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장파괴(2) >
“세, 세현씨!”
격렬하게 반응하는 팀원들.
유세현이 피해상황을 보고 받는 동안 루시아는 불안감을 뒤로한 채 지드먼을 찾아 생존자들 사이를 누볐다.
한 명, 두 명.
찾으면 찾아볼수록 점점 어두워지는 낯빛.
‘없어...없어!’
“...그렇게 해서 51명의 인원들이 놈들에게 끌려간 걸로 파악 됩니...”
지드먼의 모습은 그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애써 현실을 부정했다.
‘아니야...아닐거야. 분명 다른 일을 하느라...’
그녀가 다시 인원들 틈을 누비려하자 보다 못한 팀원 한 명이 다가와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생존자.
그 순간 지금까지 애써 평소처럼 유지하던 루시아의 표정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축 처진 눈썹과 경련하는 입가.
그녀는 입을 꽉 악물고 당장이라도 터져 나올 것은 눈물을 집어삼켰다.
울어봤자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그리고 알아낸 정보로 치자면 지드먼은 아직 죽지 않았을 것이다.
준비하는데 시간이 제법 걸리니까.
놈들이 육신을 녹이기 전에 되찾으면 된다.
‘하지만 어떻게?’
자신 혼자의 힘만으로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기껏해야 유세현에게 제안을 하는 정도.
하지만 항상 최선을 보는 그가 무작정 움직일까?
아니다. 이득보다도 실이 더 많을 것이라 생각되면 그는 분명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유세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51명이라...잠시 총지휘자와 이야기를 하고 오겠습니다.”
“아, 예. 그러시죠.”
내부로 나아가려 할 때 루시아가 옆으로 다가왔다.
혼자인 것을 본 유세현은 지드먼이 붙잡혔다는 것을 단번에 알아챘다.
그리고 뭘 말하기 위해 다가온 것인지도.
“공장을 칠 것이니. 걱정 말고 대기하고 있으시기 바랍니다.”
“...!!”
루시아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허나, 그것도 잠시.
고개를 꾸벅 숙인 그녀는 황급히 자리를 비켜주었다.
저편으로 사라지는 그.
루시아는 그 잠깐 동안 했던 고민이 부질없게 느껴졌다. 그녀가 가슴에 손을 얹었다.
두근두근-
격렬한 전투를 한 것도 아닌데 심장은 던전에서처럼 미친 듯이 요동치고 있었다.
* * *
“뭐? 공장을 치겠다고?”
바위에서 걸터 앉아있던 게릭이 벌떡 일어섰다. 유세현은 차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좋은 정보를 얻었거든.”
“...후...너는 정말...한 번 말해봐라.”
게릭은 경청의 자세를 취했다.
보통이었으면 싸다구를 날리고 꺼지라고 했을 텐데.
게릭의 이상행동에 팀장 한 명이 룽겐을 향해 물었다.
“야, 이건 좀 아니지 않냐. 아무리 던전의 비밀통로를 발견했다고 해도 저놈은 고작 해봐야 새내기인데. 말을 듣는 건 좀...”
“닥쳐. 이젠 나도 잘 모르겠으니까.”
그사이 유세현은 빠르게 자초지종을 설명해 나갔다.
대략적인 내용을 들은 게릭이 혀를 찼다.
“해킹이...가능하다고?”
“그래.”
작전은 간단했다. 한쪽에서 시선을 끌면, 나머지가 잠입하여 생존자를 구출하고 공장을 파괴한다.
과거에는 게릭 또한 여러 차례 시도한 적이 있던 작전이었다.
허나, 번번이 실패했다.
감시병이 장난 아니게 많았을 뿐더러, 일이 발생되면 공장은 전면 폐쇄가 되는데 보안을 뚫지 못해 몸체를 만드는 핵심시설에까지 다다르지 못했기 때문.
