 유세현이 이것을 절대 피하지 못하리라 판단하고 있었기 때문.

한편, 유세현은 카르베스가 그렇게 생각하거나 말거나 마음의 정리를 끝낸 상태였다.

“허억 허억...”

정말로 아쉽지만 여기서 헤드리아를 처리하는 것은 포기한다.

자신은 이곳에서 놈과 같이 죽고 싶은 게 아니었으니까.

유세현이 곧바로 몸을 틀어 질주하기 시작했다.

도주.

카르베스가 곧바로 뒤따르기 위해 무릎을 굽혔다.

허나 그 순간 무엇인가를 깨달은 것 마냥 움찔거리는 몸.

그의 시선이 헤드리아에게 향했다. 그녀는 천천히, 허나 확실히 죽어나가고 있었다. 이대로 두고 간다면 사망을 면치 못하겠지.

그는 헤드리아를 향해 나아갔다.

군체의 명령이 머릿속에 계속 울려 퍼졌다.

[놈을 포획해라.]

[무시하고 쫓아라.]

그러나 카르베스는 그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

아니, 본래라면 무조건 따라야 하는 것이었으나 아주 가끔 이런 식으로 강제력이 사라지는 경우가 있었다.

그리고 이럴 때마다 뇌리 속에 떠오르는 어떤 장면.

치짓-

화질은 막 TV가 개발 되었을 때처럼 무척이나 조악하기 그지없었다.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는 붉은 날개의 종족.

그리고 그것을 지휘하고 있는 자신과 닮은꼴의 존재.

그들이 내뱉고 있는 함성이 이명처럼 메아리친다.

[가루다!]

[가루다!]

[가루다!]

머릿속을 뒤흔드는 소음을 떨쳐내기 위해 머리를 흔든 카르베스는 1초도 지나지 않아 헤드리아의 잘려나간 부위를 전부 맞춰주었다.

너무 깨끗이 잘려나간 탓에, 그대로 갖다 대기만하면 순식간에 붙을 것 같던 느낌과 달리 육신은 좀처럼 이어지지 않았다.

[뭔가가 있나 보군.]

카르베스의 말에 지금까지 침묵을 유지하던 헤드리아가 한마디를 내뱉었다.

[너...어떻게...분명 명령이 떨어졌을 텐데...]

믿기지 않는다는 어조였다.

강제력이 느껴지지 않을 때도 카르베스가 명령을 이행해 왔기 때문이었다.

즉, 명령불복종은 이번이 처음 있는 일.

카르베스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모른다. 하지만 걱정마라 충분히 쫓아갈 수 있으니까.]

[......]

[그럼 난 이만 명령을 수행하러 가보겠다. 그대로 가만히 있으면 붙긴 할 것 같으니 움직이지 말고 있어라.]

접혀있던 카르베스의 4쌍의 날개가 확 펼쳐졌다.

파앗.

도약하기 무섭게 자취를 감추는 카르베스의 육신.

헤드리아는 고개만 돌려 한동안 카르베스가 서 있던 자리를 멍하니 응시했다.

* * *

당장이라도 지쳐 쓰러질 것 같은 육신.

정신력만으로 간신히 버티던 팀장들의 눈동자에 희망이 일렁였다.

스스스-

마침내 강에 도착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황급히 주위 사람들을 향해 물었다.

“어디야? 어디가 입구야? 아는 사람?”

물이 탁하고 입구가 생각보다 작아 잘 안 보이는데다가, 물살도 그들이 휩쓸릴 정도로 세서 멋모르고 뛰어 들어갔다가는 그대로 통과해 미아가 되어 버릴 수도 있다고 레피아가 사전에 충고해두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통과해버리면 마력이 다 소비된 지금 되돌아올 방법은 다시 땅을 밟는 것밖에 없다.

“아는 사람?”

“아니, 이중에서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어?”

허나,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입구를 정확히 알고 있는 레피아와 검은꽃들은 아직 뒤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었으니까.

팀장들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설마 도와주러 가야되는 것인가.

“젠장...그냥 은폐해있죠.”

“맞아요. 지금 돌아가는 건 좀...”

알비론은 그나마 괜찮았지만, 그들은 특이개체를 상대하는 것만큼은 정말 끔찍하게 싫었다.

그때, 풀숲에서 불쑥 얼굴을 드러낸 레피아.

생존자들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레피아의 뒤로 검은꽃과 잔여 생존자 그리고 특이개체를 포함한 수많은 적이 뒤따르고 있었기 때문.

그녀가 버럭 소리 질렀다.

“뭘 멀뚱멀뚱 쳐다봐? 여기서 다 뒤지고 싶어? 뛰어들어!”

풍덩-

레피아를 선두로 생존자들은 일제히 강에 몸을 던졌다. 그 뒤를 따르는 수많은 알비론과 특이개체.

