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통수(3) >
“......”
정확히 누구인지는 알 수 없었다.
헤드리아 일수도 있었고, 이전 보았던 베아렉클 일수도 있었다.
혹은 그 외의 다른 직속호위병이라던가.
다만 분명한 건 말도 안 되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
추정마력 A랭크 50%.
A랭크 도달이후 0.1%도 올리기 힘들 것을 감안하자면, 판도라 외부에서 만큼은 끝에 도달한 자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 괴물이 지금 출구 바로 앞을 지키고 있는 것이었다.
범처럼 아가리를 쫙 벌린 채.
사냠감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물어뜯기 위해서.
“......”
생존자들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이 되어있었다.
그들이 듣기에 유세현의 말은 지나치게 모순덩어리였으니까.
적을 미리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면, 놈들이 기습을 가할 때는 왜 먼저 알아채지 못했던 것인가.
게다가 드래곤? 최고로 강하다?
주관적이고 비유가 뭔가 이상하다.
그러나 그들은 알라함처럼 따지고 들 수 없었다.
되려 표정이 점점 굳어져갔다.
레피아의 반응 때문이었다.
“젠장...직속호위병인가...”
“그런 거 같습니다.”
“후우...”
레피아는 정예인 생존자들 사이에서도 엄청난 강자다. 그리고 정보에 관해서 그녀를 따라올 자는 아직 아무도 없었다.
그런 그녀가 유세현의 말을 무작정 믿고 있다.
무언가 확신이 있지 않다면 결코 보일 수 없는 행동.
이내 생존자들이 침음을 터트렸다.
“큭...”
“젠장. 그런 놈이 정말 밖에 있다고?”
그야말로 진퇴양난.
유세현이 레피아를 향해 말했다.
“일단은 내부로 돌아가도록 하죠.”
“흠...지금은 역시 그 수 밖에 없나.”
현재 생존자들은 몸을 혹사 시킨 것이 마력회복에도 큰 영향을 끼쳐 4시간이 지났음에도 1/10밖에 차오르지 않은 상태였다.
반면 직속호위병으로 추정되는 놈은 지역이 바뀌어 확인이 가능한 때부터 줄곧 한 자리를 고수하고 있었다.
빨리 밝히지 않은 이유는 행여나 출구가 다른 장소일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여서였는데.
아무튼 지금 나가는 것은 자살행위.
이 미로에서 내부로 들어오는 놈들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키메라나 구울화 시키는 것이 승산을 높이는 방법이리라.
“젠장...”
갖은 욕을 내뱉으며 레피아의 뒤를 따르는 생존자들.
알라함 또한 상당히 못마땅한 표정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는 현재 기분이 너무 불쾌한 상태였다.
하나 밖에 없는 퇴로가 뜬금없이 막혔다는 것도 그렇고, 마치 지휘관인 마냥 제멋대로 결정한 유세현의 태도도 그렇고.
‘감히 내 의중도 묻지 않다니...’
레피아는 천장 벽 위에 숨겨져 있는 공간으로 사람들을 안내했다.
“후아...”
팀별로 자리를 나누기 무섭게 그대로 드러누워 뻗어버리는 수많은 사람들. 유세현은 휴식을 취하기전 팀원들을 살폈다.
복원되어 번뜩거리는 장비와 대조되는 초췌한 얼굴.
자리도 널널하건만 그들은 하나같이 쪼그려 앉아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유세현은 수를 헤아렸다.
하나, 둘, 셋, 넷.
이번 전투로만 56명이나 죽었다.
고난 속에서도 언제나 미소를 잃지 않던 레니도, 그 누구보다도 용맹하게 창을 휘두르던 조지도 이제는 더 이상 없었다.
작은 웅얼거림이 들려온다.
“브레스터...브레스터...”
“......”
유세현은 그 흔한 위로의 말도 건네지 않았다. 아니 건넬 수 없었다.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기에, 괜히 상처만 더 후벼 파는 꼴이 될 것이기에.
자신이 이강호를 믿듯 무조건적으로 자신을 믿어주던 이들의 죽음.
유세현이 이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은 하나였다.
잊지 않는 것. 가슴에 묻어주는 것.
그리고...
승리하는 것.
유세현은 이강호가 왜 그렇게 힘에 집착하고, 나아가려고 한 것인지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 과거에는 처음부터 엄청나게 불리했었다고 했었다.
이보다도 더한 악재의 연속이었겠지.
휴식을 취하고 있던 생존자들의 몸이 얼음장처럼 얼어붙었다.
바닥에서 들려오는 소리 때문이었다.
-키리리릭
다수의 알비론들.
놈들은 이미 미로를 수색하고 있는 중이었다.
도중에 마주치지 않았던 것은 정말 운이 좋았기 때문.