그래서 언제나 외측부만 무너트리고 퇴각하는 형식을 취했고, 세력이 약해진 지금에 와서는 별다른 수를 쓰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도 사실 이곳에서 계속 지내야하는지, 혹은 다른 부대와 합류해야 되는지 고민하고 있던 차다.
유세현이 오면 그때 결정하려고 했었는데.
“흠...파괴라...”
게릭은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니, 사실은 시늉만 하고 있는 것이었다.
부하들이 보고 있으니까.
“우리들이 바깥에서 시선만 좀 끌어주면, 너희가 알아서 하겠다는 거지?”
“물론.”
“그래, 좋아. 자신이 있다면 그렇게 하도록 하지. 작전 시작 시간은?”
“3시간 뒤. 많이 해봤다고 하니 그 정도의 시간이라면 숙지하는데 충분하겠지?”
“...물론이다. 그런데 너희야말로 3시간 가지고 괜찮겠냐?”
유세현은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 게릭이 짝 박수를 쳤다.
“그래, 좋아. 그럼 3시간 뒤에 보자고.”
그렇게 대화가 끝나고, 유세현이 몸을 돌려 저편으로 사라졌다.
간부들이 그제야 불평불만을 터트렸다.
“지휘관님 정말로 하실 생각인 겁니까? 현대에서 저자와 얼마나 친했는지는 모릅니다만 아직 새내기에 불과합니다. 그런 자의 말을 믿고 우리만으로 이 작전을 감행한다는 건...”
“맞습니다. 어째서 저런 놈의 말을 따라 주시는 건지 저도 이해가...”
게릭은 그것을 순식간에 무마시켰다.
“아 시끄러워. 너희들 내가 지금까지 정에 이끌려서 헛짓거리 하는 거 봤냐?”
“아...그건 그렇지만...”
“그리고 내가 쪽팔려서 차마 말 안 하려고 했는데. 저놈 사실 나보다 훨씬 강해. 그리고 놈은 승산 없는 싸움은 하지 않는 성격이지.”
“...예?”
“아무튼 지금처럼 믿고 따라와 봐라. 그리고 어차피 도주루트도 확보되어 있으니 큰 피해는 없잖아?”
“...그렇긴 하지만.”
“알았으면 준비해. 그리고 괜히 이 이야기 떠벌려서 분란 만들지 말아라. 굳이 너희들 앞에서 우리 둘이 대화를 한 건 이 때문이야 알겠냐?”
“...알겠습니다.”
그들은 멍청한 리더 때문에 애꿎은 350명만 죽어 나가겠구나 싶었다.
그렇게 작전이 시작되었다.
* * *
제 2 육체 제조 공장, 림 팩토리의 내부.
100명의 공장의 관리자 중 하나인 4세대 마크, 룸뷔아는 경계병이 보내온 통신을 확인하기 무섭게 중간 경보인 코드 옐로우를 가동시켰다.
“놈들이 쳐들어왔다. 즉시 대응할 수 있도록.”
위이잉-
울려 퍼지는 싸이렌 소리와 함께 출동하는 7세대 마크.
의자에 편히 앉아 있는 룸뷔아의 시선이 영상드론이 보내주는 화면을 향했다.
인간을 닮은 잡종.
그래서인지 룸뷔아는 놈들을 잡아다가 육체를 만들 때마다 정말 즐겁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저 귀엽기까지 한 되도 않는 반항.
어차피 이곳에까지 다다르지 못하리라는 것을 그들 스스로도 뻔히 알 텐데.
“교대다 룸뷔아.”
“어, 그래.”
근무 교대한 룸뷔아는 재료가 될 놈들이 잡혀있는 장소를 찾았다.
사람들을 주시하는 황금빛의 눈동자.
인간 여성의 외견을 하고 있는 룸뷔아를 본 생존자들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우, 우리를 구출하기 위해 오신건가요? 어디소속이시죠? 1부대? 2부대?”
“쉿. 1부대에요.”
