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247화 (247/612)

< 외통수(2) >

높은 절벽, 둥지의 위.

남궁시영을 포함한 알데우스 백작과 생존자들은 알베타스의 움직임에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둥지를 공략할 때와 비슷한 어마어마한 물량.

그런 놈들이 전부 토벌조에게 갔다.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지는 안 봐도 비디오.

남궁시영의 마음속에서는 엄청난 내적갈등이 소용돌이 쳤다.

구하러 가야 하는가. 아니면 믿고 기다려야 하는가.

전자는 너무도 이기적인 것이었다. 자신의 개인적인 감정 때문에 모두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었으니까.

아니 사실 따라와 줄 런지도 모르는 일이다.

지금까지 다른 문파의 무인들과 소통을 잘 나눠서 그렇지 그녀가 그들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상관은 아니었기 때문.

반면, 후자는 대표로서 무척 합리적인 결정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이제야 찾았는데...이제 말할 수 있는데...’

지금에 와서는 그녀가 연심을 품게 된 남자 이강호.

그녀 또한 레피아처럼 이강호가 얼마나 큰 상실감 가졌는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아니, 레피아도 그녀만큼 잘 알지는 못할 것이다.

당시 그녀는 옆에서 지켜봤었으니까.

게다가 유세현의 직접적인 실종 원인은 자신 때문.

미안함과 죄책감이 마음속에서 계속 맴돈다.

남궁시영은 우선 알데우스와 길드장에게 권해보기로 했다.

“토벌조 구출작전을 펼치도록 하죠. 우리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이에 알데우스가 코웃음을 쳤다.

“지금 저 병력을 상대로 말인가요?”

길드장들도 고개를 저었다.

“맞습니다. 저건 우리가 나서서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도움을 주시겠다는 건 감사하지만 거절하도록 하죠.”

“...그럼 지금 저들을 버리겠다는 건가요?”

“버리다뇨! 그렇게 표현하지 않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들은 작전 중이었습니다. 재수 없게 돌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는 법이죠. 안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못하는 것이지. 아 물론 지금이라도 가면 인원들을 몇 명 구

출할 수는 있겠죠. 하지만 동시에 토벌팀이 전멸하는 것보다 더 큰 피해가 속출할 것입니다.”

“맞아요. 남궁시영씨도 아시잖습니까? 우리가 계속 버틸 수 있는 이유는 강해서 이기도 하지만 이 절벽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그들을 구하고 다 죽을 셈입니까?”

“......”

논리정변한 말이다.

그래 그녀도 사실은 알고 있다.

남궁시영의 초조한 표정을 본 알데우스가 한마디 더 덧붙였다.

“그보다도 이번 일에는 참가하지 않으시겠다더니. 갑자기 적극적으로 나서시는 이유를 저는 전혀 모르겠군요.”

비아냥거리는 어조는 아니었지만, 바보가 아닌 바에야 비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남궁시영은 으득 이를 갈았다.

유세현이 한 말을 그들이 진지하게 받아들여 생각했더라면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을 수도 있었는데.

하지만 그녀는 곧 고개를 저었다.

이건 어디까지나 결과론적인 생각이다.

지금은 기세 싸움보다는 대책마련이 더 중요하다.

허나, 아무리 생각해도 대책 같은 것은 생각나지 않았다.

무인들만으로는 저만한 물량은 견뎌낼 수 없다.

1:1로 계속 붙는다면 가능하겠지만 그들도 결국 생명체.

눈먼 화살에 맞아 죽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한번 무너지기 시작하면 저들의 말처럼 걷잡을 수 없다.

‘난 어떻게 해야...’

그녀는 우선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기위해 호흡을 차분히 가다듬었다.

예전의 기억이 떠오른다.

마교에 잡혀있던 그때가.

‘그래...난 그들이 없었으면 3년 전 거기서 죽었을 거야...’

그녀는 이강호에게 마음을 밝히지 못했다.

