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246화 (246/612)

< 외통수(1) >

게다가 알비론 또한 어느새 그들의 주위를 포위한 상황.

이쯤 되면 그 누구라도 깨닫는다.

‘함정이었다는 건가?’

-캬아아아!

알비론의 파도가 몰아쳤다.

알라함은 알비론 한 마리를 단숨에 베어버리며 힘껏 외쳤다.

“작전은 완수했다! 뚫어라! 둥지로 복귀한다!”

돌발 상황이 발생한 것 치고는 무척 발 빠른 대처였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돌발 상황마다 어리바리한 모습을 보이며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면 지금까지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니까.

하물며 그는 제국군의 넘버 2다.

평화로운 세상이었다면, 아첨만으로도 그 자리에까지 올라갈 수 있었겠지만, 이 세계는 그렇게 만만치가 않다.

그리고 이는 길드연합의 팀장들도 마찬가지였다.

“포메이션 C-10으로 변경!”

그 말에 잽싸게 뭉치는 인원들.

대열은 송곳처럼 무척 날카로운 형상을 취하고 있었다.

“돌파하라!”

“흐아압!”

마침내 시작된 돌격!

유세현이 그 뒤를 따르며 팀원을 슬쩍 살폈다.

지금까지 합을 맞춰 전투 한 적이 없던 만큼, 딱히 말을 꺼내지 않아도 그들은 이미 알아서 포지션을 변경한 상태.

유세현은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지 않던 마력을 개방해 암흑투기를 발현했다.

혹시나 해서 사용하지 않고 있었던 것인데.

역시 안 좋은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

쿠우웅!

현저하게 굼떠지는 알비론들의 움직임.

어찌나 차이가 큰지 생존자들도 이상함을 느끼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놈들 갑자기 왜 이래? 뭔가 좀 많이 이상한데?”

방금 전까지만 해도 B랭크 최상급에 달하는 움직임을 발휘하던 놈들이다.

수치로만 따지자면 10%~15%정도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것.

아니, 물론 면밀히 따지자면 엄청난 차이긴 했으나, 놈들의 물량이 너무 많고, 내구력 스텟은 힘 스텟과 달리 그렇게 높지 않아 큰 부상을 입을 수 있기에 부담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이 정도라면!

“잘하면 쉽게 벗어날 수 있겠는...”

한 병사의 안색이 살짝 밝아진 순간이었다.

스스스.

이곳에 존재 하는 모든 알비론들의 고개가 쓱 돌아갔다.

마치, 컨트롤러를 모든 기계에 연동시켜 조종하는 것처럼 일제히.

단 1초의 오차도 없이.

그 모습은 알라함조차도 등골이 싸늘해질 정도로 무척이나 괴기할 뿐만 아니라 혐오스럽기도 그지없었다.

“도대체 뭔...”

전투 중에 한 눈을 팔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은근슬쩍 향하는 시선.

놈들이 쳐다보는 장소에는 한 그룹이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한 남자.

일대에 존재하는 모든 알비론들의 입에서 괴성이 터져 나왔다.

-키릭!

-키리릭!

-키리리리리릭!

생존자들은 그 순간 소름이 쫙 끼쳤다.

놈들은 생존자들에 의해 벌써 4자리 수에 달하는 피해를 입었다. 반면, 병사들의 피해는 아직까지 미미.

하지만 이 괴성은 분명 웃음 소리였다.

“이 새끼들이!”

“전부 죽여 버려!”

서걱-

촤좌자작!

인원들은 검을 휘두르는 것에 박차를 가했다. 이전보다도 여유가 훨씬 더 사라진 느낌이었다.

타다닷.

병사 한 명이 나무의 옆면을 밟으면 순식간에 높이 비상했다. 보다 괜찮은 퇴로 경로를 살펴보기 위함이었지만...

“어...어...”

주위를 확인하기 무섭게 떡 벌어지는 병사의 입.

차마 못 볼 것을 보았다는 표정이었다.

그의 망막에 맺혀있는 수많은 스카이레블.

처음에 접근했었던 무리가 아니었다.

그보다 몇 배나 되는 물량.

둥지로 향했던 스카이레블이 전부 이곳으로 몰려오고 있었다.

게다가 숲을 가득 메우고 있는 저 거무튀튀한 형체까지.

‘이, 이게 무슨...’

병사는 깨달았다.

둥지로의 복귀는 무리라는 것을.

일단은 더 깊은 곳으로 도망쳐야 된다.

그는 이 사실을 알리기 위해 빠르게 낙하했다.

허나, 그 순간.

-쉬이익!

푹!

목을 관통해 지나가는 거대한 송곳.

죽음의 이를 정도의 치명상이었다.

병사는 당혹스러웠다.

알베타스의 대표적인 장거리 병사, 포이즌레블은 송곳 같은 것이 없다.

“커...컥...”

그는 당장이라도 떨어져 나갈 것 같은 목을 손으로 움켜쥐어 간신히 버티며 시선을 돌렸다.

놈이 보인다.

상어를 연상케 하는 얼굴이었다.