룸뷔아는 마치 구하러 온 것 마냥 시늉을 하며 락을 해제했다.
“빨리 나오세요.”
그 말에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 움직이기 시작하는 생존자들.
제일 먼저 철장을 나간 한 명이 다급하게 말했다.
“팔! 잘려나간 저희 팔도 좀 가져다주세요! 왜인지 몰라도 저기 한쪽에 모아 둔 것 같았어요.”
룸뷔아는 그 말에 방긋 미소를 지었다.
“알겠어요. 가져다 드릴게요. 키 카드를 훔쳤으니 가능할 거예요.”
무척 여유 있어 보이는 모습.
촉이 좋은 생존자들은 뭔가 괴리감을 느꼈다.
특히나 배신자 사건을 겪었던 유세현 팀의 일부는 더욱 격하게 반응했다. 그들은 자신의 팀원에게 충고했다.
“지드먼씨 뭔가 이상합니다. 일단 최대한 뒤에 빠져있어 보죠.”
“예? 그게 무슨...”
지드먼은 아이러니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그 말을 따랐다.
삐빅.
치잉.
그 사이 팔이 든 보따리를 꺼내온 룸뷔아.
“너무 많이 섞여있어 지금은 분류가 불가능하니 붙이는 건 나중에 하도록 하죠. 일단은 제가 들고 있을 게요.”
“아, 알겠습니다. 그런데 혹시 퇴로는...”
“확보해 놨어요. 안내할게요.”
“오...”
사람들이 감탄을 뒤로하고 자세를 낮춘 룸뷔아는 공장을 나아가기 시작했다.
“이쪽으로 오세요!”
룸뷔아는 과거 인간이 만든 첩보영화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움직였다. 사람들은 긴장어린 표정으로 그 뒤를 따랐다.
그렇게 삼십분.
“어, 언제쯤 출구에...”
“거의 다 왔어요.”
룸뷔아는 그렇게 말하면서 출입카드를 긁었다.
문이 열리기 무섭게 내부에서 불어오는 후끈후끈한 열기.
“이, 이건?”
“이곳에 출구가 있어요. 비밀 통로 같은 거라...”
사람들은 뭔가 이상했지만 룸뷔아의 말에 따라 내부로 들어갔다.
강화된 속성 저항력 때문에 견디지 못할 정도로 뜨거운 것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땀은 비 오듯 흘렀다.
지드먼은 그 순간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뭐, 뭐지 저 여자?’
땀을 한 방울도 흘리지 않는다.
그 정도로 강자란 말인가?
‘후...그래, 이세상은 넓으니까...’
애써 스스로를 납득시킨 지드먼의 발아래는 들끓는 쇳물이 흐르고 있었다.
룸뷔아를 따라 통로를 지난 생존자들의 표정이 얼음장처럼 얼어붙었다.
“이, 이게 무슨...”
방안에는 그들 말고도 포박되어있는 있는 생명체가 있었다.
인간의 형태, 그러나 귀는 머리위로 쫑긋 솟아있었으며 엉덩이에는 꼬리가 나 있었다.
“수인? 수인이 왜?”
지드먼의 중얼거림에 몇몇 수인이 고개만 돌려 생존자들을 쳐다봤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은 생존자들과는 다르게 팔다리가 전부 잘려있었으니까.
할 수 있는 행동은 그것이 전부인 것이다.
“이,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출구라고 하지 않았습니...”
푹-
따질 새도 없이 검으로 형태가 변환이 된 룸뷔아의 팔이 남성의 심장을 관통했다. 생존자들은 그 모습에 경악했다.
“마, 마크?”
“그래. 맞아. 난 마크야. 그것도 깨닫지 못한 채 속아서 죽을 장소로 제 발로 걸어 들어오다니. 깔깔깔깔깔!”
룸뷔아의 광소가 내부에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일그러지는 생존자들의 표정.