죄책감이 계속 마음을 짓누르고 있던 탓.

거기까지 생각한 그녀는 나아갈 길을 정할 수 있었다.

무인들에게 말한 뒤 안 따라주면 자신만이라도 가기로.

남궁세가의 당주의 눈이 남궁시영에게 향했다.

그는 그 순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런, 가실 생각이다.’

당주는 재빨리 언질 했다.

“소가주님. 그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유세현과 레피아라는 자가 어떤 이들입니까? 그들은 반드시 적을 따돌릴 것입니다.”

“...그래도 가봐야겠어요. 인원들을 불러주세요.”

“안 됩니다. 보내드릴 수 없습니다. 저들의 말처럼 지금 가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해보지 않고는...”

“아뇨, 이건 무인들이 전부 도와준다고 해도 전혀 승산이 없습니다. 이건 자살하러 가는 것과 똑같습니다. 소가주님도 사실을 아시지 않습니까! 정신 차리십쇼! 소가주님은 지금 너무 감정적이십니다. 소가주께서 이런다고

이강호가 좋아할 것 같습니까? 유세현이 관여되었다고 해서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에 목숨을 어이없게 버리는 걸 좋아할 것 같냐는 겁니다!”

“......”

“지금은 그들을 믿고, 돌아올 것을 대비해 이곳을 더욱 굳건히 지키고 있어야 될 때입니다..”

당주는 그것을 끝으로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남궁시영은 스스로가 미련했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래, 그건 묘 자리를 찾으러 가는 것에 불과하지.

그녀는 손 모아 기원했다.

‘제발 무사히 벗어나기를...’

하지만 그들이 정말로 저 많은 병사에게서 벗어날 수 있을까?

불안감이 비수가 되어 그녀의 심장을 계속 쿡쿡 찔러댔다.

* * *

“이런 젠장. 뭐가 이렇게 끝없이...”

계속에서 밀려드는 알비론.

A랭크의, 웬만해선 지칠 줄 모르는 체력을 지니고 있는 생존자들이었지만 현재 그들의 입 내부에서는 단내가 물씬 풍겨져 나오고 있었다.

유세현은 암흑투기를 적당히 유지할 정도의 마력만 남기고 모든 것을 언데드 레이즈에 쏟아 부었다.

되살아나 동족을 공격하는 이들.

처음에는 몹시 당황해하던 생존자가 많았으나 이제는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눈치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이상하고 자시고를 따질 겨를이 없다는 것이 옳을 것이다.

지금은 스스로의 목숨 챙기기도 빠듯하니까.

“레피아씨, 얼마나 더 가야됩니까?”

“조금...조금만 더!”

레피아가 향하고 있는 장소는 과거 미로 형태의 던전이 자리 잡고 있었던 동굴이었다.

클리어 된 뒤로는 산을 관통하는 통로가 되어버렸는데, 잊고 있다가 알베타스의 등장 이후 간혹 침투요원들의 은신처로 사용하게 되었다.

그녀는 그곳으로 들어가, 시간을 벌고 반대편 출구로 빠져나갈 생각이었다.

푹부북-

“크아악!”

그새 또 한 사람이 낙오된다.

약 3천에 달하는 인원으로 꾸려졌던 토벌대였지만, 이제 남아있는 사람은 채 700명도 되지 않았다.

아린이 마법을 발현했다.

[파이어 레인]

평소 애용하는 마법으로서 어스퀘이크처럼 고서클의 마법은 아니었으나 마력을 담을 수록 강해져 웬만한 광역스킬보다도 화력은 막강하기 그지없었다.

일대를 태우는 불의 비!

알라함은 그것을 보며 잠시 넋이 나갔다.

유세현이라는 놈은 대체 뭐기에 저리 희귀한 스킬을 지니고 있는 팀원이 많은 것인가!

알라함은 일단 의문을 뒤로했다.

마침내, 드디어 동굴의 입구에 다다랐기 때문.