꿀꺽.
샅샅이 뒤지기 시작하자 생존자들의 목 너머로 마른침이 넘어갔다.
제발 발견하지 못하기를 기원하면서.
하지만.
-키이이이.
불쑥 머리를 드러내는 알비론.
놈들은 기분 나쁜 웃음을 연신 토해냈다.
사람들은 황급히 무기를 다잡았다.
“이런 염병할!”
도저히 마를 수가 없는 욕설.
레피아를 선두로 다른 장소로 이동을 개시했다.
그 과정에서 유세현은 약간이나마 알비론들을 구울화 시킬 수 있었다.
또다시 찾아온 휴식의 시간.
알라함은 지끈거리는 두통을 뒤로한 채 유세현을 찾았다.
마음에 안 들지만 대책은 마련해야 되었으니까.
“그 몬스터를 되살리는 능력. 제한이 없다면 계속 농성하면서 수를 불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네만.”
“그건 안 될 말입니다.”
계속 있다가 직속호위병이 늘게 되면?
그것이야말로 최악이다.
그는 최대한 구울의 수를 불려 적어도 이틀 안에는 강제돌파 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흐음...그렇다면야...알겠네.”
알라함은 그를 곱씹으면서도 수긍하는 모습을 보였다.
굴욕적이지만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일단 따르는 것.
알라함이 멀어지자 유세현은 루베르크의 상태창을 살폈다.
지금 이 순간이 루베르크에게 무기를 흡수시킨 딱 한 달째 되는 날이었다.
그는 포켓을 뒤져 윌 페이더를 꺼냈다.
무려 에픽 등급의 아이템.
적은 마력으로 위력적인 파괴력을 낼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유용한 무기였으나, 그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루베르크의 검신에 내려놨다.
쉬이이익!
엄청난 속도로 윌 페이더의 흡수해나가는 루베르크.
무기의 질이 좋아서인지 몰라도 루베르크는 평소와 달리 거친 쇳소리를 내뿜었다.
덕분에 남에게 보이지 않기 위해 구석에 위치한 것이 아무런 쓸모 짝에도 없어졌다.
고개를 돌려 살핀 알라함이 눈을 비볐다.
‘뭐냐 저건...’
기분 나쁜 어둠을 흩뿌리는 특수한 검이라는 것은 대충알고 있었다.
그런데 무기까지 흡수하다니?
성장형 무기란 말인가? 아니면 특수스킬을 사용하기 위한 제물?
호기심이 소용돌이 쳤으나 멍청이 같이 묻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유세현은 차분히 루베르크의 정보를 살폈다.
아이템명: 마검 루베르크
등급: 레전더리 [SSS Rank]
현 등급: 레전더리 [E Rank]
상세정보: 마왕 루시뷀트가 죽음의 권능을 사용하여 집적 제작한 마신구입니다. 상당한 힘을 되찾은 상태입니다.
사용능력: 부패의 어둠, 형태변환(1일1회 사용가능)
무려 8단계를 뛰어넘은 등급의 상승.
루베르크는 이전과는 한차례 차원이 다른 예기를 발산하고 있었다.
이로서 레브레스를 상대할 때처럼은 되지 않으리라.
루베르크를 검집에 집어넣은 유세현은 조심히 눈을 붙였다.
그 또한 계속 쉬지 않고 전투를 치렀다.
힘들지 않다면 사람이 아닌 것.
약간의 쪽잠 이후 구울 만들기 작업에 착수한다.
그의 고개가 살짝 아래로 떨어졌다.
* * *
지드먼은 고개를 좌우로 움직여 주위를 둘러봤다.
휑한 공간.
그는 수를 헤아렸다.
‘34명.’
자신을 포함한 남은 팀원의 총 수였다.
지드먼은 후회가 되었다.
역시 무슨 수를 써서라도 거기에 남아있었어야 했었다.
딸의 바람보다도 현실을 택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한 이유.
딸, 루시아를 보고 있자면 항상 마음이 아려왔다.
손찌검을 받으며, 그 흔한 친구 한 명 없이 쓸쓸하게 자란 아이.
그래서 항상 사람들과 친해지려 그 누구보다 노력했던 딸이었지만, 튜토리얼의 그 사건 이후로는 마음을 완전히 닫아버렸다.
팀원에 대한 믿음이 있어도 본능적으로 접근을 불허했다.
미소를 잃어버린 아이.
그런 그녀가 유세현과 이야기하며 웃은 적이 있었다.
아마 유세현이 공장에서 자신을 구한 이후였을 것이다.
본인스스로는 눈치 못 챈 듯 했지만, 루시아의 입가에는 분명 미소가 맺혀있었다.