입구는 수심이 꽤 깊은 곳에 위치해 있었고, 미역 같은 긴 해조류로 가려져있어 눈에 잘 띄지도 않았다.

레피아가 손가락으로 지목하기 무섭게 앞다투어 들어가려하는 생존자들.

불과 100명도 안 되는 사람들이었지만 몇몇은 주위사람을 밀쳐내는 모습까지 보였다.

그 와중 쏟아진 특이개체의 특수능력.

인간의 이기심에 의한 최초의 피해를 본 인원은 아린이었다.

‘으아아아! 비켜!’

툭-

압박을 이겨내지 못한 생존자 한 명이, 옆에서 아린을 떠밀었는데, 안 그래도 간신히 유지하고 있던 균형이 와르르 무너진 것이다.

순식간에 떠내려가는 아림의 몸.

카텐의 눈이 화들짝 커졌다.

지금 이 상놈의 자식이 무슨 짓을 한 것이지?

‘지금 영감님은 마력이 하나도 없다고!’

꾸구국.

눈가에 핏대가 솟아오른다.

그는 생존자의 멱살을 붙잡으려 했지만 카텐의 스텟은 베테랑인 남성보다 낮았다.

튕겨 나오는 손.

‘젠장. 저 쓰레기새끼...’

살기를 담아 쏘아본 카텐은 이내 힘을 풀고 물살에 몸을 맡겼다.

그리고 그 뒤를...

‘카텐!’

케드리나가 곧바로 뒤쫓았다.

남성은 그러거나 말거나 내부로 들어가려했다.

아직도 특수능력이 날아오고 있었으니까.

‘미안한 일이긴 하지만 이 세상은 약육강식이다.’

그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바로 그 다음 순간.

손 하나가 그의 얼굴을 낚아챘다.

생각보다 크기는 작았지만 힘 하나 만큼은 장난이 아니었다.

당장이라도 얼굴이 부서질 것 같다.

남성은 당혹스러웠다.

자신을 누를 수 있는 이렇게 압도적인 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고작 해봐야...

벌어진 틈사이로 비치는 레피아의 얼굴.

그녀의 인상은 와락 구겨져있었다.

남성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왜...왜?’

그는 질문하고 싶었으나, 그럴 틈도 없이 손에 이끌려 레피아와 함께 떠내려가기 시작했다

* * *

‘젠장...병신 같은 몇 놈들 때문에...’

뭍길로 올라온 레피아는 붙잡고 있던 남성을 휙 내팽개쳤다.

여기까지 함께했으면, 마지막까지 제대로 해야 될 것 아닌가.

몇 놈이 난리를 피워준 덕에 20명 넘는 인원이 낙오되었다.

후에 엄청난 전력이 되어줄 대마법사 아린 하이워커도, 고유특성을 지녔다는 루시아 아인셰르도.

“아버지 괜찮으세요?”

“그래, 난 괜찮다. 그보다 이런 일이 생겨도 알아서 할 테니까 따라오지 말라고 분명 전에 신신당부 했던 거 같은데...앞으로는 진짜 이러지 말거라.”

“......”

면밀히 따지자면 루시아는 아버지 지드먼을 따라 자발적으로 내려온 것 같았다.

카텐이라는 남자도 그렇고 이 여자도 그렇고.

서로에 대한 애착이 이정도로 큰 팀은 정말 몇 없다.

레피아는 지형지물을 살펴 목표지점까지 대충 거리를 쟀다.

약 1km.

초인에게 있어서는 짧다고 할 수 있는 거리였지만.

‘수가 너무 적어...’

게다가 보좌해주는 구울도 없다.

이래서 처음부터 신신당부했던 것인데.

레피아는 아린과 루시아를 흘끗 살폈다.

나머지에게는 미안한 일이었지만 그녀는 이 둘을 최우선으로 할 생각이었다.

“간다. 뒤쳐지면 끝이니까 그리 알아두고.”

무심히 말한 레피아가 발을 뗐다.

속전속결.

단번에 뚫는다.

그녀는 최대한 아껴두고 또 아껴두었던 마력을 긁어모았다.

쉬이이-

검에 맺히는 녹빛의 독기.

-캬아아!

그녀는 놈들이 모습을 드러낸 타이밍을 맞춰 절기를 펼쳤다.

[독각풍멸(毒角風滅)]

슈욱!

만천독화가 널리 휘몰아치는 꽃이었다면, 독각풍멸은 뻗어나가는 비수였다.

투두두둑!

지면에서 쓰러져 움직이지 못하는 알비론과 특이개체.

사람들은 죽을 힘을 다해 달렸다.

500m.

200m.

거의 다 다다랐다.

이제 곧!

마지막 150m 앞둔 순간.

이변은 갑작스럽게 발생했다.

휘이이익-

콰과광!

갈라지는 숲과, 그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잔재의 폭풍.

마치 고서클의 마법을 보는 듯한, 그야말로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날카로운 바람이었다.

< 전멸(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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