팀장, 인원들의 눈가에 맺히는 밝은 빛.

이제야 비로소 놈들에게서 벗어날 수 있다!

“뛰어! 뛰어! 뛰어!”

인원들은 전력투구했다.

유세현과 레피아는 내부로 제일먼저 들어오기 무섭게 양옆에 위치했다. 마지막 인원이 들어오면 곧바로 천장을 부숴버릴 생각.

“흐아아압!”

맨 끝에 있던 남성이 몸을 던졌다.

젖먹던 힘까지 다했는지 실로 어마어마한 속도였다.

콰과광!

곧바로 천장이 무너지며 통로를 막았지만, 생존자의 바로 뒤를 따르던 놈들이 있었기에 완벽하게 침입을 막는 것은 불가능했다.

특이개체 20마리와 스텟이 높은 다수의 알비론.

밖에서는 놈들이 그 강한 힘을 이용해 암석을 부수고 들어오려고만 하고 있었다.

알라함이 잽싸게 명령을 내렸다.

“놈들은 소수다! 처리해라!”

치열하게 벌어지는 접점.

특이개체는 무척 강했지만, 생존자들을 당해낼 수는 없었다.

놈들 또한 상당히 지쳤으며, 암흑투기로 능력이 저하된 탓!

녹색의 체액이 묻은 검을 휘휘 턴 알라함이 마무리를 짓기 위해 다가간 순간이었다.

특이개체의 어깨가 들썩였다.

[키키키.]

동시에 터져 나오는 기분 나쁜 웃음소리.

“하...이 벌레새끼들은 진짜...”

[키키키키키.]

“......”

눈을 한순간 감았다 부릅뜬 알라함은 사지가 절단되어있는 특이개체의 육체를 그대로 반으로 갈랐다.

이것으로 내부로 들어온 놈들은 전부 끝.

그동안에 입구도 적절히 막은 상황이었다.

물론, 머지않아 뚫리겠지만...나아가면 그만.

알라함이 물었다.

“길은 잘 알고 있는 거겠지?”

“물론. 잘 따라오기나 해.”

레피아가 답하자 알라함의 인상이 살짝 구겨졌다.

그녀가 신분제도의 영향력을 벗어난 것은 알고 있지만, 도통 적응이 되지 않는 것.

아니, 정확히 말하면 여전히 기분이 나쁘다.

다만 이치를 알기에 참고 있는 것일 뿐.

“쉬지 않고 뛸 거야. 뒤쳐 지지마.”

레피아를 선두로 사람들은 달리기 시작했다.

내부에 본격적으로 들어서기 무섭게 묘한 냄새가 흘러들어와 코를 자극한다.

악취만 섞이지 않았지, 맡아본 적 있는 냄새였다.

꿈틀거리는 인원들의 눈가.

동시에 나아가던 발걸음이 멈추며 안색이 점점 어둡게 변해갔다.

왜냐하면 이 냄새는...

“군락지?”

한 병사가 모두가 꺼림직 해 마지않는 그 단어를 기어코 입 밖으로 토해냈다.

알라함이 순식간에 레피아에게 접근했다.

“이게 어떻게 된 것이냐! 왜 이곳에 군락지가 있는 거지?”

“...그걸 굳이 내 입으로 말해줘야 되나? 대충 짐작이 갈 텐데?”

“......”

악취는 인간이 만든 오물에서 발생되는 것이다.

그런데 악취가 없다는 뜻은 만들어진지 얼마 안 되었다는 뜻.

“이런 제기라아아알!”

알라함은 분에 가득 차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가자고! 어차피 이 수 밖에 없잖아?”

그렇다 되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가봤자 기다리는 것은 엄청난 수의 괴물들이니까.

못 먹어도 고. 아니, 죽어도 고밖에 할 수 없다.

샤샤샤샤샥-

인원들은 빠른 속도로 나아갔다.

유린당하고 있는 여성들이 눈가에 비친다.