인간처럼 2개의 다리와 2개의 팔을 가진 놈의 몸은 꼽추처럼 휘어져 있었는데, 휘어진 등 위로는 거대한 송곳이 드러나 있었다.

수확관, 혹은 특이개체로 불리는 알베타스의 특수병.

[크륵크륵크륵!]

비릿한 조소를 내뱉은 특수개체, 메갈론의 몸이 지상으로 낙하했다.

순식간에 다가오는 검은 그림자.

콰직-

그것이 병사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 * *

바로 앞에 존재하는 약 60마리의 적을 살핀 알라함의 눈이 거칠게 진동했다.

그는 현재 자신에게 닥친 상황을 믿을 수 없었다.

그래, 함정을 펼치고 개떼로 몰려온 것은 이해한다.

눈에 가시였던 자신들을 잡고 싶었겠지.

하지만...

‘이건 말도 안돼!’

하나같이 다 제각각의 형태.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였다.

이놈들 전부 특이개체라는 것.

그 어떤 전장에서도 이토록 많은 특이개체가 우르르 몰려온 경우는 없었다.

지금까지는 최고 많이 등장해봐야 4~5마리가 전부.

그런데 왜 지금은...

놈들 중 하나가 뜬금없이 말했다.

[찾. 았. 다.]

알라함이나 길드의 팀장들로서는 전혀 이해가 불가능한 말이었다.

허나, 그들도 곧 깨달았다.

특이개체들이 시선이 전부 어디로 향해 있는 지를.

‘유세현!’

그래, 맞다.

알비론도 유세현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 순간 뇌리 속에 몰아치는 폭풍.

‘설마...’

설마 저놈 한 명을 잡기 위해 이정도의 인원을 투입했다는 것인가?

-캬아아아

알라함은 더 이상 생각을 이어갈 수 없었다.

죽지 않기 위해서는 계속 쉬지 않고 베어야 했다.

그때 그런 그를 향해 질주해오는 특이개체들!

“큭! 무슨!”

한 번에 다 달려들다니!

허나, 이것은 전쟁.

비난할 수도 한탄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는 버텨낼 수 있을지 없을지를 판단했다.

그는 아직 죽고 싶지 않았다. 살고 싶었다.

하지만...

‘젠장...’

그의 힘 스텟은 A랭크 35%.

특이개체는 그와 동일할 정도로 빠르다.

본능이 말하고 있었다.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흐아아!”

그는 마력을 쏟아 부어 스킬을 발현했다.

전방에 있는 모든 것을 잘게 베어버리는, 현재의 그를 있게 만들어준 유니크 S랭크 스킬.

“풍참격살!”

촤자자자작!

검의 날과도 같은 날카로운 바람이 수십 갈래로 펼쳐져 비산했다.

대놓고 쏴서 전부 회피해버리면 어쩌나 싶었는데 예상 외로 서너 마리가 휘말렸다.

게다가 속도도 뭔가 느린 느낌.

하지만 놈들은 특이개체다.

“큭!”

그는 대응하기 황급히 자세를 다잡았다.

허나, 그 순간 물살이 갈라지듯 양옆으로 특이개체들이 몸을 스쳐 지나갔다.

마치 없는 사람인 것 마냥.

당황스런 알라함.

레피아가 경직된 표정으로 유세현을 향해 말했다.

“너...인기 장난 아니네...”

“......”

이윽고 펼쳐진 격돌.

특이개체들의 스텟은 레브레스와 거의 동일했다. 다만 풍부한 감정표현력을 보였던 놈과는 달리 상당히 어눌한 느낌.

그간 스텟이 증가했고, 암흑투기가 커버해주어서 평범하게 대응하기에는 지장이 없었지만, 문제는 놈들의 협공과 특수능력 그리고 지원을 해주는 막대한 물량이었다.

투두두두!

탄환과도 같은 작살에 이어 강철같이 날카로운 비늘이 날아온다.

잽싸게 부패의 어둠을 흩뿌려 요격을 했지만...

쉬이익!

쿠구궁!

곧바로 이어지는 스카이레블의 갈고리.

수백 마리가 일제히 발사한 것이라 범위와 위력이 상당했다.

이어서 달려드는 알비론과 산성 독을 발사하는 포이즌레블.

갑자기 벌어진 스텟의 차 덕분에 순식간에 특수개체 2마리를 처리하는데 성공한 레피아가 마력을 끌어 올렸다.

작은 알갱이가 분산되며 그녀의 주위가 녹빛으로 물들어갔다.

꽃잎처럼 휘몰아쳐, 만리를 물들인다고 하는 성명절기.

[만천독화(萬遷毒花).]

쉬이이-

흩뿌려진 독은 산성독과 달려드는 알비론들을 모두 잡아먹기 시작했다.

내부로부터 시작해서 녹아내리는 몸.

-키아아아악!

자칫하면 아군에게 피해를 입힐 정도로 무서운 무공이었지만, 레피아가 잘 조절했기에 다행이도 피해는 없었다.

그리고 그녀가 이런 스킬을 사용한데는 이유가 있었다.