지금까지 자신 이외의 사람에게는 결코 보인 적 없던 미소를. 아니, 자신에게 지금까지 보였던 미소는 사실 진짜 미소가 아니었다.
키워준 의리. 의무감 때문에 해주는 것이지.
그래서 차마 남자고 하지 못했다.
지드먼은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이번 전투는 그 어떤 때보다도 힘들 것이다.
어떻게든 딸을 지켜줘야 된다는 생각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불끈 쥐어지는 주먹.
‘그래 내가 어떻게든 지켜줘야 된다.’
흡사 그 스킬을 사용하게 되는 한이 있더라도.
그의 다짐과 동시에 알비론들이 들이닥쳤다.
* * *
하루.
유세현은 상당히 많은 구울을 만들 수 있었다. 유세현의 지시에 숨겨진 방안으로 들어가는 구울들.
생존확률을 높여줄 중요한 놈들을 고작 알비론을 상대하는데 사용할 수는 없었기에 숨기고 있는 것이었다.
“여기다 이 벌레새끼들아!”
“덤벼!”
그 작업을 하는 동안 유인 역할은 길드와 제국군이 맡았다.
특수한 길을 이용해 간신히 따돌린 생존자들.
이 짓거리를 한 번 더 반복 한 뒤 강행돌파를 실시해야 되었지만, 언제나 급조한 계획은 수틀리는 법이었다.
쪽잠을 자던 유세현의 눈이 부릅떠졌다.
눈에 띄게 일그러져 있는 표정.
“지금 당장 돌파를 실시하겠습니다.”
“예?”
“뭐라고요?”
생존자들이 화들짝 놀라 반응하는 반면, 레피아의 안색은 창백히 변했다.
유세현에게서 이런 격한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는 변수는 오직 하나뿐이니까.
“유세현. 설마...”
“예. 다른 한 마리가 미로에 들어와 있습니다.”
설마 하루 만에 새로운 놈을 불러올 줄은 유세현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토록 생각하기 싫었던 상황.
외통수, 체크메이트.
이젠 무조건 움직여야 된다.
결코 좋은 상황은 아니었지만, 그나마 다행인 점은 놈이 입구 쪽으로 들어왔는지 아직 거리가 좀 있다는 것이었다.
“염병할! 그럼 빨리 갑시다!”
사람들이 잽싸게 병장기를 집어 들었다.
트드륵-
돌기둥이 돌아가며 숨겨져 있던 방이 모습을 드러낸다. 수색하던 알비론들의 시선이 일제히 생존자들을 향했다.
-키이...
놈들이 괴성을 지를 새도 없이.
“가자!”
“쓸어버려라!”
물길을 튼 것처럼 빠르게 돌진하는 생존자들!
알비론이 득달같이 달려들던 어제와는 정반대의 상황이었다.
짓밟고 터트리고.
지면에 흩뿌려지는 찐득한 녹색의 액체.
구울들까지 합세하자 출구까지 다다르는 것은 생각보다 쉬웠다.
물론, 문제는 지금부터지만.
알라함, 그 외 길드장들의 표정이 굳었다.
이 앞에는 얼마나 강한 놈이 존재하는 것일까.
개떼처럼 달려 나가는 구울들.
그것을 맞이하는 것은 혼종들이었다.
[키키키.]
“뭘 웃어 이 새끼들아!”
방어조의 팀장, 케레온이 검을 휘둘렀다.
A랭크의 생존자들. 그중에서도 케레온은 무척 강한 축에 속했기에 혼종들은 그의 검이 궤적을 가를 때마다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이전부터 생각했던 건데 역시 뭔가 약해진 느낌이다.
불길을 내뿜어 길을 만든 케레온.
불안감에 꽉 차있던 그의 안색이 조금 밝아졌다.
유세현과 레피아가 거론한 놈은 그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
혹시 단순한 착오였던 것은 아닐까.
케레온은 다시 한 번 더 스킬을 시전했다.
특이개체들이 분포해 있지만 구울에 시선이 끌린 상태라 이대로만 계속하면 빠져나갈 가능성은 충분히 있어보였다.
그렇게 생각하며 그가 불길을 발사하려는 순간.
쉬이익-
귓가에 울려퍼지는 섬뜩한 음색.
오한을 느낀 케레온은 황급히 검의 경로를 틀었다.
허나.
푹-
정확히 심장을 관통하는 검.
“커...컥...”
케레온은 지금 겪은 상황이 믿기지가 않았다. 지금까지 이렇게 빠른 놈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본적이 없었다.
여성체, 그리고 온몸을 뒤덮고 있는 칼날.
“무, 무슨...어떻게 이럴 수...”
헤드리아가 그대로 팔을 휘젓는 것으로 케레온의 육신은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 외통수(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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