룸뷔아는 그것을 보며 쾌락에 휩싸였다.
그녀는 이 장면을 보기 위해 그 귀찮은 연기를 한 것이었으니까.
“너희들은 여기서 다 죽게 될 거야. 저 광물이 보여? 저게 녹아서 이곳에까지 다다르면 너희는 이 밑으로 들어가서 양질의 재료가 되는 거야!”
“개소리를!”
“깔깔깔! 그 동안은 마음껏 지껄...”
후우웅!
생존자의 저항이 이어졌다. 대다수 균형 따위는 생각 하지 않고 무작정 발길질을 하는 것에 불과했지만, 몇몇은 스킬을 사용할 수 있었다.
“풍연각!”
“하울링!”
“크크크크. 그 따위 조잡한 스킬에 내가 맞을 거 같아?”
서걱-
물론 말로는 비참했다.
“크흐흐, 예전에는 인간이 왜 우리를 괴롭히는지 이해하지 못했어. 그런데 지금은 이해가 아주 잘 가더라고. 이렇게 재미있는 걸!”
퍼버벅.
룸뷔아는 본보기로 저항한 생존자를 피떡으로 만들었다.
그리고는 퇴로를 막아섰다.
지켜보고 있던 또 남성형의 마크가 차분히 입을 열었다.
“룸뷔아. 즐겼으면 빨리 제압해라. 곧 도착한다.”
“흐흐흐. 알았어. 위플.”
룸뷔아가 관절을 풀듯 목을 좌우로 움직였다. 지드먼과 생존자들은 으득 이를 갈았다.
팔만, 팔만 있었다면 어떻게든 비벼볼 만 했을 텐데.
“룸뷔아. 나 먼저 집어넣는다.”
위플이 수인들을 발로 뻥뻥 차기 시작했다.
사지가 없는 수인들은 몸만 뒤뚱 거릴 뿐 저항하지 못했다.
“으아아악!”
풍덩.
치이이익.
녹아서 사라지는 육신.
그렇게 500명이 넘는 수인이 절반도 남지 않게 되는데 까지 걸리는 시간은 채 1분이 지나지 않았다.
계속해서 떨어지는 수인을 본 생존자 한 명이 출구를 향해 미친 듯이 질주했다.
“으아아아”
그리고 우연의 일치일까? 발만으로 결제를 하던 그는 룸뷔아를 넘어서는데 성공했다.
허나.
“왜...왜...열리지가 않는 거....”
“호호호, 제일먼저 가고 싶다고? 그 부탁 들어줄게.”
텁썩.
후웅!
“어? 으아아아아!”
남성은 외마디의 비명과 함께 저 아래로 자취를 감췄다.
밀려오는 공포.
룸뷔아가 앞으로 한 발짝을 내딛었다.
“후후후. 그래, 맞아. 사실 여기 폐쇄됐어. 그래서 말인데 내가 넣어줄까? 아니면 너희가 직접 들어갈래?”
그 말에 위플이 혀를 찼다.
“악취미 하고는...난 거의 다 넣어 간다. 빨리 넣을 준비나해.”
“오케이~”
룸뷔아의 행동을 본 지드먼은 마음을 정리했다.
‘여기까진가.’
방도가 없었다. 할 수 있는 것은 발악뿐이었지만, 그마저도 전의가 거의 꺾인 상태.
‘루시아, 네가 우는 모습이 너무도 뚜렷하게 보이는 구나.’
그는 떨리는 몸을 억지로 움직여 룸뷔아를 향해 달려들었다.
최후의 저항.
그러나 결과는 첫 번째와 똑같았다.
“호호, 당신이 두 번째? 좋지!”
훅!
지드먼은 눈을 감았다.
그런데 그 순간.
삐빅-
치이잉-
거칠지만 뭔가 따듯한 느낌의 바람이 귓가에 소용돌이 쳤다.
< 공장파괴(2) > 끝
ⓒ