“이건 못 뚫어! 너무 많아!”

동의하는 바였다.

한 번에 모든 것을 상대하기에는 숫자가 너무 밀렸다. 이번에는 그만큼 이전과 차원이 다른 습격이었다.

특이개체를 전부 죽인 뒤 되살린다면 상당한 전력이 되겠지만, 엄청나게 쏟아 붇는 놈들 때문에 처리하기가 껄끄럽다.

마족화를 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둥지까지의 거리는 꽤 된다.

지속시간이 끝났는데 베아렉클 같은 놈이 증원을 온다면?

특이개체를 밀쳐낸 유세현이 말했다.

“다른 지역으로 이탈하도록 하겠습니다. 길은 저보다 레피아씨가 잘 아시니 알아서 잘 인도해주시기 바랍니다.”

“알았어.”

유세현은 천마군림보를 시전해 순식간에 알라함의 옆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지그시 통보했다.

“다른 장소로 빠져나갈 겁니다. 길을 만들면 따라오시기 바랍니다.”

스스슥-

말을 마치기 무섭게 방향을 꺾어 사라지는 유세현.

온 힘을 다해 적을 상대하고 있던 알라함의 머리에 순간적으로 열이 팍 차올랐다.

지금 저놈이 감히 통보를?

게다가 둥지 쪽이 아닌 다른 장소로 빠져나갈 거라고?

특이개체에게 노려지는 것이 대체 뭐하는 놈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만인상이 된 알라함이 유세현을 향해 방향을 튼 순간이었다.

콰아아아앙!

상상도 못할 파공성이 일었다.

상공을 뒤덮은 검붉은 빛.

천마혈사장은 쏟아 붙은 마력양에 비해 가히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위력을 발휘했다.

범위를 가늠하지 못한 특이개체 십여 마리는 그대로 휩쓸려 증발.

알라함은 믿기지가 않았다.

지금 것은 그가 자랑스러워하는 풍참격살보다도 1.5배 이상 강했다.

레피아야 이강호의 산하 세력으로 그 강함이 유명하지만 어떻게 소문도 나지 않은 일개 생존자가?

알라함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머리가 식혀지니 유세현의 말이 옳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래 맞아...확실히 전방 돌파는 힘들다.’

하지만 따라가는 건 왠지 모르게 고민이 되었다.

알베타스가 놈만 노리는 것 같았기 때문.

저놈이 이곳을 뜨면 자신들을 놔주지 않을까?

‘아니, 그럴 리는 없겠지...’

마음을 정한 알라함이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퇴로를 병경한다! 저들의 뒤를 따라라!”

* * *

“허억. 허억. 허억.”

죽을힘을 다해 달려 나가는 인원들의 머리위로 스카이레블이 발사한 갈고리가 소나기처럼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크아악.”

재수 없게 스쳐서 다리가 잘려나가는 이.

그대로 짓뭉개지는 이.

엄청난 피해가 속출했다.

그리고 이는 유세현의 팀원이라고 해서 빗겨 갈수 없었다.

콰앙!

“크으윽!”

폭격에 휘말린 브레스터는 고통을 뒤로한 채 황급히 몸 상태를 확인했다. 각반이 착용되어있던 오른쪽 발목은 괜찮았지만, 왼쪽 발목은 그렇지 않았다.

이전 전투로 인해 장비가 완전 파손 되서 복원하지 못했기 때문.

완전히 으깨진 발목.

회복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그는 스스로가 여기까지라는 것을 인지했다.

그때, 구름섬 동기 캐시가 뛰어가다 말고 황급히 발걸음을 돌려 다가왔다.

“브레스터!”

“가, 캐시. 빨리!”

“어떻게 널 두고...빨리 업혀! 이제 너 하나 업는 건 일도 아니야!”

“......”

“빨리! 내입에서 욕 나오는 거 보고 싶어?”

브레스터는 일단 그녀의 말을 따랐다.

“목 꽉 붙잡고 있어라. 놓으면 절대로 용서 안한다.”

다시 달려 나가기 시작한 그녀.

다들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는 것은 아니었기에 따라잡을 수는 있었지만 큰 문제가 남아있었다.

누군가가 등에 붙어있으면 팔의 움직임 제한되는 것.

게다가 움직이는 것도 상당히 불편하다.

지금이야 스킬로 버텨내고 있다지만.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는 추격전 마력은 아낄수록 좋다.

‘발이 회복되려면 최소 하루는 걸리겠지.’

1분 1초가 위급한 상황에서 하루.

우스운일이다.

그는 그녀의 귓속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내 코인 네가 가져. 스킬코인이 나올지는 모르겠지만...나왔으면 좋겠네...최고 좋은 거로.”

“...뭐?”

-푹.

캐시가 말을 이을 틈도 없었다.

코인이 스며들어오는 것이 느껴진다.

동시에 몸을 지지하고 있던 나머지 한 팔이 풀리며 브레스터의 몸이 떨어져나갔다.

“......”

캐시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입을 꽉 악문 채 묵묵히 적을 계속해서 베어나갔다.

< 외통수(1) >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