전혀 볼게 못 되었기에 그들은 정말 순식간에 도륙을 내려했다.

허나, 그때 발생한 아주 사소한 문제.

“사,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정신이 박살나있으면 사람들은 그나마 별 죄책감 없이 죽일 수 있다.

그러나 초기라는 것은, 숙주도 제정신이라는 것.

유세현이 기계가 정지하듯 멈춰버린 아린에게 조심스레 말했다.

“죽여줘야 됩니다. 영감님. 아시지 않습니까.”

붙잡힌 여성들은 사지를 잃는다.

한 팔만 잃어도 생존률이 50%이하로 하락하는데 도망치지도 싸우지도 못하는 몸으로 어떻게 살아갈 수 있단 말인가.

그냥 두고 가는 방법도 있지만 그랬다가는 또 혼종의 모체가 되리라.

여자는 죽지 못한 것을 두고두고 후회하겠지.

아린은 꾹 눈을 감았다. 여성이 애걸복걸 울었다.

“사, 살려주세요 어르신. 제발...제발...”

“미, 미안하네.”

서걱-

동굴에 비해 규모가 작았기에 모두 처리하는 데는 1분도 걸리지 않았다.

도주하고 있는 마당인지라 소비된 시간이 적은 만큼 환호해야 될 일이었지만.

“젠장...기분 더럽군...”

전부 일그러져 있는 표정.

유세현은 죽은 여자의 시체를 바라봤다.

잔여 마력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필히 모두 스킬을 쏟아 부우며 저항했던 것이겠지.

그리고 이것이 유세현이 미처 알아채지 못했던 이유이기도 했다.

“......”

인원들은 레피아의 뒤를 따라 계속 달려 나갔다.

전직 미로형 던전답게 이리저리 길이 퍼져있고 꼬여있었지만 레피아는 길을 나아가는데 막힘이 없었다.

이곳을 클리어한 사람이 그녀였기 때문이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일주일 밤낮을 헤매도 발견하지 못했을 출구.

그런 미로의 출구 근처에 다다르기까지 일행이 걸린 시간은 고작 해봐야 4시간 정도였다.

“후...좋아...”

최단거리로 왔기에 고지대의 산을 넘어야 되는 놈들보다도 빠를 것이다.

행여나 스카이레블이 분포해 있을 수도 있겠지만, 놈들뿐이라면 어찌어찌 도망치는 것은 가능하다.

그녀는 그렇게 예상했다.

허나.

“저곳만 돌면 출구야. 내가 가서 보고 올...”

바깥을 살펴보러가는 레피아의 어깨를 유세현이 잽싸게 낚아챘다.

“왜 그래?”

“......”

심각한 표정.

유세현의 중저음의 목소리가 고요한 내부에 울려 퍼졌다.

“레피아씨. 다른 출구는 없는 건가요?”

“어, 여기는 입구, 출구 딱 두개야...그런데 왜...”

“바깥에 적이 있습니다. 그것도 무척강한...”

그 말에 사람들의 안면이 움찔거렸다.

알라함은 아예 흉흉한 인상이 되어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걸 자네가 어떻게 알 수 있는 거지?”

“......”

유세현은 답하지 않았다.

그저 눈동자만 움직여 응시할 뿐이다.

무슨 뜻인지 깨달은 알라함은 어이가 없었지만, 차마 실소를 터트리진 못했다.

‘뭐, 뭐냐 저 눈빛은...’

짙은 밤색의 홍채위로 떠다니는 붉은빛.

순간적으로 몸이 굳고 오한이 들 정도로 무척 소름끼쳤기는 빛깔이었다.

알라함은 본능적으로 헛기침을 해서 넘겼다.

이어지는 레피아의 질문.

“얼마나 강한데?”

유세현이 차분히 답했다.

“드래곤을 제외한, 지금까지 보았던 것 중에서 가장강합니다.”

< 외통수(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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